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상 연인 이하의 관계
(3/3) 입장정리
천둥
“죄송합니다. 박여주 때문에……”
“아. 아니야. 여주가 많이 취했네.”
“그러게요. 제가 데려다 줄테니 이제 가보셔도 돼요.”
스터디 선배라는 사람에게 박여주를 건네받았다. 짐짝처럼 내게 매달린 박여주가 눈을 뜬 듯 안 뜬 듯, 꿈뻑이며 날 쳐다봤다.
“박여주.”
“어.”
“누가 술 이렇게 많이……”
“정호석이다.”
취했으면서 뭐 이리 발음은 정확한지, 그렇게 말하며 박여주가 내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짜, 술냄새 나.”
“……뭐가. 내가 냄새 나?!”
내 말에 얼굴을 확 구기더니 화를 버럭 냈다. 아니, 너 술 마셔서 술 냄새 난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계속 자기한테 냄새나냐며 짜증을 냈다.
“어. 너한테서 냄새 나.”
“나, 냄새 안나는데. 나, 잘 보이려고 막 향수도 뿌리고”
“그래서 좋은 냄새 나.”
어떻게든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말하니 박여주가 배시시 웃으며 날 꽉 끌어 안았다. 아, 얘는 진짜. 얘 주사는 아무리 봐도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 주사였다.
“아, 좋다. 진짜. 니가 와줘서.”
“어?”
박여주가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쟤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지.
“박여주.”
“……응.”
“혼날래.”
눈에 보이는 벤치에 빠르게 박여주를 앉히고는 앞에 쪼그려 앉아서 바라봤다. 눈을 꿈뻑이기를 반복하는데, 얼마나 마셨으면 화장도 다 번져서. 내가 손을 뻗어 눈 밑에 번진 화장을 닦아주었다. 그러자 박여주가 힘없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하지 마.”
“뭘.”
“……그냥. 다 하지 마.”
제대로 말도 못하면서, 뭘 하지 말라는 건지. 번진 화장을 다 닦아주고 나서야 입고 있던 집업을 벗어 박여주의 다리 위에 올려주었다.
“이런 치마 입고 남자들이랑 술이나 마시고.”
“……니가 뭔데.”
“뭐긴 뭐야. 니 친구지.”
“……그치. 우리 친구지?”
박여주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내 양볼을 붙잡았다. 얘 왜 이래.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얼굴을 쳐다보는 게 한 두번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왜인지 박여주의 얼굴을 더 꼼꼼하게 보게 되는 것 같았다. 예쁘게 생기긴 했네.
“우리 친구지. 응? 호석아.”
“……그럼. 친구지.”
너무나도 당연하게 묻는 박여주에게 대답했다. 근데, 친구 맞나. 진짜. 갑자기 든 의문이었다.
“우리, 그럼 그냥 친구가 아니라.”
“어?”
“부랄친구지? 그치?”
그런 상스러운 단어를 말하면서도 여전히 나를 빤히 바라봤다. 시선을 피하고 싶은데 박여주한테 붙잡힌 얼굴에 어떻게 내뺄 수도 없고. 근데, 아, 나 오늘 왜 이러지. 술 마신 건 얜데. 왜 이러고 있으니까 막, 나 이상한 느낌이 드냐.
“……누가 그런 말 쓰래.”
“뭐가. 원래 그런 거 다 부랄친구라고 하잖아. 그치. 우리 그 친구 맞지. 부……”
“응. 맞아. 맞으니까 그런 말 쓰지 마.”
또 그 단어를 얘기하려는 박여주의 입을 손으로 틀어 막았다. 쓰지 말라니까 말은 또 잘 듣는다. 고분 고분 고개를 끄덕이는 박여주에 내가 손을 뗐다.
“……근데.”
“응.”
“나 요즘 이상해.”
박여주가 내게 말했다. 자기가 이상하다고. 그래, 조금 이상하긴 했다. 자기도 알고 있긴 했구나. 아무 대답 못 하고 빤히 바라보기만 하니까, 박여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래 막, 그런 건가.”
“어?”
“막, 좋아하는 거랑 친한 거랑…… 똑같은 건가.”
“무슨 소리야?”
횡설수설 하는 박여주에게 물어보니, 박여주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는데, 왜 내가 더 궁금해지는 건지. 내가 내 볼을 붙잡은 박여주 손 위에 내 손을 올리고는 되물었다.
“무슨 말이야. 응? 무슨 일 있어?”
“……이건, 내 친구 얘기인데.”
친구 얘기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친구가…… 엄, 청 오래 된 친구가 있거든? 근데 그 친구가 남자야.”
“응.”
“근데, 막, 갑자기, 어떤 여자 후배가 걔를 소개시켜달라고 하고,”
“응.”
“그래서 막, 둘이 이어주려고 했는데 점점 뭔가 마음도 뒤숭숭하고, 그랬…… 아. 더 이상 얘기하면 안 될 것 같다.”
박여주가 그렇게 말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말을 하다 마는 게 어딨어. 얼른 이어서 얘기해 줘. 아무한테도 얘기 안 할게.”
“……해도 돼?”
취하긴 한 건지, 한 번 꼬득이니 바로 넘어왔다. 박여주가 다시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친한 애라 뺏기기 싫어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응.”
“점점, 걔가 잘생겨 보이고, 아, 물론 잘생기긴 했어. 근데 막 질투도 나고.”
“……응.”
“근데, 또 생각하면 내가 질투할 자격이 없는 거야. 일개 친구일 뿐인데.”
“니가?”
“……아, 아니. 내 친구가.”
자기 얘기처럼 얘기하길래 물어보니 당황하며 말을 정정했다. 누구 얘기건 상관 없이, 그 여자애가 남자애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지금 정황을 따져보면, 얘가 말하는 여자애는 박여주고…… 남자애는.
“니 얘기야?”
“……아니야. 그런 거.”
박여주가 앙탈을 부리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니긴,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내가 괜히 계속 빤히 쳐다보니 박여주가 고개를 휙휙 돌렸다. 내가 박여주 손을 꽉 붙잡고는 다시 물었다.
“니 얘기, 진짜 아니야?”
내 말에 결국 박여주가 시인했다. ……맞아. 그 대답에 자꾸만 박여주가 한 얘기의 남자애가 나로 생각이 되서, 기분이 이상했다. 묘하다 해야 되나. 아니, 친한 친구가 날 좋아한다고 해서 막 싫은 게 아니라, 아, 그래서 더 이상했다. 이상하게도 진짜 가족 같다 생각했는데, 왜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싫다기 보다는 묘할까. 기분이.
“그럼, 그 남자는 누구야?”
“……몰라도 돼.”
“나 말고 다른 애 또 있어?”
내 말에 박여주가 놀라면서 내 볼을 붙잡은 손을 떼려 했다. 내가 박여주 손을 꽉 붙잡으며 떼지 못하게 힘을 줬다. 박여주가 떼는 것을 관두고는 한참 망설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뭐가 아니야. 얼른 말해 봐. 나 말고 다른 애야?”
“……몰라도 된다니까.”
“아. 진짜. 나야, 아니야. 얼른 얘기 해.”
“……몰라도 돼.”
“나인지 아닌지만 대답해.”
그 말에 박여주가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대답했다. ……아니야. 아니라는 대답 앞에 붙은 긴 정적에 점점 확신이 찼다.
“여주야.”
“……응.”
“거짓말 하면 혼나. 나 거짓말 싫어하는 거 알잖아.”
“……”
“얼른.”
아이 어루듯이, 자꾸만 대답을 재촉했다. 아, 나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근데 왜 자꾸 나라는 대답이 듣고 싶은지. 그래서 계속 박여주를 재촉했다. 박여주의 얼굴이 갑자기 점점 가까워지고, 박여주의 이마와 내 이마가 닿았다.
“……너 맞아.”
그 대답에, 정말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일어났어? 얼른 밥 먹어.”
“……나 왜 여기있어?”
“왜 있긴. 내가 너 데리러 갔었으니까.”
“……나 어디있는지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알긴. 니가 전화했잖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스터디 하는 선배들과 술을 마셨었던 게 기억의 마지막이었는데. 핸드폰을 꺼내 최근 통화 기록을 확인하니, 정호석의 이름이 떡하니 가장 최근에 떠있었다.
“……미안해.”
“미안한 건 알긴 알아?”
“……”
“밤에 사람 걱정이나 시키고.”
식탁에 앉아 국을 떠마시는 내게 정호석이 화를 냈다. 걱정? 걱정이라는 말에 정호석을 올려다봤다.
“여자애가 겁도 없이 남자만 있는 자리에서 술 취할 때 까지 마시고.”
“……”
“그리고, 멀리하자며. 그래놓고 이렇게 전화하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미안.”
“멀리하자고 한 사람이 누군데, 전화해서 데리러 나오라고 하고. 진짜.”
“……미안하다니까.”
“그리고 진짜 양심도 없어서,”
정호석이 내 앞에 앉고는 날 빤히 바라보더니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좋아하면서 멀어지자고 하고.”
“……”
그 말의 의미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아서 눈만 깜빡였다. 좋아하면서, 멀어지자 하고. 저거 나 얘기하는 거 맞지. 당황해서 정호석을 바라보니,
“언제부터였는데.”
대뜸 묻는다.
“뭐가 언제부터야……”
“나 좋아한 거.”
“……아냐. 나 너 안좋아,”
“거짓말 하지마. 어제도 그렇고. 어? 그런 식으로 씨알도 안 먹힐 거짓말 하지 마라. 진짜. 혼나.”
“……어떻게 알았어. 아니, 나 진짜 너……”
“어제 니가 술 먹고 니 입으로 직접 말했는데.”
정호석의 말에 기억을 되짚어봤다. 아. 기억났다. 술 취해서 정호석 얼굴 붙잡고 얘기하다가, 이마 가져다 대고…… 친구 얘기가 사실 내 얘기고, 그 상대가 정호석이라는 거 까지 얘기하고……. 아, 나 미쳤…….
“……”
“기억 났지.”
“……”
그리고, 그 후에…… 키스도 했다. 거기서부터는 진짜 필름이 끊겨서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 친구랑 키스라니. 이게 말이 되냐. 아, 나 이제 앞으로 정호석 얼굴 어떻게 봐. 고개만 푹 숙이니 정호석이 입을 열었다.
“키스도, 기억 났지.”
“…….”
“대답 좀 해주지?”
“……어.”
“우리 이제 어떡하냐.”
“……”
어떡하냐는 정호석의 말에 내가 입술만 깨물었다. 아. 진짜 어떡하냐. 앞으로 얼굴은 어떻게 보고. 예전처럼 지낼 수는 없겠지. 힘들겠지. 내가 자책하며 고개를 들지 못하니 정호석이 말했다.
“고개 좀 들어 봐.”
“……”
“아무래도, 우리 조금, 정리가 필요한 거 같아.”
“……미안해. 앞으로 니가 나 안보겠다고 해도…… 괜찮아.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 말 좀 끝까지 듣지.”
“……”
“넌 예전부터 맨날 중간까지만 듣고 니 멋대로 생각하고.”
정호석이 그렇게 말했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예상과는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화를 낼 거라 생각했는데, 밝은 표정의 얼굴에 당황스러워서 눈동자만 굴리니,
“내 눈 봐.”
평소에는 듣기 힘들었던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민망해서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결국 쳐다봤다.
“……”
“나도 진짜 모르겠거든.”
“……”
“연애 같은 거, 사실 할 생각 별로 없거든.”
“……응.”
“근데, 상대가 너라고 생각하니까……”
말이 조금 달라지네. 우리, 어떡하냐. 이제 예전처럼 못 지낼 것 같은데.
예전처럼 지내지 못할 것 같다는 말에 결국 내가 입술만 깨물었다. 아. 진짜. 내 실수 한 번 때문에 오래된 친구를 잃……
“우리, 친구 하지 말고 다른 거 하자.”
“……”
“그, 어, 친구 앞에 다른 걸 붙였으면 좋겠어.”
“……어?”
“나는 니 남자친구, 너는 내…… 여자친구. 아, 진짜. 이런 오글거리는 고백 해볼 거라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
“진짜. 너 때문에 내가.”
정호석의 말에 당황해서 쳐다만 보니, 대답안 할거냐며 나를 재촉했다. 난 당연히 좋은데. 아니, 이게 무슨…….
“너, 어, 친구 잃기 싫어서 그러는 거면 굳이 안 그래도……”
내 말에 정호석이 표정을 굳히고는 내 손을 꽉 잡았다.
“그런 거 아니거든. 너야말로 친구 잃기 싫어서 받아줄 거면 거절해.”
“……나는 완전……”
“완전 뭐.”
“……좋아.”
“뭐가.”
“……너겠지.”
정호석이 표정을 풀고는 웃으며 날 바라봤다.
“아. 그럼 이제 맘 껏 자기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미친 놈.”
“그런 미친 놈 좋아하는 넌 뭐야.”
“……난 예쁜이.”
“술 덜 깼어? 여주야. 얼른 술 깨.”
“너무해.”
그렇게 늘 여태껏 그래왔듯이 툭툭 내뱉었지만, 느낌이 달랐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정호석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 나 진짜 얘랑 이제 친구 아니구나. 익숙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낯설지도 않아서.
“뭘 그렇게 보셔. 내가 그렇게 잘생겼나.”
“……왕자병.”
“넌 공주병 말기면서.”
“난 예쁘니까.”
“나대지 마.”
“……응.”
어쩌면 10년 이상 같이 알아왔던 모든 날들이 그렇다고 얘기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 우리 사이는 친구가 아니라,
친구 이상, 연인 이하의 그 관계가 아니었을까.
그 애매한 관계에서, 연인으로 드디어 입장정리 끝.
| 친구 이상 연인 이하의 관계 (3/3) |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습니다... 울먹... 죄송합니다.. 절 마구 쳐주세요.. 저의 망상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킂ㄱ....... 우럭 ㅠㅠㅠ 암호닉은 개인적으로 정리중입니당... 신청해주시는 분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글잡은 처음이라 일일히 답글 달아드리고 싶은데 부담스러우실까봐...(울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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