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
『 』속 장면 위에 경수가 말하는 목소리가 덧씌워 진다고 생각하면 보기 편할거에요. 경수 목소리의 역할이 나레이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안녕하세요, 도경수씨
아, 네. 안녕하세요.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네.
편하게 앉으세요. 마음도 가볍게 가지시고.
네..
자, 도경수씨가 해주실 것은 간단합니다. 그냥 이야기를 해주시면 되요.
...
도경수씨의 이야기. 특히,
...
김종인씨와의 이야기부터 사건이 터진 그 날 밤의 이야기까지.
...
가볍게 마음먹으세요. 도경수씨는 그저 증언을 하시는 것뿐입니다.
네..
시작하시죠.
*
*
*
...저와 남편은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였어요. 어릴 때.. 그러니까 아주 어릴 때부터. 종인이는 제 옆집에 사는 한 살 어린 동생이었어요. 제가 이사를 온 옆집에 종인이가 살았죠. 종인이는 저를 참 잘 따랐어요. 저희는 금새 친해졌어요. 서로의 비밀까지 공유할 만큼...
『형』
『응?』
『나 오늘도 아파. 여기랑, 여기랑, 여기랑, 또 여기랑...』
『이리와. 약 발라 줄게.』
저희는 언제나 함께였어요. 종인이 곁엔 제가 있었고 제 곁엔 종인이가 있었어요. 17년이네요. 오래됐죠? 20년이 가까운 시간을 저희는 늘 붙어 있었어요. 언제부턴가 사랑하고 있더라구요. 우리는 한 번도 사귀자거나, 뭐 그런 따위의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에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운명? 그렇게 받아 들여도 될까요. 하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설명이 안 되는 사이이긴 해요. 사실 어떻게 친해졌는지도 이제는 흐릿해진 일이네요.
그냥 제 기억 속 저희는 언제나 놀이터에서 모래성을 쌓고 놀거나
『형, 뭐해?』
『성 만들어.』
『성?』
『응. 모래성』
『여긴 누가 살아?』
『여기? 아무도』
『그런 게 어딨어.』
집 문 앞에 기대서 노래를 부르거나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
『밥 먹는다-』
『...무슨 반찬』
『개구리 반-찬』
『더 크게 불러』
『죽었니 살았니!』
『더 크게』
『죽었다!』
『잘했어』
그런 자질구레한 찌꺼기 같은 기억들뿐이죠. 정말 별 것 없어요. 어릴 때 부터 제 남편은 제 말을 잘 들었어요. 착한 애니까.
『야-』
『...』
『야-』
『형이라고 해야지』
『형?』
『응. 형. 경수 형.』
『경수 형』
『그래. 경수 형.』
그래서 그런가. 저희 둘은 말이 별로 없는 편이에요. 생각해보면 십 몇년의 세월을 생각해 봤을 때 딱히 둘 사이에 많은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굳이 말로 안 해도 아는. 눈빛을 보면 다 알았어요. 지금 뭘 하고 싶은지, 뭘 먹고 싶은지. 그래서 전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저희는 3년 전, 결혼을 했어요.
『행복하게 해줄게』
『그래』
『형』
『응?』
『사랑해』
『나두』
조촐한 결혼식이었죠. 양가 부모님은 없었어요. 오직 저희 둘 뿐인 결혼식이었죠. 도시 외곽의 한 작은 성당에서 반지를 나눠 꼈어요. 아마 성모 마리아는 우리를 저주할거에요. 아무래도 상관없었죠. 저희 둘만 있으면 괜찮았어요. 양가 부모님이요? 종인이네 부모님은 돌아가신 지 오래였고 저희 부모님은 올 턱이 없었죠. 아무리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고 해도 아직 어른들은 받아들이기 힘드신 게 사실이죠. 형사님도 생각해 보세요. 형사님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똑같은 거 달린 남자애를 남편이라고 데리고 오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이런, 제가 좀 지나친 것 같네요.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아무튼 결혼 생활은 행복했어요. 아주, 아주. 지나치게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저희 둘은 결혼 전에도 같은 집에서 살았었어요. 결혼 후라고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죠. 같은 집이었고 같은 공간이었죠. 하지만 다르더라구요. 그러니까 되게 결혼이라는 단어가 참 의미심장해요. 부부라는 이름 아래에서 한 침대에서 눈을 감고 눈을 뜬다는 건 정말 기분이 묘한 일이더군요. 괜히 아침에 막 일어나서 부은 얼굴이 신경 쓰이고 부스스한 머리도 보여주기 싫고, 단내가 올라올 입을 남편 앞에서 열기도 싫었죠. 몇 년을 봐온 사이면서 새삼 부끄러워지더라구요. 저는 그때에서야 느꼈죠. 아, 이게 바로 신혼이구나. 결혼은 행복한 거구나.
『으, 국 짜지 않아?』
『왜? 괜찮은데?』
『짜, 짜. 먹지마 그냥.』
『싫어. 네가 해준 건데 어떻게 안 먹어.』
저희 남편은 저를 많이 좋아했어요. 저도 저희 남편을 물론 끔찍하게 사랑했죠. 제가 그랬죠, 17년을 곁에 있던 사이라고. 그런데도 그 흔한 권태기도 한 번 없었어요. 신기하죠? 그만큼 저희는 잘 맞았고 부딪힐 일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연애하는 거랑 결혼은 다르다고. 딱히 다른 것도 없던데요. 연애나 결혼이나 저희 둘이서 사랑하는 건데 뭐가 달라질까요. 오히려 더 사랑이 깊어지면 깊어졌지. 제가 오버하는 것 같이 들리시죠? 하지만 진짜에요.
『하아, 하아..』
『내, 읏, 이름 불러』
『종인.. 하읏.. 아, 김종..인』
『한 번 더』
『아응, 종인아, 김종인, 흐읏.. 김종인』
세상에 남겨지는 기분을 아세요? 저희는 알거든요. 저희한테는 세상에 저희 밖에 없었어요. 제 남편, 그리고 저. 저희만 남겨진 세상에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감정을 줄 수 있겠어요. 제가 왜 자꾸 이렇게 말을 하는 지 이해가 잘 안가시겠죠. 하지만 저희는.. 저는 필사적이었어요. 남들은 모르겠지만.
『종인아 비타민 먹어』
『아, 깜빡했다. 고마워. 근데 이거 진짜 오래 먹는 거 아니야?』
『그래두. 네 몸에 좋으니까 잘 챙겨 먹어.』
『알았어. 몇 년 동안 먹어서 그런지 안 먹으면 허전해』
저는 종인이가 평범하게 살 길 바랬어요. 평범하게 남들처럼, 남들만큼 행복하게 그렇게 살기를. 그러기 위해선 종인이를 대학에 보내야 했어요. 종인이가 열아홉이던 때 저에게 말하더군요. 대학을 가지 않겠다고. 이유는 뻔했어요. 제가 대학을 가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대학을 포기하고 일을 택했어요. 종인이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으니깐. 그러다 보니 저 까지 대학 다닐 형편은 안되더라구요. 하지만 종인이는 보내야 했어요.
『대학 가』
『싫어』
『말 들어 종인아』
『형이 가. 』
『종인아.』
『...』
『너 나 안 먹여 살릴 거야? 응?』
왜 제가 아니라 종인이였냐구요? 당연하잖아요.
『...알았어』
종인이니까요. 전 종인이를 위해선 뭐든지 해 줄 수 있어요. 죽으라면 기꺼이 죽을 수 있고 도둑질을 하라면 무슨 물건이든 가리지 않고 훔쳐다 줄 거 에요. 종인이를 위해서라면. 종인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저는 매일 일을 했어요. 하루에 아르바이트 두, 세 개는 기본이었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됐었어요. 학비랑 생활비 모두 감당하려면 아르바이트 하나로는 택 도 없었죠. 편의점, 서빙, 배달, 전단지.. 정수기도 팔았었는데. 그 때 다단계에 안 좋게 걸릴 뻔 했는데 참. 지금 생각하면 잘 해결 되서 다행이에요. 그렇게 결혼 생활의 2년 반이 흘렀어요. 그리고 약 반 년 전. 종인이가 졸업을 했죠. 종인이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어요. 원래 공부를 잘하던 애였으니깐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취업난이다 뭐다 남들은 골머리를 앓던데 종인이는 우수한 성적 때문인지 바로 취업에 성공했어요.
『경수야』
『응?』
『나 합격했어』
『정말?? 진짜??』
『응. 바로 너한테 전화한 거야. 축하받고 싶어서』
『축하해』
『고마워.』
기쁜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저한테 건 전화가 아직도 생생해요. 큰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름을 대면 다 알만한 그런 회사였어요. 종인이의 전화를 받고 저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울었어요. 지난날의 모든 일들이 파라노마처럼 지나갔죠. 종인이가 드디어 사회까지 발을 내 딛는구나. 내가 종인이를 이만큼 살렸구나.
그 날 저희는 케이크와 샴페인으로 축하를 했죠. 찬장의 딱 두 개 밖에 없는 잔에 샴페인을 채우고, 짠-하며 잔을 부딪치고, 달디단 케이크로 마음에 풍요로움을 더했죠. 분위기에 취해 섹스도 했어요. 그 날 밤은 아마 제 인생 최고로 뜨겁던 밤일 거 에요. 섹스에 지쳐 잠이 들고 다시 아침이 와 햇살에 눈을 뜰 때 까지. 그리고 그 일이 며칠이 반복이 되어 어느덧 종인이의 첫 출근날이 다가올 때 까지도 아무도 몰랐을 거 에요. 사회라는 곳에 나간 종인이가 어떻게, 어떤 식으로 변할 지. 저를 버린다는 것 까지도...
종인이가 회사에 다니기 전, 종인이를 위해 정장을 샀어요. 다섯 벌. 종인이가 뭘 이렇게 많이 사왔냐고 구박을 했었어요. 종인이가 하도 저를 혼내기에 저는 우울한 상태였죠. 종인이가 싫어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데
『...종인아』
『응』
『잘 어울린다』
『..진짜?』
『응. 예뻐.』
제가 선물한 옷을 입고 나온 종인이를 보는 순간 그런 감정은 씻은 듯이 사라지더라구요. 종인이는 정장이 무척 잘 어울렸어요. 몸매가 좋은 덕분인지 사실 어울리지 않는 옷이 없긴 하지만 특히 정장은 정말 멋있었어요. 종인이도 제 말에 기분이 좋은 듯 웃어 줬어요. 종인이가 저를 안고 말했어요. 고마워. 저도 종인이를 마주 안아 주었죠. 생각보다 종인이가 잘 자라 주어서 고마웠어요.
다음 날부터 종인이는 회사에 출근하기 시작했어요. 회사에서 퇴근하는 종인이를 기다리는 건 지루한 일이기도 했지만 무척이나 설레는 일이기도 했어요. 그 때 정말로 저희가 부부가 된 게 실감이 났죠. 저는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고 종인이가 없는 시간동안 글을 썼어요. 원래 작가가 꿈이었었거든요. 종인이 대학 때문에 포기했지만. 그렇게 낮에는 글을 쓰다가 슬슬 해가 기울 때쯤이면 종인이와 먹을 저녁을 준비했어요. 저녁에 퇴근을 한 종인이는 식탁에 앉아서 저에게 하루 일과를 얘기해 주었죠. 모든 것이 괜찮던 시간이었어요. 남편도 괜찮고 저도 괜찮고. 정말로 모든 것이 괜찮았죠. 하지만 이런 시간은 길게 지속되지 못했죠. 남편은 사회에 속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오늘회식이라 늦을거같아 먼저자 사랑해
-남편- 』
저는 혼자 저녁을 먹는 일이 많아졌어요. 많게는 일주일에 세 번. 가끔 남편은 주말에도 회사로 출근했죠. 남편은 저에게 언제나 먼저 자라고 말을 했지만 저는 남편을 기다렸어요. 남편이 들어오면 밤 1시가 넘어가는 늦은 시간이었죠. 그러면 남편은 저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꼭 안아 주었어요. 그리고는 피곤에 지쳐 씻자마자 잠이 들었죠. 잠자리는 한 지 오래였고 스킨쉽도 전보다 훨씬 적어졌죠. 일주일 내내 바쁜 남편을 보며 아, 종인이가 정말로 사회에 속했구나 생각했죠. 생각보다 잘 적응해 주어서 기쁜 마음도 있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어요. 매일 매일 지친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종인이를 볼 때 마다 무거운 짐이 하나하나 어깨에 얹어지는 것 같았죠. 하지만 제 걱정은 그다지 오래 가지 않았어요.
어느날 종인이가 잔뜩 취해서 집에 들어왔어요.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술에 취해 있더라구요.
『경수야』
『종인아..』
『우리 경수 여깄네?』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셨어』
『우리 경수 여깄다..』
종인이는 유달리 기분이 좋아보였어요. 저를 끌어 안고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춰 주었죠. 평소라면 저도 종인이의 입술에 뽀뽀라도 해주었을 거에요. 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어요.
『경수야 나 피곤하다...』
『...』
『먼저 씻을 게.. 너도 빨리 씻구 와..』
남편의 몸에서 너무나도 진하게 여자의 향수냄새가 풍겼거든요. 회사 여직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저렴한 싸구려 향이었어요. 순간 구역질이 올라왔죠. 싸구려 향수에 머리가 어지러웠어요. 종인이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 지 바구니 안에 싸구려 향에 쩔은 셔츠를 벗어두고 씻으러 들어갔죠. 거실에 싸구려 향수냄새가 가득했어요. 종인이가 씻고 나오자 마자 저는 빨래를 시작했어요. 비누로 셔츠를 문지르고 문질렀죠. 하지만 저는 그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았어요. 그냥 그 셔츠를 귀찮더라도 세탁소에 맡겨야 했어요. 그랬더라면 남편의 셔츠에 뭍은 여자 립스틱 자국이며 화장품 자국들을 보지 않았을 텐데...
그 이후 그런 날이 자주 있었어요. 종인이는 늘 술에 취해 있었고 몸에선 여자 향수 냄새가 났죠. 저는 종인이를 보고 웃어줄 수 없었어요. 불안한 마음을 씻을 수 없었죠. 하지만 저는 애써 부정했어요. 종인이에게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으니깐. 그래서 저는 모든 것을 외면했어요. 이상할 만큼 너무 자주 있는 야근도, 언제나 텅텅 비어있는 지갑도, 셔츠 깃에 뭍은 화장품 자국도, 심지어 정장 주머니에서 나온 콘돔 상자까지 모든 것을 외면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럴 수 밖에 없었어요. 종인이는, 종인이는 변한 게 없었거든요. 늘 저를 보면 짧더라도 입을 맞춰 주었고 주말엔 집에서 함꼐 영화를 보았죠. 오히려 예전보다 더 다정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더욱 더 현실에서 도망쳤죠. 하지만 그건 저의 제자리 걸음 밖에 되질 않았어요.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돌고 도는 트랙 위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죠. 결국, 제가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곳이 제가 출발한 처음이라는 것은, 도착하고 난 뒤에야 알아버린 거죠.
처음의 종인이는 그랬어요. 다정했죠. 그건 어쩌면 덫이었을 지도 몰라요. 아니면 미안함이 우러나온 것일 지도 모르겠네요. 종인이는 변했어요. 아니 종인이는 예전부터 변한게 맞았을 지도 몰라요. 단지 제가 그것을 믿지 않았던 것 뿐. 어느날 밤, 저는 종인이의 휴대폰을 보게 되었어요.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종인이가 없어서. 종인이가 씻고 있는데 띵똥하는 소리와 함께 문자가 한 통 오더라구요. 저는 종인이 아내잖아요? 그러니까 문자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봤어요. 그 문자.
『내일 또 오면 안돼요?
-가연- 』
우려하던 일이 현실이 되어있었을 때. 설마, 설마 하던 게 사실이었을 때. 그리고 그것과 마주했을 때. 어떤 구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어요. 저는 손을 달달 떨면서 그 문자를 한 참 들여다봤어요. 그리고 제 휴대폰을 찾아 그 가연이라는 사람의 번호를 입력했죠. 제가 왜 그랬는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저는 삭제 버튼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어요. 삭제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삭제를 하기 엔 꺼림직 한 부분이 많이 남아있었죠. 그렇게 고민을 하는 사이 남편이 나타났어요. 저는 결국 문자를 삭제하지 못했죠.
그 날 이후로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았어요. 하지만 종인이는 그런 절 알아줄 턱이 없었죠. 새벽에 들어와서 아침에 사라지니까요. 저와 얼굴을 마주할 틈도 없었어요. 야근, 야근, 야근, 야근. 종인이는 제가 순진한 줄 알아요. 야근이라고 하면 다 믿을 거라 생각했을까요. 종인이의 핑계는 늘 야근이었어요. 새벽 1시. 종인이가 들어왔죠. 저에게 간단한 인사를 한 후 씻지도 않고 옷만 대충 벗어둔 채 종인이는 잠이 들었어요. 저는 종인이가 씻지 않은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죠. 종인이의 몸에서 바디워시 향이 강하게 풍겼거든요. 종인이의 휴대폰을 들었어요.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확인해 보고 싶었죠. 오늘도 그 여자와 만났는지.
하지만 저는 그런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어요. 종인이의 휴대폰엔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어요. 당황스러웠죠. 종인이는 한 번도 저에게 무언갈 숨긴 적이 없었으니까. 아니네요. 그 여자도 숨겼네, 생각해 보면. 종인이 생일, 제 생일, 종인이가 좋아하는 숫자, 휴대폰 번호 뒷자리까지 생각나는 건 모두 넣어보았는데 하나도 맞는 게 없었어요. 종인이가 잠든 사이 문자가 하나 왔었나봐요. 휴대폰 상단바엔 확인하지 않은 문자가 있다는 알림이 떠있었죠. 그 여자 일까? 이번엔 무슨 문자를 보냈지? 제 머릿 속 궁금증은 늘어가는 데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죠. 허탈했어요. 많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뭐가 문제지? 내가 문제인가? 종인이는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나? 내가 뭘 잘못했지? 혹시 내가 별로인가? 이제 나는 질린건가? 나와의 잠자리가 만족스럽지 못한가? 여자가 좋아 졌나 이젠?
다음날 종인이는 평소와 같이 출근을 했죠. 오늘도 늦어? 제 물음에 종인이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엇어요. 차마 제 표정을 보고 늦는다고 말하기가 미안했나봐요. 저는 불쌍한 표정이 었을 거에요. 종인이의 정장 소맷자락을 잡고 말했어요. 오늘은 빨리 들어오면 안 돼? 그건 부탁이 아닌 애원이었어요. 종인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제 이마에 입술을 맞춰 주었어요. 종인이를 회사에 출근 시키고 저는 우선 잠을 잤어요. 전날 한 숨도 못 잤거든요. 제 문제가 뭔지 고민하느라. 그리고 잠에서 꺠어난 후 저는 전화를 걸었답니다. 그 때 입력해 둔 번호로요. 기본적인 통화 연결음이 들리고 곧, 그녀가 전화를 받았어요.
『여보세요?』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도경숩니다.』
『아...』
『아시죠? 종인이..』
『네. 몇 번.. 얘기 들었어요』
제 얘기를 들었다고 했어요. 종인이는 무슨 얘기를 했을 까요 그 여자한테. 자기는 사실 와이프가 있다고? 그래도 괜찮냐고? 그런 얘기였을 까요?
생각보다 많이 당황한 눈치더라구요. 제가 혹시 자기를 찾아와 죽이겠다고 협박이라도 할 거라 생각한 걸까요. 하지만 제가 할 말은 그게 아니었어요.
『오늘도 종인이가 다녀갔나요?』
『...』
『괜찮아요.』
『.. 낮에 잠깐』
그저 간단한 질문 하나였어요. 정말로 간단한 질문. 어제 밤 내내 고민하고 고민했던 것.
『종인이는...』
『...』
『뭘 원하나요?』
하지만 어려운 질문이었던 걸 까요 아니면 알려 주기가 싫은 거였던 걸 까요. 수화기 너머에선 말이 없었죠.
『...』
『저 우스워 보이는 거 압니다. 하지만 전 그만큼 필요해요. 종인이가』
저는 제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말했어요. 저는 정말로, 정말로 종인이가 필요했으니깐. 아마 그녀는 저를 가엽게 생각했을 거 에요. 창녀에게 전화를 걸어 남편이 원하는 걸 묻는 다니. 최악이죠. 어쩌면 그 편이 더 나은 걸지도 몰라요. 종인이를 빼앗길 바엔 제 자존심이 밟히는 편이 저에겐 덜 슬픈 일이니까요. 저는 그녀를 한 번 더 불렀습니다.
『가연씨.』
『...오빠는...』
오빠. 그녀는 종인이를 그렇게 부르더군요. 제 남편에게는 누나가 두 명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유달리 오빠 소리를 좋아했어요. 그 여자의 말을 들으며 종인이가 참 좋아하겠네, 이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녀는 제게 얘기를 해주었어요. 종인이가 좋아하는 것들. 종인이가 원하는 것. 20년을 넘게 안 우리인데, 우리의 모두를 공유했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라구요. 저는 그녀의 말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어요. 그리고
『갑자기 왜 이럴까 도경수가』
『...』
『왜 이러는 데 갑자기』
『..너가 좋아할 거 같아서』
그 날 밤. 정말로 일찍 집으로 돌아온 종인이에게 그것들을 해주었죠. 종인이는 좋아했어요. 자신의 위에 올라타서 먼저 애무를 해주고 선뜻 펠라를 해주는 모습은 여태껏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으니까. 종인이는 그런 게 좋았나 봐요. 그 날 저희는 섹스를 했어요. 얼마 만이었는지. 기쁜 나머지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매달렸죠. 종인이는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하며 계속 입을 맞춰 주었어요. 마치 예전처럼요. 섹스가 끝나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 서로를 껴안고 잠이 들었어요. 종인이의 품은 예전과 다를 것 없이 따뜻하고 넓었죠. 저는 그 때 생각했죠. 이제 종인이가 다시 돌아오겠지? 예전처럼 같이 식사를 하고 주말을 보내고, 다시 돌아갈 수 있겠지? 제 기대는 부풀고 부풀어 거대한 풍선과도 같았죠. 그래요. 조금만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은 거대한 풍선. 그리고 그 풍선이 터진 건 채 하루도 되지 않는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일주일이 흘렀죠. 종인이는 그나마 이른 시간인 10시에 들어왔어요. 요즘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시간이 촉박하다며 야근을 했다고 하더라구요. 저를 한 번 껴안아 준 후 종인이는 먼저 잠에 들었어요. 종인이가 벗어 둔 옷가지를 정리하는 데 아무래도 정장을 세탁소에 맡겨야 할 것 같더라구요. 세탁소에 맡겨야겠다고 생각하며 정장 주머니에 있던 것들을 빼내었어요. 립밤, 지갑, 동전 몇 개가 나오더군요. 립밤. 제가 선물한 건 아니고 종인이 성격에 그런 걸 살 리는 없었죠. 자연스럽게 한 사람이 떠오르더라구요. 거기까진 괜찮았어요. 그런 가벼운 선물정도야.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지갑이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지갑에 들어있는 영화티켓. 끔찍하게도 날짜가 바로 그 날이더군요.
영화 시간은 7시 반. 눈 앞에 비디오 한 편이 재생되듯 그려지더라구요. 6시에 퇴근해서 함께 밥을 먹고 영화관에 가 함께 영화를 보았겠죠. 그리고 그녀를 바래다준 후 집으로 돌아왔을 거에요. 업무가 촉박하다는 개소리를 제 앞에 지껄이며 미안한 감정은 좀 들었을까요? 그 날 저는 종인이의 옆자리가 아닌 거실의 소파에서 혼자 잠을 설쳤죠. 잠에 들면 종인이가 낯선 여자와 섹스를 하는 꿈을 꿔서 잘 수가 없었어요. 다음날 종인이가 출근하자마자 저는 카드 회사에 전화를 걸었어요. 문자 서비스를 신청하기 위해서였죠. 저희 집 가계는 모두 제가 관리하기 때문에 종인이가 가지고 있는 카드도 명의는 제거였거든요. 하면서도 불안했어요. 하루 종일 휴대폰을 쥐고 혹시라도 문자가 올까 안절부절 했죠.
평범한 내용의 내역이 담긴 문자가 올 때 마다 저는 안도했죠. 그런 제가 한심했어요 전. 저는 종인이를 지키려고 그렇게 안달을 내는데 종인이는 전혀 저를 신경 쓰지 않았으니깐. 종인이가 사용하는 서재를 청소하려고 들어갔다가 저는 당황스러운 것을 발견했어요. 가득 차있는 약통이었죠. 저는 그것을 들고 나가 거실에서 누군가와 연락을 나누고 있는 종인이에게 물었어요.
『종인아』
『응?』
『너 요즘 약 안 먹어?』
『약? 아, 비타민? 그러게 깜빡했네.』
『...』
『미안해. 그런데 그거 너무 오래 먹지 않았어?』
『그래도 먹어. 너 위한 거니까. 지금 먹자. 물이 어딨ㄷ..』
『형』
『...』
『너무 오래,』
『...』
『오래됐다 형』
정말로, 정말로 많은 것이 변했어요.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 걸까요. 그 여자를 원망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면 제 남편을 원망해야 하는 건가요. 저는 저희를 이렇게 만든 하늘을 증오해요. 신을 원망합니다. 저희는 그저 평범하길 바랬는데. 아주 작은 소망이었어요. 남들처럼 평범하고 싶었는데 그 작은 부탁이 뭐가 어렵다고... 더 이상 종인이는 어디에도 없어요.
처음엔 이해하려고 노력했죠. 사회생활이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요? 드라마에서도 보면 접대라는 명목 하에 술집 여자들을 끼고 놀곤 하잖아요?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잠시 마음이 간 것이라고. 20년이 넘는 세월을 종인이는 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사회에 막 발을 딛은 종인이에게 새롭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충분히 종인이에게 자극적이었을 거라, 그렇게 생각하며 이해했어요. 하지만,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저는 종인이를 믿고 싶었는데 종인이가 저를 그렇게 두지 않았어요.
종인이가 외박을 했어요. 아무리 늦게 들어오더라도 외박은 하지 않았는데 종인이가 외박을 했어요. 문제는 저한테 연락도 하지 않았다는 거에요. 저는 그 긴 밤을 혼자 뜬 눈으로 보냈죠. 오겠지, 오겠지, 올거야, 올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데 어느덧 해가 뜨더라구요. 종인이에게 연락이 온 건 9시가 조금 늦은 시간이었어요. 회식하고 술에 너무 많이 취해 동료의 집에서 잤다고 하더라구요. 언제부터 종인이는 그렇게 거짓말을 잘 쳤던 걸까요? 분명 제 폰엔 K모텔이라는 카드사용내역이 선명하게 찍혀서 왔는데 왜 거짓말을 친 걸까요?
그 날은 종인이가 집에 일찍 들어왔어요. 미안했겠죠 연락도 없이 한 외박이. 미안하다며 제 허리를 끌어 안는 것을 밀어낼 수가 없었어요. 제게 맞춰오는 입술에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죠. 저는 결국 종인이에게 키스를 하며 매달렸어요. 몸부림이었죠.
『형』
『...응』
『누가 형 괴롭혀?』
『..아니야』
다음 날, 저는 한 번 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마지막 전화라고 생각하며 말이죠. 정말 마지막일 전화를. 수화음은 길었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았어요.
『...』
『...』
그녀도 저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어요. 그 여자는 할 말이 없었겠죠. 남의 남자랑 바람을 폈는데 나불거릴 염치가 어디 있겠어요. 전화를 받아 준 것 만으로도 용하다고 생각해요. 생각해 보니까 참 독하네 그 여자도. 맞아요. 아주 독해요. 저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가연씨』
『..네』
『저는 가연씨가 조금의 염치는 있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
『종인이 좋아해요?』
『...
『종인이 좋아하냐구요
『,,, 경수씨 저 종인오빠 사랑해요.』
사랑한대요. 사랑. 종인이를요. 푸흡.. 제 앞에서. 감히 제 앞에서 종인이를 사랑한다고 했어요. 아, 재밌지 않아요? 남편이 좋아하는 창녀한테 전화를 건 처와 남편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창녀. 원치 않게 삼각라인이 되어 버렸네요.
『저는 가연씨 신경 안 써요』
『...왜요?』
『가연씨도 나 신경 안 쓰잖아』
『...』
『왜요? 제가 가연씨한테 열등감이라도 느끼길 바랬어요? 그런 거라면 미안하네. 아닌가, 미안할 것도 없구나.』
『...그 말 진심이시죠?』
『네. 물론요.』
『..전화 끊을게요.』
『아, 그리고.』
『네?』
『조심해요』
『..뭘요』
『뭐든.』
왠지 그녀에게 쏘아 붙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라구요. 오랜만에 글도 쓰고 마트에 가서 장도 보았죠. 종인이가 아침에 일찍 들어온다고 했거든요. 같이 저녁을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정말 개 같게도 요리를 끝내고 상을 다 차리고 종인이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문자가 왔어요.
『미안해 갑자기야근잡혀서늦을
거같다 먼저자오늘은
-남편- 』
맥이 탁 풀리더라구요. 그리고 다른 문자 한 통이 연달아 도착했죠.
18000원(일시불) K시네마
누적 563,180원 』
행동이 빠른 여자에요. 안 그래요? 순식간에 그 좋던 기분이 가라앉았어요. 정말로 배신당한 느낌이었죠. 종인이가 그 여자의 편을 든 거 같았어요. 제가 패배자가 된 것 같았죠. 저는 식어가는 밥상을 치우지 않고 식탁에 앉아 그대로 종인이가 올 때까지 기다렸어요. 11시, 종인이가 돌아왔어요. 식탁에 앉아 있는 저를 보며 왜 그러고 있냐고 물었죠. 저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갔죠. 저는 종인이를 따라 들어갔어요. 종인이가 넥타이를 풀고 있었죠. 저는 문에 삐딱하게 기대 물었어요.
『잘 놀고 왔어?』
『무슨 말이야』
『영화. 재밌었냐구.』
종인이가 행동을 멈추고 저를 돌아 보았죠. 서늘한 눈빛이었어요. 그리고 저희는 처음으로 싸움이라는 걸 했죠. 종인이는 넥타이를 풀면서 저를 쳐다보았어요. 굉장히 피곤하다는 듯한 눈빛이었죠. 저는 다 알아요. 종인이는 저를 귀찮게 여기고 있는 게 분명했어요. 서러움이 밀려왔죠. 저한테는 종인이 하나 밖에 없는데.. 종인이는... 종인이가... 저는 제 이름을 부르는 남편에게 닥치라고 소리쳤어요.
『도경수』
『내 이름 부르지 마』
『경수야』
『부르지 말랬잖아!!』
『...』
남편이 제 말에 입을 다물었어요. 저는 그대로 집을 나갔어요. 집에 있다간 미쳐 버릴 거 같았거든요. 집을 나와서 저는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어요. 저희 집은 14층인데 엘리베이터는 26층에 있더라구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하지만 전 꿋꿋이 참고 기다렸죠.
『...』
종인이가, 종인이가 저를 붙잡으러 나올 거라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26층에서 14층으로 올 때 까지 저희 집에선 기척 하나 없었죠. 종인이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답니다. 밖으로 뛰쳐나온 저는 잠시 동안 자리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갈 곳이 없었으니깐. 부모님을 찾아 갈 수도 없었고 저를 받아줄 친구도 없었어요. 주머니를 뒤지니 만 원짜리 한 장이 나오더라구요. 집 근처의 찜질방에 갔어요. 이런 상황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상황인 줄 알았는데 제가 겪고 있으니 어이없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하고. 찜질방은 종인이랑 연애할 때나 한 번 온 곳인데 저 혼자 다시 찾으니 이상하더라구요.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웠어요. 몸을 쭈구리고 눕자마자 서러움이 물 밀려오듯 밀려왔어요. 한심하게도 전 그 순간에도 종인이가 보고 싶었어요. 종인이가 보고 싶어서 울었어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존재가 된 종인이가 그리워서. 한참을 서럽게 자리에서 울다가 잠이 들었어요. 그리고 꿈에선 제 목을 조르는 종인이가 나왔죠.
잠에서 깨니 오후 11시였어요. 새벽 3시가 되어서 잠이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죠. 이상하게 주위가 시끄럽다고 했더니 주말이었어요. 저를 뺀 모두가 즐거워 보이더라구요. 저는 몸을 씻고 밖으로 나왔어요. 역시나 저는 갈 곳을 찾지 못했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휴대폰도 챙겨 나오지 않았어요. 종인이가 저를 찾으러 올 가능성도 없었죠. 저는 그저 사람들이 가는 데로 따라 걸었어요. 사람들에 휩쓸려 제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대로 길을 갔죠. 한참을 인파에 휩쓸려가다가 멈춘 곳은 집과 가까운 시내였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 답답했어요. 저는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죠. 정신차려보니 유흥가였어요. 낮의 유흥가는 사람이 없었죠. 모텔들과 술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더라구요. 혹시 저 중에 그 여자가 있는 술집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는 그 길을 따라 걸었어요. 딱히 갈 곳이 없었으니깐. 그렇게 앞만 보고 걷다가 저는 익숙한 사람을 발견했어요. 정말로 발견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그건... 네, 맞아요. 남편과 그 여자였죠. 멋있게 넘긴 앞머리며 쌍꺼풀이 진한 눈이며 제 남편이 맞았어요. 그리고 남편이 손이 둘러진 어깨는 제것이 아니라 가녀린 여성의 것이었죠. 낯설었어요 남편이. 다른 여자와 팔짱을 낀 것도, 감흥 없는 눈빛도 모두 다 낯설게 느껴졌죠. 제 남편이 아닌 것 같았어요. 낯선 제 남편과 가연씨는 익숙하게 어느 모텔로 들어갔어요. 저는 한참을 자리에서 멍하게 서있었어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요. 사실 딱 정신을 놓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그렇게 모텔의 입구만 보고 있던 저는 하나, 둘 발걸음을 옮겼어요. 남편과 가연씨, 아니 그 여자가 들어간 그 모텔로.
『한 분이에요?』
『혹시.. 방금 들어간 여자랑 남자 있죠』
『..네』
『몇 호에요』
저는 점점 그 둘과 가까워 졌어요. 방음 시설이 완벽하지 않은 모텔의 문 너머에서 격정적인 소리들이 들려왔어요. 신음소리가 새어나오는 방 문들을 지날 때 마다 제 다리는 점점더 후들거리며 힘이 빠졌죠. 어느덧 저는 남편과 그 여자가 들어간 방 문 앞에 서있었어요. 다행히도 그 방은 조용했죠. 고요했어요. 폭풍전야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죠. 문고리를 쥐었다 폈다 하며 들어가기를 망설였어요. 제 눈 앞에 닥칠 광경에 마음에 준비가 필요했으니까. 몇 번 숨을 고른 후 저는 방 문을 열었죠. 달칵. 혹시 잠겨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무슨 정신인 건지 문도 잠그지 않았더군요. 저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답니다.
『...』
『...』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제가 본 광경은 그것이었어요. 침대 위의 종인이와 낯선 여자. 그 여자는 종인이의 아래에 있었어요. 정말 최악이에요. 저를 보고 발가벗은 여자가 소리를 질렀어요. 저는 다시 멍청한 사람처럼 둘을 멍하게 보고 있을 뿐이었죠. 남편도 저를 눈치 챈 듯 했어요. 남편과 저의 눈이 마주쳤죠. 숨이 막히는 시간이었어요. 금방이라도 질식해서 죽어버릴 것 같았죠. 여자의 고함 소리가 방안을 울렸어요. 시끄러웠는데 정말... 종인이와 제 시선이 아주 오래, 아주 오랫동안 부딪혔어요.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도, 그렇다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죠. 그저 그 여자 혼자 듣기 싫은 고함을 내지를 뿐이었어요.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어요. 사건은 지금부터 시작이에요. 사건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시작되었죠.
그래요,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등장했어요.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누군가 그 방에 등장했죠. 아무도 몰랐어요, 그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문이 달칵하는 소리는 여자의 고함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고 쳐도 그 남자는 너무도 기척이 없었죠. 우리 모두가 그를 보고 놀랐어요. 그가 누구냐구요? 그가 누군지는 저도 몰라요. 단지 그 남자를 보는 여자의 표정이 창백한 걸로 보아선 둘이 아는 사이었을 거라고 추측해요. 하긴, 술집 여자한테 남자가 종인이 말고 한 둘이겠어요? 그 여자를 좋아하던 다른 남자가 아니었을까요. 여자는 남자를 보고 소리를 질렀어요. 다급한 목소리로요. 아마 이름인 것 같기도 한 데 자세히 기억은 안 나네요. 정말 순식간이었어요. 그 남자가 여자에게 달려들었죠. 종인이를 밀치고 말이에요. 그리고..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죠. 그 남자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어요. 칼 말이에요, 칼. 고기를 썰고, 과일을 깎는 그 칼.
그 칼이 여자의 배에 파고들었죠. 여자의 등 뒤의 벽으로 피가 튀었어요. 영화에서 칼로 사람을 찌를 때 나는 그 소리 아세요? 왜요 그.. 정말 기분 나쁜 소리 있잖아요. 생살이 뚫리는 소리. 그런 소리가 났어요. 여자가 흘린 피로 하얀 침대 시트가 빨갛게 젖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남편의 얼굴에 튄 핏방울들이 밑으로 흘렀어요. 여자가 붉은 핏덩이를 바닥에 토해냈죠. 침대에 앉아 있던 몸이 뒤로 서서히 기울었어요. 여자의 눈이 감기고, 침대가 철렁거렸죠. 하얀 침대 시트가 더더욱 붉어졌어요. 곧 있으면 이 침대가 본래 하얬다는 사실을 잊을 것 같았죠.
저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어요. 여자를 죽인 남자가 이번엔 종인이를 향해 칼을 휘둘렀거든요. 종인이는 피했죠.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어요. 종인이는 남자가 휘두른 칼 손잡이의 뒷부분을 머리에 맞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어요. 털썩. 그렇게요. 칼날에 맞은 게 아니라 다행이에요. 아 형사님, 종인이는 무사한가요? 병원이라구요? 네.. 아무도 종인이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지 않더라구요.. 무사하다니 다행이에요. 계속 얘기를 하자면 결국 그 방안엔 저와 남자만 남겨졌죠. 여자는 여전히 배의 구멍에서 피를 뿜어내고 있었고 종인이는 쓰러져 있었어요.
저는 점점 정신이 멀기 시작했어요. 어지러워서 구역질이 날 것 같았죠. 세상이 뒤틀려 보이기 시작하면서 제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죠. 순식간에 몸의 균형을 잃었어요. 저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죠. 제가 멀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을 때 쯤 문 너머에서 다다다, 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어요. 네. 때마침 경찰들이 나타났어요. 다행이었죠. 그리고 저는 정신을 잃었어요.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땐 이틀 전의 병원이었고 지금은 이 증인실에 있네요.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
*
*
도경수씨?
네?
긴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이제부터 제가 몇 가지 질문을 할 거에요. 진실대로 대답해 주시길 바랍니다.
네.
사건 당일, 도경수씨는 이가연씨와 김종인씨가 함께 모텔 침대 위에 있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당시 기분이 어땠나요?
제 기분요? 어.. 이런 말해도 되나요..? 아주 좆같았어요.
그래서 이가연씨를 죽였습니까?
네?
아니오. 됐습니다. 다른 질문을 할게요. 이가연씨가 그 남자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고 했어요. 그렇죠?
네.
그 사람의 이름인가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이름인 것 같아요.
기억을 되돌려 봅시다. 도경수씨는 지금 사건이 터진 그 날, 그 시간 모텔의 방 안이에요. 당신의 눈앞에는 당신의 남편과 이가연씨가 침대 위에 올라가 있었죠. 갑자기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어요. 이가연씨는 그 남자를 보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 남자의 이름을 부르죠. 자,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도경수씨, 이가연씨가 뭐라고 그 남자를 부르던가요.
...도..
네.
...도..경수씨...
다시. 뭐라고 불렀다구요?
도.. 경수씨.. 라고.. 아니요, 잠깐만요. 뭔가 잘 못 된 것 같은데..
됐습니다. 다음 질문을 하도록..
아니요, 잠시만요. 왜 제 이름을.. 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됐습니다.
경찰님, 정말로 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저는 단지..
다음 질문입니다. 그 남자, 아니 이제는 피의자라는 표현을 쓰도록 하죠. 피의자는 이가연씨를 칼을 이용해 복부를 찔렀습니다. 맞죠?
...네.
그 때 도경수씨는 뭘 하고 계셨죠?
저는 그저 상황을 지켜보기만..
자, 다시 가보죠. 그 때 그 방안으로요. 아까 그 상황으로. 도경수씨의 눈 앞에 하얀 침대 시트가 빨갛게 젖어가고 있어요. 하얀 벽지로 피가 튀었네요. 그 때, 도경수씨 손에 들린 건 뭐죠?
...
대답하세요.
칼.. 칼이...
좋습니다. 그 칼의 모양이 어떤가요?
손잡이가.. 검은... 그저 일반집에서 사용하는 그런.. 칼..
현장에서 발견된 것과 일치하네요.
...
그리고 그 칼에서 발견된 지문도..
...
도경수씨의 것과 일치하구요.
잠시만요.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 지 설명을 좀..
도경수씨
네..?
당신을 피해자 이가연을 살인한 혐의로 체포합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신이 진술한 내용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잠시만요!!! 살인이라뇨!! 저기요!! 형사님..!!
*
*
*
타닥, 타닥, 탁, 탁, 탁
[다중인격장애를 가진 피의자의 또 다른 자아가 범행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 범인은 ㅅ]
"반장님"
"왜, 인마"
"근데 도경수랑 이가연이 만난 적 있다고 했나요?"
"그건 왜 물어"
"아니 그 때 진술에서 이가연이 도경수 이름을 불렀다는데 둘이 본 적이 있나 해서"
"까먹고 말 안했겠지. 빨리 쓰고 제출해.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네네"
[범인은 사건현장에서 흉기로 사용한 칼을 손에 쥔 채 발견이 되었으며 그 칼로 이가연을 찌른 후 김종인을 기절시킨 것으로 파악된다. 피해자는 진술 당시 이가연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이가연의 복부를 흉기로 찔렀다고 진술했으나 사건 현장에는 도경수와 이가연, 김종인을 제외한 다른 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은 걸로 보아 도경수가 말한 새로운 인물이 도경수의 또 다른 자아로 추정된다. 조사를 하며 물은 몇 가지 질문에 도경수는 사건 진행 당시 자신이 칼을 들고 있었다고 대답하며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였고 이로 추정컨데 도경수의 원래 자아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사건현장을 바라보았으나 행위의 주체자가 자신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듯 하다. 도경수는 수감과 동시에 정신 치료를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
*
*
[저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제가 본 광경은 그것이었어요. 침대 위의 종인이와 낯선 여자. 그 여자는 종인이의 아래에 있었어요. ]
‘오..오빠..’
‘가연아..
‘오.. 오빠 왜그래... 칼, 칼.. 내려놔.. 응..?’
[저를 보고 발가벗은 여자가 소리를 질렀어요.]
‘저기요!! 이 사람 좀 떼 주세요 제발요!! 네??’
‘...’
‘저기요! 저 좀 살려 주세요!!’
[남편과 저의 눈이 마주쳤죠. 숨이 막히는 시간이었어요.]
‘...’
‘...’
[종인이와 제 시선이 아주 오래, 아주 오랫동안 부딪혔어요.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도, 그렇다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죠.]
‘김종인‘
‘...’
‘아니 종훈아’
‘...’
‘내려놔 칼’
[사건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시작되었죠.]
'경수형이네..'
'그래, 형이야.'
'형 오랜 만이다. 사실 난 형 봤어 몇 번'
'그래, 알아. 칼 내려 놓고 말하자 종훈아..'
'형은 그런 말 하면 안 돼 나한테'
[그래요,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등장했어요.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누군가 그 방에 등장했죠. 아무도 몰랐어요, 그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저기요! 저 좀 살려 주시라니까요!
‘.종훈아 제발.. 칼 내려 놔’
‘경수형’
‘응’
‘제발요.. 저 남자한테서 칼 좀...’
‘형’
‘응’
‘피 냄새 나지 않아?’
‘...’
‘피냄새 나.'
[단지 그 남자를 보는 여자의 표정이 창백한 걸로 보아선 둘이 아는 사이었을 거라고 추측해요.]
‘오빠.. 종인 오빠 갑자기 왜그래..?.. 나, 나 가연이야 오빠..’
‘뭐가?’
‘오빠 우리 칼부터 내려 놓고 얘기하자.. 제발..’
‘형’
‘응’
‘나 왜 그렇게 오래 가둬놨어’
‘...미안해 종훈아’
‘아니야. 형이 뭐가 미안해. 괜찮아.’
'...'
‘죽이는 건 쉬운 일이니깐’
[여자는 남자를 보고 소리를 질렀어요. 다급한 목소리로요. 아마 이름인 것 같기도 한 데 자세히 기억은 안 나네요.]
「 도경수씨, 이가연씨가 뭐라고 그 남자를 부르던가요.
...도..
네.
...도..경수씨...
다시. 뭐라고 불렀다구요?
도.. 경수씨.. 」
‘김종인!!! 아니 종인오빠!! 오ㅃ...!’
[정말 순식간이었어요. 그 남자가 여자에게 달려들었죠. 그리고..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죠. 그 남자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었어요. 칼 말이에요, 칼. 고기를 썰고, 과일을 깎는 그 칼.]
‘오..오..빠...’
[그 칼이 여자의 배에 파고들었죠.]
‘넌 너무 시끄러워’
‘...’
‘그리고 난 김종인이 아니라’
‘..종훈아..’
‘김종훈이야’
‘종훈아 얼굴에 핏방울 닦아 줄게. 그러니까 칼 줘.’
‘김종인 취향도 참 이상하지. 그치 않아 경수형? 근데 형 얼굴에도 피 튀겼다.’
‘... 칼 줘’
‘형이 빨리 날 불렀으면 김종인이 눈 돌아가기 전에 내가 얘 먼저 죽였을 건데’
‘...’
‘너무 늦게 불렀어 형’
'칼 줘'
'알았어. 보채긴. 근데 나 형이 그 때 손수건 대고 칼 쥐라고 해서 오늘은 형 말대로 손수건으로 잡았어. 잘했지?'
'...응'
[종인이는 남자가 휘두른 칼 손잡이의 뒷부분을 머리에 맞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어요.]
‘형, 근데 칼로 뭐할려ㄱ..’
[털썩. 그렇게요.]
‘잠시만, 잠시만 그러고 있어 종훈아'
[계속 얘기를 하자면 결국 그 방안엔 저와 남자만 남겨졌죠. 여자는 여전히 배의 구멍에서 피를 뿜어내고 있었고 종인이는 쓰러져 있었어요.
저는 점점 정신이 멀기 시작했어요. 어지러워서 구역질이 날 것 같았죠. 세상이 뒤틀려 보이기 시작하면서 제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죠. 순식간에 몸의 균형을 잃었어요. 저는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죠. 제가 멀어지는 정신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을 때 쯤 문 너머에서 다다다, 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어요. 네. ]
'종인아 이젠 다 괜찮을 거야'
'...'
'다...'
[때마침 경찰들이 나타났어요. 다행이었죠. 그리고 저는 정신을 잃었어요.]
"전 종인이를 위해선 뭐든지 해 줄 수 있어요. 죽으라면 기꺼이 죽을 수 있고 도둑질을 하라면 무슨 물건이든 가리지 않고 훔쳐다 줄 거 에요. 종인이를 위해서라면."
*
*
*
"도경수, 면회다."
예상치 못했던 부름과 함께 밖으로 인도하는 손짓에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이끄는 대로 하얗게 칠해진 복도를 따라 걷고 계단을 오르고 다시 하얀 복도를 걸어 도착한 장소.
[면회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보이는 익숙한 얼굴.
"15분."
15분이라는 시한부를 선고한 교도관은 유리벽을 두고 마주 앉은 둘을 한 번 살피더니 곧 자신의 자리에 앉아 딴청을 부린다.
한동안 이어진 숨을 조일 듯 한 무거운 침묵. 그저 멍하게 서로의 눈을 응시한다.
기나긴 침묵 끝, 여전히 눈을 응시한 채 유리벽 너머에 앉은 사내의 입이 조심스럽게 열린다.
"경수야"
침묵.
"진짜 네가 그랬어?"
침묵.
"니가 죽인거야? 니가 가연이 죽였어?"
또 침묵.
"아니지? 너 그럴 사람 아니잖아"
"...김종인"
"..."
"아니잖아 지금"
"..."
"종훈아"
또 다시 침묵.
그리고,
웃음.
"형은"
"..."
"날 너무 잘 안다니까"
fin.
해석 따귀 없ㅅ어
일부러 풀어 쓰고 풀어 쓴 글인만큼 해석은 생략했답니다
사실 순애보 경수를 쓰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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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 걍 신혼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