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01>
작은 창 밖으로 보이는 것들은 더 이상 아름답기로 소문 난 마을이 아니었다. 오밀조밀 예쁘게 밀집해 있던 집들은 이미 폐허가 되어 버렸고, 마을 가운데 우뚝 솟아 오늘 같은 봄이면 예쁜 꽃들이 만발하던 벚 나무는 앙상한 나뭇가지들만이 피로 물들어 꺾여 있었다. 사람 살던 따듯한 이야기로 시끄러웠던 마을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고, 소름 끼쳤다.
빼꼼 고갤 내밀어 창 밖 풍경을 본 지호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잠시 시선을 돌렸던 할머니가 지호를 보고 놀란 듯 얼른 자신의 품에 가뒀다. 지호야, 안 된다. 밖을 보지 말거라. 그렇게 말 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평소완 다르게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린 지호가 이제서야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 였다. 순간 차가운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지호가 낯선 느낌에 흠짓 놀라며 고갤 들어 할머니를 바라 봤다. 하지만 지호의 시선이 닿은 곳은 할머니의 따뜻한 눈이 아닌 허공이었다. 지호의 얼굴에 뜨뜻한 무언가가 튀었고, 발 밑엔 누군가의 머리가 나뒹굴고 있었다.
으, 으아악! 으악!
자신의 발 밑에 볼 품 없이 뒹굴던 것이 자신을 안고 있던 할머니의 머리라는 것을 깨달은 지호가 마구 괴성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런 지호의 앞엔 어린 지훈이 서있었다. 검붉은 피로 얼룩진 검을 손에 쥐고 차가운 눈으로 작은 지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둘의 눈이 마주쳤고, 순간 지훈은 지호를 향해 웃어 보였다. 잠시 지호의 숨이 멎는 듯 했다 .지훈의 뒤에 서 있던 무기로 무장한 남자들이 지훈을 재촉하며 뭐라 말 하는 것 같았지만 지훈은 귀머거리 마냥 귀를 닫고 천천히 지호를 향해 발걸음을 뗐다. 지호의 앞에 서서 한참을 얼굴을 들여다 보던 지훈이 순간 검을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
휘익 하고 허공을 가르는 바람 소리가 들렸고, 지호의 한 쪽 눈을 가리고 있던 흙 빛 안대가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곧 지호의 온전한 두 눈이 드러나자 지훈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예쁜 눈을 가졌구나.
자신을 향한 낮은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어린 지호는 정신을 잃고 뒤로 쓰러졌다. 서로 다른 빛을 가진 예쁜 두 눈이 뒤집어 까지며 뒤로 쓰러지는 순간에도 지훈은 지호를 보며 웃고 있었다. 뒤에 서 지훈의 행동을 지켜보던 이들 중 한 명이 지호를 향해 검을 뽑아 들었다. 더러운 오드아이 라며 검을 치켜든 순간 그의 팔이 댕강 잘려 나갔다. 의아한 표정을 지은 그가 자신의 팔을 내려다 보곤 마구 소리를 지르며 주저 앉았다.
손 대지 마. 내 거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아군의 팔을 베어버린 지훈이 평소보다 들 뜬 목소리로 읊조렸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지훈에게서 보이는 광기에 지훈의 뒤에 서 있던 이들이 살짝 뒤로 물러 났다. 지훈이 만족스러운 듯 웃어 보이며 다시 지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서로 다른 색의 눈을 가진 작고 흰 사내 아이. 지훈이 지호의 흰 목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지호의 목에 채워 진 은 빛 목걸이를 발견했다. 자세를 낮춰 지호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유심히 바라 보았다. 얇은 은 빛 줄에 문양이 새겨 진 작은 장식이 두 개나 달린 목걸이. 흰 아이에게 상당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지훈이 조심히 손을 뻗어 장식 중 하나를 떼 자신의 제복 주머니 안에 구겨 넣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음에 봐.
어린 지훈이 등을 돌려 폐허가 된 작은 집을 나섰고 그를 따라 온 이들도 차례대로 집을 나섰다. 훈 기가 돌던 집 안은 어느새 차가운 기운과 비릿한 피 비린내만 진동했다. 지호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채 두 눈을 감고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그게 지호가 기억하는 지훈과의 첫 만남 이였고, 어린 지호가 처음 보는 제 가족의 죽음 이었다.
나라를 보살피는 황제의 몸이 약해지자, 외국 사신들이 이 나라를 노리기 시작했고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해 황제는 약하고 쓸모 없는 자들을 말살 시켜 강한 자들만 살려두라는 멍청한 명령을 내렸다고 했었다. 가장 먼저 말살이 시작 된 곳이 운 없게도 지호 자신이 살 던 마을이라고 했었다. 그 마을은 아주 작고 힘이 없었을뿐더러 서로 다른 부족이 만나 짝을 이뤄 낳은 혈통 없는 자들만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지호가 사랑하는 마을 사람들과 하나뿐인 가족을 잃은 것이 그 망할 명령 때문이었고, 그 말살 정책이 깨끗하게 성공 했다는 건 어린 지호가 이미 훌쩍 커버린 뒤에 들은 이야기였다.
더 이상 지호는 남의 손에 의해 자라야 하는 연약한 이가 아니었다. 어릴 때 하나뿐인 가족을 잃고, 고아가 된 이후로 지호는 떠돌이 생활을 하며 자신의 힘을 길렀다. 등 너머로 검 기술을 익혔고, 방어하는 법을 배웠다. 정체 모를 것에 잡아 먹힐 뻔도 했었고, 제 눈이 불길하다며 모르는 이들에게 맞아 죽을 뻔도 했지만 지호는 끝까지 살아 남았다. 독하게 자란 지호는 어느새 일반 성인처럼 보였고, 어느 누구보다 강했다.
어릴 적엔 콤플렉스였던 빛 다른 눈에 채워진 안대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자신을 지키는 법을 안 지호에게 더 이상 제 얼굴을 가리는 것은 필요 없다고 느꼈을 뿐 더러, 강해진 지호의 생김새를 보고 더 이상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없었다.
“ 지호님. “
“ 아, 소피. “
금 빛 머리칼을 하나로 길게 땋고 백 색의 원피스를 입은 아름다운 여자였다. 지호처럼 눈 색이 다른 오드아이도 아니었고, 미숙했지만 제 몸을 지키는 주술을 부릴 줄도 아는 그런 똑똑한 여자. 햇살 보다 빛 나게 웃으며 다가오는 여자를 지호는 웃으며 제 품에 안았다. 지호가 지켜야 할 여자였고, 사랑하는 여자였다. 누군가와 짝을 지어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이 여자와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피가 지호의 품에서 벗어나 웃어 보였다. 지호도 손에 쥐었던 검을 놓고 소피의 고운 머리결을 매만지며 웃었다. 날이 추워지니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는 소피의 어린 애 같은 말투에 지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소피를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지호와 소피는 같은 공간에 살았고, 같은 잠자리에 누웠다. 소피가 지호의 품에 파고 들며 눈을 감았다. 소피 특유의 길고 아름다운 흰 속눈썹을 바라보다 지호도 그녀의 살 내를 맡으며 잠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지호가 평소보다 늦게 눈을 떴을 땐 집 안엔 낯선 이의 향기가 났고, 소피는 없었다.
* * *
안녕하세요(_ _*)수줍 MMM입니다 쓰리엠이라 불러주세여
열꽃이 약 8개월 전 글이네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 글 써봅니다
장르는 나름 판타지예요ㅋㅋㅋㅋ(믿을 수 없음) 오랜만에 써서 그런지 영 감이 안 오네여..ㅠㅅㅠ
한동안 뜸 했지만 내 영원한 고향은 피코당. 피코행쇼.
오타나 수정해야 할 부분은 말씀ㅎㅐ 주시면 매우 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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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민해서 항상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