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같은 인연
(찌질한 인연과의 만남)
w. 비감
女
봄이었다. 꽃이 만연하게 피는. 괜히 들뜬 마음에 땅바닥을 딛는 발걸음이 붕실 떠올랐다.
실없는 마음에, 잘 입지도 않아 옷장 구석에 처박아 뒀던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하지도 않던 화장을 어색하게나마 해 본 결과는
이미 커져버린 내 마음에 비해 너무나도 참담했다.
내가 여태껏 아무리 너의 그 거지같은 변덕을 이해해왔다 쳐도, 담배연기 폴폴 풍기는 피시방 안에서 담담하게 이별을 고하는 건 조금 심했다.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 안에서라든지, 그게 안되면 적어도 너네 집이나 우리 집이라든지.
화창한 봄날에 너랑 헤어지게 될 나에 대한 배려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에 따라 살랑살랑 흔들리는 꽃잎들을 바라보며 울컥하는 마음에 구두를 신은 발을 바닥에 콱 하고 찍었다가
찌릿하게 올라오는 고통에 자리에서 발을 잡고 통통 튀었다.
그러니까 네가 떠나버린 마음 한켠이 휑하니 비어버렸는데도 나는, 네 앞에서 울음을 터뜨릴 수도, 너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는 거다.
컴퓨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우리 끝내자. 하얀 담배가 물린 입 새로 담담한 목소리를 꺼내놓던 너를 떠올렸다.
아무런 치장도 없이 담백한 검은 핸드폰, 키보드 위에서 정신없이 움직이는 기다란 손가락, 대충 차려입은 듯한 검은색 후드티.
지금까지 핸드폰 줄은커녕 반지나 커플티조차 맞추지 않았던 우리를, 이제 와 원망해봤자 변하는 건 없었다.
괜히 내 꼴이 더 불쌍하게 느껴져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 남자친구란 사람은 사랑을 갈구하는 여자친구보다 그딴 게임이 더 중요한 버러지 같은 새끼였으니까.
어디서 묻은 건지 하얀 구두 밑에 붙은 진득한 껌딱지를 바라보며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신발을 마구 비비다 두 주먹을 꽉 쥐고 열기로 가득 찬 눈을 번뜩 떴다.
그래, 지금껏 당하기만 했던 게 억울해서라도 그리 쉽게 당하진 않으리라. 적어도 이 껌딱지 같은 존재만은 되리라.
신발 같은 너한테 찰싹 달라붙어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떼어내려 하면 도리어 네게 생채기를 내버리는 그런 껌딱지 같은 존재가 되리라.
순간 우뚝 멈춰 선 채 신발 끝만을 바라보다, 껌을 떼어내려 노력하던 것을 멈추고 자연스레 걸음을 옮겼다.
또각또각 움직이는 구두 밑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껌딱지가 불편하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래, 김태형. 네가 나 버리고 얼마나 잘 사는지, 한 번 두고 보자 그래.
男
한동안 자지 못해 생긴 다크서클이 이미 턱까지 내려온 듯싶었다.
분명 내 몸은 침대 위에 누워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로로 가득 찬 몸이 축-하고 늘어졌다.
시발, 시발. 아무리 욕을 하고 담배를 피워봐도 이 상황이 엿 같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번 인연은 평소보다 더 끈질기고, 지금까지 만난 그 어떤 인연보다 더 거지 같았다.
매일 밤마다 내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눈물을 터뜨리는 그 자식 때문에, 가만히 누워있는 지금에서도 귓가에 징징 짜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자식이 나타난 후로는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학점이 떨어지는 게 눈앞에 훤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이 피곤한 몸뚱이 때문에 학교에 가기는커녕 몸을 일으킬 수조차 없었다.
'...융기야, 융기야. 언제까지 잘 거야?'
침대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내 어깨를 콕콕 찌르는 손길과, 귓가를 파고드는 얇으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곤 두 귀를 거세게 막았다.
시발, 또 나타났다. 또. 그전까지 만난 인연들은 분명 밤에만 나타날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이놈의 인연은 도대체 뭔 능력을 가졌길래 낮이건 밤이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융기야아- 자지 말고 내 얘기 좀 들어줘어. 응?'
기껏 막아버린 귀가 무색하게, 침대 위로 올라와 내 곁에 콕 붙어서는 배를 꾹꾹 찔러대는 통에 결국 신경질적으로 피곤한 몸을 일으켰다.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겨우 떠 앞을 바라보자, 어젠 또 얼마나 눈물을 터뜨려 내신 건지 퉁퉁 부은 눈으로 헤헤 웃어 보이는 박지민이 보였다.
"시발, 너 내가 잘 때 방해하지 말라고 했지."
잠에 취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무서운 표정을 해봐도, 어색한 표정으로 괜히 웃음을 터뜨려낸 그가 더욱더 몸을 부대껴왔다.
'하지마안- 네가 아니면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걸?'
이놈의 인연, 시발. 이놈의 개 같은 인연.
죽었으면 곱게 올라갈 것이지, 다음 생으로 넘어오긴 왜 넘어와서 사람을 이토록 귀찮게 만드는지.
나는 아무것도 모르오.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박지민의 두 눈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 자리에 풀썩하고 누워버렸다.
내 눈앞에 보이는, 아니. 내 눈에만 보이는 이 자식은 그러니까, 흔히 말하면 귀신. 조금 어렵게 말하자면 인연이었다.
전생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억울해 현생으로까지 넘어온 영혼.
자신의 사랑 주변은 맴돌며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도, 그 사람을 만질 수도 없다는 사실에 슬퍼하다 결국 그렇게 전생을 되풀이하며 살아가는 슬픈 인연.
한과 원한을 품고 현세에 오는 귀신들과 달리, 더욱더 애틋한 마음을 가진 이들을 나는 인연이라 칭하기로 했다.
저게 도대체 어떻게 내 눈에만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자기들을 볼 수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알고 매번 찾아와 신세한탄을 털어놓는 이놈의 인연들 덕분에
이미 내 인생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지 오래였다.
"김태형 그 거지 같은 자식이 또 우리 탄이 울렸단 말이야."
"..."
"밤마다 맨날 엉엉 울기만 하는데 어떡해? 그러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
"안 그래도 약한데 그딴 자식 때문에 또 강물에 퐁당 뛰어들기라도 하면 어떡해...응?"
"..."
"응? 윤기야아-"
"...아오, 시발 진짜!"
쫑알쫑알 한시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 작은 입을 요리조리 놀리는 박지민 때문에 결국 잔뜩 초췌해진 몸을 일으켰고,
이렇듯 매번 나를 괴롭게 만드는, 알지도 못하는 그 여자아이를 원망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다
도저히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뭐라도 해보잔 생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삐죽 솟아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넘기며 자켓을 집어 드는 나를 바라보던 지민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지고,
"걔가 안 울게만 하면 된다, 이거지?"
"걔만 달래고 오면 된다는 거잖아, 어?"
붉어진 눈시울으로 한참 동안이나 나를 바라보는 녀석에 겨우 참지 못하고 뱉은 말에,
울먹이던 얼굴이 한순간에 밝게 피어올랐다.
융기야아아- 진짜지?? 진짜 도와줄 거야?? 으어어어. 진짜 진짜 고마워어어어어.
끝을 한참이나 늘려 듣기 싫은 징징거리는 소리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빨리 처리하고 잠이나 늘어지게 자자는 결심에 가득 찬 마음으로 곧장 차 키를 집어 들고 현관을 나섰고,
집을 나서자마자 지랄맞게도 맑은 하늘을 보며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시발, 민윤기 별 짓을 다 한다 진짜.
*
대학교 안으로 거칠게 들어선 검은색 스포츠카가 모래 연기를 잔뜩 풍기며 대학 안으로 들어섰고,
화려한 등장에 한꺼번에 쏠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차에서 내리자,
안전 벨트를 꽉 쥐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지민이 따라 내림과 동시에 우웩 우웩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우웩- 융기야, 너 진짜 나 좋아하는구나아...나 얼른 도와주고 싶어서 이렇게 일찍 온거야아?'
착각도 유분수지. 감동받은 눈으로 또 퐁퐁 눈물을 터뜨려내는 지민을 바라보다, 질린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인연 주제에 무슨 멀미야, 멀미는.
한숨을 푹- 내쉬며 학교를 둘러보다, 그래서 무슨 과인데? 하고 묻자 땡그랗게 살이 오른 눈을 요리조리 돌리던 지민이
몰라. 하며 배시시 웃어버리고, 그런 그를 어이없단 눈으로 바라보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는데,
뭘 발견한 건지 땡글한 눈으로 한 곳을 바라보던 지민이 어버버거리며 손가락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저, 저기!'
삑사리가 날 정도로 급하게 외친 그의 목소리에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지민과 마찬가지로 눈이 퉁퉁 부은 채 터덜터덜 학교 밖으로 나서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차고,
저건 또 눈이 왜 저래. 하는 마음으로 붉게 오른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 하- 하고 헛웃음을 쳐내면
바닥에 발을 동동 구르던 지민이 쟤야 쟤! 하며 다급한 목소리를 꺼내놓는다.
"히으, 어제 또 울더니 결국 눈 부은 거 봐. 안쓰러워서 어떡해, 응?
탄이 눈 부으면 오래 가는데에..."
"어젯밤 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갑자기 쓰러지는 건 아니겠지?
영양실조 이런 거면 어떡해에- 응?응?"
시발 좀 진짜. 극성맘 나셨어요, 예?
어떡하냐며 호들갑 떠는 꼴이 보기 싫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자마자 곧장 발걸음을 옮겨
힘없이 걸어가는 그 여자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한걸음 내디딜 때 마다, 어어어- 하는 지민의 당황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인생은 직진이다, 박지민. 이 형 보고 잘 배워. 네가 그렇게 찌질하게 사니까 말 한마디도 못 걸고 죽은 거 아냐.
아니 시발, 10년은 넘게 따라다니다가 죽었다면서, 말 한마디도 못했다는 게 말이 돼?
10년 동안 말 한마디도 못한 채 졸졸 따라다니다 억울한 마음으로 죽었을 지민을 떠올리며
두 주먹을 질끈 쥐었다. 그래, 인생은 한방이지.
'아아- 뭐하려고오! 안돼에!'
지민의 찡찡거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기자, 멀리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작은 여자아이가 시야 안에 가득 들어차고,
아무 말없이 그 앞을 막아서자, 인기척도 느끼지 못한 건지 계속 걸음을 옮기던 여자아이가
콩-하고 내 품에 박은 머리를 부여잡곤 아아-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누구세요?"
아무렇게나 걸치고 왔던 옷이 하필이면 스카쟌이었던게 문제였을까,
조금은 겁을 먹은 듯한 여자아이가 한걸음 뒤로 주춤 물러서며 나를 경계하듯 손으로 자신을 가렸고,
그에 괜히 기분이 나빠져 인상을 찡그리자, 그런 나를 바라보며 다다다다 하고 잔뜩 뒤로 물러선 아이가 나를 따라 인상을 찌푸렸다.
순간, 내가 인연을 본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한동안 축 늘어져 다니던 옆 동아리 선배가 내가 심리학과라는 이유만으로 상담을 해왔을 때.
요즘 이렇다 할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꾸 힘이 없이 축축 처지고 심적으로 힘든 것 같다고, 자기 이상한 거 아니냐고 물어왔던 날.
그날, 나는 그 선배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던 여자 인연의 이야기를 선배에게 꺼냈고,
선배는 자신을 놀리는 거냐며 질색을 하며 화를 냈었다.
'선배, 사실 선배 뒤에 인연이 있는데 쟤가 자꾸 선배 등에 올라타서 그런 거예요.
아주 어렸을 때 죽었나봐요, 쟤. 진짜 어린데 다리가 없어요. 혹시 선배 어렸을 때 교통사고 당한 적 있어요?'
전생에 박지민이 좋아했던 여자가 현세에서도 김태형을 좋아하듯, 전생의 웬만한 일들을 현세에서도 전부 이어지기 때문에
걱정되는 마음으로 물어봤던 건데, 남 속도 모르는 선배는 너 그렇게 살지 말라며 훈수까지 두곤 자리를 떠나버렸고,
"...누구시냐니까요?"
"저 아세요?
그랬기 때문에 잔뜩 겁을 먹어서는 물러선 그 여자아이에게 한동안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굳어있었다.
사실대로 말할까? 하는 마음과 숨겨야 하는 건가. 하는 마음이 서로 교차되어 어지럽게 엉켜왔다.
'사실 그쪽 인연이 그쪽을 너무 걱정해서, 좀 울지 말라고 전해주려고 온 거예요.
아, 그리고 김태형 그 새끼는 좋아하지 마세요. 그 새끼 별로래요. 박지민이 그랬어.'
이렇게 말한다고 믿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상하다고 신고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아 돌겠네 진짜. 심오한 표정으로 잔뜩 머리를 헝클이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에 고개를 번쩍 들고 시선을 맞추자,
움찔하는 시선이 내 눈을 따라오고, 그런 그녀의 고동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냥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 2학년이죠."
"나 심리학과 4학년 민윤긴데,"
"자꾸 울지 좀 말고,"
"선배가 밥 사줄게, 밥 먹으러 가요."
일단 달래는 게 급선무다.
와, 미쳤다. 저 결국 일 쳤네요. 하하.
5회까지는 만들어 놓고 올리려고 했는데, 아직 2회 분량 쓰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벌써 올려버렸어요. 그래도...,제가 그런 게 아니고 제 손가락이 그랬으니 용서해주세요ㅠㅠ
달달한 건 진짜 처음 써보는지라, 뭔가 너무 오글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좀 그렇네요...
그래도 방학이고, 여름이니까. 전 글들보다는 좀 더 신나고 발랄한 글로 돌아와봤어요.
수능이 남아있어서 규칙적인 연재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방학 동안은 열심히 써 볼 생각이에요.
아직 여왕의 매력 글에 댓글을 달진 못했지만, 벌써 독자님들과 소통할 생각에 가슴이 쿵쾅쿵쾅.
빨리 댓글 달러 가야겠어요ㅎㅎ 어, 독자님들 정말 오랜만이라 너무 반갑고ㅠㅠ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그럼 다들 안녕히 주무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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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윤아윤아윤아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