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각지 못한 재회
"다녀오겠습니다."
차에서 내려 심호흡을 하고 눈 앞에 있는 문을 열어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어요?"
"애플론 폭행사건 조사받으러 왔습니다."
검찰청 취조실에 앉아 10분쯤 기다렸을까. 문이 열리고 검사가 들어온 듯 했다.
"조사 시작하겠습니다. 신원확인 하겠습니다. 나탄소 본인 맞으십..."
그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서로 말을 잃었다.
나는 눈을 피했고, 그는 나를 빤히 보는 듯 했다.
"...취조 계속하세요"
"너가 왜 여기 있어."
"...."
"휴..."
기본적인 문답이 계속되었고, 난 회사에서 미리 지시받은대로 답할건 답하고 불리한 건 입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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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7시간의 밀고당기는 취조가 끝났다.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보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지금 나탄소씨 연락처가 제 눈에 보이는데, 연락해도 됩니까"
"그러세요."
취조실을 나와서 변호사님께 전화걸자 아래층에서 이미 대기하고 있고, 사장님께서 기다리시니 빨리 내려오라는 소리에 나는 천천히 스트레칭하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헐레벌떡 비상구 계단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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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과 사장님을 뵙고 난 후 오피스텔에 도착해서 난 편한 복장으로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난 "주식회사 대정"의 재무팀장이다.
대정은 겉으로 보기엔 일반 중견기업이지만 속내는 그냥 폭력조직이다.
그래서 직원들도 모두 같은 직급별로 2명씩 존재하는데, 재무팀장도 마찬가지로 2명이다.
주식회사 자금담당과 조직 자금담당.
나는 조직의 자금담당 재무팀장이다.
「메디컬사업부 이번 달 정산서 마무리지어서 내일까지 보고 올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난 피식 웃었다.
메디컬은 무슨. 채무자들 장기매매를 그렇게 포장하는 것도 웃기는 꼴이다.
그래도 하라면 해야지. 어휴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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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가며 정산내역 정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도어락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나탄소~이리와"
"일해야돼요. 오늘은 안돼"
"밖에서 이미 하고 왔어. 키스나 하자"
"취했으면 사장님 집에 들어가지 왜 내 집으로 와요."
"이게 니 집이냐. 내 오피스텔이지"
민윤기 사장. 조직 부두목이자 내가 사는 이 오피스텔 주인.망나니.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이번 폭력사건도 이 사람이 때린 거 내가 덤터기 쓰고 조사받으러 갔다.
나는 민윤기에게 재무팀장이 아닌 그저 많은 성욕해소용 여자들 중 하나에 불과했고, 그걸 이유로 민사장은 내 사생활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비밀번호도 지 맘대로 정하고
나한텐 안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지문인식으로만 집에 들어올 수 있다.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상황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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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라고 부르라니까 끝까지 사장님이래."
"내가 왜 사장님을 오빠라고 불러요."
"나랑 가까워져서 안좋을 거 없지 않냐. 거리두지 마."
"거리 두면 나 죽일거예요?"
"하는 거 봐서."
"사장님이 나 죽이기 직전까지만 거리둘게요."
항상 난 사장님에게 목숨으로 많이 협박당했다.
목 졸리는 건 일상이고, 칼 가지고 겁주다 사장님이 진짜 목 뒤를 그어버린 적도 있고, 피부가 괴사될 때가지 뺨을 맞아본 적도 있고, 뭐 말하자면 입아프다.
처음엔 너무 무서워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는데, 요즘은 그냥 죽지 못해 사니까 주관없이 시키는대로 살다보니 무덤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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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일하고 아침에 회사에 나와 또 컴퓨터를 켜는데, 핸드폰이 울리면서 문자가 왔다.
[전정국입니다. 시간될 때 만납시다.]
[12시에 서초역에서 뵙겠습니다.]
보고싶었다. 그런데 이런 관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보고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튕기지 않고 바로 약속을 잡았다.
지금은 10시. 11시 30분에 출발할건데 남은 한시간 반동안 민윤기만 오지 않는다면 나갈 수 있다.
제발 오지마라 민윤기...!
이제 3장만 더 마무리지으면 6개월치 정산작업이 마무리지어진다.
빨리 하고 민윤기 눈에 안띄게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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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20분. 작업 끝! USB에 파일 저장 마치고 화장 고친 후 사무실을 나가려는데,
"어디가"
앗....민윤기...하..오늘 왜 이러냐.
"검찰 추가조사 받으러 가요."
"추가조사있단 소리 못들었는데."
"담당검사한테 전화해보시던가요."
민윤기가 웃으며 다가왔다.
그리곤 내 허리를 감싸안더니 옆구리를 꽉 움켜쥐었다.
살이 뜯겨나가는 느낌이었지만 앞에 조직원들이 있었기에 이악물고 참았다.
"말 예쁘게 해. 건방지게 굴지 말고."
"으윽..."
"살 좀 빼. 허리에 무슨 살이 이렇게 많아."
"후으...네.."
"양변호사랑 같이 가."
"양변호사님 출장가셨어요. 그리고 나 혼자 가도 돼요."
"내가 허락 안 해. 김석진 보낼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오늘은 사석에서 만나기 글렀네.
[나탄소입니다. 검찰청으로 직접 가겠습니다. 나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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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에 도착했다.
"김실장님 바쁘실텐데 가서 일 보세요. 끝나고 알아서 갈게요."
"사장님께서 픽업까지 해오래. 기다릴테니까 편하게 받고 와."
오랫동안 만나기도 글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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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 검사님 만나러 왔는데요."
"전정국 검사님 7층 705호에 계십니다. 여기 방문신청서 작성하시고 방문증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방문증을 가지고 7층으로 올라가면서 난 왠지 모르게 떨렸다.
705호 앞. 노크 후 들어가니 전정국이 일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왜 여기로 왔어. 밖에서 만나지."
"회사에 추가조사 받는다고 뻥치고 나오느라고."
"어쩐지. 아까 부부장검사님이 애플론 추가조사 있냐고 물어보시더라."
"그래서...뭐라 그랬어?"
"대충 눈치채고 빼먹은 거 있어서 불렀다고 하고 둘러댔어. 지금은 그 조서 만드는 중이었고."
휴...역시 전정국.
나는 사무실에 놓인 소파에 앉았고, 전정국은 담요를 가져와서 내 무릎에 덮어준 후 맞은 편에 앉았다.
"못 본 사이에 많이 달라졌네. 그 옷차림부터."
생각지 못한 전정국과의 재회. 우리의 시작은 28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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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의 공백 후 새 작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번 작은 딱 2명의 멤버만 나왔다면, 이번엔 전원까지는 확답드리지 못해도 많은 인원이 등장할 예정이니 재밌게들 읽어주시고 암호닉 신청해주세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