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백] 말이 없는 당신에게
W. 니디티
"엄마, 저 형들 뭐하는거야?"
"수화라고, 말 못하는 사람들이 손으로 이야기하는거야."
"그럼 저 형아들 말 못해?"
「찬열아. 쟤가 우리 얘기한다.」
「알아.」
「자꾸 쳐다봐. 짜증나게.」
「변백현 가만히 좀 있어. 신경쓰지 말고.」
「자꾸 우리 보면서 얘기하는데 어떻게 신경을 안써?」
아이는 엄마가 한 눈을 판 사이 수화를 하는 찬열과 백현의 곁으로 다가왔다. 한동안 아이는 호기심어린 눈을 하고 둘의 행동을 보고 있었다.
"형."
"........"
"형아."
"........"
"형아들 진짜 말 모태요?"
신경질난 백현의 표정을 본 찬열이 재빨리 백현을 등지고 아이를 보고 섰다.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찬열이 아이의 손바닥에 차근차근 손가락으로 글씨를 써내려갔다.
"나...."
".........."
"느.....는?"
"..........."
"말....으....을...."
"............"
"못....해? 나는 말을 못해?"
찬열이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등뒤에서 자꾸 자신을 치는 백현이 느껴졌지만 찬열은 아이를 보고 웃어줄 뿐이었다. 백현의 힘실린 손에 그제서야 뒤를 돌아본 찬열의 눈에 잔뜩 화난 백현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서야 찬열이 백현을 안아주려했으나 백현이 몸을 비틀어 빠져나왔다.
「지금 병신인거 자랑하냐?」
「말 좋게 하랬다.」
「장난쳐? 버스 지나갔어. 이거 놓치면 30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되는데 뭐? 말을 좋게 해?」
「니가 애냐? 얘가 뭘 안다고 그래.」
「니가 나한테 등지고 있어서 버스 지나갔다고 말도 못했잖아. 내가 쟤같은 애들 싫어하는거 알면서도 그래? 남들 앞에서 장애인 티내기 싫어하는거 너도 알잖아.」
찬열의 뒤에 서있던 아이는 둘의 험악한 분위기에 잔뜩 놀란 눈치였다. 격앙된 백현의 표정과 손짓,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레 겁을 먹고 저만치 뛰어가버렸다.
「택시 타고 가자. 응? 백현아. 」
「지금 그게 문제야? 동네방네 소문내지 왜, 우리 병신이에요! 씨발! 말도 못하는 병신새끼라고!」
「알았으니까 그만하자. 애 갔잖아. 우리도 택시타고 빨리 집가자. 너 춥다며. 나도 추워.」
"저기요."
둘의 소리없는 전쟁의 흐름을 깬건 방금 울면서 뛰어간 아이의 엄마로 추정되는 여자였다.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우는 아이를 달래주려 찬열이 손을 뻗었으나 여자는 매섭게 그 손을 내리쳤다. 그 모습에 눈이 돌아간 백현이 빠르게 그 손을 잡아 손목을 비틀었다. 여자가 소리를 지르자 아이는 더 빽빽 울기 시작하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놀란 찬열이 재빨리 백현을 자신의 등 뒤로 놓고 여자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보였다.
"애 울려놓고 그렇게 당당해요? 요즘 장애인들은 사람도 치나봐? 봤죠, 제 팔 비튼거? 사진 찍으신분 없어요? 참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착한분들이 니들같은 새끼들 때문에 욕먹는거야."
".........."
"청년들, 거 젊어보이는데 그렇게 살지 마세요. 장애인이면 애 울리고 사람 쳐도 용서되는 줄 아나봐? 웃겨 진짜."
".........."
"병신이 집에나 있을 것이지."
여자의 마지막 말에 화가 머리 끝까지 솟은 백현이 버둥거렸지만 찬열은 여자가 갈 때까지 백현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몇번이고 여자에게 고개를 숙인 찬열이 여자와 아이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흩어지자 그제서야 뒤를 돌아 백현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백현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편 들어주면 어디가 덧나?」
「너가 잘못했잖아.」
「나만 잘못했어?」
「저 분도 잘못했지만 우리도 잘못했어.」
「너 진짜 밉다.」
「내가 왜.」
「몰라서 물어? 애들도 싫지만 남들 앞에서 병신티 내기도 싫어. 근데 너 방금 그거 둘다 어겼어. 내가 화 안나고 배겨? 」
「미안하다. 내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빨리 가자. 이대로 있다가 우리 둘 다 감기 걸리면 큰일나.」
집으로 오는 내내 둘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한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몰랐다. 서로를 보며 수화를 하기 전까지는, 무언가에 의지해서 의사를 전달하기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찬열은 선천적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백현은 후천적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말을 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통해 사귀기 시작한 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틀어지기도 하는 것이 둘이었다. 태어날때부터 말을 못한 찬열과 달리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백현은 유난히 남들 앞에서 티내기를 싫어했다. 아마도 그것은, 가지고 있던 것에 대한 박탈감, 상실감, 또는 그밖의 어떠한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어떠한 감정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따라 집 안이 서늘했다. 벽 한쪽에는 시커먼 곰팡이들이 번져있었다. 방금 전의 다툼 때문일까. 찬열은 좁은 집이 제 자신과 백현 이 둘을 숨이 막히도록 짓누르는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그랬어. 왜 감싸주지 않았어. 하며 자신을 혼내는것만 같았다. 백현은 침대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든 지 오래였다. 찬열이 조심스럽게 백현이 잠든 침대 위로 앉았다. 조심스럽게 백현의 결좋은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찬열은 아직도 백현을 보면 마음이 설렜다. 그 마음이 너무 컸다. 너무 예뻐서, 백현이 너무 예쁘고 소중한 나머지 그만 오냐오냐하면서 버릇을 잘못 들여버린것이 문제였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참 이중적이다. 장애인을 배려해준다며 소리 높여 이야기하다가도 막상 현실로 닥쳐오면 금새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는것이, 어쩌면 이 사회 안에 존재하는 제2의 인종 차별일지도 모른다고. 찬열은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도 그랬다.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장애인이라는 점은 꽤 큰 약점으로 작용하곤 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황. 대개 그런 상황에서는 자신과 같은 사회적 약자가 불리한 입장에 놓이기 마련이었다. 백현처럼 무작정 행동이 앞선다면 그 이후로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찬열은 항상 자신이 먼저 숙이고 들어가는 편이었다. 그게 차라리 더 마음이 편했다. 조용히, 별 탈 없이,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야만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헛웃음이 나올 만큼 이기적이었으니까.
「니가 나한테 등지고 있어서 버스 지나갔다고 말도 못했잖아. 내가 쟤같은 애들 싫어하는거 알면서도 그래? 남들 앞에서 장애인 티내기 싫어하는거 너도 알잖아.」
백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백현은 아이들을 싫어했다. 자신이 말한 대로 아이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니까. 순수한 얼굴을 하고 마음에 비수를 꽂고는 했다. 그게 자의적인 행동이건 아니건 결론적으로는 상처가 될 뿐이었기 때문이다. 찬열을 향해 밉다고 하던 백현도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울어버릴듯한 그 표정이 잊혀지질 않아 찬열은 백현의 옆에 누웠다. 자신을 등지고 잠든 백현의 등이 숨쉴 때마다 오르락 내리락거렸다. 텅 비어버린 듯한 등이 보기 싫어 이불을 좀 더 끌어당겨 백현에게 덮어주고 뒤에서 가만히 안아주었다. 백현의 마음을 모르는것이 아니었다. 이해하지 못하는게 아니었다.
「난 가수가 되고 싶었어.」
어느날 백현은 찬열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가수가 되고 싶었노라고, 커다란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감동을 전해주는 그런 가수가 되고 싶었다며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하지만 백현은 그럴 수가 없었다. 백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식할 필요가 있었다. 잔인한 현실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은 결국 독이 되어 자신을 갉아먹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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