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핀잔
: 첫만남을 가장한 재회.
06
05 last sentence
문을 열자마자 마주한 건, 정호석. 그 남자였다. 그는 벽에 기대 가만히 서 있다가, 인기척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에게 빠르게 다가가며, 말했다.
"이봐요. 진짜 미쳤어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총을 쏘는 게 말이 돼요?"
남자는 제게 말을 쏘아대는 나를 초점없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피가 묻는 내 손에 제 시선을 고정시켰다.
"안 죽었잖아."
제 말을 끝으로 남자는계단을 올랐다.동시에그의 가까운 지인처럼 보이는 사내가 비상구 문을 열고 들어와, 그를 따라 올랐다.그의 지인은 나를 향해 말했다.
"금방 올게요. 1층 로비에서 기다리세요."
**
"미안해요. 오래 기다렸어요?"
내게 1층 로비에서 기다리라던 남자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모습을 보였다. 그는 뛰어온 건지, 흐트러진 제 머리를 잠시 정리하며 물었다. 오래 기다렸어요? 하고. 나는 남자의 물음에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옮기자고 말했다. 나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나 싶어, 되물었다.
"여기서 말하면 안 되는 건가요?"
남자는 내 물음에 내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주위 좀 보세요.' 남자의 말에 슬쩍 고개를 돌리니,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해 있었다. 그의 말을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호석이한테 대충 얘기는 들었어요."
남자는 제 멋대로 시킨 음료를 가져와 내밀었다. 카페 안은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음료를 받아들며, 생각했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다는 걸까. 뭔가를 이야기 할 만큼의 사이인가. 그와 내가. 그냥 어쩌다가 그리고 또 다시 어쩌다가. 다시 한 번, 어쩌다가. 그냥, 그렇게 엮인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남자가 테이블을 두어 번 노크했다. 똑똑. 남자의 인기척에 정신을 차린 내가 답했다. 죄송해요. 생각 좀 하느라. 남자는 내 대답에 충분히 그럴만 하다며. 공감을 표했다. 그리고는 곧 바로 본론을 이야기했다.
"오늘 일은 비밀로 부탁드려요."
그의 말투와 목소리는 전혀 부탁하는 투가 아니였다. 그냥, 형식적인 겉표현이었다. 나 역시 알고 있었다. 내게는 오늘의 일을 비밀로 하고 말고의 권한이 없었다는 것을.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말 할 생각도 없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별 다른 사고없이 돌아가는 게 내 목적이었기에. 남자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화가 잘 통하네요. 우리.' 하고 웃어보인다. 그리고는 묻는다.
"호석이가 어떤 아이인지."
"..."
"대충 감은 와요?"
"제가 그 감이 왔어야 됐나요?"
"네?"
"제가 본 거라고는 술 먹고 괴팍하게 운전하고"
"..."
"사람 총으로 쏘고."
"..."
"죽지 않았으니 됐다는."
"..."
"그런 사람이었는데."
"..."
"제가 이 이상으로 그 남자한테 느꼈어야 할 게 있어요?"
사실이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느낄 시간이라고는 저게 전부였다. 그런 사람한테 어떤 아이인지 감이 오냐니. 남자는 내 말에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한 채로 의자에 제 등을 기댔다.
"계속 더 말해보세요."
"저게 전부ㅇ"
"보여지는 것만 믿는 사람이었나봐요."
"...네?"
"아닐 것 같았는데."
남자는 지나치게 여유로웠다. 나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 같기도 했고. 나 역시 의자에 등을 기대며, 되물었다.
"뭘 보고 아닐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
"우리 오늘 초면 아닌가."
"우리는 초면이죠."
"그런데 자꾸 뭘 다 아는 것처ㄹ."
남자가 조소를 지으며 의자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내 귓가에 속삭였다.
호석이랑은 어제 오늘이 첫만남이 아닐거예요.
힌트를 좀 주자면.
박지민. 이거면 되려나.
남자는 제 말을 끝으로 내게서 멀어졌다. 그는 자리를 벗어나려는 듯, 벗어뒀던 자켓을 챙겨들었다. 나는 황급히 그의 팔을 잡아채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ㅇ"
"아. 그리고."
"..."
"호석이 사람 못 죽여요. 아까 그 거리에서 총 쏴서 죽이는 거, 당신도 할 수 있는 거였어."
"..."
"당연히 이것도 비밀."
*
남자와 헤어진 뒤, 곧장 회사로 향했다. 비서실로 들어가자 통화 중인 지민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지민아! 내 목소리에 뒤를 돈 아이는 전화를 끊으며, 내게로 빠르게 다가왔다. 아마도 내게 전화하고 있었겠지. 그는 내 어깨를 조금은 거칠게 감쌌다.
"너 뭐야!"
"...왜ㄱ"
"어딜 가면 간다고 말을 해야 될 거 아니야! 갑자기 그 새끼랑 나가면 걱정 할 사람들 생각은 안해?"
아이의 등 뒤로, 엘레베이터와 지하 주차장의 씨씨티비 화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와 내가 함께 있는 순간들이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비상구로 걸음을 옮겼다. 분명 지민이도 그를 안다. 그렇기에 그를 '그 새끼'라고 칭했겠지. 연회장에 온 사람들은 한 명도 빼지 않고, 고위층 자제들이다. 그가 그들에게 그런 호칭을 사용했을리 만무했다. 나는 비상구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를 몰았다.
"너 정호석 알지."
"...뭐?"
"알잖아. 정호석."
"무슨 소리를 하는거ㅇ."
"너 지금 다리 떨잖아."
"..."
"너 거짓말 할 때 그래."
"..."
"어떻게 아는 사이야?"
"..."
"너가 말 안하면, 나 정호석한테 가서 물어볼거야."
"야."
정호석에게 가서 물어보겠다는 내 대답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지민이었다. 더욱 이상했다. 나는 그를 추궁했다.
"뭔데. 무슨 사이인데 내가 몰라."
"..."
"나 너랑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 같이 나왔어."
"..."
"내가 이름도 모르는 네 친구가 있다는 게 말이 되냐고."
아이는 답답한지, 제 머리를 거칠게 헝클였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적막이 흐르고, 지민이의 입이 열렸다.
우리 고아원으로 봉사 다닐 때, 그 때 알게 된 애야. 우리 학교 애 아니여서 너가 몰랐고, 걔는 고아원 애였어.
우리가 도와주는 애. 그냥 그렇게 본 게 끝이야.
오랜만에 보는 지민이의 헝클어진 모습이었다. 그는 분명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아니, 사실 안에 감춰진 거짓이 있었다.
여전히 그의 왼 발이 불안하게. 떨렸다.
그리고 그의 왼 발보다.
아이의 시선이 불안했다.
**
[정호석, 그의 이야기]
"엄마 아빠랑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
"..."
"괜찮아. 호석아. 말해도 되는거야."
"...동물원 가는 거요..."
"왜 동물원을 가고 싶어?"
"엄마랑 아빠랑 동물원에 가자고... 약속했는데..."
"응."
"못갔잖아요..."
"그렇구나. 약속했었구나!"
"...약속은 지켜야 되는 거라고... 엄마가 그랬어요."
TV 화면을 가득채운 아이의 얼굴이었다. 아이는 제 앞에 있는 카메라가 부담스러운지,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기 바빴다. 그러면서도 제 앞에서, 제게 질문을 하는 작가의 물음에는 또박또박 답을 해나갔다. 호석이 9살 때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호석이네 부모님이었다. 호석이는 제 방에서 숙제를 하며, 들뜬 마음으로 부모를 기다렸다. 내일이면 그토록 저가 가고 싶어하던, 동물원에 가는 날이었기에. 내일의 숙제까지 미리해야 해서, 머리가 조금 아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동물원에 가니까. 하지만 제가 숙제를 다 마치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 부모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뜬 눈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아이는 그 날을 잊지 못한다. 해가 저물고, 달이 떠오르고, 달이 저물고, 다시 해가 떠오른 그 날을.
대형 추돌사고였다. 트럭이 그의 부모가 탄 승용차를 덮쳤다. 아이의 부모는 한 순간에 사지가 마비됐고, 의식을 찾을 수 없었다. 주변에 친척이라고는 하나없는 가정이었다. 아이는 부모의 상태도 정확히 알 지 못한 채로, 학교가 끝나고 집이 아닌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으로 향하면 제 부모는 영화에서 본 기억이 있는 미라처럼 저를 반겼다.
그들의 이야기가 동네를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동네의 다큐 피디에게 그들의 이야기가 흘렀다. '주변에 친척 하나 없이, 부모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 어린 아이.' 모금을 받기에 충분한 스토리였음이 분명했다.
*
그들의 이야기는 대한민국을 달궜다. 전국 각지, 세계에 있는 동포들에게까지 크고 작은 돈이 몰려 들어왔다. 모금은 순식간에 억단위를 넘었고, 그들을 후원하고 싶다는 사람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피디는 자신의 예상대로 되어가는 상황에 기뻐함과 동시에 쉬이 움직이지 못했다. 좋은 의도로 그들 가족을 돕고 싶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뜨거운 메스컴과 대중의 관심 그리고 모금액이 버거웠다. 방송사의 압력이 들어왔다. 그들의 이야기를 2회에서 5회로 늘려라. 분명 시청률 때문이었다. 더 이상의 노출은 그들에게 득이 될 게 없었다. 피디는 모금액도 충분하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했지만. 그들에게 아이와 부모는 도움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였다. 저들이 도움을 받을 대상이었지.
그러던 중, '두드림'이라는 대기업에서의 후원이 들어왔다. 지금까지 모인 후원액만큼의 금액이었다. 피디는 대기업의 후원액까지 공개하며, 이제 더 이상의 후원이 필요하지 않다는 방송을 끝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접었다. 일방적인 선택이었다. 피디는 그 선택으로 인해 방송국에서 제 자리를 잃었다. 엄청난 후원액이 피디에게 주어졌다. 그는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을 어떻게 그들에게 전해주어야 하나 싶었다. 가족이라고는 의식이 남아있는, 9살의 호석이 뿐이었으니.
그는 후원액 전부를 '두드림'에 맡겼다. 대기업인만큼 저보다는 이런 금액에 익숙할 터였다. 평소 평판도 좋은 곳이었다. 그는 기업에 돈을 맡기며, 이 돈을 아이에게 사용해달라 부탁했다. 아이 부모의 수술비로, 아이의 생활비로. 기업은 생각보다 쉽게 그의 제안을 받아드렸다. 저들이 후원한 곳이니, 자신들이 끝까지 책임지고 케어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이 부모의 수술은 진행되지 못했다. 부모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고,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쌀쌀히 식어갔다. 대중들은 저들이 돈을 후원했다는 것을 끝으로, 자신들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방송국 측은 그들의 모금액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수술비용과 입원비용까지 청구해서 공개했다. 세상은 그들에게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 부모의 수술은 시작도 되지 않았다. 억단위의 후원금은 여전히 '두드림'에 머물렀다.
아이는 의사의 말을 믿는 수 밖에 없었다. 제 부모는 수술을 받던 중에 죽었다고 한다. 제가 학교에 간 사이에 말이다. 아이는 제 부모의 죽음의 의미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울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면서도 울지 않았다. 사람들이 제 어깨를 감싸 안으며 힘을 내라고 말 할 때에도, 그 때에도. 몰랐다. 왜 자신이 힘을 내야 하는지.
아이가 '힘내'라는 말을 이해하게 된 때는.
고아원에 들어가, 제 또래 아이들과 다 같이 잠에 들 때였다.
아이가 잊지 못하는, 또 다른 하루의 밤이었다.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이번 화부터 알콩달콩 할 거라고 해놓고, 과거 이야기를 가지고 왔어요...ㅎ
과거 이야기가 먼저 나와야 여러분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이, 이해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혹시나 잊으셨을까봐...! 두드림은 여자 주인공의 아버지 회사 이름입니다.)
앞으로 지민이의 이야기 그리고 탄소의 이야기가 과거로 한 번씩 나올 것 같아요.
암호닉은 글 먼저 올리고, 천천히 추가할게요 -
다정한 사람들
- 암호닉 신청 했는데, 없으신 분들은 말씀 해주세요!
강여우 / 호비요정 / 전정국 극성맘 / 정꾸야 / 지민이 바보 / 홉썸 / #참쁘# / 뾰로롱(하트) / 룬 / 인연 / 찜빵 / 꾸겻 / 뜌 / 1220 / 정구기냥 / 멜랑꼴리 / 윤기윤기 / 방소 / 0894 / 라슈라네 / 늘봄 / 청보리청 / 탱탱 / 컨태 / 미자 / 요랑이 / 엘런 / 쟈몽 / 자몽자몽 / 나비46 / 꾸기얀 / 말랑 / 풀네임이즈정국오빠 / 10041230 / 태누나 / 짐짐 / 고딩정국 / 낮누 / 메리호시기마스 / 고짐 / 굥디굥디 / 토끼 / 민윤기다리털 / 골드빈 / 정연아 / 둘리여친 / 슈가망개쿠키 / 꽃소녀 / 수학여행 / 오십꾹 / 잉챠 / 호바리 /삐리 / 소진 / 130613 / 피카피카 / 쟈가워 / 바순희 / 찰리 / 꾸쮸뿌쮸 / 푸른하늘/ 간장밥 / 탱 / 호비 / 리자몽 / 됼됼이 / 쁘요 / 듀크 / 빵빵맨 / 벚꽃이진(별) / 체리마루 / 헤융 / 슙슙이 / 압솔뤼 / 쿄이쿄이 / 호비의 물구나무 / 바우와우 / 토끼정 / 야꾸 / 지블리 / 저장소666 / 삐삐걸즈 / 민윤기다리털 / 슙기력 / 쿡 / 자몽 / 불타는고구마 / 화이트초코 / 밍뿌 / 달꾸 / 헹구리 / 정꾸기냥 / April snow / 뚜르르 / 맙소사 / 입틀막 / 또또 / 삼다수 /청록 / 코코몽 / 무네큥 / 지팔 /엘런 / 수학여행 / 숙자 / 다민 / 꽃오징어 / 핑크공주지니 / 음오아예 / 노랑 / 스타일 / chouchou / 모찌섹시 / 진진 / 윤기와 산체 / 소뿡 / 귤 / 들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