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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맞췄고 나는 너에게로 걸어갔다. 한 발자국을 남겨놓고 나는 멈춰서 팔짱을 꼈다. 너는 차렷자세로 그대로 있었다.나에게 한발자국도 다가오지 않았다. 이건 좀 덜 빡치는데 네 표정이 진지한 표정이 아니라, 그게 날 더 빡치게 만들었다.

"머리 길이며, 염색까지.. 살 맛 좀 나나봐?"
"두 말 하면 입 아프지. 요즘 내가 밥이 그렇게 잘 넘어간다. 군대는 아직도 개밥 주나?"
"밥 잘 먹고 다니라는 소리 그렇게 하지마"
"좆같은 군화에 군장 챙겨메고 산길 죽어라 달리던게 이제는 생각도 안 나요"
"군화신고 뛰지 말라는거 돌려서 말하지마"
"김원식이랑 같이 뛰던 연병장 모래바람 어후, 생각만해도 좆같네. 아, 당신 껌딱지는 아직 잘 붙어있지?"
"..나 보고싶었다는 말 그러게 하지마 씨발"
"하하... 무슨 개소리세요. 오해가 지나치시네"

한쪽 입꼬리만 올려 나를 조롱하듯 비웃는 네 앞에서 주먹을 꾹 쥐어보였다. 지금, 지금 이거 나만 비참한 상황이야? 너는 아무런 감정이 안 들어? 벌써 정리가 다 됐던거야 씨발? 열이 오른 얼굴은 이미 새빨개졌을게 뻔했다. 그런 상황에서조차 나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이는 네 모습에 기가 찼다.

"왜 전역했어, 왜 나한테 말도 없이 그냥 나가, 왜!"
"말했잖아 좆같은 개밥에 군화에 훈련에, 그런거 다 지긋지긋하다ㄱ"
"그거 말고"
"그게 아니면 이유가 없어. 당신이 무슨 이유를 찾는건지 모르겠는데"
"나 때문에 나갔잖아. 너.. 너 나 때문에 그만뒀잖아 도대체 왜 그런건데 왜!"
"내가 변덕이 워낙 심한 사람이라. 그것 뿐이야. 군대가 싫어졌고, 당신이 싫어졌어. 그래서 행동으로 옮긴 것 뿐이고. 단지 그 뿐이야"

너는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너의 그런 행동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우리 사이가 그렇게 가벼웠나. 단지 네 변덕에 이렇게 뒤집듯이 우리 사이가 바뀔만큼.. 우리가 그렇게 가벼웠었냐, 이 상황에서도 예전에 네가 입술 다 상한다며 물지 말라고 했던 네 말이 이렇게 나는 귓가에 스치는데.. 진짜. 진짜 좆같아 짜증나.

꾹 깨문 입술은 어느새 비릿한 향을 풍겼고 너는 그제서야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 정적을 깨지는 않았고 끝까지 우리는 고요했다. 다 터져버린 입술로 짓이기듯 한숨을 내뱉곤 너를 응시했다.

"그래, 그래서.. 진짜 그게 다야? 나 안보고싶었냐 개새끼야"
"네"
"나 두번 말하는거 존나 싫어하는거 알지"
"네"
"한 번만 더 물어. 진짜 내가 안 보고싶었던거야 이 씨발새끼야?"
"네"

풀리려던 다리에 간신히 힘을 줬다. 끝까지 너는 내 모든 자존심을 쥐어짜내서 그걸 손쉽게 흩날려버리는구나.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지키고 버텨낸 너와내 사이의 관계는 결국 나만 죽을듯이 잡고 있었던 끈이었고, 내가 잡고있던 끈조차 너라는 타인에 의해 놓치게 되었다. 이제껏 벼텼던 내가 서럽고 안쓰러워 너를 노려봤다. 미묘한 감정의 변화조차 없어보이는 네 모습에 나는 손에 쥔 베레모를 더 꾹 쥘 수 밖에 없었다. 그 상황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너지지 않게 버틸 수 있는 무언가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끝났구나. 우리.. 진짜 완전히 쫑났구나. 자존심에 결국 흘리지 않으려던 눈물 한 방울이 뚝 떨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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