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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배달부 태형 X 히키코모리 너탄 - 中
부제 : 안녕, 나의 여름.
w. 12.30hertz
쾅쾅ㅡ.
- 나 왔어. 어제 우유 배달부우!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변성기가 채 끝나지 않아 어린 태가 나는 목소리로 저를 부르는 소년의 소리가 꽤나 익숙해질 만큼의,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잠잠해진 바깥에 심장이 철렁하면서 머리가 하얘져 갔다. 극히 일방적이었던 소년의 약속이었지만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과, 겁쟁이인 저는 평생을 이 좁은 집을 벗어나지 못 할 거라는 자괴감에 다시금 속이 메슥거렸고, 로션을 발라 번들거리는 양 볼을 타고 물이 흘렀다.
그저 그 순수하던 소년과의 약속을 어겨서, 혹은 소년을 만나지 못해 슬퍼 우는 것이 아니었다. 제가 지독히도 싫어서 나는 눈물의 의미가 더 컸다. 문을 여는 것에도 심장이 뛰고 주춤거리는 제 자신의 암담한 현실을 직시해보니 '나'라는 인간은 한심하고, 겁만 많은 정신병자일 뿐이었다. 어쩌면 그 사실을 인지한다는 것에 대해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이 지독한 은둔 생활을 이어가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굽은 다리가 저릿거리며 아파왔다. 창백한 손가락으로 두 눈의 눈물을 닦아냈다. 문과 문틈의 이음새 사이로 하ㅡ얀 빛이 제 쪽으로 새어들어 왔다. 불현듯 어제 소년의 어깨너머로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뜨거운 머릿속을 스쳐지나 갔다. 아무리 먼지 구덩이라지만, 조금이라도 다시 보고 싶어. 참 아이러니하게도 제게 스며들고 싶어 하는 빛과 소년의 생각에 가슴도 머리처럼 마구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눅눅한 방바닥에 맨발이 진득하게도 붙었다 떨어졌다. 문과 문고리의 접합부가 군데군데 까맣게 녹이 슬어,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돌릴 때마다 잔뜩 녹슨 쇠를 긁어 듣기 싫은 마찰음을 냈다.
그 마찰음을 들을 때면, 누군가 제 허벅지를 길디 긴 손톱으로 긁어내리는 듯한 망상을 했는데. 오늘은 마찰음 따위 신경 쓸 정신도 없이 제 키보다 한참이나 높은 대문 위로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속눈썹 사이를 스쳐부는 바람이 방 안에 들어오던 바람의 느낌과 사뭇 달랐다.
더 반가웠다.
직직ㅡ, 슬리퍼가 끌리는 자리에 작게 흙먼지가 일어났다. 그에 개의치 않고 대문 앞으로 향했다. 소년은 갔겠지, 조금만 더 빨리 고개를 들어 볼걸. 하늘을 쓸어다 놓은 것 같이 색이 바란 파란색의 대문을 손으로 쓸었다. 잠겨있던 문고리를 풀어 약간의 틈을 만들어 주춤거리며 고개를 내어보니, 역시 소년은 없었다. 하지만 소년 대신에 열리는 문에 걸려 찰그랑ㅡ 거리는 우유 두 병이 자리하고 있었다. 소년의 말대로 흰 우유 하나, 딸기 우유 하나. 우유의 마개에는 삐뚤빼뚤, 큼직하게 못난 글씨가 적혀져 있었다.
[ 내일 또 보자. ]
소년의 뒤로 훔쳐보았던 세상은 어제보다 오늘이 더 아름다웠다고, 어머니께 말해주고 싶었다. 묘한 벅차 오름이 가슴이 울렸다.
모든 것이 내 흉통을 짓눌렀다. 이곳에서 거주한지 몇 개월만에 앞 집 아주머니가 살고 있는 집 대문이 연두색인지 알았고, 집 앞에 나있는 도로를 쭈욱ㅡ따라가 보면 바다가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온갖 낯선 얼굴을 한 것들뿐이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동시에 두려움의 의미로 떨리기를 반복했다. 냉장고에 가득 찬 흰 우유 속에 분홍빛을 띠고 있는 딸기 우유가 유독 돋보였다. 아버지는 내가 우유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우유가 빼곡히 세워져있어 묵직한 냉장고의 문을 힘을 실어 닫았다. 챙그랑, 유리들끼리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유는 잘못이 없는데. 우유가 제 아비인 마냥 괜히 미웠다. 하지만 저 희멀건 우유가 제 아버지가 저를 생각하는 마지막 정이라고 생각하니 우유를 끊을 수가 없었다. 안 먹기만 하고 쌓여만 가는 이 우유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냉장고를 열 때마다 고민한다. 다 버려버리자니 아깝고, 먹기는 싫고.
결국은 그 고민들이 무색하게 그대로다. 나처럼 말이야.
늘 그랬듯, 잘 정리된 이불 위로 몸을 뉘었다. 이렇게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있으면 꼭 저 하늘 위에 있는 어머니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제가 생각해도 억지스럽지만 이렇게라도 어머니와 닿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제 정신이 아닐 때엔, 더 이상 살 이이유가 없다고 울분을 토해내며 자살 시도도 꽤 했었다. 하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열심히 뛰어가도, 저를 뒤돌려 밀어내던 어머니에 늘 눈을 뜨고 말았다. 그 거사들 이후, 제게 남은 것이 라곤 몸 구석구석 흉터들이 전부였다. 죽고 싶다고 다 죽는 건 아니라는 걸 일러주고 싶었던 걸까.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묻고는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시계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다.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어떤 표정을 짓고있는지 알 수 없는 내일이 전부였다.
내일은 문을 열고 햇님과 바람을 맞이하는 일이 더욱 수월해질 꺼야. 굳어가는 몸을 달래려 부러 소리를 내 말했다. 그리고 꼭 소년에게 사과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할아버지의 행방을 묻는 거야. 너무 이른 아침에 일어난 탓인지 어떠한 생산적인 일도 하지 않는 저에게는 하루가 무척이나 길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그 길고 비어있는 시간들이 지루하지 않았다. 두려워만 했던 밤도 이제 내일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니 무섭지 않았다.
오늘은 대문 앞에서 소년을 기다리고 싶었다. 어제 한참이나 저를 기다리고 있었을 소년의 마음이 어떨지 궁금한 것도 있지만, 저를 기다려준 마음이 고마워서 성의를 보이고 싶었다. 처음이 힘들었지, 오늘은 걸음이 어제보다 조금 더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가뿐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끈거리는 머리와 떨려오는 목울대, 그리고 극하게 뛰는 심장 탓에 아릿거리는 가슴께. 아득해지는 정신에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피가 통하지 않아 창백해져 가는 손을 쥐었다 펴보고, 그새 정성 들여 빗질한 머리가 흐트러졌을까, 손으로 머리도 빗었다. 부드럽게 열리는 대문의 문틈으로는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은 아무도 없네ㅡ.
시계도 없어서 지금이 이른 시간인지, 늦은 시간인지 알 수도 없었기에 그 자리에 서서 소년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주춤거리다 결국 문 뒤로 숨어 좁은 이음새에 눈을 맞추었다. 멈춰있는 풍경들에 꼭 시간도 멈춘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십분을 그 자리에 서있었을까, 덜컹ㅡ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전거 벨 소리가 들렸다.
오늘도 너는 요란하구나.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본래 성격이 저런거구나. 저와는 상반되게 다른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다. 가까워지는 자전거 소리를 따라 가슴이 떨려왔다. 주먹을 말아 쥐고는 바들바들 떨리는 발을 내려봤다. 한 발, 두우 발. 천천히 대문 뒤에서 걸어 나오는 저의 바보 같은 행동들을 소년은 빼꼼히 문 안으로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고 있었다. 놀라서 단발마의 비명을 지르는 저의 손목을 달래 듯 잡아오며 빙긋ㅡ 웃어 보이는 소년의 얼굴을 보니 심장의 펌프질이 더 거세졌다.
- 우유 배달 왔어요. 어,오늘은 기특하게도 나와 있었네.
- 어제는 ... 미안했어. 그으게ㅡ, 늦잠을 잤거든... ...
- 괜찮아. 내가 우유 배달만 아니였어도 계속 기다리고 있는 건데.
그지? 흐으ㅡ.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는 소년의 얼굴이 초여름의 여린 새싹같이 청량했다. 내 이름은 김태형이야, 일본어 이름은 안 알려줄래. 난 일본 이름보다 태형이가 더 좋거든. 너 이름은 뭐야? 소년은 제게 우유를 건네주며 물었다. 도중에 소년과 닿았던 검지 손가락이 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 차가운 우유병을 두 손으로 꼬옥 잡고는 열심히 문장을 골랐다. 저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름이 뭐였는지 잊어버린듯 했다. 제 입을 타고 나오는 이름이 생소하고 어색했다.
- 김탄소. 일본어 이름은 있는데 ... ... 까먹어 버렸어.
- 이름을 까먹어? 우와ㅡ. 나 같은 애는 처음 봐! 나도 내 일본어 이름을 자꾸 까먹어서 우리 할부지한테 맨날 혼나거든.
- ... 그런데 원래 우유를 배달하던 할아버지는 어떻게 되고 태형이 너가 배달을 하는 거야?
- 아ㅡ. 우리 할부지가 그 할아버지야.
할부지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거든. 그래서 이제는 내가 대신 우유 배달을 하는 거야. 아픈 할부지가 계속 일하는 걸 어떻게 내가 그냥 보고만 있어.
아, 그리고 할부지가 나한테 부탁했어. 분홍색 지붕에 사는 아이가 나랑 동갑이니까 우리 똥강아지가 그 애와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엄청 특별한 아이라고 했는데, 정말 특별한거 같아.
나를 특이한 사람이 아닌,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년과 제 사이의 공백을 바람이 채워가고 있었다. 우유병 표면에 맺혀있던 물방울들이 손가락을 타고 땅으로 투두둑ㅡ 떨어져 갔다.
- 할부지 부탁이랑 별개로,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그리고 탄소만 괜찮다면,
아침에 나랑 같이 우유 배달 하자!
~
암호닉은 편하게 댓글로 신청해주세여!
분량이 저번보다 쪼매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밤에 올릴까 했는데 그냥 새벽에 올리고 사라져야지 총총=3
하편도 반응보고,, 들고오께요,, ^^ 사실 아직 하편이 미완이여서 8ㅅ8... 늦게오꺼... 가타여....
댓글은 큰 힘이 돼요. 전 글에 댓글 달아주신 독자님들, 정말로 감사하고 사랑해요. 댓글보고 얼른 다음편 들고 왔어요. 부족한 글이지만 이번화도 재밌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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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