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 name : 007
다섯번째 이야기
W. 체리에이드
태형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4층에 위치한 휴게실에서 연달아 한숨만 쉬어대며 자꾸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에 바삐 돌아다니던 호석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을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기억에서 지워버린 걸까. 태형은 복잡한 마음에 얼굴을 쓸어내리며 캐비닛에 짐을 넣는 탄소를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탄소는 태형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옛 애인이자, 친구이니까.
아니, 친구였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합께 자라며 제임스 본드를 모티브로 삼은 영화를 보고 첩보 요원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둘이었다. 심지어 꿈을 위해 함께 영국으로 유학까지 갔었다.
한창 나이에 남녀 둘이서 하루 온종일 붙어 있는데 마음이 안 생기는 것이 이상할 만큼, 자연스레 감정이 생겨 사귀게 되었다. 정말 진심이었고, 사랑했다.
하지만 영국은 그들의 상상만큼 황홀하지 않았고, 타지에서의 생활은 둘을 지치게 하기 충분했다.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다 믿었다. 적어도 탄소는 그랬다.
태형은 성공하고 싶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이 머나먼 곳까지 왔는데, 이까짓 사랑놀이나 하고 있는 제 자신이 한심하다 생각했다.
비밀리에 열렸던 M16의 요원 테스트를 태형은 탄소에게 알리지 않았고, 합격했다. 그리고 태형은 탄소를 떠났다.
그렇게 탄소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영국 한복판에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태형이 돌아올 거라 믿었다. 이 넓은 영국에 나 혼자만 두고 갈 리 없다 생각했다. 함께 보냈던 세월을 믿었다. 둘이서 속삭였던 사랑 얘기를 믿었다.
그러나 믿음은 포기가 되고, 포기는 원망이 되어, 원망은 증오로 변했다. 밤새 태형을 저주하며 울었다.
하염없이 울다 지치자 탄소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성공하고 싶다고.
보기 좋게 성공한 자신을 보며 태형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잊혀져 있던 자신의 꿈을 기억 속에서 탄소는 끄집어냈다.
자신의 오랜 친구를, 자신의 옛 애인을. 탄소는 추억 속에서 그렇게 지워냈다. 지우개로는 지워지지 않아 화이트로 덮어버렸다. 꼼꼼히. 백지처럼 보이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하게.
쿵. 짐을 정리하던 탄소의 캐비닛에서 책이 떨어지자 태형이 자리에서 일어서 캐비닛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진짜 짜증 나게. 한숨을 쉬고 책을 주우려 몸을 굽힌 탄소의 앞에 태형이 책을 들고 서 입을 열었다.
" 오랜만이네. "
" 어. 그러게. "
" 왜 나 보고도 모른 척해. 우리 모르는 사이 아니잖아. "
" 굳이 아는 척을 해야 할 이유는 없지. "
싱긋 웃어보인 탄소가 책을 태형의 손에서 가져가며 짧게 인사했다. 고마워. 전혀 고마워 보이지 않는데. 태형은 목이 탔다.
" 내가 그때는 잠시 미쳤었어. 성공에 눈이 멀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를 저질렀어. "
" 언제적 얘기야. 이제 상관 없잖아. "
" 상관이 없다고? 진짜 그렇게 생각해? "
" 그럼 무슨 상관이 있는데? "
책을 신경질적으로 캐비닛에 툭 던진 탄소가 캐비닛 문을 닫고 그 문에 기대서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무슨 상관이 있는데, 우리가?
" ... "
" 돌아올 거라고 믿었는데, 넌 오지 않더라고. 내가 널 잘못 봤던 거지. "
" 그런 거 아니야. 난, "
" 아니긴 뭐가? 어쨌든 너는 그런 짓을 저질렀고 결과적으론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잖아. 이게 팩트야. 네 마음 편하자고 멋대로 합리화 시키지 마. "
" 김탄소. "
" 내가 아까 널 보고서도 왜 놀라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아? 네가 여기 있을 거라 생각했어. 아까 들어올 때 지었던 표정. 또 지어봐. 보기 좋던데. "
" 너 이런 애 아니었잖아. "
" 이런 애? 내가 지금 뭐 어떤데? 그런 식으로 지칭하지 마. 기분 더러우니까. "
" ...지금 너무 흥분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해. "
" 아니. 난 더 할 말 없어. 예전의 날 생각하고 있다면 생각 고쳐먹는 게 좋을거야. 감성적이고 쾌활하고 밝았던 모습 같은 거 가져다 버린지 오래거든. "
" ... "
" 네가 떠나서 엉엉 울던 김탄소는 죽었어. 알아들어? 이젠 없다고. "
탄소가 캐비닛에 기대 있던 몸을 일으켜 캐비닛을 한번 훑었다. 기분 나쁘게, 김태형 옆자리네.
발이 아프다며 신지 않았던 하이힐을 신은 탄소가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음을 옮기다 살짝 뒤를 돌아 아직도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던 태형을 보며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 네가 죽인 거야. "
그리고는 유유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사라졌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정국이 고개를 들자, 맞은편에 있던 상대도 고개를 들었다. 아, 안 그래도 마침 찾던 중이었는데. 정국이 미소 지었다.
" 여기 2층인데. 카지노 좋아하나 봐. 아니면 당구? 볼링? "
" 당구. 2층에 레저 시설이 있다더니, 진짜였네. "
" 맨날 총만 쏠 순 없으니까. 놀 수 있는 곳도 있어야지. "
" 엘리베이터 탈 거였으면 타. 내릴 거니까. "
" 아, 타려고 했었는데. 안 타도 될 것 같네. "
" 날 찾아다니기라도 했나봐. "
정국이 고개를 끄덕이며 탄소의 앞을 막았다. 뭐 하는 거야. 탄소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정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탄소를 쳐다볼 뿐이었다.
" 가까이서 보니까 더 예쁘네. "
" 아무것도 안 했는데 넘어온 거야? 엄청 쉬운 남자네. "
" 생각보다는 쉽지. 맘먹고 꼬시면 다 넘어가 주거든. "
" 꼬실 생각 없으니까 설레발치지 마. "
" 왜 이렇게 적대적이야. 친해지자는 건데, 동료로써. "
정국이 능글맞게 웃었다. 친해질 필요가 있지 않나, 우리? 비킬 생각이 없어 보이는 정국에 무언가를 생각하듯이 탄소가 정국을 빤히 쳐다봤다.
와. 예쁘기는 엄청 예쁘네. 실로 정국이 본 여자 중 제일 예쁜 얼굴이라 해도 무방한 탄소였다. 아무리 여자가 많은 정국이라지만, 잠시 넋을 놓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밖에서 봤으면 어땠을까. 정국이 꽤나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여자를 밝힌다 해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았다. 여자를 다루는 방법이 서툴렀을 뿐.
그리고, 무언갈 생각하는 것 같던 탄소가 싱긋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 동료 사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들은 얘기가 많아서. "
" 좋은 얘기는 아닐 것 같아서 불안하네. "
" 날 그렇게 쉬운 여자들과 같이 봤다면 잘못 본 거야. "
" 그렇게 본 적 없어, 무슨. "
" 이렇게 추파 몇 번 던져주면 넘어오는 여자들이랑 같게 보지 말라는 소리야. "
" 아. "
정국이 씩 웃었다. 이거 뒤통수 맞은 것 같은 느낌인데.
" 할 말 끝났으면 비켜주지그래. 지금 엄청 민폐인데, "
" 내가 잘못 봤었네. "
" 뭐? "
" 잘못 봤었어, 내가. 지금은 제대로 보여. "
" 그 여자들과 같게 봤었다니 기분이 좋지는 않네. 제대로 본다니 다행이고. "
" 제대로 보니까 더 예쁘네. 원래 못 먹는 감이 더 탐스러운 법이거든. "
말을 끝낸 정국이 탄소를 지나쳐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한 방 먹었네. 2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국이 유유히 내려갔다.
정국의 말을 곱씹으며 탄소가 장갑을 끼고 큐대를 잡았다. 어이가 없는지, 실소가 자꾸 터졌다.
한 방 먹었네. 큐대를 고쳐 잡은 탄소가 중얼거렸다.
브레이크 샷.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브레이크 샷 [ break shot ] : 당구에서, 틀이 잡혀 있는 공들을 큐볼을 이용해 흩어지도록 하는 오프닝 샷.
+++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거의 두 달 만인가요...?
현생에 치여 살아가다 보니 어언 시간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네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글을 잘 올리지 못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삶에 여유가 생긴 터라, 이렇게 다시 키보드를 두드려보게 됐어요.
솔직히 너무 연재를 뜸하게 하는 것도 있고, 독자님들께 죄송하기도 하고. 사과문을 올리고 글을 삭제할까 생각도 했었는데요.
이 글에 대한 욕심이 아직 저에게는 많이 남아있나 봐요. 이제 남는 시간을 다 글에 쏟아보려고 해요.
이거 말고 생각해놓은 다른 주제들도 많은데.... 하아....☆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써볼게요. 다시 한번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
여주와 태형이의 과거, 여주와 정국이의 첫 만남이 밝혀졌습니다!
이제 조금 전개를 빠르게 해볼까 해요. 007 첩보물이니 작전도 해결하고 조직물에 걸맞는 이야기도 나오고 해야겠죠?
다음 편에서는 첫 작전이 시작됩니다!
| 보셔도 되고 안 보셔도 됩니다 (봐주세요 엉ㅇ엉) |
헤헤... 혹시 궁금하실까봐... 들고 왔습니다... (독자님들 : 안 궁금해) 지하 3층 석진의 병동 지하 2층 사격장 지하 1층 지민의 연구실 1층 로비 2층 카지노나 당구장 볼링장 등의 레저 시설 3층 헬스 트레이닝 센터 4층 요원들의 휴게실 '5층 회의실, 미팅 룸 6층 중앙 정보국 7층 윤기 사무실 8층 호석 사무실 9층 남준 사무실 정말 열심히 짰던...ㅎ K16 본부 건물 내부입니다! 청소부로도 좋으니 입사하고 싶네요... |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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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