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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 코묘 남학교로 말할 것 같으면 일본에게 무릎을 꿇고 친일파가 된 교장이 세운 명문 사립 고등학교이다.
대부분은 일본인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고 요즘엔 꽤 많은 조선인들이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기숙사제로 이루어져 있으며, 웬만하면 일본인은 일본인끼리, 조선인은 조선인끼리 방을 꾸려준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아무 걱정없이 조선인과 같은 방을 쓰겠지만, 같은 피가 흐르는 조선인끼리도 텃세가 심하다고 해 그만두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코묘, こうみょう. 밝은 빛이라는 뜻의 일본말로 교장이 가장 친애하는 딸 이름을 따서 만든 학교라고 한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엔 구역질이 나서 여러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더럽게 발이나 핥는 주제에 끔찍히 딸을 아끼는 모습이 역겨웠다.
명문 남학교답게 이곳 규칙은 꽤나 어렵고 까탈스러웠다.
함부로 밖을 돌아다녀서는 안되고 함부로 우리말, 즉 조선말을 사용해서는 안 되었다.
늘 학생다운 단정한 차림으로 교복을 생활화하고 양말은 늘 흰색 양말.
잠옷도 이곳에서 준비해주는 잠옷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복도에서 함부로 소리를 지른다거나 노래를 부르면 그 즉시 선도부에 의해 처리가 되고 심하게 학교 분위기를 흐트러뜨려놓으면 교장에게 불려간다고 했다.
학생회장은 이것저것을 설명해주며 빠른 걸음으로 건물을 쏘다녔다.
사내아이라서 그런지 보폭이 나와는 달라 조금 숨을 허덕였다.
설명 해주는 내내 학생회장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학생회장의 시선은 늘 나른했고, 어디를 바라보는지 제대로 감조차 잡히지 않는 눈빛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속을 알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기숙사였다. 기숙사에 들어가니 다른 건물에선 볼 수 없었던 아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은 대부분 단정한 차림새였다. 그 말은 즉, 다들 규칙을 철저히 지킨다는 뜻이었다.
나는 큰 가방을 들고 학생회장의 걸음을 따라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오르면서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의 시선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바닥만 보고 걸었다. 학생회장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조선인이야."
"얼마 예상해?"
"일주일."
"난 3일."
아이들은 나를 손가락질 하며 내가 얼마나 버틸까에 대해 내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선 다들 학생회장을 바라보았다. 여기선 학생회장의 지위가 꽤나 절대적으로 보였다.
학생회장이 걸음을 멈췄다. 걸음을 멈춘 곳은 412호. 내가 지낼 방으로 보였다.
"여기가 네가 지낼 곳이야. 책상 위에 팻말을 올려 놓았어. 그 팻말에 네 이름을 적고 문에 걸어 놓는게 오늘 네가 할 일이야."
팻말, 412호 아래에 하나의 팻말이 보였다. 사무라 준이치로. 같은 방 아이의 이름.
그나저나, 학생회장은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내게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다.
학생회장은 문고리를 잡아 돌리지 않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 들어가지 않지? 뭐 더 물어볼 게 있나."
"어, 없어."
"그럼 들어가."
학생회장은 그렇게 돌아가버렸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방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활짝 열린 창문, 두개의 침대와 두개의 책상.
그리고 잠옷을 입고 목에 밧줄을 감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소년은 내 등장에도 아랑곳 않고 태연하게 목에 밧줄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런 소년의 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라 재빠르게 뜀박질을 하며 소년을 밀쳤다.
소년은 그대로 쓰러졌다. 그러곤 이 순간을 왜 방해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순간 숨이 차올랐다. 가슴이 미친듯이 두근거리고, 또 두근거렸다.
한바탕의 소란에 모두가 412호 방 문 앞으로 모였다. 그리곤 나를 손가락질하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또 사무라야. 제대로 신고식 해주는 구만."
"어이, 신참. 그 방에 살려면 매일 봐야 할 장면이야."
"그래서 그 방에 배정받은 애들은 3일이면 뛰쳐나온다고."
"사무라, 살살 해주지 그래."
복잡하게 들려오는 일본말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사무라는 아이들에 말에 미치도록 태연해보였다.
흐트러지지 않은 일자 눈썹과 올곧은 입술. 사무라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조선인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본인 같지도 않았다. 사무라는 이 세계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다.
사무라는 주저 앉은 나를 밀치고 성큼성큼 문 앞으로 걸어가 내 가방을 챙겨 들었다.
그리곤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입술로 몰려 있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광대 보듯 쳐다보지 마. 기분 더러우니까."
그렇게 사무라는 방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