w. 뿌존뿌존
1. 검은띠-노란띠=0
사범님 권순영 X 노란띠 김세봉
권순영은 니가 다니는 만세 태권도장 관장님의 아들이야.
관장님의 아들답게, 4살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고,
그 탓에 열여덟인 지금, 권순영은 벌써 검은띠 4단에, 사범 자격증 까지 보유하고있지.
게다가 워낙 어릴때부터 운동을 해서 그런지 얄쌍한 몸에 잔 근육까지 탄탄해.
넌 열일곱이야. 여름방학에 체력을 키우겠다는 목적으로 태권도장에 패기넘치게 등록했지.
그래봤자, 학원에 쩌들어있는 니가 운동에 집중할 수 있을리는 만무했고,
너는 동작이 틀릴때마다 예비 사범인 권순영한테 혼나기 일쑤야.
"김세봉, 태권도가 장난이냐? 다리 좀 더 뻗으라고....!"
권순영이 저렇게 쏘아대면 넌 풀이 죽어서는 구석에 가서 찌그러져있지.
그럼 권순영은 괜히 미안해져서 관장님 방 안에 있는 냉장고에서 배즙이나 두유따위를 잔뜩 꺼내서 네 앞에 놓아주지만
넌 시무룩해선 신경도 쓰지 않고 바닥만 바라보고있어.
그럼 권순영은 니 주위를 배회하면서 한숨만 푹푹 쉬어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네가 권순영을 싫어하는건 아냐.
네 눈에도 권순영은 멋있고, 또 본받고 싶은 사람이니까.
네가 권순영을 순영오빠, 오빠. 따위로 부르지 않고 늘 사범님. 이라고 부르는걸 보면 말 다했지.
하지만 권순영은 그걸 정말 불편해하고, 네가 자길 싫어한다고 오해하지.
하지만 뭘 어쩌겠어. 넌 권순영이 불편한걸.
"김세봉, 너 왜 나 사범님이라 불러?"
"사범님이니까요........."
"나 불편해? 너 나 싫어하지."
"아.......아뇨 아뇨, 그럴리가요. 저는 그냥 사범님은 검은띠시고 하니까...
저는 그냥 노란띠잖아요...아직 배울 것도 많고,,,"
너희의 대화는 항상 이런식이지.
네가 저렇게 말하면, 권순영은 머리를 탈탈 털며 한숨을 내쉬고,
그럼 넌 괜히 눈치를 보기 바빠.
어느 날, 네가 네 타임보다 일찍 도착해서 멀뚱멀뚱 앉아있을때가 있었어.
"누나, 세봉이 누나. 이거 어디다 둬요?"
조그만 남자아이 하나가 네 앞으로 종종거리면서 걸어와선 네게 도복하나를 건네지.
그리고 그 도복 위에는 권순영. 이라는 이름이 수놓아져있어.
"이거 사범님꺼 아냐?"
"응, 맞아"
"근데 니가 이걸 어떻게 갖고 있어?"
"형아가 이거 정리해서 탈의실 안에 두랬는데 탈의실이 어딘질 모르겠어"
넌 그 도복을 아이에게서 받아들고는 탈의실로 향하지.
아이가 탈의실을 모른다는걸 의아하게 생각하며 말야.
네가 문을 벌컥, 열자 네 눈에 보이는 건.
"으아아아ㅏ아아ㅏ아!!"
옷을 주섬주섬 벗고있는 권순영.
너는 당황해서 문을 쾅, 하고 닫아버리고 천진한 남자아이는 깔깔거리며 자지러지지.
아이가 네게 짖궂은 장난을 친거야.
너무 당황한 너는 도복을 탈의실 앞에 놓아둔 채로 여자 탈의실로 쏙, 숨어버려.
그리곤 바닥에 앉아 한숨만 푹, 내쉬지.
얼른 관장님이 오셔서 빨리 수업이 시작됬으면, 하고 말야.
네가 탈의실에 숨어있은지 몇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탈의실 문이 벌컥, 하고 열려.
그리고 정체 모를 손이 널 일으켜세우지.
당황한 너는 어버버 거리며 고개를 들고, 네 눈 앞에 서있는건 짐짓 단호한 표정의 권순영이야.
넌 당황해서,
"아니.......사범님 그게...보려고 본게 아니라...승관이가...."
라 웅얼거리지.
권순영은 잠자코 니 말을 듣는 듯 하다가 네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오지.
당황한 너는 뒤로 주춤주춤 걸어가다가 탈의실 벽에 맞닿게 돼.
".........사범님.. 그게 승관이가요,"
네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변명을 하자,
권순영은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않는지 미간을 찌푸려.
그리곤 자신의 허리춤에 묶인 띠를 풀러 네 허리에 매어주지.
당황한 네가,
"사범님......? 아니 그게요.."
하며 띠를 풀으려 손을 뻗자, 권순영이 네 손목을 살짝 그러쥐며,
"이렇게 하면 나 좋아해줄거야?"
그리고 권순영의 부드러운 섬유유연제 향기가 네 몸으로 훅, 끼쳐와.
2. 우산
반장 김민규 X 외톨이 김세봉
너는 너희 반에서 정말 조용히 지내는 친구야.
왕따는 아니지만 워낙 낯을 가리는 터라 친구가 없지.
학기가 시작된지 한달쯤이 지나고, 네가 제일 싫어하는 자리를 바꾸는 시즌이 찾아왔어.
넌 눈을 질끈, 감고 종이를 뽑아 펼쳐봐.
그리고 그 종이에 쓰여있는 17, 이라는 숫자.
네가 숫자종이를 반장에게 건네자, 반장은 해사하게 웃으며,
"어? 세봉아 우리 짝이네? 내 이름 알지? 나 김민규야 김민규"
하면서 네 손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어대지.
김민규랑 함께하는 한달은 너에겐 꽤 즐거웠어.
김민규는 너에게 시도때도 없이 말을 걸어왔거든. 물론 넌 대답은 잘 하지않고 그저 웃어주기만 했지만.
김민규 덕분인지 너에겐 친구도 조금 생겼고,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웃는 널 민규는 흐뭇하게 바라보곤 해.
그리고 또 자리를 바꾸는 시즌이 됬어. 넌 민규의 뒷자리에 앉게 됬지.
민규는 운명이라면서 또 네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해.
민규의 옆에는 한 여자아이가 앉았는데, 그 여자아이는 민규에게 관심이 있는건지 항상 말을 걸어.
그럼 민규는 상냥하게 받아쳐주곤하지.
넌 이상하게 그런 여자애에게 질투를 느껴. 그리고 깨닫지.
아, 내가 김민규를 좋아하는구나.
하지만 민규는 반장인데다가 인기도 많은 아이인걸,
넌 민규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해.
민규가 뒤를 돌아 말을 걸면 넌 책을 응시하며 대충 끄덕거리고
그럼 민규는 하루종일 시무룩해선 책상에 엎드려있다가 선생님들께 혼나기 일쑤야.
넌 그게 너 때문인지 잘 알지 못하지.
어느 날,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어.
네 친구들은 학원 차를 타고 간다면서 우산을 네게 쥐어주고 일찍 가버렸고,
주번이던 너는 문을 다 잠그고 터덜터덜 걸어나와.
그런데, 학교 현관앞에 누군가가 서있어.
".....김민규?"
김민규는 비를 다 맞으면서 현관 앞에 서있었어.
눈물을 애써 참는 듯이 눈과 코가 빨개져있는데,
네가 김민규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김민규의 얼굴에서 빗물 한방울이 흘러 바닥을 적시지.
넌 깜짝 놀라 우산을 다급하게 펴선 김민규에게 씌워줘.
물론 김민규의 키가 매우 커서, 비가 네 쪽으로 다 들이치지만 넌 개의치 않아.
네 친구가 비를 맞아서 옷이 쫄딱 다 젖었는데 이정도 젖는거 따위야, 라고 생각하며 말야.
네가 우산을 씌워주자 김민규는 훌쩍거리며 다소 화난듯이 네 눈을 조용히 응시해.
그런 눈빛이 부담스러운 너는 김민규의 손에 우산을 쥐어주고 애써 바깥을 향해 뛸 준비를 하지.
"집에 가서 꼭 따뜻하게 입고 있어. 감기 걸리면...아프잖아"
네가 뛰기 위해 한 발짝 내딛었을까,
김민규의 손이 네 손목을 붙잡지.
당황한 네가 왜 이래, 이거 놔. 라고 말하며 손목을 비틀자 김민규가 네게 소리쳐
"너 왜 나 피해? 내가 싫어?"
그리고 민규의 눈에선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물방울들이 한가득 흘러 네 마음을 적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