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민/ 민윤기/ 김태형/ 성이름
끄트머리 上
1
바닥을 굴렀다. 먼지로 덮인 교복 와이셔츠를 집어 겨우 구멍에 맞춰 팔을 집어넣고는 단추를 잠갔다. 맨 윗 단추까지 꼼꼼이 채웠다. 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 엉덩이를 걷어차는 발에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교실 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았다. 작은 신음을 내며 눈을 껌뻑였다. 그 애는 오늘 기분이 많이 안 좋나 봐. 오늘따라 눈에 나 같은 게 더 거슬리는 모양이야. 다시 몸을 일으켰고, 의자에 앉아 입꼬리를 올린 채 조용히 방관하고 있던 남자가 다가와 무릎으로 등을 때리자 가진 것 없는 몸은 힘 없이 쓰러졌다. 그제야 알아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몸이 쓰러지는 순간에야 나는 발견했다. 그 애는 오늘 기분이 아주 좋아. 하늘을 찌를 듯이. 그 애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말해 주고 있었다. 이름아, 나와 함께 놀자. 나의 즐거움을 함께 나누자.
더 이상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가만히 내려다보던 남자가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이 년, 죽었나. 진짜로 뒤져 봐야 정국이 돈지랄이면 못 할 게 없어. 킬킬대며 농담을 나누던 무리가 교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시끄러운 소동에도 교실은 조용했다. 나 역시 발악할 줄을 몰랐다. 반 아이들에게 썩어 문드러진 속을 알릴 용기 같은 건 없었다. 물론 그에 대한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죽은 듯 쓰러져 숨을 고르고 있는 내 몸 위로 꽂힌 시선은 아마 박지민의 것이었다. 노트에 대고 열심히 글씨를 휘갈겨 쓰던 펜을 책상에 내려놓고는 조용히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 박지민이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내 앞에 섰다. 와이셔츠를 벗어 내 어깨 위로 덮고는 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이끌었다.
박지민이 유별나게 좋아하는 장소는 먼지 쌓인 빈 방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선도부실로 쓰이던 작은 공간이었다. 어깨 위의 와이셔츠를 치워낸 그의 손이 내 와이셔츠 위로 올려졌다. 맨 위의 것부터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내렸다. 목덜미에 찬 기운이 스쳤다. 본능적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아주 어릴 적부터 만들어진 행동은 쉽게 고치기 힘들더랬다. 어쩌면 그는 의도적으로 나를 길들이려 했는지도 몰랐다. 여하튼 그의 손은 가슴께의 세 번째 단추까지 다다랐다. 조소 한 번, 그리고선 단숨에 단추를 풀어 와이셔츠를 벗겼다. 흰 반팔티 한 장 걸친 몸이 되었다. 이윽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와이셔츠를 집어들어 내게 입힌다. 맨 윗 단추를 남겨두고 잠갔다.
“옷, 더러워졌네.”
“…….”
“네가 더 더러워졌으면 좋겠어.”
있지, 널 깨끗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박지민은 미소를 올렸고, 나는 입 안쪽 살을 깨물었다.
2
멍청해 보이는 전학생이 하나 있다. 생김새는 멀쩡한 축에 속하는데, 눈빛에 초점이 조금 나가 있다. 아니야, 틀렸다. 떠올려 보니 오히려 박지민을 포함한 다른 아이들의 것보다 오히려 또렷한 눈이다. 그저 하는 행동들이 조금 못미더울 뿐이다.
전학생은 전학을 온 지 삼 주 정도 지나 아직까지도 ‘삼 반 전학생’ 타이틀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게 김태형의 다른 이름이다. 김태형이라는 진짜 이름보다도 더 많이 불리는 이름이다. 사실 학교에 전학을 오는 놈들은 대개 강제전학을 온 놈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전학생 치고는 굉장히 조용히 지내는 김태형이 다른 아이들의 눈에 크게 띄지 않아 이름을 각인시키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는 평범한 삼 반 전학생이다.
전학생이 멍청해 보이는 놈인 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사실이다. 그러나 김태형은 원래의 성격 탓인지, 아니면 눈치가 지독하게 없는 건지 내게 끝없는 관심을 보였다. 이름이 뭐야? 성이름. 고향은? 서울. 집은 어디야? 요 앞, 육교 건너서. 친한 친구는? 그 대목에서는 잠시 대답을 멈췄다. 박지민의 눈치를 잠깐 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간단한 질문들은 그 규모를 점점 키워나갔다. 아마 멍청한 김태형은 나를 편한 사람으로 인식한 모양이다.
“너, 왜 맞는 거야.”
그의 질문에 따라 나 역시 대답을 떠올려 봤다. 그리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나를 끈질기게 쫓아오는 그의 눈길에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냥. 그 말에 김태형이 잠시 숨을 멈췄다. 그냥이 어딨어, 그냥이.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의 모습 역시 완전히 믿지 못했다. 처음의 민윤기 역시 그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김태형에게도 말을 아꼈다. 내가 미간을 좁히자 김태형은 자리를 떴다. 그러나 김태형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전정국과 어깨를 부딪혔다. 김태형은 태생이 사람 좋은 놈인지라 사과 인사와 함께 그대로 그를 지나쳐 가려 했던 모양이다. 전정국이 김태형을 차갑게 흘겨보며 말했다. ‘돈 굉장히 많나 봐, 너.’
3
민윤기 같은 새끼가 학교에서 버젓이 돌아다니면서 선생질을 처 하니까 학교가 그 모양 그 꼴인 거 아니야. 열을 내며 흥분해 힘차게 제 할 말을 쏟아내는 남자의 목소리에 남준이 얼굴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귀에서 조금 떼 한숨을 돌렸다. 남준이 애써 부드럽게 남자를 달랬다. 알겠어, 자기야. 민윤기 죽일 놈 맞아. 씹어 죽여도 싼 놈이다, 그치? 근데 나 바빠. 내가 다시 연락할게. 서운해하지 마, 알겠지? 그대로 김남준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일종의 회피였다.
대학 시절 자신을 크게 아껴 주던 선배의 부탁을 받아 잠시 담임을 맡으러 오게 된 학교의 상태는 그야말로 쓰레기였다. 반마다 두어 명씩은 모든 주먹질과 발길질을 받아내는 역할이 정해져 있었고, 절반 이상은 그저 눈치를 보며 제 할 일을 한다. 남은 절반 이하 중 또 절반은 피라미드의 우두머리 역할이다. 개중에는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놈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전정국. 이름이야 학교에 오기 전부터 익히 들어왔다. 그러나 소문으로는 그 큰 기업의 차남으로 알려져 있던 전정국은 둘째 아들로 둔갑시킨 사생아란다. 진위 여부야 딱히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돈이 지랄맞게도 많다는 거다. 수업 중에 선생 뺨싸대기를 때려도 말 한 마디 없이 덮을 수 있을 만큼. 물론 전정국 자신이 그런 대담할 짓을 할 만큼 못돼먹은 새끼는 아니었다. 그저 함께 어울리는 놈들의 잘못을 옆에서 덮어 줄 뿐이다.
학교 꼴이 아무리 더럽고 거지같아도 학교 외의 곳에서 학교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려 하지 않는 이유는 앞서 말한 학생들을 제외한 그 절반 이하 중에서도 반의 반 정도 되는 소수의 학생들이 학교의 명성을 떨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모의고사를 비롯해 각종 대회 등에서 항상 순위권을 휩쓰는 놈들이 학교에 존재해서였다. 남준이 명단이 적힌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남준의 손이 멈췄다. 박지민. 학교의 명성을 드높이는 인물 가운데 단연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있는 학생이었다. 이 놈 역시 심지어 돈도 지랄맞게 많다. 돈 많은데 크게 사고도 안 쳐, 친구 관계도 복잡하지 않고, 무엇보다 성적이 아주 우수하다. 크게 걱정할 것 없는 스펙이었지만 왠지 께름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4
먼지 위를 구른 와이셔츠를 챙겨 책가방 속에 쑤셔넣었다. 흰 반팔티 위로는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박지민의 와이셔츠는 벗어 그의 책상 위에 올려둔 지 오래였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으로 발을 들였다. 신발을 벗자마자 보이는 것은 소파 위에 앉아 한쪽 다리를 꼬고 손가락을 까딱이는 박지민이었다. 단정히 매고 있던 자주색 넥타이는 풀어져 있었다. 천천히 신발을 벗고 그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가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엎드려.
그는 내게 있어 아픈 가시 같은 사람이었다. 우리의 관계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부적절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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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인데 봐 주시는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시간 남는 게 좋아서 쓰러 왔습니다 '^' 글은 쇼윈도 부부 빼고 싹 다 지워 버리고 싶었는데 댓글까지 지워지는 게 싫어서 놔둘 수밖에 없었어요 ;^; |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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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