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02>
지호가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 안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좁지만 소피의 향으로 가득 했던 집 어느 곳에서도 소피를 찾지 못 했다. 미친 사람 마냥 옷도 차려 입지 않고 집 밖으로 뛰어 나온 지호가 큰 소리로 소피를 부르며 찾기 시작했다. 소피, 소피! 대답해! 뒷 뜰에도, 소피가 자주 가던 나무 아래에도, 개울가에서도 소피는 찾을 수 없었다. 지호가 차가운 흙 위에 주저 앉았다. 잠시 장을 보러 나갔나? 옆 마을에 사는 친한 친구 제이의 집에 놀러 간 건가? 지호 자신이 밖에서 헤매는 동안 잠깐 밖에 나간 소피가 집에 돌아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호가 급한 걸음으로 다시 집에 되돌아 갔다.
“소피!”
설마 하는 들 뜬 목소리로 문을 열며 소리쳤지만 집 안 어느 곳에서도 소피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그대로였다. 그리고 엉망이었다. 소피를 찾겠다고 지호가 어지럽힌 집 안 꼴도, 맨 발로 밖에 나가 뛰어다녀 피가 나는 지호의 발도. 또 한 번 사랑하는 이를 잃은 지호의 마음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소피가 자신을 떠날 이유가 없었다. 분명 자신이 소피를 더 사랑하지만, 가끔씩 저 보다 더 사랑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소피의 눈을 지호는 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자신을 사랑하던 그녀였는데 하루 밤 사이 아무 말도 없이 제 곁을 떠날 이가 아니었다. 역시 뭔가 이상해. 마을을 더 살펴 봐야겠어.
벌써 일주일 째 였다. 옷을 갖춰 입고, 검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마을 어귀를 뱅뱅 맴돌기만 했다. 지호의 눈은 초점 없이 텅 비어있었다. 지호 곁을 지나가던 노부부가 혀를 쯔쯔 찼다.
저 아이 벌써 며칠째야. 아마 사랑하는 이가 끌려 간 모양이지? 아, 글쎄 요즘 태자가 이상한 명령을 내려서 마을에 여자란 여자는 다 끌고 간다잖아! 이크, 내가 말을 잘못 꺼낸 모양이군.
한참을 작게 속삭이던 노부부가 지호의 시선을 받자 고개를 숙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지호가 급하게 따라가 노부부를 붙잡았지만,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라며 입을 꾹 닫고 열지 않았다. 지호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검 집으로 손을 가져다 댔다.
“ 저, 정말 자세히는 모르는 일이네! 나도 소문으로만 들은 얘기니까! 거, 검은 놓고. 진정하게. 다 말해 줄 테니. “
제 아내를 보호하려는 듯 지호의 앞을 막아 선 노인이 당황한 목소리로 지호를 진정 시켰다. 아내를 보호하는 노인을 멍 하니 바라 본 채로 꺼내던 검을 다시 검 집에 넣었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는 표정. 자신의 표정도 저 노인 같은 표정이고, 저런 눈빛 일까.
노부부의 낡은 집으로 안내 받은 지호가 의자에 앉으며 재촉했다. 한 시가 급했다. 들은 말 대로 끌려가기라도 한 거면 당장이라도 다시 데리고 와야 했다. 낡은 숄을 두른 늙은 여자가 지호의 앞에 찻 잔을 내려 놓으며 웃어 보였다. 남자도 지호의 앞에 앉아 차를 홀짝이며 지호와 눈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 아까 말 했듯, 나도 소문으로 듣기만 한 거 라네. “
“ 상관 없습니다. 아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
“ 아까 말한 그대로야. 태자가 마을의 여자들은 다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려서 눈에 띄는 여자들은 다 잡아가는 것 같아. “
“ …… .”
역시 그래서 소피도 끌려 간 거 였나. 지호에겐 황제의 붕어 여부나 그 뒤를 잇는 태자의 이야기 등은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나라 사정에 무관심 했던 자신을 탓 하며 노인에게 성의 정확한 위치를 물으려 할 때 였다. 노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 그런데, 참 이상한 게, 태자는 ‘여자’라고 말 한 적이 없는데 태자의 신하들이 여자만 잡아가는 모양이야. “
“ …그게 무슨 말씀 입니까? “
“ 태자는 정확히 눈이 예뻐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자를 데려오라고 했다더군. 신하들이 말 하길 아주 어렸을 때부터 태자가 그 자를 찾고 있고, 태자의 첫 사랑 일 거 라고 하더군. 아마 태자비 자리에 올릴 생각 일 테지. “
아. 지호가 노인의 말을 듣고 소피의 눈을 떠올렸다. 소피의 하얀 속 눈썹과 빛이 나는 다갈색의 눈동자. 역시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눈이었다. 당장 소피를 찾아와야 했다. 태자비라니. 소피에게 충분히 어울리는 자리였다. 누구보다 아름다웠고, 기품 있으며, 착한 여자였다.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길 줄 알았으며, 어진 소피였다. 하지만 소피는 태자비 자리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소피는 과한 것을 싫어했다. 선물도 값 비싼 장신구나 예술품 보단 길에서 꺾어 온 이름 모를 들 꽃 한 송이를 더 좋아했으며, 금전 욕이 전혀 없는 그런. 적어도 지호가 알던 소피는 그랬다. 분명 제 자신과 함께 영원을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 하리라.
“ 그런데 지금 보니 자네, 오드아이군. “
생각에 빠진 지호를 가만히 쳐다 본 늙은 남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호가 날이 선 눈빛으로 남자를 쳐다보자 남자가 선한 표정으로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 나쁜 뜻으로 말한 게 아냐. 나도 두 개의 피가 섞인 사람이지. 그냥, 자네 눈이 참 예뻐서 한 소리였네. 태자의 기사단에 눈에 띄었으면 끌려 갔을지도 모를 그런 눈 말이야. “
“ …성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아십니까? “
“ 아, 내가 쓸 데 없는 소리를 한 모양이군. 알지, 아주 자세히 알지. “
“ 약도를 그려주시지 않겠습니까? “
지호의 말을 듣고도 한참을 대답 없이 앉아있던 남자가 느리게 몸을 움직여 낡은 양피지와 펜을 가져와 다시 지호의 앞에 앉았다. 옆에서 그의 아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남자를 말리는 것 같았지만 남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지호 앞으로 양피지와 펜을 내밀어 보였다.
“ 가는 길은 쉽네. 하지만 성 안에 들어가긴 어렵지. “
“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
“ 아니, 분명 못 들어 갈 거야. 미안하지만 자네 꼴이라면 더더욱. “
제 눈을 보며 하는 소리였다. 안대를 착용해야 하나 하고 생각할 때 남자가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한참을 끄적이던 그가 양피지를 둘둘 말아 지호에게 내밀었다.
“ 문지기가 자넬 막아서면 이 것을 보여주게. “
“ 이게 뭡니까? “
“ 추천서. 나도 왕의 기사단이었지. 지금은 다릴 다쳐 이런 작은 마을에 살고 있지만. 큰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성 안 까지는 무리 없이 들어갈 수 있을거네. “
아. 그제서야 절뚝 거리던 남자의 다리를 알아챘다. 항상 남에 대해 주의력 깊던 자신이 저런 사소한 것 조차 발견 못 하다니. 심각하군. 지호가 남자가 내미는 것을 받아 품에 넣으며 감사의 표를 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늙은 남자가 그저 웃어 보이며 다른 종이에 간단하게 약도를 그려 지호에게 넘겨줬다. 지호가 마저 그 종이까지 받아 품에 넣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 실례가 많았습니다. “
“ 남자라면 사랑하는 여자를 지켜야 하는 건 당연하지. 돌아올 땐 혼자가 아닌 둘이서 오길 바라네. “
“ 돌아오면 다시 한 번 들리겠습니다. “
지호의 말에 노부부가 말 없이 고갤 끄덕였다. 등을 돌려 노부부의 집을 나선 지호가 약도를 펼쳐 들었다. 그렇게 멀지 않는 거리였다. 집에 들릴 새도 없이 길을 떠나려던 지호가 다시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들고 나온 건 다름이 아닌 소피의 손수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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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도 못 하고 올리네요ㅠ.ㅠ
내일 수정해야지.... 오타나 이상한 부분 있으면 말씀 해쥬세여 낼 수정 할 때 수정하게요..쥬륵..오늘은 너무 피고내
읽어주시는 분들 읽느라 수고 많으십니다(tT.T) 감사해요 아리가또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