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그래프꼭짓점 15화 |
*
"……."
잠자던 성열의 눈이 조금씩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평소 쓰지않던 인상까지 쓰더니 괴로운 듯이 몸을 뒤척거리며 끙끙 앓는 소리는 낸다. 어느새 얼굴과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무도 깨워주는 사람이 없어 계속 괴로워하며 악몽에 시달리던 성열의 입가로 서서히 울음소리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흐으윽…끄윽…."
바로 옆방에서 잠을 자던 우현, 잠결에 들리는 미세한 울음소리에 잠시 몸을 뒤척였다가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급히 성열의 방으로 향한다.
"성열아!"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주며 뺨을 살짝 토닥거리자 성열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뜬다. 눈 앞에 우현을 확인한 성열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우현, 애처럼 엉엉 우는 성열을 끌어안아 다독거려준다. 이사오고 나서 많이 나아졌다생각했는데, 아직은 아니였다.
"괜찮아 괜찮아. 형이야."
원래 성열이 악몽에 시달리며 울때마다 가장 먼저 듣고 달려오는건 순재였다. 이렇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주는 것도 순재였고. 하지만 오늘은 어째 많이 피곤한 모양인지 성열이 엉엉 우는데도 올 생각을 않는다. 한참이나 우현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히끅거리던 성열이 조금 진정이 되자 성열의 머리칼을 한번 더 정리해준 우현이 성열을 다시 침대에 눕혔다.
"형 계속 있을꺼니까 걱정말고 푹 자."
고개를 끄덕거린 성열이 우현의 손을 꼭 잡고 다시 눈을 감았다.
*
"…여보세요."
전화가 뚝 끊기고 침대맡에 핸드폰을 내려놓은 순재가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아, 피곤해…."
손목에 걸려있던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으며 거실로 걸어나왔다. 평소와 다르게 성열의 방문이 열려있다. 졸린 두 눈을 두드리며 성열의 방으로 향한 순재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자고있는 우현과 성열을 보고는 깜짝 놀란다.
"얘가 왜…. 우현아, 우현아."
성열의 손을 살며시 내려놓은 우현이 눈곱을 떼며 몸을 일으켰다.
"너 왜 여기서 자고 있어?"
흐트러진 이불을 다시 꼭꼭 덮어준 순재가 커튼을 쳐 햇빛을 가렸다. 곤히 잠든 성열의 뺨에 눈물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인생그래프꼭짓점
15.
"으으, 추워."
*
뜨거운 물에 샤워를 마치고 욕실 문을 열고 나오자 뽀얀 수증기가 성열을 뒤따라나온다. 보일러를 튼건지 방에 훈훈한 열기가 감돌고 있었다. 머리를 털며 넓직한 창문으로 다가간 성열, 수건으로 얼굴 물기를 톡톡 닦으며 창문을 살짝 연다. 찬 기운이 훅 들어왔지만 춥기보단 악몽으로 지쳐있던 머리를 맑게 깨워줬다.
"……."
여리 꽃밭에 세워진 미니천막은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들을 꽤 듬직하게 막아주고 있었다. 명수가 천막을 만들어주지않았더라면 분명 알록달록한 꽃잎들이 비를 맞아 모두 다 우수수 떨어졌을거다. 비가 점점 더 거세게 들이치길래 얼른 창문을 닫고 침대에 앉아 빗방울이 흘러내리는 창문만 멍하니 쳐다봤다. 어젯밤의 꿈, 자꾸 생각난다. 원래 꿈이라하면 생각해내려할수록 잊혀지기 마련인데, 어쩜 그 꿈은 잊으려해도 생각나는걸까. 평생 곁에 맴돌 꿈이라면?
"…성열아. 코코아라도 먹을래? 아님 커피?"
순재의 말에도 대답하지않은채 침대에 앉아 미동도 없이 창문만 바라본다. 대답이 돌아오지않자 '그럼 생각나면 말해'하고 조용히 말한 순재가 문을 닫고 나갔다.
차에서 내리려던 성규가 우산을 붙잡고 끙끙 씨름을 하고 있다.
"왜요?"
결국 우산 윗부분에 손이 찝혀버렸다. 저번에 한번 비가 내릴때만 해도 멀쩡했었는데 그세 녹슬었나보다.
"우산 살 돈 없어요?"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돌린 우현이 뒷좌석에서 다 읽은 신문을 꺼내 성규에게 내밀었다.
"이거라도 쓰고 가요."
우현의 손에 들린 우산을 홱 채간 성규가 조수석 문을 열고 우산을 편 뒤, 운전석으로 쪼르르 달려가 문을 벌컥 열어준다.
"우산 빌려쓰니깐 이 정돈 해드릴게요. 뭐해요, 얼른 안 내리고."
피식,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은 우현이 차키를 뽑아들고 차에서 내렸다.
"우산 좀 똑바로 들어봐요. 어깨 다 젖잖아요."
나란히 우산을 쓴채로 회사 입구에 들어섰다. 여직원들이 선망에 가득찬 눈으로 성규를 쳐다봤고 그 시선에 조금은 민망해진 성규는 뒷머리만 긁적거리며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우현의 뒤만 바짝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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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법 신입사원의 티를 조금은 벗었다. 좋게 말하면, 자질구레한 허드렛일이 줄었다는 뜻도 되겠지만 그렇다고 일이 줄어든 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아지면 많아졌지….
'성규씨. 이게 내일까지 마감이야, 부탁해.'
그렇게 부탁을 해올때마다 딱부러지게 거절은 못하고 짬도 제일 낮은 직급이라 어쩔 수 없이 애써 웃으며 서류들을 받아들긴했지만 하루안에 끝낼 수 있는 분량이 아니었다.
"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이라도 하는거야? 왜 다들 내일까지 못해서 안달복달인거야, 아후."
뭐, 하게되면 해야죠. 성규의 눈썹이 축 쳐졌다. 제일식품회사에서도 야근은 끔찍히도 싫어서 그 날일은 무조건 눈에 불을 켜고 모조리 해치우는 타입이었는데 지금 책상에 놓인 분량은 전혀 가능성이 없어보인다.
"호 대리님이 좀 도와주실래요?"
아까 일찍 일을 마치고 애니팡하는거 다 봤는데 일은 무슨. 와이셔츠 소매 단추를 풀고 두어번 소매를 접어올린 성규, 현란하게 손을 풀고 제공받은 일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
"성규씨 힘내요. 그나저나 입사하고 첫 야근이네요? 축하해요. 하하하하."
호원이 손을 흔들며 사무실을 나간다. 컴퓨터를 끈 뒤,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종이 부스러기를 집어 쓰레기통에 탈탈 털어넣은 우현이 우산을 챙겨들고 성규에게 향했다.
"김성규씨. 퇴근 안 해요?"
손에 들린 우산을 성규 책상에 내려놓는다.
"…그럼 팀장님은요."
성규의 말을 따라한 우현이 쌩하니 사무실을 나가버린다.
"……."
우현의 친절에 기분이 묘해진다. 우산을 얼른 가방에 챙겨넣고 다시 일을 하려던 성규가 아차차,하며 가방에서 폰을 꺼내 '나 오늘 야근'이라는 짤막한 문자를 봉신 씨에게 보냈다.
"아, 배터리없다."
충전기도 챙겨오질않았는데 문자가 전송되자마자 오른쪽 상단 배터리바가 붉게 깜박깜박거리며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알림창이 떴다. 아예 핸드폰 전원을 꺼 가방에 넣고 가득 쌓여있는 서류들을 집어들었다.
"얼른 해치우고 집에 가자, 성규야!"
스스로를 다독이며 꼼꼼히 정리를 시작했다.
*
"얘가 왜 안 오는 거야 12시가 지났는데 전화기도 꺼져있구…." 명수, 하품을 하며 졸린 눈으로 거실에 앉아 심드렁한 표정으로 배만 긁적인다. 밤 12시가 넘어갔는데 성규가 퇴근할 생각을 않는다. 야근을 한다고 문자가 왔었지만 밤 12시면 버스도 끊길 시간이다. 잠옷 원피스 차림으로 시계와 현관문을 번갈아보던 봉신 씨, 결국 명수의 엉덩이를 엄지발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일으켜세운다.
"아, 왜…."
베게를 내려놓고 일어선 명수는 투덜대며 슬리퍼를 신고 우산을 집어들었다. 밖은 여전히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물에 젖지않게 추리닝 바짓단을 두어번 접어올리고 우산을 바짝 땡겨쓰며 옆집으로 향했다. 집안의 불이 모두 꺼져있다가 명수가 초인종을 두어번 누르자 금세 거실의 불이 켜지고 인터폰에서 잠에 취한 우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인터폰이 뚝 끊기더니 곧 현관문이 열린다. 우산을 쓴 채 느릿느릿 대문으로 다가온 우현이 잠에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밤에 무슨 일이야."
명수의 말과 차가운 밤공기때문에 잠이 확 달아났다. 회사에 내가 가볼테니까 어머니한테 걱정마시라고 전해드려. 명수를 집으로 보낸 우현이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가 옷을 걸치고 차키와 지갑, 우산을 챙겨들었다.
"단순한건지 무식한건지."
한숨을 내쉰 우현, 차를 몰아 회사로 향한다. 차안의 시계는 12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회사로 가며 핸드폰으론 계속 성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말만 수십번 들려왔다. 시간이 늦으면 대충 마무리짓고 나올 일이지, 그걸 다 끝마칠때까지 붙들고 있다니. 일에 대한 열정이 풍부한건지 융통성이 없는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뻑뻑한 눈을 매만지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서둘러 몇몇 사무실에 불이 켜져있는 회사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기획부실이 있는 층수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우현이 우산을 털며 빛이 새어나오는 기획부실 문을 열었다.
"……참나."
책상에 엎드려 도로롱 도로롱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성규의 모습을 보자 기가 막혀 웃음이 절로 나오는 동시에, 급하게 회사로 달려왔던 자신이 한없이 우스워진다.
"…크으응…크으응."
칸막이에 팔을 걸치고 헛웃음을 지은 우현이 성규의 하얗고 토실토실한 볼에 살짝 꼬집는다.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지만 순간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따뜻하고 보들보들거리고…. 금방 쪄낸 찐빵같다. 책상에서 엎드려자면 허리도 아프고 목도 아파 불편할만도 한데 그런 기색하나없이 너무 곤히 잠을 자고 있다. 성규가 마무리 짓고 있던 서류들을 정리해 자신의 책상으로 옮기고 잠자는 성규의 어깨를 흔들었다.
"김성규씨 일어나요. 그만자고." "여기 회사에요. 일어나요."
눈썹과 미간이 꿈틀꿈틀거리는가싶더니 성규의 눈이 번뜩 뜨여졌다.
"헉! 며,몇시지! 히익! 12시 50분?! 아, 어떡해! 일 다 못 끝냈는데!"
우현은 보이지도 않는 지, 혼자 호들갑을 떨며 난리가 났다.
"난 안 보여요?"
그제서야 평상복 차림의 우현을 본 성규가 어안이 벙벙해져선 묻는다.
"팀장님이 이 시간에 여긴 어쩐일이에요?"
뒤늦게 서류가 없어진 걸 알아챈 성규가 사색이 되어선 여기저기 뒤져댄다.
"내 자리로 옮겨놨어요, 서류."
자기 말만 하고 사무실을 나가버린다. 급히 가방과 옷을 챙겨입고 서둘러 우현을 쫓았다.
"나 때문에 이 야심한 시간에 회사 온거에요?"
딱따구리처럼 쪼아대고 해파리처럼 쏘아대잖아요. 안전벨트를 매던 성규, 우현의 말에 '뭐요?'하고 역정을 낸다.
"내가 언제 그랬어요."
성규의 이마를 뒤로 휙 밀어서 치운다. 그때 성규의 배에서 우렁찬 소리가 울렸다. 꼬로로록.
"배고파요?"
우현의 차가 집으로 가는 반대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별 5개 특1급의 으리으리한 호텔이었다. 주위를 살핀 성규가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포게 자신의 몸을 감쌌다.
"호,호텔엔 왜요! 이 변태!"
우현,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성규를 쳐다본다.
"호텔안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는 건데요?"
우현이 쯧쯧 혀를 차며 차에서 내려 우산을 편다.
"머릿속에 그런 거 밖에 안 들었어요?"
호텔안으로 들어가는 우현에게 직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인사를 한다. 그 모습에 괜히 움츠러든 성규는 계속 우현에게 들러붙었다.
"아, 왜 자꾸 밀어요."
호텔 꼭대기 층인 24층에 위치한 레스토랑은 새벽 비행기를 타고 오는 외국인들이나 비즈니스가 끝나고 늦은 시간 저녁을 해결해야할 사람들을 위해 은은한 향을 풍기며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업중이었다.
"이 호텔도 서동 그룹꺼네요?"
그제서야 왜 직원들이 우현에게 인사를 했는지 알 것 같다. 순간 위화감이 들어온다. 웨이터가 서울 야경이 한 눈에 보이는 가장 좋은 자리로 우현과 성규를 안내했다. 그저 그런 얼굴로 소파에 앉는 우현과 달리, 성규는 눈이 휘둥그레해져선 야경이 보이는 유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성규의 입김이 뽀얗게 서렸다. 가죽으로 된 메뉴판을 건네받은 우현이 테이블 밑으로 성규의 발을 툭툭 건드리며 '뭐 먹을래요'하고 묻자 여전히 야경에 빠진 성규가 '그냥 배부를 만한거시켜요'하고 건성건성대답했다. 우현, 자신이 마실 커피 한 잔과 성규가 먹을 음식을 주문하고 소파에 몸을 기댄다.
"좋겠네요."
너무 평범한 회사원 차림으로 입고 온 게 계속 신경쓰인다.
"차려입으면 뭐가 달라져요?"
우현이 피식 웃었다. 성규가 질색하는 우현 특유의 비릿한 웃음!
"자꾸 그렇게 웃으며 입을 확 그냥,"
웨이터가 슈림프 칵테일과 훈제 연어를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와인리스트를 우현에게 공손히 건넸다.
"와인, 먹어요?"
와인이라 하면 포도주스에 소주 넣은게 와인이렸다! 항상 편의점에 파는 저렴한 와인말고는 제대로 된 와인 경험이 별로 없는 성규가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마비바 와인으로 주세요. 잔은 한 잔이면 되요."
어디서 본 건 있는 성규가 냅킨을 펼쳐 허벅지에 깔고 포크를 들어 훈제 연어를 가장 먼저 맛보았다. 세상에나. 입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는다. 다음으로 슈림프 칵테일(새우를 칵테일 소스에 찍어먹는 음식)을 맛본 성규가 쩝쩝 소리를 내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맛있어요?" "네. 녹아요, 입에서."
에피타이저가 이렇게 맛있으면 메인 디쉬는 얼마나 맛있을까. 포크와 나이프를 쥐고 있는 성규가 하품을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메인을 기다렸다. 잠시 후, 커피와 함께 눈부시게 하얀 접시위에 맛깔나보이는 자태를 뿜어내는 스테이크가 서빙되어 나왔다.
"우와…고기 진짜 두툼하다."
입맛을 다신 성규가 얼른 나이프로 고기를 썰었다. 핏기가 살짝 서려있는 모습에 칼질을 잠시 멈췄다. 주위를 두리번거린 성규가 상체를 기울여 우현에게 작게 속삭였다.
"저기요. 이거 덜 익었어요. 봐봐요. 세상에."
찜찜한 표정으로 한 입 크기로 썬 고기를 입에 넣었다. 부드러운 육즙과 깊은 풍미의 소스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꿀맛이다, 꿀맛. 스테이크가 위장으로 들어오며 '이렇게 유니크한건 처음먹어보지?'하고 자신을 능멸하는 것 같다. 맛있어하며 잘 먹는 성규 모습에 뭔가 뿌듯한 마음이 든다. 웨이터가 성규의 앞에 잔을 내려놓고 고급스러운 손짓으로 와인을 따랐다. 꾸벅 인사를 한 웨이터가 사라지자 와인잔을 집어들고 킁킁, 향을 맡았다. 달콤한 초콜렛냄새와 알싸한 담배향, 바닐라향도 나면서 자두 향도 얼핏 난다.
"향이 되게 강하네요."
킁킁, 냄새를 한번 더 맡은 성규가 조심스럽게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향기가 강한 만큼 맛도 진하고 약간 묵직하고 끈적한 질감이 들었다. 약간 민트 향이 입안에 맴돌면서 화한 맛도 나고…또 그 뒤에 달달한 맛도 뒤따라 느껴진다.
"비싼 맛나는데… 이거 비싼거죠?"
아껴먹어야겠다. 고기와 기분좋게 어우러지는 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다보니 조금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라왔다.
"이거 도수되게 높네요. 한 잔 마셨는데 알딸딸해지네…."
잔을 비운 성규, 우현에게 잔을 내민다. 다 마신 커피잕을 내려놓은 우현이 케이스에 담겨있던 와인을 들어 성규의 잔에 조금 따라주었다.
"비싸서 이만큼만 주는게 아니라, 취해서 또 끔찍한 모습 보일까봐 이만큼만 주는거에요."
성규, 원샷으로 시원하게 잔을 비운다.
"이제 슬슬 집에 가죠. 시간도 늦었는데."
나른한 몸을 일으킨 성규가 가방을 둘러맸다. 계산하지않고 인사만 하며 지나가는 우현의 모습에 성규는 깜짝 놀라 물었다.
"왜 계산 안 해요?"
하긴. 서동그룹 큰 아들에게 이 레스토랑은 집에 있는 부엌같은 곳일테니깐. 차에 탄 성규가 꼼지락거리더니 조수석 의자를 뒤로 홱 넘겼다.
"나 좀 잘테니깐 도착하면 깨워요."
자신이 성규 전용 기사가 된 기분이다.
*
넥타이가 답답했던지 잠결에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 성규는 다이나믹한 자세로 골아떨어졌다. 집에 도착해 그 모양새를 본 우현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 모습을 찰칵찰칵 찍었다. 가관이 따로없다.
"다 왔어요. 일어나요."
꿈을 꾼 건지, 흠칫하며 잠에서 깬 성규가 고개를 살짝 들어 주변을 살핀다.
"벌써 다 왔어요?"
아…머리아파. 두 손을 주먹쥐고 관자놀이를 감싸며 인상을 찌푸린다.
"빨리 들어가서 자요. 이걸로 지각 핑계 댈 생각은 말고."
우현에게 우산을 건넨 성규가 머리 위에 가방을 얹어 내리는 비를 막으며 후다닥 대문을 두드려 문을 열고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차키를 뽑으며 뻐근한 목과 뻑뻑한 눈을 비벼댄 우현이 하품을 하며 느릿느릿 집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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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서류를 품안에 잔뜩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 우현이 사무실을 돌며 서류들을 원래 담당들한테 나눠주기 시작했다.
"임연영씨."
성규한테 자신의 마감 서류들을 맡겼던 직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류를 받아들었다. 우현, 턱으로 성규를 보란듯이 가리켰다. 성규는 사무실 전화를 어깨로 받쳐들으며 한 손으로는 메모를, 남은 한 손으로는 바삐 서류들을 넘기고 있었다.
"이 회사에 안 바쁜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똑같이 바빠요."
직원들이 사색이 되선 급히 서류들을 넘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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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고 나와 식탁에 앉자, 봉신 씨가 김이 모락모락나는 뽀얀 쇠고기 미역국을 식탁에 내려놓는다. 취직하기전엔 그냥 일반 맹맹한 미역국이었는데 취직하고나니, 야들야들 윤기가 나는 쇠고기가 미역국에 한가득 들어있다. 뒤늦게 식탁에 앉은 명수가 자기 국그릇에 담긴 고기의 양과 성규의 국그릇에 담긴 고기양을 비교해 보더니 인상을 팍 구긴다.
"와…너무 편파적이다. 형 그릇엔 고기가 듬뿍인데 난 미역만 듬뿍이잖아!"
명수의 투정을 듣던 성규가 숟가락을 들어 고기의 절반을 명수의 그릇에 툭 덜어준다.
"됐냐, 떼쟁아?"
방으로 들어간 명수가 작은 종이가방을 들고 나왔다.
"어쭈. 너가 웬일이냐."
정말 기대하지않았던 명수의 선물에 성규의 입이 귀에 걸렸다. 종이 가방안에서 나온건 유명 브랜드의 영양크림이었다.
"영양크림이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기분은 좋은지 실실 웃으며 영양크림을 종이가방안에 다시 잘 넣는다. 그나저나 내일 아부지 기일인데 날씨가 추워져서 큰일이네.
"…그러게."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성규 생일 바로 다음 날이 기일이라 크게 생일파티를 하지않았다. 든든하게 아침밥을 먹고 나온 성규가 집 앞에 멈춰서있는 우현의 차에 올라탔다.
"날씨 한번 더럽게 축축하네."
방금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생일 축하한다구요."
입에서 미역국 냄새가 나나? 아닌데. 양치 깨끗하게 하고 나왔는데….
"진짜 어떻게 알았어요? 내 생일인거."
이력서에 생년월일이 쓰여있긴 하지만 그걸 외울 인간도 아니고 갑자기 이력서를 확인할 일도 없는데 참 미스테리할 나름이다. 띠리리링, 성규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어, 짱동."
아침부터 동우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하고 우렁찼다. 기분좋은 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마친 성규에게 '갖고 싶은 거 있어요?'하고 우현이 물었다.
"딱히요."
성규, 우현의 허벅지를 찰싹! 내려쳤다.
"아침부터 짜증나게 진짜…. 쌍꺼풀 수술은 울 엄마가 해주기로 했으니깐 신경끄셔요!"
우현, 어깨를 으쓱.
"상종을 말아야지."
회사에 도착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4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꽃가루가 날린다. 우현과 성규는 물론 같이 타있던 직원들이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하하하하. 성규씨! 생일 축하해요."
바닥에 널부러진 꽃가루를 발로 휘휘 저은 우현이 호원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먼저 사무실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복도를 쓸고 닦던 청소부 아줌마가 다가오더니 호원에게 잔소리를 한다.
"아니 새벽부터 청소해놨는데 이렇게 어지르면 어떻게 총각! 아휴, 이게 다 뭐야!"
바닥에 쪼그려앉아 코를 훌쩍이며 꽃가루를 줍는 호원을 도운 성규가 물었다.
"암튼 고마워요. 이런 서프라이즈 해줘서…. 근데 제 생일인거 팀장님이 말해줬어요?"
자신을 떠밀듯 사무실로 들여보내는 호원이 행동이 수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어야했다.
"이게 다…."
성규 의자엔 헬륨 풍선들이 매달려 둥둥 떠있었고, 파티 용품점에서 사온 듯한 현수막이 책상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또 뿌려져있는 꽃가루와 평소에 안 보이던 보라색 방석까지.
"하하하하. 이거 하려고 새벽부터 출근했다니깐요."
뻘짓하셨네요.
"감사해요, 호 대리님…."
아, 이거 다 언제 치워….
"그 보라돌이 방석은 에어가 들어있어서 푹신푹신할거에요."
유치원 점심시간에 애기들이나 깔고 앉을 법한 방석에 앉자 '삐요오오오'하는 요상한 소리가 났다. 흠칫 놀라며 의자에서 일어난 성규가 방석을 집어들고 보라돌이 얼굴을 살짝 누르자 또 한번 '삐요오오오'하는 소리가 난다. 혹시나 싶어 방석을 흔들자 안에서 딸랑딸랑거리는 종소리가 난다. 대체 어느 가게에서 이런 걸 파는 걸까.
"맘에 들어요?"
진심 에어 터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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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냥하세요. 남위엔입니다!
벌써 주말 마지막이네요. 개콘이 끝나고 눈을 감았다뜨면 월요일이겠죠?
전 다음주 목요일날 대학 발표가 난답니다!
모두들 합격 기대해주세요!♥
사실 똥줄타서 죽을 것만 같아요....부디 저에게 합격의 기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