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뭐.”
“어휴. 저 츤데레.”
뭐? 뭐라는 거야. 알아듣게 똑바로 얘기해.
민윤기는 늘 말투가 딱딱하다. 아니, 딱딱하다 못해 민윤기의 말을 듣고 있으면 차가워지는 기분이다. 한 겨울도 이보다는 따뜻할 거라고 감히 예상해본다. 감정이 없다. 체온이 36.5도가 맞긴 맞을까? 가끔 의심해본다. 분명 마주 잡은 손은 따뜻한데, 사람 자체는 매우 차갑다 이 말이지.
아, 물론 난 아저씨의 이런 점이 좋은 거지만.
31살 민윤기, 22살 김여주.
츤데레아저씨
천둥
아저씨는 아침에도 나를 데려다 주고, 저녁에도 데려다 줬다. 물론 야근이 있는 날은 빼고. 나는 그런 야근이 있는 날이 제일 좋았다. 아저씨의 차에 타서 아저씨가 내게 피곤하다며 칭얼댈 때면 뭔가 수척해진 아저씨의 모습이 섹시하기도 하고,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막 밝히는 그런 여자로 보일 것 같기도 한데. 그건 절대 아니다. 누구나 아저씨의 그런 수척해진 모습을 본다면 섹시하다고 즉각 대답할 것이다. 내가 그건 장담한다.
이런 날은 내가 죽자고 달려든다. 막, 그런 쪽 말고. 집에 데려다 달라며 격하게 칭얼거린다. 그럴 때마다 아저씨는 온갖 성질을 다 낸다.
“아. 좀. 힘들다고. 인마. 대중교통은 장식이냐.”
“아. 아저씨.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아저씨 여자친구가 택시나 버스 타고 가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그건 생기면이고, 생긴 적이나 있었냐. 아니 그 전에 내가 대중교통 타고 가라고 하면 고분고분 말 듣고 간 적이 있었냐.”
“……없는데. 아무튼 일 생기면 어떡해요! 평생 아저씨가 책임져야하는데.”
아저씨가 내 말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들어 날 바라봤다. 그리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무슨 일 생기면 가해자한테 책임지라고 해라. 나 말고.”
엄청 무심하게 얘기한다.
이 아저씨가 진짜. 내 남자친구가 맞는 건지 싶을 정도로 너무 무심하다. 상처받았다는 듯한 느낌을 풍기기 위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아저씨가 나를 힐끔 보더니 웃기지도 않는다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오늘도 난 이렇게 수척해진 아저씨의 모습을 보며 집에 간다.
“아. 집에 들어가기 싫다.”
아저씨는 정말로 힘든 건지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당장이라도 감길 것 같은 눈이었지만 한 번도 졸지 않았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 여기서 발생했다. 나를 여기까지 운반(..) 해 주느라 아저씨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정말로, 풀이 확 죽어서 물에 퉁퉁 불린 미역처럼. 이러다간 정말 사고가 날 것 같아서. 내가 아저씨한테 물었다.
“아저씨. 오늘 자고 가요.”
정말 나는, 정말로 아무런 의미도 담고 있지 않았다. 딱 순수하게 말 그 자체로. 자고 가라고. 자고만. 잠만. 잠만 자라고. 아저씨는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쓱, 들었다. 그리고 차 문이 잠겨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아저씨?”
아저씨가 점점 다가오고 나는 뒤로 물러서고. 어느덧 얼굴이 가까워 졌을 때. 귓가로 들리는 비웃음 소리.
“큭.”
“아이씨!”
“푸하하하하하!”
아저씨가 크게 웃고, 내가 아저씨를 밀어버렸다. 창문에 툭 부딪힌 아저씨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뭐, 뭐요! 그러길래 사람을 왜 놀려! 내 말에 아저씨는 무슨 소리냐며 반박했다.
“야, 니가 먼저 자고 가라며.”
“아니! 나는 그냥!”
“그냥 뭐.”
“그냥…”
이상하게도 이 아저씨랑 대화를 하다 보면 온몸의 기가 쏙쏙 빨리는 기분이었다. 지금도. 분명 패기 좋게 얘기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기가 죽었다. 그리고 분명 지금 이 상황에서의 내 잘못은 아저씨의 눈만큼도 없었다. 아니, 이게 뭐야! 내가 소리 질렀다. 아저씨는 귀 아프다며 심드렁하게 귀를 여러 번 후볐다.
“나는 그냥 그쪽 피곤할 것 같아서 가다가 사고 나면 안 되니까 자고 가라고 한 건데.”
“자고 가라고 한 건데?”
“그쪽이 음란마귀 씌여서!”
“야. 근데 그쪽이 뭐냐?”
“네, 네?”
아까부터 되게 거슬렸는데. 그쪽이 뭐냐고. 아저씨도 모자라서 이젠 그쪽이야?
아저씨가 내게 말했다.
“아니, 그냥.. 아 몰라요! 알아서 하세요!”
“이야. 병먹금 한다 이거지?”
(* 병먹금 : 병sin에게 먹이 금지)
요즘 나랑 눈높이를 맞춘다고 온갖 인터넷 용어를 검색해 쓰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는,
‘아저씨랑 나랑 나이 차이가 9살이 난다고요.’
‘아 근데.’
‘노인네 아니고? 아저씨 같은 노인네를 내가 아니면 누가 데려가.’
‘아오 진짜 명존쎄.’
(* 명존쎄 : 명치 존na 세게 때리고 싶다.)
명존쎄라는 단어도 써놓고 내가 당황해서 쳐다보니 즐겁다면서 낄낄 거리고 웃었다.
“야. 무슨 생각하냐.”
현재의 아저씨가 내 이마를 콩 때리며 말했다. 와, 근데 말이 콩이지. 완전 쿵. 쿵도 아니고 쾅. 나는 지구가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머리를 붙잡고 끙끙대니 낄낄대며 웃는다. 와, 개 얄미워. 작게 중얼였다. 그걸 또 들었는지 내 뒷 목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리저리 흔드는데, 녹초가 된 주제에 힘은 또 얼마나 센지 나는 한동안 계속 휘둘렸다. 좌, 우, 좌, 좌, 우. 아저씨는 이제 흥미가 떨어졌는지 슬슬 내 뒷 목을 잡은 손에서 힘을 뺐다. 나는 그대로 차 등받이에 기댔다. 아저씨도 힘든지 고개를 폭, 숙였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 잘 것 같아서 나는 아까의 이야기를 다시 했다.
“아, 진짜 아저씨.”
“진짜 뭐.”
“자고 가라고요. 지금 아저씨 꼴이 그 모양인데 내가 편히 보내주겠어요?”
“이 모양?”
“네. 그 모양.”
“아니 이 모양 이 꼴이 누구 때문인데. 와, 김여주 너무하네.”
아저씨는 칭얼댔다. 너무해. 너무해 정말. 와, 진짜 이대로 보냈다간 내일 조간신문에 크게 나올 삘이었다. 31세 남성 졸음운전으로 사망. 뭐 이런 거? 진짜 나는 너무 걱정되서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응? 아저씨 얼른 자구 가요. 어차피 내일 주말인데..”
“그럼 그러지 마.”
“뭘요.”
“아저씨까지는 봐주겠는데, 그쪽이라던지 그 딴거 쓰면 진짜 확”
“확?”
“잡아먹어 버린다.”
솔직히 확, 할 때 좀 놀랐다. 아저씨는 안전벨트를 풀고 시동을 다시 걸었다. 주차는 제대로 해야지. 원룸촌이라 제대로 된 주차 공간이 없었다. 이거 비싼 차 같던데, 아무 데나 주차하다가 긁히기라도 하면… 나는 결국 아저씨한테 말했다. 아저씨 저기, 저쪽으로 올라가면 공영주차장 하나 있는데. 거기다 주차해요. 내 말에 귀찮다며 아저씨는 대충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나도 따라서 내린 후 앞장섰다.
“야. 너네 집 원룸이었나?”
“아니요. 거실, 방, 화장실 하나씩 있어요.”
“다행이네.”
“뭐가요?”
나는 열쇠를 꽂으며 말했다.
“혹시 건드리면 어쩌나, 싶어서.”
그 말에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아, 비싸게 구네. 안 건드려요. 안 건드려. 아우, 참.”
“아니.”
“또 뭐가요.”
“너 말고 내가.”
나는 문을 열고나서 아저씨의 말을 한참 동안 생각했다. 아저씨는 나를 지나쳐서 콧노래를 부르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나중에서야 이해하고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 그게 무슨! 해괴망측한! 내 반응에 즐거운지 아저씨는 웃다가 집 안 꼴을 확인하고는 뒷걸음질 쳤다. 물론, 나도 뒷걸음질 쳤다.
“와우.”
“아, 헐.”
어제 비가 와서 속옷 빨래 한 것을 거실에 널어두었는데. 그걸 치운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미 거실 바닥은 나의 속옷 천지였다. 나는 당황해서 아저씨를 바라보고, 아저씨도 날 바라봤다. 그리고 아저씨의 시선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는 것 같길래 아저씨를 결국 방안에 가둬버렸다.
“야! 문 열어!”
쾅쾅대며 안에서 아저씨가 소리쳤다. 아, 야밤에 시끄럽게. 나는 재빠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속옷들을 치웠다. 그리고 나서 아저씨는 거실로 나올 수 있었다. 아저씨는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서 대충 소파 위에 올려두고는 자연스레 소파에 눕 듯이 앉았다.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니까 뭐냐며 성을 냈다. 나는 그런 아저씨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와 양치를 했다. 씻고 나서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나오니 아저씨가 내게 말을 걸었다.
“야.”
“왜요.”
“..아니야.”
"뭐예요. 아저씨가 방에서 자요. 안에 침대 있어요.”
“싫어.”
“네?”
“니가 들어가서 자. 나 여기서 TV 보면서 잘 거다.”
아, 뭐 그러세요. 나는 수건을 빨래통에 넣은 후 냉장고를 열어 즙을 하나 꺼내 아저씨한테 건넸다. 이게 뭐냐며 묻는 아저씨에게 눈 크게 잘 뜨고 글씨 읽으라 하니 아저씨가 나를 뚫어져라 째려봤다.
“전 이만 잡니다. TV에서 지금 이상한 거 한다고 보다가 밤새 지 말고 알아서 일찍 자요.”
“참나. 야, 문 꽉 닫고 자라.”
“아, 이상한 짓 안 한다니까요!”
“너 말고 내가 한다고 멍청아.”
“.. 와, 음란해!”
내가 문을 쾅, 닫았다. 문 밖에서 낄낄대는 아저씨의 웃음소리가 다 들렸다. 와, 못됐어. 진짜. 왜 저렇게 사람을 골려?! 나는 열이 올라서 침대에 눕고, 선풍기를 틀었다. 아, 시원해. 열기를 가라앉힌 뒤, 천장을 보다 보니 어느새 잠이 밀려들어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 3시였다. 고작 3 ~ 4 시간 밖에 자지 않았다는 사실에 벌떡 일어났다. 아, 왜 지금 깬거지? 나는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근데, 아저씨는 잠도 안 자고 TV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TV에서는 때마침 아주 격정(..) 적인 장면을 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내가 옆에 오고 나서야 나의 존재를 깨달았고, 화들짝 놀랐다.
“뭐 해요?”
아저씨는 TV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핸드폰을 하고 있었다. 배경음악 삼기에는 조금 격정적이었지만. 나는 오래간만에 보는 낯 뜨거운 장면에 아저씨를 바라봤다.
“와. 이젠 남의 집에서 이런 것도 봐요?”
“야, 그게 아니라 방금 채널 돌리는데 이런 게 딱. 나온 거야.”
“변명하지 마요.”
“참나. 야 그리고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걸 보는 게 뭐 어떠냐.”
“아, 네, 네. 계속 보세요.”
“됐어. 안 봐. 흥미 떨어졌어.”
아저씨가 삐쳤다는 듯이 TV 채널을 획, 돌렸다.
“왜요. 내가 볼 거예요."
나는 아저씨가 쥐고 있는 리모컨을 뺏어들고 다시 틀었다. 62번. OCN. 아저씨는 그제야 핸드폰을 내려놓고 날 바라봤다.
“야. 어린애는 이런 거 보면 안 돼. 얼른 들어가서 잠이나 자라.”
“저 이제 성인인데 무슨! 그리고 22살이거든요?”
“아, 그러쩨요?”
“아 무슨! 아무튼 전 이거 봐두 된다고요!”
“아, 봐도 되시는 구나. 그렇구나.”
아저씨가 나를 놀리듯이.. 아니 놀렸다. 와, 이 사람 진짜 못돼먹은 사람이네. 나는 아저씨 말대로 병먹금을 하고 TV에 고정했다. 금발의 미녀의 머리가 막 흩날렸다. 그리고 아저씨는,
“야. 이런 거 보지 말라고. 내 놔.”
내 쪽으로 손을 쭉 뻗어 리모컨을 뺐는데, 순간 내가 뒤로 몸을 쭉 빼고 아저씨가 다가오다 보니 이상한 자세가 되었다. 아저씨의 양 팔 안에 내가 갇혀있는 듯한 자세. 아저씨는 리모컨을 뺏으려 하다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와, 이렇게 보니까 이 아저씨 진짜 동안이다. 이 아저씨를 누가 31살로 보겠어. 그리고 콧대도 장난 아니다. 진짜, 길고 쭉 뻗어서 아주 그냥 하늘을 찌를 것 같고. 갸름한 얼굴형도 진짜…. 아저씨의 샐쭉하게 쭉 찢어진 눈꼬리가 휘어졌다. 그리고는 아저씨의 입이 내 입에 잠깐 닿았다. 떨어졌다. 쪽.
“……”
“이건 너 때문이야.”
아저씨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TV속 장면에 시선을 꽂았다. TV속은 더욱더 격렬해져 있었다. 이게 영화인지, 야동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아저씨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내 입이 뜨거웠다. 아, 아… 아저씨와의 스킨십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뭔가 이상한 기분에 나는 아저씨의 옆으로 더 붙었다. 그리고는 아저씨의 고개를 잡고 돌려 입을 맞췄다. 아저씨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갑자기 돌려 눕혔다.
“아…”
“뭐가 아-야.”
“아 그냥…”
내 뒷말은 아저씨에게 먹혔다. 아저씨와의 입맞춤은 되게 이상했다. 미묘하고, 간질 간질거리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느낌? 입술이 떨어지고 아저씨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오늘은 여기까지. 좀 아쉽기도 하고, 준비는 언제든지 되어 있지만.. 겁은 나니까. 아저씨를 바라보니 아저씨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가끔 저렇게 웃어주는데, 저런 게 진짜 설렌다 이 말이지.
“아, 내가 진짜 이 어린애를 데리고 뭘 하겠다고.”
“아 저 어린애 아니라구요.”
“아, 네. 그러세요.”
“됐어요. 나 이제 잘래요.”
나는 슬슬 잠도 오고, 더 이상 여기 있다간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 문을 닫을까 말까 하는데, 아저씨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괜히 기분 상해서 문을 쾅 닫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한참 눈을 감고 있는데, 문이 조심스레 열리더니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아, 진짜 애네.”
나는 자는 척을 하며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이런 애 데리고 내가 지금 뭐 하는 거냐.”
“……”
“잘 자던가.”
“……”
“잘 자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저씨는 내게 이불을 덮어주고 갔다. 무식하게 목 끝까지 덮어서 문제였지만. 아저씨가 나가고 나서도 나는 이불을 내리지 못 했다. 덥긴 하지만… 아, 무슨 진짜 아저씨가 저래! 진짜 츤데레. 아, 진짜 츤데레 아저씨. 민윤기.
| 츤데레아저씨 |
츤데레 윤기 아저씨.. 심장이 덜컹덜컹 녹아내려버려요 상상만으로..(울컥) 혹시 보신 적 있는 글이라면 타싸에 썼던 거라서 그런 걸 거에요...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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