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르르. 쾅쾅.
윤기의 귀가 축 처지고,
입술은 삐죽 튀어나오고,
두 다리는 쭉 뻗은 채로 세상 다 무너진 듯이 앉아있는 모습에
남준이는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으로 괜히 눈치를 보면서 창밖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지난 주에 엄청 사소했던 걸로 투닥거리다가 결국 남준이 잘못으로 판정나면서 이번 주 주말에 놀러가기로 한 것 까지는 참, 괜찮았는데.
왜 꼭 놀러가기로 한 날에 비가 오는 걸까?
윤기가 창문 바로 앞에 서서 빤히 창 밖을 바라보는 것을 본 남준이가 난처하게 웃다가 결국 손을 뻗어 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으면 좋겠다.
다음 주에 갈까요?
너 다음 주에 엠티 간다며.
아…. 그럼 그 다음 주.
너 시험이라며.
아….
망할. 대한민국의 대학생은 뭐 이리 바쁜가. 남준이가 자신보다 저 제 일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윤기의 말에 결국 다시 멋쩟게 웃어버렸으면 좋겠다.
비 와도 놀러갈 수 있잖아. 안 돼?
형. 인간적으로 저 폭우에 가는 건 너무 하지 않아요? 오늘 집중폭우래요.
집중이고 뭐고… 씨이… 놀러가기로 했잖아.
안 돼요. 이런 날에 어딜 가요. 게다가 시간도 늦었잖아요.
더 있으면 안 멈출까?
안 멈춰요. 오늘 내내 온대. 형. 다음에 놀러가요, 다음에.
세차게 내리는 소나기에 안 그래도 예전에 추운 겨울에 혼자 밖에 나가게 뒀다가 후에 크게 열이 올라 앓았던 윤기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 남준이는
그런 면에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윤기를 말렸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투정을 부리던 윤기도 생각보다 더 단호한 남준이의 태도에 조금씩 뿔이난 표정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결국 투닥투닥
말다툼이 일어났으면.
그리고 그 말다툼은 윤기의 한 마디에 끝이 났으면 좋겠다.
됐어. 나 오늘 바닥에서 따로 잘거야! 쿠션 내려!
윤기가 진짜 화가 나거나 했을 때 쿠션을 거실 바닥 어딘가에 내려놓고 자는 버릇이 나왔으면 좋겠다.
남준이 입장에서는 항상 얼굴 옆에 느껴지는 따듯한 온기가 사라져서 썩 좋아하지 않고,
윤기도 남준이 온기가 느껴지는 침대 옆이 아니라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싸운 녀석과 합방을 할 수 없다는 윤기의 다부진 고집에 나온 버릇이었으면.
남준이가 그러라는 듯이 쿠션을 들어 건네주면 쿠션과 베개 하나를 챙긴 윤기가 바닥에 이불을 깔았으면 좋겠다.
와, 사람 모습으로 자게요?
어.
진짜 안 올라올 거예요?
어.
그래. 뭐. 나중에 춥다고 해도 안 올려줄 거예요.
요즘 덥거든.
아. 예. 예.
그렇게 냉전은 쏟아지듯 내리는 비와 함께 계속 무겁고 차가운 분위기로 남준이와 윤기를 내리눌렀으면 좋겠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 남준이가 불 끌게요,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을 꺼버렸으면 좋겠다.
윤기는 그래도 옷장 냄새가 물씬나는 이불이 마음에 들어서 귀를 다시 축 늘어뜨린 채로 이불에 얼굴을 묻은 채 잠에 들려고 했으면 좋겠다.
어색하고도 어색한 침묵이 꽤 오랜 흐른 뒤에
그 침묵에 지쳐 잠이 들 즈음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천둥번개가 번갈아 내리쳤으면.
남준이가 그 소리에 놀라 퍼득 잠에서 깨었다가,
작게 앓는 소리를 내고 몸을 뒤척였으면.
비만 와도 시끄러운데 저 소리까지는 너무하잖아.
작게 궁시렁거린 남준이가 다시 겨우 선잠이 들 즈음에 또 한 번
우르르
꽝
하고 심하게 하늘이 번쩍거렸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그쯤되면 반쯤은 다 포기한 상태로 언젠가는 멈추겠거니 싶어 몸을 돌리다가,
감고 있던 눈을 떴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바로 눈 앞에 있는 허연 무언가에 놀라 벌떡 일어났으면.
뭐, 뭐, 뭐, 무슨, 그, 뭐…!
귀신 아니라 토끼다.
아….
그제서야 남준이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침대에 엎어졌다가 왜 그러냐는 듯 윤기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하얀 토끼가 하얀 티셔츠에 하얀 베개를 끌어안고 어두운 방 안에 서있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남준이는 겨우 진정이 된 뒤에 고개를 돌려 윤기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왜 사람 심장 떨어지게 거기 서 있었냐고 물으면
윤기가 대답을 하지 못하고 한참 우물쭈물 거렸으면 좋겠다.
그러다 다시 한 번 천둥번개가 칠 때에 윤기가 귀를 틀어막고 그대로 쭈그려 앉아버렸으면 좋겠다.
형, 형. 설마, 그, 천둥이 무서운 거예요?
아니야.
그럼요?
….
윤기 형?
… 귀. 귀 아파. 그래. 귀가 아파서 그런거야.
와중에 윤기는 하얀 두 귀를 두 손으로 포옥 잡은 채 볼에 꾹 누르고 있었으면.
남준이는 그저 말 없이 윤기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저거 칠 때마다 귀 아파.
근데 귀 계속 막고 있어도 귀 아파.
귀마개 같은 거 없냐?
아. 귀마개요?
남준이는 어딘가 김이 빠진다는 듯 헝클어진 머리를 더욱 제 손으로 헝클였다가 없다고 고개를 저었으면 좋겠다.
편의점 가면 팔텐데. 다녀올까요?
아니야. 시간 늦었잖아.
저거 쉽게 안 멈출 것 같은데. 지금까지 천둥 칠때마다 어떻게 버텼어요?
그러게. 뭐. 어떻게든?
그래서, 어떻게 해줄까요, 내가.
어?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거예요, 토끼야?
우물쭈물 쉽게 남준이의 앞을 떠나지 않은 윤기를 보고 남준이가 웃으면서 질문을 슬쩍 던졌으면 좋겠다.
가벼운 어투로
윤기의 심정을 콕 찌르는 질문을 던졌으면 좋겠다.
윤기 너는 그저 입술을 꾹 다문 채로 한참 말이 없었으면 좋겠다.
한 번 더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연이어 쏟아지는 소리가 울린 뒤에야
겨우 입술을 움직여 남준이의 질문에 답해으면 좋겠다.
나 침대에서 잘래.
자리 바꿔줘요?
아니, 바꿔달라는 게 아니고.
그럼요?
너 다 알잖아. 왜 모른 척이야.
모르겠는데요?
아직도 팽팽한 기싸움이 막 벌어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살벌하게 자신을 노려보면서 한참 서있는 윤기를 보고 어지간히 고집도 센 토끼라며,
이 쯤에서 자신이 물러나야 되지 않을까 싶었던 남준이가 먼저 말을 하려던 것을 윤기가 막아섰으면 좋겠다.
같이 잘래, 너랑.
거기, 침대가, 침대가 창문이랑 거리가 멀잖아. 그래서 그런거야.
베개는 와중에 한 손에 꽉 쥐고 있으면서,
한 쪽 손으로는 한 쪽 귀를 꽉 눌러 막고 있으면서,
표정은 애써 담담한 척,
아닌 척.
남준이는 잠시 그런 윤기를 빤히 바라봤다가 참지 못한 웃음을 터뜨렸으면 좋겠다.
윤기가 왜 웃냐면서 베개로 자신을 내려쳐도 두 팔을 들어 막을지언정 웃음까지는 막지 못 해 그저 한 없이 크게 웃어버렸으면 좋겠다.
하여튼,
귀여워죽겠네.
한참을 웃던 남준이가 윤기가 또 한 번 요란하게 울리는 천둥번개에 놀라 움찔한 사이에 손을 뻗었으면.
그대로 윤기의 두 손목을 쥐고 침대 쪽으로 끌어당겼으면.
자신은 벽 쪽으로 붙고 남은 여분의 자리를 윤기에게 내어줬으면.
자연스럽게 남준이가 베고 있던 베개가 침대 구석으로 밀리고, 남은 자리에 윤기의 베개가 자리 하고,
이불은 정리가 되어 끌어올려져 남준이의 몸만이 아닌 새로 누운 몸을 익숙하게 덮어 안았으면.
윤기는 갑자기 눕혀진 시야에 적응하기도 전에 제 눈을 가려주는 손을 느끼고 얼결에 질끈, 눈을 내려 감았으면 좋겠다.
자요. 같이.
어?
왜요. 이거 원한 거 아니야?
아니. 맞는데. 갑자기 이러면, 저, 그게. 어…. 아니야.
부끄러워요?
어?
부끄러워도 말하지 말고 참아요. 형이 부끄럽다고 말하면 나도 더 부끄러울 것 같으니까.
자신의 눈을 덮고 있는 손 때문에 남준이의 표정을 보지 못한 윤기가 그저 고개를 흔들다가 의아함을 보였으면.
이불을 재차 덮어주고, 얼른 자라는 남준이의 목소리가 울릴 때즈음에야 그 의아함이 가라앉고 수마가 다시 떠올랐으면 좋겠다.
천둥이 한 번 칠 때마다 제 옷깃을 쥔 손이 움찔거리는 것이 느껴져 남준이가 윤기의 가슴팍을 토닥여주는 것이 계속 이어지다가
윤기가 움찔거리던 것을 멈추고 잠에 들고 나서야
느릿하게 윤기의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어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제야 작은 몸짓으로 마른 세수를 하고, 자신의 가슴팍을 꾹 쥔 채로 잠이 든 윤기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어두워서,
눈을 가려서,
덕분에 윤기가 제 얼굴을 못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아마도 잔뜩 붉어져서,
온 얼굴에 떨린다고 써져있었을 얼굴을.
잘 자요, 토끼야.
떨리는 손 끝을 그러쥐면서 남준이가 작게 중얼거렸으면 좋겠다.
오늘 잠은 다 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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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
귀여운 그림과 글씨 모두 감사합니다. 하트. |
[암호닉] 확인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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