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2. 보고 싶지 않았다고, 말할 거야.
-죽어도 뱉고 싶지 않았던 말. 너 따위, 그립지 않았다는 말.
***
“여기가 어디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오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뭐 이런 조용한 동네가 다 있어. 학선은 정류장에 서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한 시간 전, 용대가 울먹이며 불러준 주소를 떠올렸다.
‘흐윽, 성악, 구, 으, 시정…동……’
그 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는 아니고. 정확히 말하자면 용대가 더 이상 주소를 부르지 못했다. 부르긴 했는데, 하도 울먹이는 소리 때문에 그냥 학선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갑자기 우는 용대가 당황스럽기도 하고 더 이상 주소를 제대로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알았어. 지금 갈게.” 하고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후로 용대의 연락이 없는 걸 보니 혼자 어디선가 울고 있거나 풀이 죽어 있을 듯 했다.
“잘 울 것 같이 생기지도 않는 놈이 울기는 제일 잘 울어요, 어휴.”
머리를 휘휘 저어봤지만 여전히 머릿속을 휘젓는 용대의 목소리는 잘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걱정되는 마음은 커져만 갔다.
“하여간 걱정시키기도 제일 시켜요.”
결국엔 길을 나섰다.
***
학선아, 온다면서 왜 안오냐.
벌써 몇 번째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고 있는지. 제가 생각하기에도 지금 자신의 모습이 무척이나 한심해 보였다. 용대는 발개진 눈가를 비비며 다시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몇 글자를 지웠다가, 다시 썼다. 이걸 보낼까 말까. 고민만 하는 사이 잠깐 동안 멀리 떨어져 용대를 지켜보고만 있던 리버가 다가왔다. 그리고는 개들 특유의 낑,낑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다. 응, 왜? 용대는 액정에서 눈을 떼고 리버를 쓰다듬었다. 왜 그래? 갑자기.
“응?”
용대의 물음에, 리버는 제 집 근처로 가더니, 집 앞에 놓여 진 제 빈 밥그릇을 코로 밀어냈다. 이틀 전 밥그릇이 차고 넘칠 정도로 사료를 쌓아줬었는데 벌써 다 먹은 듯 했다. 그래서 배고프다 이거야?
“그런데…….”
용대는 아련한 눈으로 제 집을 돌아보았다. 새삼 자신이 지금 집을 나와 마당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상기되었다. 왜냐고? 리버의 식량은 집 안에 있거든.
“리버야. 형이 미안해. 네 밥……지금 없어.”
형도 지금 굶고 있는 판에 네 밥을 어떻게 챙겨줘? 응? 설득하듯 말해보았으나 그것이 리버에게 먹힐 리는 없었다.(일단 우선적으로 리버가 알아들을 가능성도 희박했다)
낑, 끙.
용대의 반복된 말에도 불구하고 리버의 칭얼거림은 더 더욱 심해져만 갔다. 아…진짜 이게 뭐냐…….
무릎에 얼굴을 묻고 두 손은 아래로 축 늘어뜨린 모습이 평소와는 달리 작아보였다. 그 모습에 칭얼거리던 리버의 울음소리가 멈추긴 했으나 용대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힘들기도 하고, 이틀 동안 밖에서 생활하면서 체력이 많이 바닥난 상태였다. 먹기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집 안에 지갑을 두고 나온 게 가장 큰 실수였다) 아까 학선과의 통화에 운 것이 큰 타격을 주었다. 한바탕 울고 나니 몸이 무겁고 감기가 오려 했다.
그래서, 정말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이.
“용대야!”
라는 목소리에 또 한 번 운 것뿐이다.
……도움 따위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굳이 오지 않았어도 된다는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ㅡ고마워, 뿐이었다.
***
나른한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슬슬 노을이 창밖으로 보이기 시작하자, 대훈은 커튼을 치고 거실로 나갔다. 손에는 찻잔 세 개가 들려있었다. 세 개.
“…마셔.”
대훈이 찻잔을 내려놓자 자철이 상대방을 보며 웅얼거렸다.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예의’라는 것이 정말 무서운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정작 제 앞에 놓여 진 찻잔은 옆으로 밀어버리고는 대훈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대훈은 앉기도 싫었고 그와 마주하기도 싫었지만, 이대로 방 안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 것 같아 그냥 자철 옆에 조용히 앉았다.
“잘 마실게.”
나지막한 목소리가 거실에 울리자, 대훈은 새삼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 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지금, 그를 보고 있구나. 이런 일 다시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결국에는……. 고개를 숙이고 발에 신겨진 슬리퍼를 말없이 쳐다보고 있기를 몇 분. 한 동안 거실에는 그가 커피를 마시는 소리만 들렸다. 숨소리마저 미약해지는 순간. 대훈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손에 든 쟁반을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는, 참을 수 가 없었다. 숨막힐 듯한 침묵도, 그를 보고 있다는 이 상황도, 그가 대훈이 타 준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것조차도.
“앉아. 괜찮아.”
대훈의 손목을 잡고 자철이 끌어내리자 어느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버려서 대훈은 힘없이 다시 앉아버렸다. 앉은 뒤에도 불안정하게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찻잔을 들고 차를 마셔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손에서 찻잔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김이 오르던 액체들이 대훈의 발등 위로 쏟아져 내렸다. 이대훈!
“괜찮아?”
자철이 놀란 얼굴로 찻잔을 주워들고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닦을 것을 찾았다. 그러다가 베란다 건조대에 걸린 수건이 눈에 들어왔다.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나갔다. 그 때 까지도 대훈은 별 기색 없이 자철이 주워 놓고 간 찻잔을 멍하니 쳐다봤다. 아……뜨겁다.
“…괜찮아?”
눈앞에 들이밀어진 손수건과 함께 귓속으로 박혀 들어오는 말. 이제는 낯설어진 손이 보였다. 괜찮아? 괜찮아 라고?
“이걸로 좀 닦아. 아직도, 가끔씩 부주의하네. 위험해. 늘 조심해야지.”
……결국엔 여전하네.
“……넌,”
어느 순간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이 조금씩 내뱉어졌다.
“돌아오지, 말았어야 해.”
너를 위해서든, 나를 위해서든, 자철이를 위해서든, 우리를 위해서든.
“그랬어야해.”
그런데 대체 무슨 낯짝으로.
“무슨 생각으로 돌아 온 거야.”
-안녕. 다시는 볼 수 없을 거야.
그렇게 떠나버리던, 그 말만 남긴 채 떠나버리던 넌 어디 갔어? 그래놓고는 다시, ‘안녕’ 이라고?
……넌 모순덩어리야.
“거짓말쟁이.”
낮게 깔린 음성이 천천히 공기 중으로 퍼져나갔다. 발등에서는 여전히 김이 피어올랐고, 정신은 아찔해졌다. 발끝부터 바닥이 무너지는 느낌. 곧 떨어질 것 같은 느낌.
“이래서, 널 다시 만나기 싫었어. 죽도록.”
이어지는 대훈의 말에, 그가 마른세수를 했다. 그도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훈은 듣고 싶지도, 그와 대화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 그가 자신의 말을 듣기만을 바랄 뿐.
“볼 수 없을 거라며. 그래서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다시는, 볼 수 없기를.”
그렇게 가버렸는데 잡을 수도 없었고. 그래서 차라리 포기하자, 라고 생각했어. 뒷말이 올라왔지만 그 앞에서 말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기에 대훈은 억지로 말을 삼켜야 했다. ……절대 말하지 않을 거야. 그런 다짐 아닌 다짐.
“…내가 더럽다고 생각해?”
그가 입을 열었다.
더럽냐고? 아니……난 그냥 네가…
“대훈아, 이걸로 닦아. 닦고 약 바르자. 안 아파?”
어느 새 수건을 두어 개 걷어서 거실로 들어온 자철이 수건을 겹쳐 발등을 꾹, 꾹 눌렀다. 대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제 서야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할 말이 남았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한참동안을 누르고 있는 자철을 내려다보다가, 들고 있는 수건을 뺏고는 “붕대랑 약 좀 갖다 줘. 내가 할게.” 라고 말했다. 그 말에 자철은 잠시 고민하는 듯 그와 대훈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약을 찾아 대훈의 방으로 들어갔다.
“…네가 더럽냐고 물었지.”
“…….”
“솔직히 말하자면 더럽지 않아.”
“…그럼,”
“다만.”
대훈이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아까와는 달리, 두려워하지 않았다.
닫혀있던 입이 열리고,
“난 네가,”
그가 대훈의 눈을 마주한 순간,
“역겨워.”
그는 세상에서, 그런 눈을 본 적이 없었음을 알게 되었다.
-…절대로, 말하지 않을 거야.
너 따위, 그립지 않았어.
***
눈을 뜨니 하얀 천장이 보였다. 어디지?
“…….”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몸에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용대는 잠시 어쩔까, 생각하다가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딜까, 여긴.
“괜찮냐?”
어?
익숙한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느릿하게 떴다. 갈수록 몸이 무기력 해지는 것 같았다. 목소리의 주인을 보려 고개를 돌렸지만 보이는 거라곤 얼굴이 아닌 상체였다. 얼굴을 보려면 눈을 치켜떠야 할 것 같았지만 자꾸만 졸음이 몰려와 포기했다. 그래서 애써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내려 했다. 그러나 갈라진 쇳소리 비슷한 것만 나왔다.
“가만히 있어 그냥. 뭔 짓을 했으면 애가 이 모양 이 꼴이냐.”
휴. 말 뒤에 한숨이 따라왔다. 용대는 괜히 학선이 자신을 걱정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입 꼬리가 올라갔다.
“왜 웃어?”
팔짱을 끼고 누워있는 용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나 용대는 몰려오는 졸음에 작게 고개를 내젓고는 입 모양으로 ‘나 잘 거야’라고 했다. 그래서 겨우 입 모양을 읽은 학선이 움직일 수 없는 용대를 대신해 이불을 올려주며 혀를 찼다. 여기가 어딘 줄은 알고 잔다는 거냐?
“병원이야. 병원. 넌 애가 대체 뭘 했으면 영양실조에다가 수면부족이라는 진단이 나와? 어?”
그러나 용대는 정말 자는 듯 대답하지 않았다. 아, 진짜 자? 수면부족 맞는 거야? 얼굴로 손을 가져가 톡톡 두드려 보았지만 용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진짜 잘 자네. 못 잔 거 맞나봐.
“그렇게 예민하신 분이 이런 곳에서도 잘 자는 거 보니 말 다했네.”
나도 그럼 좀 잘까. 보조 침대를 꺼내기 위해 학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용대가 깨지 않게 조심히 행동하며 침대를 꺼내고는 그 위에 누웠다. 그리고 용대가 깨어났을 때 제일 먼저 마주 했던 하얀 천장을 그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어쨌든 잘 자라.
학선의 얼굴위로 미소가 떠올랐다. 유난히 길었던 하루. 어느 새 밤은 찾아오고 있었다.
***
제가 드디어 다시 구상한 걸 정리하고 돌아왔습니다! ㅠㅠㅠㅠㅠ
어휴, 제 머리가 새삼 이렇게 나빴나 싶네요 ㅋㅋㅋㅋㅋㅋ어쨋든 이제는 좀 수월하게 집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 편은 용대와 학선이가 왜 성용이의 지갑을 털이(?)했나가 나옵니다. 대훈, 자철,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그’는 쓰면서 정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작가는 재밌는 글보다는 저런(?) 무거운 글을 더 잘 쓰기 때문에....소금소금....이러니까 학교 구석에서 글이나 쓰면서 살 것 같은 이미지네요...ㅋㅋㅋㅋ그러나 그런 애는 아니니까 많이 무겁게는 쓰지 않습니당 ㅎㅎ 다음 편에서 뵈요!
+)아, 용대가 떠맡듯 키우게 된 리버는 골든 리트리버가 맞아요! 작가가 이름 짓기 귀찮아서 걍 리버...ㅋ......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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