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그래프꼭짓점 연재시간이 8시 ~ 10시에서 8시 ~ 12시로 바뀐 건 다들 알고 계시죠?ㅎㅎ
인생그래프꼭짓점 14화 |
주먹을 불끈 쥐어보인 성규가 미련없이 카운터로 가 자신이 먹은 비스코티를 계산하고 라프레즈 문을 열고 씩씩하게 걸어나왔다. 그 모습에 우현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디가세요?"
커피값을 계산한 우현, 서둘러 성규를 뒤쫓아 따라간다.
"김성규씨!"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우현의 목소리에 휙 뒤돌아본 성규. 퉁명스런 말투로,
"그 청순녀랑 잘 해보시지 왜 나오셨어요?"
버럭! 소리친 성규가 성큼성큼 걷다가 다시 뒤돌아 우현을 보며 말했다.
"팀장님이 사는 거죠?"
한편 동우와 만나기로 한 호원이 거울을 보며 한껏 멋을 내고 있다. 체크무늬 하얀 셔츠에 아이보리색 가디건, 그리고 왁스를 바르지않고 차분히 내린 머리. 훈훈한 대딩같은 모습에 거을을 보며 한번 씨익 웃어준 호원이 차키를 들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차에 올라타 서랍에서 방향제를 꺼내 차안에 몇 번 칙칙 뿌려 잡냄새를 없애고 쓰레기통도 깔끔히 비운 상태에서 한번 더 체크를 마친 후에야 차를 출발시킨다. 자일리톨을 씹어 입안에 향긋한 민트향이 퍼지게 하는 건 필수.
"으으…떨려."
동우의 고깃집이 가까워지자 가슴이 쿵쾅쿵쾅대고 콧구멍이 벌렁벌렁거린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호원의 차를 발견한 동우가 환히 웃으며 달려가 조수석에 폴짝 올라탔다.
"와! 조수석에 타는 건 되게 오랜만인 것같네…. 호원씨 좋은 아침!"
후진할때는 조수석 뒷부분을 잡고 목선을 강조하며! 지식인에 나온 그대로 멋지게 후진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동우는 별 관심이 없어보였다. 호원, 씁쓸하게 웃었다. 영화관에 도착해 차를 주차시키고 차에서 내리며 호원이 동우에게 물었다.
"동우씨는 무서운 영화 잘 봐요?"
영화관 로비로 향하는 복도에 현재 상영중인 영화 포스터들이 붙어있었다. 하나하나 훑으며 지나가던 호원이 한 포스터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
쌍화탕. 조인선과 주진몽, 그리고 송지요가 나오는 동성애 영화였다.
"동우씨. 이 영화 알아요?"
잠시 고민하던 호원. 최대한 담담한 말투로 묻는다.
"동우씨는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동우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괜히 물어봤나하는 마음도 든다. 저 입에서 '혐오해요'라는 말이 나온다면 또는 '끔찍해요'라는 말이 나온다면,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한데 너무 위험한 걸 물어본 듯 싶다.
"난 괜찮다고 생각해요. 죄도 아니고 사람이 사람 좋아한다는데 동성애 반대하는 사람들 보면 어휴…."
내심 바랬던 대답이 동우 입에서 나오자 호원은 자신도 모르게 동우의 손을 덥석 잡을 뻔 했다.
"아, 팝콘이랑 콜라는 내가 살게요."
지갑을 들고 팝콘과 콜라를 사려는 동우의 손을 호원이 슥 밀어넣는다. 동우가 계산한다면 왠지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 마치 여자친구에게 얻어먹는 남자친구처럼 말이다.
인생그래프꼭짓점
14.
우현이 먼저 앞서 걷는 성규의 등에 대고 불만을 토로했다.
"거의 다 왔어요. 좀만 더 가면 돼요."
궁시렁거리는 우현을 무시하며 성규는 계속 걷고 또 걸었다. 정말 맛있는 곳을 안다며 무작정 우현을 끌고 와서는 어딜 가는지, 어떤 음식인지 말해주진 않고 이 넓은 시장통을 횡단할 기세로 걷고만 있다.
"여기에 진짜 맛있는 게 있어요?"
비릿한 생선냄새, 여러 음식 냄새, 그리고 약간 꼬리꼬리한 냄새까지. 앞서걷던 성규가 슬쩍 뒤에 따라오는 우현의 인상을 살폈다. 와…. 칼만 안 들었지, 완전 날강도 인상이네.
"인상 좀 펴지그래요? 시장 털러왔어요?"
'20년 전통 떡볶이 전골'이라는 간판을 발견한 성규는 싱글벙글 웃으며 분식집 안으로 들어갔지만 불이 깜박거리는 간판과 오래된 출입문을 훑은 우현은 깨림칙하다는 눈으로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라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았다.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엉덩이를 붙힌 성규가 얼른 앉으라는 식으로 손짓을 한다. 냅킨을 뽑아 우현의 앞과 자신의 앞에 놓고 그 위에 포크와 수저를 나란히 놓는다. 그리곤 종업원에게 '떡볶이 전골 2인분이요'하고 큰 소리로 주문을 한다.
"맛있다는 곳이 겨우 이런 분식집이었어요?"
오래 쓴 듯한 숟가락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뻔뻔하게 말하는 우현의 모습에 성규가 가볍게 눈을 흘겼다.
"좋아요. 기부하는 셈치고 내가 계산할테니까 가서 물 좀 떠와요."
마지못해 일어난 우현이 터덜터덜 걸어가 살균기에서 컵 두 개를 꺼내 물을 따라온다. 잠시 후, 커다란 전골냄비에 떡들과 여러 햄들과 라면사리, 삶은 계란이 보글보글거리며 담겨나온다.
"맛있겠다. 다 끓여서 나온 거니깐 건져 먹어도 되요."
포크를 쥐고 성규의 먹는 모습만 보던 우현이 떡을 하나 집어먹는다.
"맛있죠."
우현의 접시에 라면사리와 삶은 계란, 그리고 여러 햄들을 팍팍 얹어준다. 가오를 지키며 띄엄띄엄먹던 우현, 시간이 지나자 먼저 국자로 햄들을 건져먹는다.
"아, 햄만 건져먹지마요! 귀하게 자란 티내나."
또 티격태격이다.
*
콜라와 팝콘을 들고 상영관에 들어선 호원과 동우, 열심히 눈을 굴려 자리를 찾는다.
"커플들 진짜 많다…."
자리에 앉은 동우가 순진무구한 얼굴로 콜라에 꽂힌 빨대를 잘근잘끈 씹으며 묻는다.
"…아니에요, 아무것도."
이런 구라쟁이.샤워하고 난 후 거울을 볼때마다 어디서 이렇게 이기적인 인물이 태어났을까하며 혼자 심취하던 호원이 할 말은 아니었다.
"동우씨도 진짜 잘 생기셨어요."
진짜 웃는게 예뻐요.
"에이, 뭘요."
천사인 줄 알았다니깐요.
"우히히. 그런가."
호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우가 답답했다는 듯이 덥석 말을 놓는다.
"그리고 호원아. 너도 그냥 말 놓고 편하게 형이라 불러. 동우씨 동우씨하니까 나도 불편한 거 있지."
'동우형'이라는 말이 참 간질간질거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시작한다!"
상영관 안의 불이 꺼지고 동우가 호들갑을 떨며 얼른 핸드폰을 매너모드로 바꿔놓는다. 몇 편의 광고가 지나고 곧 음산한 음악과 함께 영화가 시작됐다.
"우엑."
청소년 관람 불가에 맞게 꽤 잔인한 장면들이 나온다. 보라색의 좀비들이 여자를 잡아 살점을 뜯어먹는 장면이나 전기톱으로 좀비의 머리통을 베어버리는 장면이 나올때마다 동우는 깜짝깜짝 놀라며 '우힉!'하고 숨을 들이켰다. 금발의 여주인공이 권총을 들고 식량을 구하러 혼자 어두운 백화점 안으로 들어간다. 불이 꺼진 백화점엔 창가로 들어오는 햇빛이 전부였다. 멈춰버린 에스컬레이터를 걸어내려가 지하에 위치한 식료품 층에 도착한 여주인공이 허겁지겁 가방에 여러 식료품들을 담는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여주인공이 일어섰을때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좀비가 '꾸웨에엑!'하는 소리를 내며 여주인공을 덮쳤다. 그러자 동시다발적으로 상영관 안의 여자들이 '꺄악!'하고 옆에 앉은 남자친구의 팔뚝에 얼굴을 묻는다.
"우아아악!"
동우 역시 호원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이런 장면이 연출되길 바라긴했지만 막상 동우의 몸이 자신에게 반쯤은 달라붙자 손에서 땀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조,좀비 갔어?"
그제서야 고개를 살며시 든다.
"많이 무서우면 말해요. 중간에 나가게."
안 무섭긴 무슨. 그렇게 한참 영화를 보는데 어디선가 후루룩 짭짭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
동우는 보지 못했지만 호원은 봤다. 구석에 있는 커플석에 앉은 두 남녀가 찐하게 엉겨붙어 키스하는 모습을.
"…저것들 완전 제대로 하네."
그 후로도 몇 번씩이나 좀비들이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그럴때마다 동우는 기겁을 하며 호원에게 달라붙었고 호원의 광대는 점점 치솟았다.
*
"왜 따라와요."
채소가게 아줌마가 지나가는 성규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성규, 인상을 팍 찌푸리며 우현을 쳐다본다. 생글생글 웃음을 띄운 우현이 채소가게 아줌마한테 꾸벅 인사를 하고 있다. 참나. 같잖다.
중얼거리며 다시 앞서 걷는 성규를 우현이 얼른 뒤따라붙었다. 시장을 빠져나와 성규가 향한 곳은 분수대가 있는 큰 규모의 공원이었다.
"날씨 더럽게 좋네."
나들이 나온 커플들에겐 축복에 가까운 날씨지만 외로운 솔로 성규에겐 염장을 지르는 날씨다. 밥을 먹고 바로 나왔더니 입이 텁텁한 성규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으로 향했다.
"아저씨. 하나에 얼마에요?"
우현, 별 말없이 지갑에서 만원짜리 한 장을 꺼내 계산을 하고 아이스크림 두 개를 받아 성규에게 하나를 건넨다. 자주 먹어본 성규와 달리 이렇게 기다란 아이스크림은 처음 먹어보는 우현, 입가에 하얗게 아이스크림이 묻었다.
"애에요? 다 묻히고 먹게?"
마치 동생을 대하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입가를 닦아준다. 입가에 닿는 손길에 우현이 살짝 놀라며 고개를 뒤로 빼자 성규의 인상이 확 찌푸려진다.
"표정봐. 왜요? 코딱지 판 손으로 만졌을까봐요? 걱정마요. 깨끗하니까."
엄지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콘에 감겨있던 냅킨에 닦았다. 화창한 날씨에 남자 둘이서 아이스크림에 공원 산책이라니. 남들이 보면 충분히 오해할 상황이었지만 성규와 우현 둘 다 그리 신경쓰지않는 눈치였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분수대가 있는 공원 중앙으로 향하자 분수대 안에 있는 금색 항아리에 여러 커플이 동전을 던져놓고 있었다. 참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우현과 달리, 성규는 이미 가방을 뒤적거려 동전을 찾고 있다.
"설마 저 항아리에 동전 넣게요?"
가방을 탈탈 털어봐도 동전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던져보고 싶은데…."
성규, 눈썹이 축 처져서는 아쉬운 듯이 계속 커플들이 던지는 동전만 쳐다본다.
"정 아쉬우면 발 걷고 들어가서 남들이 던진 동전 주워오던가요."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은 맡긴 우현이 두리번거리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저 인간이 또 왜 저래."
분수대 앞 벤치에 앉은 지 한참이 지나고 난 뒤에야 우현이 나타났다.
"뭐하다 이제 와요! 아이스크림 다 녹아서 손만 버렸,"
우현이 동전이 가득 담겨있는 묵직한 봉지를 성규에게 내밀었다. 성규의 깜짝 놀라며 묵직한 봉지를 받아들었다.
"이게 다 뭐에요?"
아이스크림 콘을 쓰레기통에 넣은 성규가 봉지를 안아들고 분수대를 향해섰다. 봉지안에서 첫번째 동전을 꺼낸 성규, 황금항아리 안으로 동전을 던져넣는다. 그리고는 두 눈을 꼭 감고 깍지를 낀채 소원을 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멀뚱히 있던 우현이 그 모습에 살짝 웃는다. 가끔, 정말 가끔보면 나이에 맞지않게 참 귀여운 구석이 있는 것 같다.
*
"형."
동우의 눈가가 촉촉했다. 운 것 같았다.
"많이 놀랬나봐요?"
부들부들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난 동우가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호원과 함께 상영관에서 나왔다.
"배고프다…."
눈가가 촉촉한 채로 싱글벙글 웃는 모습에 호원이 잠시 말문이 막혔다. 진짜 말문이 막히게 뷰티풀하다.
"그럼 저기 베니존스로 가요."
단호한 호원이 말투에 동우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자신이 형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호원이 좀 더 듬직하고 의젓한 것같다.
"그럼 지금 가게는 누가 봐요?"
이제 자주오면 되죠, 저랑. 자기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온 말에 호원이 움찔하며 얼른 동우의 눈치를 살폈다.
"우하하. 그럼 되겠네."
몰래 안도의 숨을 내쉰 호원이 메뉴판을 펼치고 이것저것 가득 주문을 하자 동우의 두 눈이 왕방울만해진다.
"그렇게 많이 시켜?"
형은 돼지가 되도 예쁠거에요. 뒷 말은 숨긴 호원이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동우의 모습을 찬찬히 훑었다. 은은한 금색의 머리카락, 하얗고 뽀얀 피부, 웃을때 휘는 눈, 예쁜 코, 빨간 입술, 그리고 보듬어주고싶은 조금은 작은 키까지. 온몸이 러블리하다.
"……예쁘다."
망할 주댕이가 자꾸 불쑥불쑥 말을 뱉었다.곧 주문한 음식들이 줄줄히 서빙되어 나왔다.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신이 난 동우의 모습에 먹지않아도 배부르단 표현이 조금은 이해갈 것 같았다.
"와, 맛있겠다."
동우가 어설프게 스테이크를 썰자 '제가 해줄게요'하고 접시를 휙 가져간 호원이 능숙하게 슥삭슥삭 스테이크를 썰었다.
"호원이 넌 되게 자상한 것 같아."
아마 형한테만 자상할 것 같아요.
"제가 뭘요."
여자친구보단 형이 더 좋거든요.
"그냥 귀찮아서요."
표정은 안타깝다는 표정이었지만 속으론 나이스!하고 쾌재를 불렀다.
"이상형이 뭐야?"
바로 당신이잖아, 이 사람아. 동우가 빵빵한 양볼을 우물거리며 곰곰히 생각하는 모습이 너무 앙증맞아 호원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동우의 금색 머리칼을 살짝 쓰다듬어내렸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손에 닿고 나서야 자신이 한 짓을 알아챈 호원이 어색하게 먼지를 터는 시늉을 한다.
"머,먼지가 묻어있네."
아직 용기는 없지만 정직과 동우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선 지지않을 자신이 있었다.
성규가 툴툴거리며 손에 남은 두 동전을 꼭 쥐었다. 하도 빌어댔더니 소원도 바닥났다. 세계평화가 이뤄지게 해주세요, 전쟁이 없어지게 해주세요, 발톱에 때가 안 끼게 해주세요, 길을 걷다 새똥에 안 맞게 해주세요. 아주 별의 별 소원은 다 빈 것 같다.
"아, 참. 제일 중요한 걸 안했네. 쌍커풀 수술 올해안에 꼭 하게 해주세요."
뭐가 어째요? 우현딴에는 나름 진심을 말한건데 성규에겐 비꼬는 말로 들렸나보다.
"좋은 뜻으로 말한거에요. 그리고 그렇게 안 작아요."
이 작은 눈에 매력이라니? 또 자신을 놀리나싶었지만 덤덤한 우현의 표정을 보아 정말 진심인 것 같았다.
"큼…. 마지막 동전은 그 쪽이 던져요. 이제 소원 말할 것도 없으니까."
성규가 꼭 쥐고 있어서그런지 동전이 뜨끈뜨끈하다.
"……"
우현, 동전을 들고 꽤 진지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을 한다. 한참을 생각하던 우현이 동전을 항아리 안으로 던졌다. 팅! 소리를 내며 항아리 모서리를 맞은 동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세상에나. 얼마나 삐딱한 소원을 빌었길래 저렇게 동전이 튕겨져 나와요?"
둘이 공원 입구를 나란히 걸어나간다. 우현이 뭐라뭐라하자 성규가 인상을 팍 구기고 바락바락 소리를 친다. 그렇게 독설을 주거니받거니하다보니 금세 차가 세워진 곳에 도착했다.
"우와."
앞 유리창에 유흥업소 전단지가 끼워져있다. 반은 벗어던진 예쁜 누나가 수박통만한 가슴과 볼링공만한 엉덩이를 들이밀고 있는 전단지를 잡아뺀 성규가 우현에게 그 전단지를 휘휘 흔들어보인다.
"누가 팀장님 주고 갔나봐요."
전단지를 휙 버린 성규가 얼른 조수석에 올라탔다.
*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동우에게 살짝 손을 들어 인사를 한 호원이 차를 출발시켰다. 동우에겐 그저 아는 동생과 영화 한 번 같이 본 하루였겠지만 호원에게 오늘 하루는 꽤 큰 의의가 있었다. 자기 마음에 대한 확신이 섰다. 동우가 좋다. 웃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아른거리고 같이 있으면 설렌다. 그리고 자꾸 보듬어주고 싶다, 아까처럼.
"미치겠다."
좀 많이 좋은 것 같다. 어쩌면 보라색을 포기할수도 있을만큼!
*
역시나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봉신 씨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꾸역꾸역 듣고만 있던 성규, 샤워하고 난 후에도 쏟아지는 잔소리에 결국 한마디한다.
"어후, 엄마! 엄마 말대로 나도 이제 서른이야. 내가 알아서 할게, 내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잔소리를 차단한 성규가 침대에 벌렁 누웠다. 옆 침대에 먼저 누워있던 명수가 하품을 하며 읽던 만화책을 한쪽에 밀어두고 낮잠을 자기위해 제대로 몸을 뉘인다.
"맞선은 어땠어?"
김성규씨 눈, 작은대로 매력있어요.
"있어. 정신나간 놈 한 명."
그냥 맘에 없는 말일 수도 있었겠지만 성규에게 그 말은 자신의 눈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되는 계기가 됐다. 주위에서 하도 작다고 놀려서 그렇지, 막상 보면 그렇게 작은 눈도 아니다! 그렇다고 명수놈처럼 커다란 눈은 아니였지만. 그리고 작아도 꽤 작은 대로 괜찮지…않나?
"야. 명수야."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었다. 왜 그 인간은 그런 말을 해서 헷갈리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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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자던 성열의 눈이 조금씩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평소 쓰지않던 인상까지 쓰더니 괴로운 듯이 몸을 뒤척거리며 끙끙 앓는 소리는 낸다. 어느새 얼굴과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무도 깨워주는 사람이 없어 계속 괴로워하며 악몽에 시달리던 성열의 입가로 서서히 울음소리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흐으윽…끄윽…."
바로 옆방에서 잠을 자던 우현, 잠결에 들리는 미세한 울음소리에 잠시 몸을 뒤척였다가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급히 성열의 방으로 향한다.
"성열아!"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주며 뺨을 살짝 토닥거리자 성열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뜬다. 눈 앞에 우현을 확인한 성열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우현, 애처럼 엉엉 우는 성열을 끌어안아 다독거려준다. 이사오고 나서 많이 나아졌다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니였다.
"괜찮아 괜찮아. 형이야."
원래 성열이 악몽에 시달리며 울때마다 가장 먼저 듣고 달려오는건 순재였다.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주는 것도 순재였고. 하지만 오늘은 어째 많이 피곤한 모양인지 성열이 엉엉 우는데도 올 생각을 않는다. 한참이나 우현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히끅거리던 성열이 조금 진정이 되자 성열의 머리칼을 한번 더 정리해준 우현이 성열을 다시 침대에 눕혔다.
"형 계속 있을꺼니까 걱정말고 푹 자."
고개를 끄덕거린 성열이 우현의 손을 꼭 잡고 다시 눈을 감았다.
"…여보세요."
전화가 뚝 끊기고 침대맡에 핸드폰을 내려놓은 순재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아, 피곤해…."
손목에 걸려있던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으며 거실로 걸어나왔다. 평소와 다르게 성열의 방문이 열려있다. 졸린 두 눈을 두드리며 성열의 방으로 향한 순재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자고있는 우현과 성열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얘가 왜…. 우현아, 우현아."
성열의 손을 살며시 내려놓은 우현이 눈곱을 떼며 몸을 일으켰다.
"너 왜 여기서 자고 있어?"
흐트러진 이불을 다시 꼭꼭 덮어준 순재가 커튼을 쳐 햇빛을 가렸다. 곤히 잠든 성열의 뺨에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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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 예고.
성규의 생일과 진솔한 얘기들,
그리고 현성의 썸.씽.
댓글 알라뷰알라뷰 합니다.
암호닉은 계속 받아요!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