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여름 방학이 돌아왔다. 소름 끼쳤던 그날 밤 이후로 나는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오로지 나만을 위한 선택이었다. 어짜피 그날로부터 방학식까지는 고작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었기에… 마음의 진정? 놀란 가슴을 잠시 가라앉히는 쪽을 선택했다. 아저씨와 함께 학교에게 결석 사유를 제출하고 일주일동안은 집 안에 틀어박혀 아무 것도 안했던 것 같다. 아, 물론 아저씨는 만났다. 박지민에 대해 공적인 만남을 가지기도 했고, 사적인 만남도 가졌고… 박지민은 어떻게 됬냐고? 조사를 받긴 받았는데 미성년자에다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별다른 처벌은 받지 못했다고 전해들었다. (이마짚) 조만간 또 만나게 될 것 같아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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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을 겪고, 지금은 아저씨와 나 사이의 사적인 만남 중. 아침부터 걸려오는 아저씨의 전화를 받아보니 맛있는 걸 사준다며 밖으로 나오라길래 헐레벌떡 눕혀있던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를 했다. 최대한 꾸미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아니, 남자를 만나는데…아무리 아저씨여도 조금은 꾸며야지. 안 꾸미면 아저씨가 날 분명 싫어할거야. 못생겼다고 또 놀리겠지.
꾸민 듯 안 꾸민 듯, 집 앞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사복을 입고 나를 기다리는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기다란 기럭지가 참… 경찰스럽기도 하고, 내꺼스럽기도 하고. 괜히 졸린 눈을 하며 아저씨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나를 발견한 아저씨는 미소를 씨익-하고 지어보이며 잘 잤냐 물어왔다.
" 꼬맹아. "
" 왜요… "
" 잘 잤어? "
" 치…난 잘 잤죠. 아저씨는 잘 잤어요? "
" 난 못 잤어. "
" 왜 못 잤데…. "
아무래도 방학인데… 이른 아침에 아저씨를 만나는건 무리였나보다. 안 그래도 일찍 일어나 졸린데 밖에 나와 햇빛을 바라보자니 졸린 눈이 더더욱 감겨오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그런 나를 보더니 피식- 하고 웃더니 양손으로 내 양 볼을 잡고 주욱- 하고 잡아 늘어트렸다.
" 아, 워하능거에여…! "
" 완전 애기네 애기. "
" 앞으로 꼬맹이 말고 애기라고 불러야겠다. "
" 으에어에엑… 애기은 무스은! "
" 애기는 잠이나 더 자라고 할 걸… "
" 괜히 맛있는거 사준다고 했나? "
" …!?!? "
" 밥은 먹어야죠!! "
아쉬워하며 밥은 다음에 먹어야 하는건가 하며 곰곰히 고민하는 척을 하는 아저씨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며 큰소리를 쳤다. 그러자 아저씨는 크게 눈을 떠보이며 졸립지 않아? 밥먹지 말고 잠이나 더 자.라며 날 집으로 다시 들여보내려는 제스쳐를 취했다. 졸림보다는 밥인데… 아저씨가 뭘 모르는거에요! 내가 얼마나… 밥을 좋아하는데! 라며 아저씨를 째려보았다. 그러자 아저씨는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이더니 뭐 먹고싶냐 물어왔다.
" 뭐 먹고 싶은데? "
" 음… 뭐 먹죠? "
" 너가 먹고 싶은 거 먹자. "
" 어… 그러면 아저씨가 전에 잘 한다고 한 그 장ㅇ… "
" 아침부터는 무리겠죠. "
" 장…어 ?"
" … "
" 장어가 그렇게 먹구 싶었구나 우리 탄소? "
" … 그건 아니고, 아저씨가 맛있다고 했으니까… "
" 아침부터는 곤란해… "
아저씨는 갑자기 귀가 새빨게지며 아침부터는 곤란하다고 중얼거렸고, 나는 그런 아저씨에게 눈을 동그랗게 떠보이며 무슨 상상을 하는 거냐며 타박을 했다. 아저씨는 호탕하게 웃으며 장난이라고 했고, 그럼 우리 탄소가 먹고 싶은 장어를 먹으러 가볼까하며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 가자. "
" 맛있는 거 먹으러. "
02
아저씨를 따라 장어 전문점에 도착하니, 엄청 유명한 음식점이었던 것인지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이 많았다. 아저씨는 날 이끌며 안으로 들어가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좋은 음식 냄새가 나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거리고 있었을까, 아저씨는 입가에 미소를 걸치고는 아직도 잡혀있는 내 손을 만지작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 으어… 왜 제 손을, "
" 완전 조그맣다. "
" 헤헤… 제가 손이 조금 작긴 해요. "
" 응, 귀여워. "
" 귀여… 쿨럭쿨럭 "
'귀엽다'. 이 조그마한 단어만으로도 아저씨는 날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사례가 들려 물을 찾자 아저씨는 물이 담긴 컵을 나에게 건냈다. 괜찮냐는 말도 잊지 않은채. 참으로… 다정다감한 남자에요 아저씨는. 엄청… 설렙니다.
" 괜찮아? "
" 예에… "
" 갑자기 귀엽다고 하니까 놀라서 사례가… 헤헤. "
" 천천히 물 마셔. "
물을 천천히 다 마셔가고 있을까 아까 아저씨가 주문했던 장어구이가 나왔다. 좌르르하게 흐르는 윤기에 넋을 놓고 장어만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아저씨는 손에 가위를 들고 장어를 조그맣게 잘라 내 밥 위에 올려주었다. 아저씨의 친절에 또다시 넋을 놓고 아저씨의 얼굴을 보며 방실방실하게 웃어보이자 아저씨는 얼른 먹으라며 내 입안에 작게 자른 장어 한점을 넣어주었다.
" … 우와. "
" 어때, 끝내주지. "
" … 진짜 맛있어요. "
" 다행이다. "
" 더 먹어. "
아저씨는 마저 장어를 작게 자르고는 내가 밥 한숟갈을 뜰 때 마다 밥 위에 장어구이를 한 점씩 올려주었고, 정작 본인은 먹지 않고 있었다. 괜히 나만 돼지같이 먹고있는거 아닌가, 아저씨가 나 때문에 못 먹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젓가락을 집어 아저씨에게 장어를 한점 건네었다.
" 아- 해요. "
" … ? 아니야, 너 먹어. "
" 아, 빨리 아-해요! 팔 아파. "
" … 아 "
아저씨는 내가 건네주는 장어 한점을 입안에 넣고 맛있냐는 내 물음에 끄덕이며 맛있다고 대답을 해 주었다. 아저씨도 얼른 먹으라는 내 타박에 미소를 보이며 너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고 하는 아저씨에 나는 미간을 좁히며 아재같이 말하지 말라고 했다.(단호) 그러자 아저씨는 금새 시무룩해지고는 장어만 묵묵히 먹기 시작했다.
" 아저씨… 아재라고 해서 삐쳤어요? "
" … 아니. "
" 그럼 왜 말은 안하구… 장어만 먹어요오… "
" … "
" 완전 삐친거 같은데… "
" … "
" 말 좀 해봐요, 정경위님… "
" … 장어 먹고 아저씨 아니라는 거 보여줄거야. "
" 예…? "
" 아니 그걸 어떻게 보여줘… "
"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다 있지. "
03
괜히 부끄러워져 아저씨와 눈도 안 마주치고 밥을 뚝딱하고 해치우고는 밖에 나왔다. 이제 제법 시내에 사람들이 많아져있었고 상점들도 하나 둘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제 뭘 할 건지 궁금증이 생겨 아저씨에게 이제 뭐 할 거냐고 물어보자 아저씨는 갑자기 내쪽으로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더니 슬며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 인형 좋아해? "
" … 인형요? 좋아하긴 하는데… "
" 그럼 저기 가자. "
아저씨가 가르키고 있는 손가락을 따라가보니… 그곳에는 인형들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사격장이었다. 아, 아저씨 사격해서 나 인형 따주려는건가. 근데 저거 엄청 어려울텐데… 내가 살면서 인형사격을 성공한 사람들을 다섯 손가락에 꼽으라면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하는 사람을 보는 건 드물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저걸 도전한다니.
" 저거 엄청 어려운데? "
" 내가 저거 따줄게. "
" 뭐요? "
" 저기… 엄청 큰 토끼인형. "
" 에에…? 저거 다 맞춰야 받을 수 있는건데? "
" 내가 다 맞추면 소원 하나 들어주기. "
" 소원? "
" 소원이 뭔데요? "
" 그건 토끼인형 주고 말해줄게. "
아저씨는 내 손목을 슬며시 잡고 사격장으로 가까이 갔고, 경쾌한 음악과 호탕한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아저씨는 주인아저씨에게 돈을 지불하고는 총을 들어 사격을 하기 시작했고, 결과는… 클리어. 아저씨는 모든게 완벽한 남자였다. 사격도 잘하다니…(입틀막) 현란한 사격솜씨를 보고 있는 내 입과 주인아저씨의 입을 다물어지질 않았고, 사격을 끝낸 아저씨는 주인아저씨에게 웃으며 토끼인형을 달라고 하였고 주인아저씨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꼭대기에 매달린 토끼인형을 아저씨에게 건내주었다.
" 자, 토끼인형. "
" 오… 아저씨… "
나는 아저씨에게 엄지손가락을 높게 치켜 세워주었고, 아저씨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커다란 토끼인형을 내 품에 안겨주었다.
" 근데 아저씨 소원이 뭔데요? "
" 음… "
" 왜 뜸을 들여요, 말해봐요! "
" 말하면 들어줄거야? "
" 응! 들어줄게요. "
나는 뜸을 들이며 그 소원이라는 것을 말하기를 머뭇거리는 아저씨를 지긋이 쳐다봐주며 어서 말하라고 재촉해보였다. 그러자 아저씨는 제 눈썹을 긁적거리더니 입을 떼고는 내게 한발짝 가까이 다가와 조용히 그 엄청난 소원을 속삭였다.
" 그… 동영상 지워줘. "
" 무슨 동영… 아, 그… 술취한 동영상이요? "
" 응…. "
" 음… 지우면 나한테 좋은게 없는데! "
" 내가 대신 좋은거 해줄게. "
" 어떤거요? "
좋은거라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아저씨에게 한발짝 가까이 다가가자 아저씨는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내 허리를 한손으로 순식간에 감아 제 몸에 가까이 밀착시켰다. 사람도 많은데 뭐하는거냐며 아저씨의 손을 찰싹하고 때리자, 아저씨는 내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는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 음… 좋은거는. "
" 역시 입맞춤이지. "
" 찐-한걸로. "
경찰의 사담 |
다음편은 키스가…! (의미심장) + BGM : Jeff Bernat - Groovin'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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