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1. Friend
-친구가 있어서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있다.
***
일주일이 흘렀다.
이사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이 금방 금방 가는 것 같네.”
중얼거리듯 뱉은 말에 소파에 누워 축구 잡지를 들여다보고 있던 자철이 응? 하며, 조용히 화분에 물을 주고 있던 대훈을 쳐다보았다.
“시간이, 금방 가는 것 같다고.”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어. 조용조용한 목소리 사이로 물줄기가 뿌려지는 소리가 스며들었다. 자철은 그 말에 공감한다는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잡지를 덮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영 자세가 불편해서 허리가 아팠기 때문이다. 무릎 한쪽을 올려 턱을 괴고는, 탁자 위에 얹혀 있던 리모컨을 집어 들고 TV를 틀었다. 일요일이라, 재밌는 채널을 보려면 저녁 까지 기다려야 했다. 덕분에 자철은 얼마 지나지 않아 TV를 끄고는 다시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심심하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뱉은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현관에서 들려오는 맑은 소리에, 자철과 대훈은 동시에 현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가 왔나? 누가 왔지? 올 사람 없는데? 두 사람이 서로를 보고 머뭇대는 사이, 초인종이 한 번 더 울렸다.
딩동-
“내가 나가볼까?”
대훈이 물뿌리개를 내려놓고 자철에게 물었다. 그러나 자철은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내가 나가 볼게.” 라며 아무렇게나 벗어둔 슬리퍼를 고쳐 신고 현관으로 나갔다. 대훈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그 뒤를 따라갔다. 불청객도, 환영객도 아닌 사람이 서있을 것 같았다. 설마……
“누구세요?”
문을 열기 전. 자철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남자 둘이 사는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느냐 만은, 혹시 모르니까)구비해 둔 야구 방망이를 들고는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언뜻언뜻 비춰지는 실루엣이 건장했다. 택배가 올 날이 아니다. 그렇다고 연락 없이 친구가 찾아 올 리도 없었다. 아직 자철과 대훈은 주변인들에게 이사한 집을 소개한 집이 없다. 그렇다면 누구지?
찰칵-
문고리가 돌아가고, 그 누군가가 들어났다. 그리고 동시에, 방망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
방망이가 떨어지며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자, 그 소리에 달려온 대훈이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넌……” 그 이상은 말할 수가 없었다. 움직일 수도 없었다. 다만, 대훈은 그와 똑같이 굳어버린 자철에게 가려져 자세히 보이지 않은 그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쏟아지는 햇살을 등지고 서서, 대훈을 바라보는 사람.
“…오랜만이야. 안녕.”
오년 전 떠난 사람. 전혀 다른 느낌의 사람. 한 때 둘도 없는 친구였던 사람.
“보고 싶었어.”
그러면서 말하는 얼굴에 해사한 웃음이 떠올랐다. 형식적인 말을 내뱉듯 하는 말에, 대훈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철이 어느 새 꽉 쥔 주먹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그렇게 가버렸던 주제에, 여전히 웃고 있는 얼굴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영원히 불변 할 듯한 그 미소라니.』
***
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용대는 자신의 집 마당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멍하니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근처 지나가던 동네 주민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 눈초리가 느껴졌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저 총각 또 저러고 있어.’
‘마당 구석에 앉아서 뭐 하고 있는 짓이래?’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사실 어디 아픈 거 아냐?’
자신들은 안 들린다고 생각하고 수군거리는 거겠지만, 용대의 귀에는 다 들렸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잠자리를 쫓아다니는 제 애완견(말이 애완견이지 거의 사육하는 수준이다) 리버가 뛰어다니는 것도 보았다. 나도 쟤처럼 고민 없이 살아봤으면 좋겠다……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햇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는 털들이 나풀거리는 것을 한참동안 보다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잠이 몰려오고 저절로 몸이 나른해졌다. 어디 눕고 싶었지만 마당에 눕자니 동네에 더 이상한 소문이 퍼질까 두려워 그러지는 못했다. 집에 들어가면 되지 않냐 고? 말처럼 쉬우면 참 좋을 일이다.
용대가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이주 째다. 그러나 어울리지 않게 깔끔 떠는 성격 때문에 그는 영 새로 이사 온 집에 적응하지를 못했다. 그렇게 첫 날, 둘째 날, 셋째 날 까지 잠을 설치고야 넷째 날 저녁 제풀에 지쳐 겨우 잠이 들었다. 그 후 이사 온 지 일주일 되던 날 까지 용대는 몇 날은 잠 설치고, 그러다 지쳐서 하루는 잠에 들고, 하는 생활을 했다. 덕분에 눈 밑이 시꺼멓게 변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니 그제 서야 몸이 적응을 해 잠만은 편히 잘 수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적응을 해 나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만은 편했었다. 그러나 일이 터진 건, 이사 온 지 십이일 째 되던 날이었다.
그 날도 평소대로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부엌에 나갔다. 냉장고를 열고 물통을 꺼낸 뒤, 컵을 꺼내려 찬장을 뒤지던 그 때, 무언가가 밑에서 스슥 거렸다. 설마, 설마, 설마. 속으로 아니길 빌며 용대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무언가는 아직도 스슥 거렸다.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름에 손이 덜덜거렸다.
제발, 아니 여야 해. 이제 겨우 적응했는데……
떨리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고 발밑은 확인한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으아아아아아아악!!!!!”
두 개의 더듬이를 가진, 검은색의 그것이었다.
“리버야 이리 와봐.”
손을 내밀었지만 리버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 새끼, 내가 부르는 거 알면서 일부로 씹는 거야. 어째 성격은 전 주인이랑 똑같을 까. 용대는 속으로 욕을 하며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처연한 제 신세를 한탄하며 당장은 올 수 없다는 세스x를 원망했다. 아니 왜 지금 올 수 없어요? 내 목숨이 달렸다니까? 그러나 친절하신 상담원께서는 아주 무덤덤하게 말씀하셨다. 고객님, 고객님의 목숨이 중요한 것은 잘 압니다. 그런데 고객님 같이 말씀하시는 분들의 전화를 저는 매일매일 받기 때문에, 그 분들부터 구해드려야 하네요. 당장은 어렵고, 내일쯤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전화가 끊겼다. 아니 고객을 이렇게 대해도 되는 거야? 그렇게 외쳤지만 이미 끊긴 전화였다. 당장 잘 곳이 없다는 생각에 억울한 심정이 몰려왔다. 왜 ‘그건’ 나타나서 날 힘들게 하는 거야 엉엉. 장난인 것 같지만 용대는 정말 잘 곳이 없었다. 자신의 집 마당 밖에는.
‘리버야, 나 오늘 여기서 잔다.’
신세한탄을 하며 마당 위에 들어 눕자, 리버는 뭔 짓이냐는 듯 용대를 깔봤다. 마치 ‘여긴 내 구역인데 네가 왜 여기서 자?’ 하고 말하는 듯 했다. 그러나 용대는 묵묵히 몸을 웅크리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따뜻한 집, 침대가 있어도 잠 들 수가 없었던 용대에게 마당은 안식처가 되어 주지 못했다. 삼십분 정도를 뒹굴 거리다가 결국에는 일어났다. 불편해서가 아니라, 혹시나 누가 보고 소문이 퍼질 것이 두려워서였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집 앞 가로등 때문에 마당 정도는 훤히 보였다. 그래서 빛이 닿지 않는 구석 자리를 찾아 웅크리고 앉았다. 후드 모자를 뒤집어쓰고 눈을 감자, 문득 제 자신이 너무 불쌍하게 여겨졌다. 왜 집이 있어도 자지를 못하니……. 제 몸에게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몸이 오들오들 떨기만 할 뿐 대답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반쯤 뜬 눈으로 용대는 하루를 지새웠다.
***
아침이 밝아 오고 전화가 걸려왔다. 반쯤 뜬 눈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에 상대방이 놀란 듯 물었다. 용대야, 너 어디 아프니?
헐. 이모?
미처 확인하지 못한 수신인은 용대의 이모였다. 이런 젠장. 차오르는 욕지거리를 애써 넘기며, 용대가 목을 가다듬었다. 음, 이모? 아침부터 무슨 일로…?
-…어? 어. 그래. 이제 막 잠에서 깼나 보구나? 아픈 건 아니지?
“하, 하 아프긴요. 그냥, 어제 잠을 좀 설쳐서…….
-그래? 그래 아픈 건 아니라서 다행이다. 아, 왜 전화했냐면 우리 리버 잘 있나 싶어서.
리버?
용대는 제 집안에서 편안히 자고 있는 리버를 한 번 쳐다보고는, 이를 빠득 갈았다. 자신과는 달리 편안한 모습에 저절로 화가 울컥 올라왔다. 그러나 지금은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럼요. 아주 잘 있어요.”
-정말이니? 적응을 잘 하나 보네. 그래 네가 조금만 더 신경 써줘. 애가 워낙에 좀 예민해서~
쟤가 예민해서 저렇게 잘 자는 거면 난 이미 잠들어서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 거라고요. 용대는 그 말이 정말 하고 싶었지만 그만 뒀다. 이모, 이모의 환상을 굳이 깨지는 않겠나이다.
“제가 잘 돌보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래 네가 있으니까 내가 마음이 좀 편하다. 그럼 네가 좀 잘 돌 봐…어, 어 세린아 엄마 통화하잖아. 조금만 기다리세요 공주님?
세린이? 정세린? 용대는 순간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오싹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린이라면 제 사촌동생이다. 올해로 열한 살. 하는 짓이라고는 어른들 앞에서 온갖 착한 척 하는 것 밖에는 없는 꼬맹이가, 용대에게는 언제나 얄미운 존재였다.
-오빠! 우리 리버 잘 있어?
역시나. 결국에는 그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용대는 고개를 휘휘 내젓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응, 잘있어.
-우리 리버 괴롭히는 거 아니지?
“안 괴롭혀. 너무 잘 있어.”
-못 믿겠으니까 리버 사진 보내봐. 잘 있나 보게.
“잘 있다니까?”
-오빠가 거짓말 하는 지 아닌 지 내가 어떻게 알아. 얼른 보내!
“저기 세린아? 오빠가 지금 매우 피곤하거든? 그러니까 사진은 내일이나 모레 보내 줄게. 이모한테 안부 마저 전해드리고 이만 끊는다. 안녕.”
-오ㅃ……
종료 버튼을 누르자 하이톤의 목소리가 끊겼다. 어휴, 뭔 애 목소리가 이렇게 시끄러워. 주머니에 휴대폰을 집어넣고는 어느 새 일어나 잠자리를 쫓아다니는 리버를 쳐다보았다. 일요일. 남들 다 노는 시간에 나는 뭔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지잉-징-
신세한탄하기가 무섭게 다시 울리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또 이모 인가……. 그러나 아니었다. 수신인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받았다. 어, 왜.
-이제 일어났어?
“어.”
-목소리가 안 좋네. 어디 아파?
“…….”
-…야?
상대방의 목소리에, 용대는 꾹꾹 눌러 담았던 설움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아, 진짜……잠시만…. 한동안 말없이 삐죽삐죽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아 냈다.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진심으로 걱정하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음이 나오는 걸 보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야, 용대야. 이용대.
“…응.”
한참 만에 전화를 받자 걱정하는 목소리는 말했다.
-지금 갈까? 너희 집. 주소 불러줘. 그러고 보니까 나 아직 너희 집 한번 도 안 가봤네. 아, 어쨋든……
얼른 불러줘. 지금 갈게.
……그 한 마디에, 애써 다시 눌러 담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야, 야 왜 그래! 주소 불러달라니까 왜 또 울어.
“흐으, 학…선아, 흐, 진짜, 고, 마워, 흐윽”
그 말을 하고서 용대는 한참동안 주소를 불러주지 못했다.
***
……안, 안녕하세요.....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작가가 왔습니다 ㅠㅠㅠㅠ원래라면 수요일에 올라왔어야 할 글이 지금에서야 올라왔어요 ㅠㅠ이유를 말하라고 하시면,
컴퓨터에 있던 자료가 날라갔습니다.
어느 정도 구분 되어 있던 스토리상 흐름들이 날아갔어요...네......나 기억력 지존 안 좋은데.....그래서 해놨던건데....그게 미리 써놓았던 앞 부분과 함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다음 글은 언제 올라올지 모릅니다 ㅠ 안 되는 머리로 남은 스토리들이라도 다시 짜서 만들 시간도 필요하고ㅠㅠㅠ그래도 최대한 빨리 올리려고 노력하겠습니다ㅠㅠ독자님들 주말 잘 보내세요!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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