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직 쌤 어디있어!?"
"소아과 당직 쌤 콜 안받아요!"
"외과 당직 쌤은?!"
내 커텐 안으로 들어온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커텐 밖에서는 다른 간호사의 목소리가 까랑까랑하게 울려퍼졌어. 백현이는 한쪽 눈을 찌푸리며 입술을 질끈 깨물곤,
"잠시만 기다려."
하곤 커텐 밖으로 나가버렸어.
"2번 베드요?"
"네! 쌤, 아트로핀 준비해놨는데 넣을까요?"
"일단 5미리만 넣어주세요."
"저희 병원에 신경외과 OP경력 있는데, 신경외과 인턴 콜 할까요?"
"인턴..아니요, 응급과 인턴은 어디있어요?"
"외과에 씨피알 터져서 갔어요."
백현이가 나가자마자 백현이를 향해 수많은 말들이 쏟아졌어. 백현이도 인턴 때는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아무것도 못했는데, 벌써 레지던트를 달고 익숙하게 씨피알에도 대처하는 모습을 보니 애 키운 엄마 느낌도 나고..
"아.."
사실 변백현이고 뭐고, 아파죽겠는데 옆에서 씨피알이 터진 상황에 내가 아프다고 소리를 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지. 침대 위에는 백현이가 놓고 간 수액세트와 진통제가 놓여있었지만 모든 간호사들이 씨피알 환자에게 뛰어가버렸는지 나는 이불만 부여쥐고 끙끙거렸어.
"아윽,"
시티실에서 기다릴텐데. 백현이가 응급으로 잡아놔서 계속 기다릴텐데. 나는 그 와중에도 직업병인지 시티실에서 걸려올 신경질적인 전화를 걱정했어. 이제 한 10분정도 지나면 짜증섞인 목소리의 시티실 영상의학과 인턴이 전화를 하겠지. 환자 올라오고 있는거예요? 하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한지 오초도 지나지 않아 요란하게 스테이션의 전화가 울렸어. 다들 심정지 환자에게 가 있는 건지 전화벨은 오래 울리다 끊겨버렸어. 곧 머지 않아 다시 울리겠지만.
예상대로 전화벨은 다시 울렸고 이번에는 짧게 울린 전화벨이 뚝 끊겼어. 누군가 받았나봐.
"복부 시티, 7번 베드.."
전화를 받은 인물인지, 나를 지칭하는 단어들을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며 내 앞을 드리우고 있던 커텐이 촤르륵 걷어졌어.
"어!?"
도경수였어. 오늘이 당직이라고 그랬던가, 피곤한지 눈을 반쯤 감고 있던 도경수는 그 큰 눈을 번쩍 뜨며 구부리고 있던 어깨를 바짝 폈어.
"야, 변백현!!"
평소 언성을 높이지 않던 아이였는데, 어지간히 놀란건지 저 멀리 있는 변백현을 향해 냅다 소리를 질러. 애 바쁜데 부르지 말라며 도경수의 손목을 붙잡았지만,
"왜 그래. 배 아파서 그래? 배가 아프면 어떡해!"
"..아니,"
"변백현한테 말했어? 쟤 너 여기 온 거 알아? 씨피알 칠 사람이 변백현밖에 없어!?"
"..알아, 알아. 백현이밖에 없,"
백현이밖에 없었어 진짜로..이 말을 하려고 도경수 팔목을 붙잡고 고개를 들다가 순간 현기증에 몸이 크게 휘청이며 침대 밑으로 떨어져버렸어.
"야!!"
쿵, 하는 소리와 도경수의 놀란 목소리가 뒤섞여 머리를 뒤흔들었고 사라지지 않는 두통에 머리를 부여잡았어. 도경수가 급하게 가슴팍의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 손으로 내 몸 여기저기를 짚고 있을 때 쯤 힘겹게 뜬 눈 앞에 백현이의 얼굴이 나타났어.
"왜 그래, 왜 떨어진거야. 응?"
심정지 환자는 살았는지, 죽었는지 백현이 이마는 땀으로 잔뜩 젖어있었어. 백현이가 얼른 주머니에서 체온계를 꺼내 내 귀에 집어 넣었어.
"땀.. 진통제 안 들어갔어?"
내 이마에도 땀이 흥건했나봐. 백현이는 나와 함께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트레이를 보곤 순식간에 얼굴을 굳혔어.
"너는 애 상태가 이런데 뭐라도 오더를 내리고 가야되는 거 아니야? 열이 40을 웃도는데 내버려두고 가?"
나는 경수가 화내는 걸 정말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처음보는 경수의 표정이 백현이에게 날이 선 말을 마구 내뱉고 있었어.
"해열제랑 진통제 넣어서 시티실부터 보내. 쇼크오기 전에."
사실 백현이 잘못은 아닌데. 응급실에서는 항상 환자의 우선순위를 따지는거고 제일 급한 환자에게 달려가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도 경수는 백현이에게 화를 냈어. 백현이도 변명거리가 많았을 텐데 단 한마디의 변명도 하지 않았고 조금 급한 손길로 내 팔에서 혈관을 찾고 있었지.
"미안해. 얼른.."
좀 처럼 보지 못한 백현이의 급한 모습이었어. 내 침대 옆에 몸을 낮춰 앉아 빠르게 바늘을 찔러 넣은 백현이는 아, 하고 탄식을 내 뱉었어.
"천천히 해. 괜찮아."
백현이가 바늘을 잘못 찔러넣었다는 걸 짐작한 나는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백현이를 달랬지만 백현이는 이미 동공에 초점이 없는 혼이 나간 모습이었어. 동시에 바늘을 쥔 백현이의 손이 작게 떨렸고 급하게 소독솜을 잡으려다 트레이에 있는 소독솜을 전부 엎어버리기까지 했어.
"..내가 할테니까 시티실 가 있어."
결국 뒤에서 지켜보던 경수가 백현이의 어깨를 밀어냈고 백현이는 바늘이 잘못 들어간 내 팔목을 붙들고 멍하게 넋이 나가있었어.
"너 한 번 잘못찔렀다고 저런다. 뭔 놈의 외과의사가 멘탈이.."
백현이는 그제야 정신이 든 듯 커텐 밖으로 터벅터벅 걸어나갔어.
"방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환자 가슴팍 째고 온 애가, 저렇게 이중적이어서야 되겠냐."
그런 백현이를 보고 도경수가 우습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어.
"아까 변백현이 가슴 연 환자가 이거 보면 쟤는 멱살 잡히고도 남을거야."
쟤 나랑 입사동기라서 나도 여러번 찔렸잖아, 변백현한테. 도경수의 투털거림을 들으며 진통제가 들어간건지 줄어든 복통에 나는 잔뜩 찌푸렸던 미간을 풀었어.
"좀 괜찮아?"
응, 고개를 끄덕거렸더니 경수도 방긋 웃었어. 그렇게 경수가 천천히 끄는 베드에 실려 시티실로 내려갔어.
ㅡ
"그냥 단순 수축이야, 괜찮아. 잘 때 엎드려서 자지 말고. 알지?"
어느 새 제정신이 돌아온 백현이는 시티결과를 보곤 이상이 없다며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이야기 해 주는 중이었어. 그 목소리에 불안함이 싹 가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안함에 입을 씰룩씰룩댔어.
"이런거 할 때는 가운 벗고 하라니까.."
백현이 흰 가운에 선명한 핏자국을 보고 잔소리를 습관처럼 내뱉었어. 백현이도 그제야 옷을 확인하고 천천히 가운을 벗었어. 아까 심정지 왔다던 그 환자 때문인가봐.
"오늘 데이 아니야?"
"응."
"일 할 수 있겠어? 오프 쓰라그러면,"
백현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더니 백현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옅게 웃었어.
"말 안 들을 줄 알았어. 안 쓸거지? 병동 바쁘다고?"
"응."
"그럼 여기서 자고 출근해. 이따 깨워줄게."
백현이가 응급실 제일 구석 자리에 내 침대를 놓아주곤 커텐을 비잉 둘렀어. 처치실에서 영양수액을 가져와 폴대에 꽂아 연결을 해 주곤 목 끝까지 이불을 덮어줘. 이제 병원이 내 집 같고 내 집이 병원같이 느껴질 정도야. 그 덕인지 편안함에 눈을 스륵 감고 금방 잠이 들었어.
ㅡ
"너 나 죽이려고 그러지!! 어!?!?"
"환자분, 약이에요. 지금 가슴 아프시잖아요, 네? 주사약을 맞아야 아픈거 얼른 낫죠."
"거짓말 치지마, 너네 이러는 거 내가 한두번 보는 줄 알아? 나 오늘도 너네 때문에 다섯번이나 죽었어!!!"
"지금 가슴 안 아파요? 거기 계속 아플거예요?"
"너네 때문에 아픈 거잖아!!!! 의사 데려와, 내가 확 죽여버릴라니까!!"
내 눈 앞으로 훅 들어오는 꽉 쥔 주먹에 한숨을 푹 쉬면서 고개를 뒤로 뺐어. 오늘 정말 환자를 타는 날인가봐, 원래 정신과 병력이 있던 환자라며 조심하라는 소리는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마음같아서는 소리치고 싶었어. 나도 방금까지 응급실에 누워있었는데 나한테 이런 시련을 안겨줘도 되는거냐고.
"알았어요, 알았어요. 안 할게요."
"이거 아픈 거 빨리 어떻게 해 달라고!!!"
"그거 안 아프려면 주사 맞아야 된다니까요, 맞을거예요?"
"그거 아니잖아, 그거 주고 나 죽이려고 그러는거잖아!!"
"여기 병원인데 왜 죽는 약을 줘요. 일단 좀 진정하시고.."
"의사 데려오라고!!! 그거 나한테 맞으라고 한 의사 데려오라고!! 죽여버리게!!"
이거 처방 내린 의사가 백현인데, 백현이를 죽여버리면 나는 과부되는거야 뭐야. 환자는 침대에 누워서 진짜 발을 뻥뻥 허공에 대고 찼어. 그러면서 자기는 의사가 오면 발로 뻥 차서 죽여버릴거래. 이 환자 한명 때문에 6인 병실의 모든 환자가 이 환자만 구경하듯 지켜보고 있었어.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격리병동을 요청하려고 병실을 나서는데 때마침 백현이가 차트를 끼고 병실로 들어왔어.
"저 새끼지!? 나 죽이려는 새끼가!?!?"
백현이는 들어오자마자 욕을 얻어먹고 깜짝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어.
"어제 판막 수술한 환자."
"브레인 아니고?"
"정신과 과거 병력있대. 내가 봤을 땐 현재 병력같은데."
내 말에 미간을 잔뜩 좁힌 백현이가 천천히 걸어서 그 환자에게 갔어.
"야 이 새끼야, 너 나 죽이려고 그러지?!! 너 때문에 내 몸에 피가 다 굳잖아!!!"
응급실에서 일할 때 과대망상환자를 몇 만나보긴 했는데 폭력적 성향을 띄는 과대망상환자는 처음이었어. 그것도 정신과 병동이 아닌 외과 병동에서 만날 줄이야.
"환자분, 여기 어디에요?"
백현이가 차분하게 물었고 나는 한발치 뒤에 서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
"병원인거 알아. 안다고. 나 멀쩡하니까 그냥 퇴원시켜 달라니까!?!?"
"지금 가슴 통증 있으시잖아요."
"너네가 자꾸 내 피 굳게 해서 그런거야!!!"
"피가 굳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여기가 이렇게 아프지, 여기 오기 전에는 하나도 안 아팠어!!!"
그러면서 환자가 백현이 얼굴쪽으로 주먹을 냅다 휘둘렀어. 백현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환자의 손목을 잡아챘고 뒤에 서있던 나만 괜히 깜짝 놀라버렸지.
"보호자는?"
백현이가 병실을 나오며 물었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어.
"보호자 아무도 없어. 연락할 사람도 없대."
"그런데 외과에 둔다고?"
"어제 심장수술해서.."
안 그래도 여기에 오기 전에 정신과 병동에 의뢰는 해 봤을 것 같긴 한데. 백현이는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스테이션으로 향했어.
"선생님, 8호에 4번 환자 10병동으로 트랜스퍼할게요."
"쌤, 10병동에서 여기로 와야된다고.."
"10병동 좀 연결해주세요."
정신과 병동인 10병동으로 전화가 금방 연결됐는지 스테이션에 앉아있던 신규가 백현이 눈치를 슬쩍 보며 수화기를 넘겼어. 백현이는 차분하게 멘탈 상태 너무 좋지 않고 폭력성향 있어서 외과 병동에 있는 건 무리다, 정신과로 옮기겠다 했지만 상대편에서 그렇게 안된다고 했나봐. 좁힌 미간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었어.
"아니, 외과진료는 제가 10병동 올라가서 보겠다고요. 지금 여기서 케어가 안되는 상태라니까?"
10병동이면, 건물도 다르고 먼 곳인데..
"여기 리스트레인 해봤자 팔 다리가 끝인데, 감당이 될 것 같아요? 아니 다 떠나서 폭력성향이 있는데 정신과 격리실을 가도 모자를 판에 외과병동이 무슨 억지에요. 지금?"
백현이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신규쌤은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어. 그냥 자기 할 일 하면 되는데 바로 앞에서 조용히 화를 내고 있는 백현이가 무척 신경쓰였나봐. 결국 내가 신규쌤 어깨를 톡톡 치면서 턱짓으로 가보라하고 나서야 신규쌤은 처치실 안으로 쏙 들어갔어.
"야, 말도 안되는 소리 집어치우고 여기서 절대 못 맡으니까 전원시키든 어쩌든 너네 알아서 해."
백현이가 신경질적으로 수화기를 내려놓고 앞머리를 마구 헤집었어.
"쌤, 10병동에서 데려간대요?"
"이송팀 메세지 넣어주시고, 10병동으로 보내달라고 해주세요."
우리 헤드 선생님이 백현이의 말을 듣고 만족스런 표정을 지어보였어. 그 선생님도 그 환자를 보내고 싶어하셨던 모양이야. 정신과 환자를 케어하는데 서툰 외과 간호사들은 아마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거야.
"그래도 돼?"
내심 속으로는 좋았지만, 그렇지 않은 척 물었어.
"하.."
백현이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주위를 슥슥 둘러보곤 내 귀에 맞춰서 허리를 살짝 숙였어.
"기억나? 학교 다닐 때 나랑 팀플 했던 애 중에 발표 날 안 왔던 애?"
"어, 어! 그리고 너네한테 화 냈던 애?"
"응. 걔야. 10병동 레지던트. 걔 정신과 갔어."
"진짜? 그 성격에?"
"그러니까 맨날 다른 병동으로 트렌스퍼 보내고 있지. 마음에 안 들어."
백현이는 정말 마음에 안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어.
"선, 선배님.."
그런 백현이 뒤로 쭈볏쭈볏 종인이가 다가왔어.
"어, 왜?"
백현이의 물음에 종인이는 또 무언갈 잘못한 듯 입만 씰룩거리며 말을 할듯, 말듯 해.
"셋 셀테니까, 그 안에 말해. 뭔데?"
백현이는 머리가 지끈 거린다는 듯 미간을 손가락으로 살짝 만졌어. 그 때 종인이가 있던 병실에서 쏙 튀어나온 보미가 한참 높은 하이톤으로,
"인턴 쌤 ABGA 못 잡겠대요~"
그 말을 듣고 종인이 손을 보니 많이도 실패한 듯 두 손 가득 주사기를 쥐고 있었어. 저건 왜 들고 나온거야, 대체..
"너는 말턴이 다 되어가면서 그걸 못 잡으면 어쩌자는..가자, 일단."
백현이는 모를거야, 평생 종인이 마음을 모를거야..백현이는 손재주가 뛰어나서 저런 술기에 뒤쳐진 적이 없거든. 물론 처음에 실수하고 어려워하는 건 똑같았지만 실습생 중에서도 제일 잘한다는 소리를 늘 들어왔고 인턴생활 때도 간호사들이 너도나도 찾을 만큼 손재주가 좋았으니까.
죄송합니다..하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흘린 종인이는 앞서 가는 백현이를 졸졸 따라 들어갔어. 그렇게 백현이와 헤어진 나는 다시 스테이션으로 돌아갔지.
"쌤, 들었어요?"
스테이션에 앉자마자 내 옆에 앉은 쌤이 들뜬 목소리로 말을 건넸어.
"네? 뭐요?"
"우리 병원에서 드라마찍는대요. 그, 누구나온다더라. 되게 유명한 배우였는데. 이름이 뭐였지.."
"드라마요? 어머, 어느 병동에서요?"
"그건 아직 안 정해졌는데, 아마 신관에서 찍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새 건물이니까."
"어머어머, 우리 병동에서 찍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볼에 따뜻한 손바닥이 빠르게 스윽 스쳐지나갔어. 아니에요, 하며 웃는 백현이 목소리에 내가 민망한 듯 하하, 억지웃음소리를 흘렸어.
"혹시 모르죠. 변쌤 혹시 견제하시는 거예요?"
내 앞에 있던 선생님이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고 백현이도 능글능글 웃으면서 받아쳤어. 제가 또 의학과 원빈이었잖아요, 하면서.
"오늘 회식 알죠? 쌤."
"알고는 있는데, 얘 때문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그러면서 백현이가 가르킨 건 백현이 옆에 서서 열심히 차트를 적고 있는 종인이었어.
"..죄송합니다."
거의 사과머신처럼 고개를 꾸벅 숙인 종인이는 다시 열심히 차트를 적어나가. 이따 집에가면 또 무슨 사고를 쳤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꾸욱 닫았지.
ㅡ
"가, 얼른 가."
백현이가 어금니를 꾹 깨물고 복화술을 하듯 내게 말했어.
"아 왜애,"
"어차피 술 먹지도 못할텐데 뭐하러 가. 그냥 집가서.."
"싫어, 갈래.."
"피곤하다며. 너 응급실 실려간지 24시간도 안 지났어. 얼른 가."
"나 혼자 가라고?"
"나 지금 사라지면 너도 붙잡혀. 이따 전화할게. 응?"
백현이는 악착같이 나를 집에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 다 같이 회식 장소로 걷고 있었지만 백현이만 내 옆에 딱 달라붙어서 아둥바둥거리고 있었지.
"그래두.."
"제발, 한 번만 말 듣자. 응?"
"왜, 어차피 나 술 못 먹잖아.."
"불안해서 그래. 회식 몇시에 끝날 줄 알고."
"싫어.."
입을 삐죽 내밀고 싫다는 말만 반복하는 내가 답답한 듯 백현이가 한숨을 푹 내쉬었어. 백현이 마음 천번 만번 이해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렇게 악착같이 회식장소에 가고 싶어하는 건..
"..막창 먹고 싶어, 나도.."
막창이 너무 먹고 싶었단 말이야. 오늘 출근하자마자 오늘 회식은 막창집이라는 말에 우울함도 싹 가시고 신이나서 일했는데. 백현이가 이렇게 보내면 나는 막창 못먹잖아.
"..막창?"
응. 고개를 끄덕였더니 백현이가 예상치도 못했던 답변이라는 듯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냈어.
"허,참.."
이번에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고.
"..그래, 가자. 막창 먹어야지. 암, 먹고싶은 거 먹어야지. 막창..그래, 막창."
결국 백현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다는 듯 혼자 피식피식 웃으며 내 어깨에 메어져 있는 가방을 제 손으로 가져갔어.
"대신 오늘 차 네가 끌고 가야해."
그 정도 각오도 안했을까봐, 내가 세차게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어. 백현이 손이 내 머리 위로 와서 너저분하게 문질렀고 나는 언제나 그랬듯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묶었지.
ㅡ
종강..그 그리운 이름이 이렇게 다시 저를 찾아오네요....ㅠ_ㅠ.....
정말 불꽃같은 사망년을 마치고 이렇게 어김없이...몇개월만이지......일단 죄송합니다...그나저나 간호학과 사망년 정말..넘나 힘들었네요.....8ㅅ8...한학기가 더 남았다는 게 너무나 화가 날 지경...사망년...그냥 사학년으로 뛰어넘고 싶어라....반가워요 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