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시작하는감사한 표지입니다:)
돌아오신 서랍 님, 기다렸어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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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됴님께서 주신 감사한 이름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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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전 사죄와 양해의 말씀 올립니다. (이 공지는 본편이 끝난 후 읽으셔도 좋습니다! BGM이 막 흘러가니까요...?^^;; ...근데 왜 앞에 뒀냐구요? ...그..글쎄요....;;) |
개인적으로 이렇게 글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끙끙 앓는 소리하는 거.. 참 하기 싫은데 자꾸 하게 되니 어쩌죠?ㅠ 음... 먼저, 정말 진짜 오랜만에 뵙습니다(_ _) 먼저.. 큰 절부터 받으세요ㅠㅠㅠ (_ _)(_ _)(_ _)(_ _)(_ _)(_ _)(_ _) 너무 오랜만에 찾아뵙게 되어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장문의 글을 쓰는 게 처음이라 페이스나 감정 조절이 익숙치 않다보니 본의 아니게 아무 말도 없이 기다리시게 해드렸어요ㅠ 이런 못난 글쟁이!!! 라고 구박을 하셔도 모자랄 판에 걱정부터 해주신 분들께도 감사하고 또 사죄의 말씀 올립니다ㅠㅠ 아무래도 네 녀석 각자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글이다보니 한 녀석 한 녀석 부분을 쓸 때마다 저도 나름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빙의를 해서;;; 익숙하고 글솜씨 좋으신 분들이라면 아마 글쟁이의 감정과 캐릭터의 감정 사이에 있는 선을 잘 조절해가실 것 같은데- 초보글쟁이인 티를 여기서 다 냈네요ㅠ 모든 일은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가봅니다... 한 동안 머리 속에 저까지 포함해 다섯 명이 엉켜있는 것 같아서 하루 종일 붙잡고 있어도 한 줄이 나가지 않는 슬럼프에서 잠시(...잠시라니 이런 뻔뻔한;;) 헤매다 왔네요-ㅠ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막 끙끙대다보니 밥을 안 먹어도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매일 압박감에 시달리는 게 오히려 더 슬럼프를 심해지게 하는 것 같아서 아예 글에서 손을 떼보기도 하고, 1화부터 노트 하나에 다시 써보기도 하고- 그렇게 돌고 돌아서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다시 한 번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ㅠ 이런 경험을 토대로 좀 더 성장하는 글쟁이가 되도록 하겠습니다ㅠㅠ 그리고, 지난 번에 20화였는데 왜 22화지? 라고 생각하고 계신 여러분이 계시다면 그건 바로 정답입니다!! ...;;; 아시다시피 늘 귀염둥이 찬백이들 이야기에는 유독 약한 저인터라 늦어진만큼 이번에는 21, 22화 두 편을 들고 찾아뵈려고 머리를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습니다만 역시나 찬백이들이 제 발목을 잡네요..ㅠ 이런 잔망스러운 녀석들...ㅠ 21화를 반쯤 써둔 상태에서 22화를 동시에 쓰다보니 아무래도 이 녀석들... 상황이 많이 달라 제가 찬백이들에게 다시 빙의하는 시간이 아주 조금 더 걸릴 듯 합니다- 시간관계상 사실 찬백이들 이야기는 21화에 들어가는 게 맞지만, 사과의 특성상 두 커플의 이야기가 거의 각각의 다른 이야기라고 봐도 무난하기 때문에 더 늦어지기 전에 먼저 22화를 가지고 왔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결정한만큼 염치 불구하고 양해의 말씀 올립니다ㅠㅠ... 두 편의 순서는 바뀌어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점은 제가 보장합니다!!(;;;) 사과는 23화쯤에서 완결이 날 듯 합니다. 좀 더 수정하고 손을 본 텍파본에서는 꼭 21화와 22화를 순서대로 정리해 찾아뵐게요-ㅠ 맨날 달아주시는 감사한 댓글 하나하나 답글을 드린다 드린다, 말만 하고 완전 양치기 소년이네요;; 오늘은 다릅니다! 옙! 지금은 학교라..ㅠㅠ 집에 가서 젤 편한 자세로 뵐게요:) 그럼, 사과 22화로 이어집니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본편 끝나고 보시라고 해놓고 이거 참.. 모순 돋네요;;) |
"...그래서?"
"그래서 뭐."
"그게 끝이야?"
"어."
무덤덤한 종인의 말에 의자까지 끌고 와 바짝 붙어있던 민석이 싱겁다는 표정으로 입을 삐쭉였다.
내년 봄 복학 전에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학교 포탈을 통해 들어온 스터디 모임에서 민석을 처음 만났다.
처음에는 제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얼굴로 방글방글 웃고만 있던 민석은 생각보다 말이 많은 놈이었다.
그러더니 며칠 전부터는 종인을 내내 귀찮게 하고 있다.
제 과 후배 하나가 종인을 소개시켜달라며 자꾸 졸라댄다는 민석을 몇 번이고 밀어냈더니 '뭐야- 사귀는 사람이라도 있냐?'하고 툴툴대는데,
문뜩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하고 책을 들여다보는데 그쯤하면 물러설 줄 알았던 민석은 더 눈을 빛내며 제 옆으로 바짝 붙어왔다.
'뭐야, 뭐야? 연상? 연하? 동갑? 우리 학교야?' 옆에서 시끌시끌... 괜히 말을 꺼냈다 싶게 난리가 났다.
대체 남의 연애사에 뭐가 그렇게 관심이 많아.
귀찮아서 무시하려고 해도 민석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꽤나 무거운 벌금이 걸려있는 퀴즈 준비를 다 못해서 좀 일찍 왔는데 이 놈 때문에 망했다.
'유학간지 3년 좀 덜 됐어.' 한숨 끝에 한 마디를 던져두고나니 더 할 말이 없어졌다.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정말 그게 다니까.
경수가 떠난 그 다음 해 늦은 봄- 종인은 자원해서 군대에 갔다.
경수가 돌아왔을 때 떨어져있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까 싶은 마음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종인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덤덤한 척 녀석을 보냈지만 허전한 가슴이 제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녀석과 약속한대로,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더 강해지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군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차피 가야할 곳이었고, 자꾸만 녀석을 원망하고 싶어지는 제멋대로인 마음을 다잡기에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군대 생활은 힘들었지만, 몸이 힘든만큼 마음을 비우기는 좋았다.
지친 몸을 눕히면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무조건적인 기다림을 위해서는 복잡한 일상보다 이렇게 단순한 시간이 더 낫다.
경수와는 종종 편지를 주고받았다.
처음 낯선 타지 생활이 조금 어렵다던 녀석은 이내 잘 적응해가는 듯 했다.
성실한 녀석답게 금방 영어를 익힌 듯 했고 그 곳 대학에 입학했다는 연락도 왔다.
'형, 꼭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았어요' 라는, 녀석 답지 않게 어딘가 들뜬 내용들로 가득했던 어느 날의 편지에는
그 동안 두 걸음정도 물러선 채 세상을 바라보던 녀석의 모습이 희미해져있어 저도 덩달아 흐뭇해졌다.
새롭게 사귄 친구들 이야기와 함께 찍은 사진들도 종종 담겨있었다.
군부대의 특성상 국제우편이 오고가는 시간이 조금 더디긴 했지만, 매일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자주 오지 않는 것이 좋았다.
사내녀석다우면서도 꼭꼭, 나름대로 또박또박 정갈하게 눌러쓴 글씨를 볼 때마다-
변함없는 눈빛으로 사진 너머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는 녀석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리워지니까.
흰 종잇장에 희미하게 묻어있는 녀석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까, 며칠이고 들여다보다 답장을 쓰려 편지지를 꺼내면 말주변 없는 종인은 또 한참을 고민해야했다.
군대에서 있는 이야기들이야 매일 다를 것이 없으니까.
그리고 그런 뻔한 이야기들을 빼면 쓸 말은 늘 하나만 덩그라니 남았다.
'보고 싶다.'
마음 속에는 편지지를 가득 메우고도 남을만큼 가득한 그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각조각 이어진 며칠간의 이야기 끝에 딱 한 번만 조심스레 담겼다.
그 말 하나를 던지면 며칠이고 이어지는 여운에 가슴이 먹먹해오듯, 녀석도 그럴까 싶어 애써 담담한 척-
글로 전할 수 없는 감정을 담아 찍는 마침표 끝에는 그리움만이 남았다.
그렇게 제대한 것이 몇달 전.
그리고, 군대에서조차 느리긴 해도 끊임없이 주고받았던 녀석의 연락이 뜸해졌다.
.
.
.
어느 어린 날의 기억만 가득한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가을의 바람은 어김없이 종인을 찾아왔다.
스터디 모임이 끝나고 집 근처에 사는 고1짜리 꼬맹이 과외 하나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나즈막한 건물 너머 하늘이 발갛게 빛나고 있었다.
멍하니 멀리 노을이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종인은 이내 어깨에 대충 둘러멘 가방끈을 고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길어지는 그림자 너머 세상이 온통 저녁노을빛에 물들어갔다.
그 선명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에 또 녀석이 생각났다.
올해 겨울이 오면, 녀석이 떠난지 꼭 3년.
그리고 그 3년 내내, 경수의 모습은 흐려지지도 않은 채 늘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 곳에서도 노을이 이렇게 질까.
아름다운 것이든, 즐거운 일이든-
나누고 싶은 모든 순간에는 어김없이 네가 떠오른다.
네가 함께 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뭐라고 말했을까.
그리고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리움은 늘 씁쓸한 것이라 마음이 아팠다.
네가 나에게 아픔이 된다는 것이, 슬프다.
경수가 떠난 후 홀로 걷던 골목길은 어떤 날은 일부러 찾아가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멀리 돌아가기도 하는 알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기억이라도 쫓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날이 있는가하면,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쁜 날도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녀석과의 약속 하나만으로 담담하게 버텨오던 시간 속에 종인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는 듯 했다.
무엇보다 그런 제 자신을 다잡는 일이 종인을 가장 힘겹게 했다.
더욱이 학교일이 바쁜지 뜸해진 연락 때문일까, 자꾸만 기운이 빠진다.
우체통에 들어있는 네 편지를 꺼내들 때의 설렘과 한 글자 한 글자를 따라가며 가슴에 쌓이는 아린 행복,
그리고 마지막 한 줄을 몇 번이고 읽다 접었을 때의 아쉬움마저 사랑하는 나는 늘 네가 고프다.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마지막으로 편지를 받은 것이 벌써 석달쯤 지났다.
요즘 제 친구 크리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소하고 짤막한 이야기와 함께 전해온 사진에는 조금 길어진 머리 때문에 한결 더 미소가 부드러워진 경수와
그런 경수보다 키가 머리 하나는 커보이는 금발머리의 잘생긴 녀석이 어깨동무를 한 모습이 담겨있었다.
아니, 사실 키가 작은 경수의 어깨에 녀석이 팔을 걸치고 있는 게 맞았다.
말갛게 웃고 있는 경수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다 이내 툴툴거렸었다.
'이 자식... 어디다 팔을 올려놓고 있어. 나도 한 번도 못해봤는데...'
애시당초 서로에게 전화번호도, 메일주소도- 쉽게 연락할 수 있을만한 것들은 남기지 않았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약속된 어느 날을 위해, 서로 맞닿는 시간은 짤막한 편지 한 장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뭐랄까... 어찌보면 서로를 위한 마음이었고, 또 어찌보면 서로에게 잔인한 배려였다.
적어도 종인은 그랬다.
종인도 경수도, 이제 막 세상으로 나아가는 서툰 어른에 불과했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종인은 늘 경수가 부담없이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싶었다.
처음으로 제 마음 밖으로 나서는 경수를 얽매는 굴레가 되고 싶지 않았다.
언제든 네가 편히 돌아올 수 있는 곳이 되기 위해, 네가 떠나있는 동안 나는 더 자라고 싶었다.
내 가슴이 더, 더 넓어져서 네가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까지 제 자신을 버리고 낮추어본 적이 또 있을까.
가슴 한 구석에 남은 서글픔까지 지우기엔 아직 모자랐지만, 종인도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파하는 만큼 눈빛이 깊어졌고 기다리는 만큼 마음이 자라났다.
네가 아니라면 다시 또 누군가에게 이런 아픔을 느껴볼 수 있을까.
작은 한숨이 종인의 등 뒤에서 불어오는 여린 바람에 실려 멀어져갔다.
그 바람이 닿는 끝에는 늘 너의 기억이 있다.
널 위해 성숙해지고, 널 위해 어른이 되려하지만 아직은 시간이 모자랐을까.
기억 속에 남은 녀석의 흔적은 늘 설레고, 아리다.
마지막 빛을 화려하게 태워들어가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종인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 시려오는 눈가는 아마도 온 힘을 다해 빛나다 사그라드는 노을빛이 서럽도록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경수야..."
깊이 가라앉은 마음을 담아 불러보는 너의 이름은 늘 나에게로 돌아와 심장에 박혀든다.
그 상처를 타고 넘쳐흐르는 그리움은 저 노을빛과도 같다.
뜨겁고, 그 끝은 항상 시리다.
"...도경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고 싶다."
너와 약속한 미래를.
천천히 옮겨진 발걸음은 익숙한 길을 따라 이어졌다.
찬란하게 사그라지는 초저녁의 마지막 햇살 아래, 종인은 이 그리움을 조금 더 느끼기로 마음 먹은 참이었다.
누군가가 마음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해서, 가끔은 아픔마저 사랑하고 싶어지는 날이 있다.
한 동안은 너무 떠올려 닳고 닳은 녀석의 흔적에 심장이 아려 멀리 돌아갔던 그 길을 종인은 다시 따라 걸었다.
늘 사람이 많지 않은 골목길에는 가끔 교복 차림으로 재잘재잘 수다를 나누는 어린 여학생들이나 나른한 걸음을 옮기는 길고양이의 나긋한 뒷모습만이
종종 눈에 띌 뿐-
그렇게 혼자 걷는 종인의 곁을 한적하고 여유로운 가을의 바람이 소리없이 맴돌았다.
경수와 헤어지던 마지막 날, 홀로 돌아오며 걷던 눈길이 떠오른다.
그 시린 눈내음이 아직도 선명한데, 벌써 여러 번의 계절이 지났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골목길이 고마워 종인은 새삼스레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네가 없는 내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어쩌면 한없이 느려서 멈춘 듯 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나 혼자만 멈춰선 채, 흐릿할만큼 빠르게 흘러가고 있을까.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저녁노을 조차 천천히 지는듯한 길을 종인은 느리게 느리게 걸었다.
떠오르는 녀석의 모습에 아린 마음조차 그리워서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다다른 낯익은 골목 끝. 이 모퉁이를 돌면 너와 처음 만났던 그 곳이 보인다.
우리의 시작이었고, 홀로 너를 보내는 나의 마지막이었던 곳.
안녕이란 말 하나를 더 남기지 못해, 사랑한다는 말 하나를 더 전하지 못해 무너지던 가슴을 흘려보내던 곳.
문뜩 비가 오던 그 처음의 밤, 노란 우산을 쓰고 이 모퉁이를 넘어 사라지던 녀석의 뒷모습이 생각나서 종인은 가만히 웃었다.
그 때는 녀석의 그 동그마한 머리꼭지가 왜 그리도 귀엽고 자꾸만 만져보고 싶었을까.
그렇게 멍하니 멈춰선 채 빈 길모퉁이를 바라보던 종인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녀석의 흔적은 짙어졌다.
발그스레 물든 하얀 담벼락을 돌아, 이제 오롯이 너의 기억으로 가득한 그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막 돌아선 길모퉁이 너머- 불빛이 희미한 카페의 유리문 앞 계단에 누군가 앉아있었다.
눈이 부시도록 붉은 노을빛을 온 몸으로 받으며 그 작은 실루엣은 가만히 먼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때껏 종인이 바라보며 걸어온 바로 그 하늘이었다.
...꿈인가.
정말 시간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면,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을까.
종인은 멍하니 속으로 중얼거렸다.
꿈이다.
이건 꿈이다.
심장조차 뛰지 않아서, 더욱 거짓말 같았다.
희미하게 카페에서 들려오던 음악소리도 점차 아득하게 멀어져갔다.
"...형."
정적에 휩싸인 종인의 세상 속에 유일하게 울린 것은 녀석의 목소리였다.
지난 번 사진으로 보았던 것보다 머리가 좀 더 길었고, 드러난 목덜미가 전보다 조금 더 야윈 듯 보였고,
학교에서 운동을 시작했다더니 마냥 어린아이처럼 말갛기만 하던 얼굴이 조금은 탄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카페 앞 오래된 나무 계단에 앉아 멀리 노을빛을 바라보던 녀석이 문뜩 인기척을 느끼고 시선을 옮겼을 때-
변함없이 반지르르 빛나는 까만 눈동자는 분명 경수의 것이었다.
"형 생각 나서 여기 왔는데... 진짜 형이 있네요."
베시시 입가에 번지는 미소도, 차분하지만 어딘가 들뜬 듯한 목소리도... 녀석이다.
정말 녀석이다.
발간 노을빛으로 덮힌 카페 계단에 앉은 경수를 종인은 굳어버린 듯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꿈이 아닌가.
아니면, 기억이 넘쳐 만들어진 환상일까.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내 앞에 네가 있다.
깜빡깜빡- 말없이 시선이 한참을 오고갔다.
그 멈춰버린 공기를 먼저 움직인 것은 경수였다.
계단에서 몸을 일으킨 녀석이 천천히 제 앞으로 다가와 멈춰섰을 때-
마지막 노을빛을 타고 불어든 바람에 그토록 그리웠던 녀석의 체취가 온통 묻어나서, 종인은 그제서야 이것이 꿈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
"...왜 여기 있어?"
3년이다.
어찌보면 헤어짐을 각오했던 순간의 마음에 비하면 그리 길지 않았을지 모를 시간이지만, 그 속에 묻어있는 그리움만으로도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 모든 시간과 감정이 담겨있다기에는 어쩌면 조금은 싱거운 질문이었다.
경수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또렷이 종인을 바라보던 눈가가 살풋 접히며 웃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하는 말이 딱... 진짜 우리 형 맞구나."
"..."
응.
나 맞아.
널 숨이 가쁘도록 그리워한 사람.
너와 한 약속을 지키려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을 지나온 사람.
널 기다리면서 나 자신을 하나하나 버리다보니 네가 없어도 너로 가득찬 사람.
그랬다.
네가 없던 나는 그랬다.
그런 내 앞에, 지금 네가 있다.
"나- 내년에 여기 대학으로 편입하기로 했어요."
"뭐...?"
"형 때문에 온 거 아니니까 우쭐하기 없어요-
형네 학교에 꼭 배우고 싶은 교수님이 계셔서 아빠한테 부탁해서 온 거예요."
"...우리 학교?"
"네. 형네 학교 편입시험 어렵기로 진짜 유명하던데, 나 여기 공부 손 놓은지 벌써 3년이나 지났는데 괜찮으려나-?
이제 공부하려면 진짜 죽었어요-."
말로는 걱정스러운 듯 툴툴대면서도 해사하게 웃는 녀석의 태평한 미소를 종인은 찬찬히, 그리고 꼼꼼히 눈에 담았다.
종인이 그 동안 지나온 시간을 똑같이 걸어온 녀석은 분명 어딘가 달라져있었다.
녀석에게는 늘 눈이 갔고 항상 쓰다듬고 싶을만큼 사랑스러웠지만 그러면서도 어딘가 애처로워 보듬기조차 겁이 날 때가 있었다.
마치 때이른 시기에 세찬 장마비를 쫄딱 맞은 작은 새 같은 녀석의 모습이 안쓰러워 더 마음이 갔다.
하지만 종인의 눈 앞에 선 지금 이 순간의 경수는 달랐다.
여전히 눈을 뗄 수 없고 사랑스러웠지만, 빛이 났다.
바들바들 떨리던 작은 어깨가 가슴 저리던 그 때의 녀석이 아니었다.
화사하지는 않지만 은은하고 따스하게 피어오르는 빛에 눈이 부셨다.
경수는 어느새 그만큼 자라있었다.
그저 말없이 제 얼굴만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종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한 녀석의 얼굴 가득 이내 또 웃음이 번졌다.
"놀랐어요? 기절한 거 아니죠?"
"..."
"형 놀라게 해주려고 일부러 편지도 안 쓰고 참으면서 여기 올 준비했단 말이예요-
얼마나 입이 간지러웠는지 알아요?"
"..."
"...형?"
혼자 멈춰있는 듯한 종인의 모습에 이내 의아한 듯, 또 걱정스러운 듯-
조심스레 잡아온 소매 끝자락이 당겨졌을 때야 종인은 굳은 듯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막상 말을 꺼내려니 목이 잠겨들어 그러고도 잠깐 시간이 흘렀다.
"...이제 그럼 안 가?"
아... 진짜, 김종인.
이게 무슨 엄마 기다리던 초딩 같은 말이야.
담담한 척 해도 종인 자신은 사실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아무렇게나 튀어나온 한 마디는 주워담고 싶을만큼 멋없고 유치했다.
하지만 사실은 무엇보다 하고 싶은 말이었다.
정말 지금일까.
너무 흐리게 보여 믿음 하나만으로 견디며 기다리던 우리의 미래는.
"...네."
가만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의 모습에 마음이 울컥해서- 일그러진 제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아 종인은 얼른 경수를 끌어당겨 안았다.
이끄는대로 다가와 안긴 녀석이 얼굴을 묻은 종인의 품에서 풋풋한 웃음이 번졌다.
"...그럼 너-"
"네."
"...나랑 사귀자."
늦어도 한참 늦은 고백이었다.
널 묶어두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나는 이 한 마디를 미루고 또 미뤄두었다.
사실은 내가 너보다 더 겁을 냈을지 모른다.
혹여나, 아주 혹시나- 내가 지쳐버릴까봐.
용기가 없어 미련하게 널 보내주었는데도, 이렇게 돌아온 너에게 나는 또 구원받는다.
"뭐야..."
"..."
"우리 이미 사귀는 거 아니였어요-?
와, 형 진짜 실망이다-.
그럼 나 지금까지 형 혼자 짝사랑한거예요?"
원망스런 얼굴로 올려다보는 녀석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 종인은 그제서야 경수에게 허겁지겁 입을 맞췄다.
눈 앞에 두고도, 품 안에 보듬고도 꿈만 같았던 지금이 뒤늦게 현실로 다가왔다.
벅찬 마음이 오고가다 잠시 떨어진 입술 사이로 가쁜 숨이 흐르고, 베시시 웃은 경수의 팔이 가만히 목을 감아왔을 때-
종인은 부끄럽게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눈을 감은 채 먼저 다가오는 녀석의 따스한 입술을 마주했다.
그제서야 내내 멈춰있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숨이 가쁘도록 뛰어오르는 가슴이 벅차도록 아파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마지막 빛을 다한 노을 위로 밤이 내리고 있었다.
지나온 골목 길모퉁이부터 하나 둘, 가로등에 희미하게 불이 들어왔다.
그것이, 그토록 기다렸던 미래의 모습이었다.
.
.
.
그 날... 기억해?
너랑 약속한 시간에 늦었던 그 날.
뜨거운 여름길을 미친듯이 달리면서 난 네가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사실은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나봐.
그래서 네 빈 자리를 본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고 네가 나타났을 때 순식간에 비었던 마음이 너로 채워졌나보다.
아니...
어쩌면 그 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게 언제였든, 지금은 중요하지 않겠다.
그저 이번에도 미칠듯이 시간을 달려온 이 끝에 네가 있다는 것.
그것만은, 변하지 않는다.
+주저리주저리
앞에 한참 써놓고도 또.. 마지막에 한 마디가 없으면 뭔가.. 허전하죠?^^;;
정말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조차 쓸 수 없어서 애태울 때 이번에도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어김없이 저를 구해주네요...:)
벌써 2주- 그 동안 추석도 지나가고, 저는 나름대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또 그 와중에도 글이 안 써져서 머리도 쥐어뜯어보고-
(이 글을 보시는 미성년자분들은 이 한 줄은 눈을 감아주세요!!) 취하면 될지도 몰라!! 이러면서 보리주스를 벌컥벌컥 마셔보기도 하고...
난생 처음 마라톤을 완주해보기도 하고- (물론 42.195km를 다 뛰었으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없을겁니다;;ㅋㅋㅋ 고작 10km였으니까요;;ㅎㅎ)
그렇게 지냈습니다. 다들 그 동안 건강히 잘 지내셨나요..?:)
마지막 주저리는 길게 쓰지 않겠습니다.
얼른 집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답글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고 또 늘 감사드립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곧 21화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 가지 더-
사과는 23화에서 완결되겠지만, 사실 사과를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의 제 생각대로라면 사과 23화는 사실 0화나 다름없달까요:)
늘 팬픽은 읽기만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이제 막 행복해졌는데...ㅠㅠ 쫌 더 훔쳐보고 싶은데...ㅠㅠ 상상의 나래에 맡겨야 하는 게 아쉬워서
한편으로는 자급자족의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글이라- 저는 사실.. 23화로는 만족할 수 없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막상 글을 쓰다보니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아서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살짝 언질만 드리자면 사과는 23화 그 후부터 시작입니다. 단편단편 이어지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훔쳐보고 싶은데-
그러려면 그 이전에 캐릭터들이 있어야 하니까, 그 과정까지 오는 길이 이토록 길었어요;;ㅎㅎㅎ
어떤 방식으로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사과 그 후의 이야기는 일단 23화 이후 뭔가 방법이.. 있겠죠?^^;;
네... 그러합니다... 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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