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본인 취향에 의해 쓴 글
참고이미지 |
*이민기 영업* 이 아니라 대충 이런 이미지랄ㄲr요 |
나는 어둑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 하나 빛나지 않는 그저 검기만한 하늘엔 휘어진 초승달이 저 하늘만큼 어두운 이 골목에 빛을 내린다. 몇 걸음을 걷지 않아 곧 희미한 달빛을 통해 페인트가 벗겨진 허름한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5층 짜리 다세대 주택. 간간히 몇몇 집에서 불빛이 새어나온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건물에 발을 들이자마자 독한 담배 냄새가 계단을 가득 채운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에 저절로 인상이 쓰인다. 우리 건물에 누가 담배를 피우더라... 3층 사는 연기지망생? 아니2층 사는 고시생인가. 올라가면 알 수 있겠지. 나는 매캐한 계단을 올랐다. 우선, 2층은 아니다. 그나저나 고시생네 집 앞에 광고 전단지가 잔뜩 붙은 게, 아무래도 그 앞집 사는 음악 하는 장난 끼 많은 남자가 자신의 집에 붙어 있던 것 까지 몽땅 붙여놓은 게 분명하다. 그 집 문은 깨끗하거든.
나는 3층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냄새가 조금 더 짙어진다. 내가 계단을 오르자 곧 3층에 불이 켜진다. 아무도 없다. 301호 문 앞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 한 대를 제외하고는 텅 비었을 뿐이다. 2층처럼 광고 전단지 하나 붙어 있지 않다. 아무래도 4층 아니면 5층인 것 같네. 만약 5층이라면 그냥 집으로 들어가야겠다. 굳이 담배 피는 사람을 꾸짖자고 계단 한 층을 더 오르기엔 밤 10시란 시간은 너무 늦었으니깐. 하지만 왠지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왜냐면 근처에서 담배 냄새가 진하게 풍기거든. 나는 3층을 지나쳐 다시 계단을 올랐다. 센서가 느린 건지, 고장이 난 건지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보았을 땐 아무도 없는… 아-. 나는 갑자기 켜진 오렌지 색 불과 더불어 나타난 계단에 앉은 어두운 인영에 깜짝 놀라 한발 짝 뒤로 물러섰다. 놀란 마음에 커진 내 눈과 상대의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를 조금만 내리자 보이는 삐딱하게 입술에 물려 있는 담배. 찾았다. 뭐라고 혼을 내야 하나. 처음 보는 얼굴인데...
“뭘 봐”
아무래도 아침에 앞집이 시끄럽다고 했더니 이사를 왔나 보다. 한동안 비워져 있던 집이라 외로웠는데 다행이네. 쏘아보는 듯 매서운 눈빛이, 마냥 친절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다 늘어난 트레이닝 바지며 목이 다 파여진 헐렁한 검은색 나시. 드러난 쇄골이며 도드라진 갈비뼈가 그저 병든 사람처럼 안쓰러워 보인다. 불쌍한 사람이 이사 왔네. 나는 남자의 옆에 놓인 모서리가 구겨진 담배곽을 보았다. 던힐 라이트. 남자는 말보루 레드라는 소리를 하던 김종인의 말이 스치듯 생각이 났다. 아무튼 담배를 하지 않는 나로서는 던힐이니 말보루니 그저 암 덩어리일 뿐, 큰 상관은 없다. 나는 남자를 보았다. 서늘하고 차가운 눈동자. 고독이 가득하다. 고독이, 외로움이 넘치는 눈.
“안녕하세요.”
내 인사에 남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뭐야 얜? 이런 표정으로 말이다. 크게 상관은 없다. 아무튼 우린 이웃이 되었으니깐.
“저는 여기 살아요.”
나는 남자를 보며 우리 집 문을 가리켰다. 정확히 말하자면 401호라고 적힌 문패를. 우리가 이웃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남자는 별 미동이 없었다. 조금의 변화가 있었다면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남자의 머리를 왼쪽으로 헝클인 것? 원체 헝클어져 있던 머리라 그런지 그 모습을 처음부터 보고 있지 않았다면 눈치조차 못 챘을 것 같긴 하지만.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나는 남자를 보며 싱긋 웃었다. 미심쩍은 듯 경계하는 눈이 나를 아래위로 훑는다. 억울하게 의심을 받고 있지만 나는 진심이다. 나는 언제나 진심이고 누군가를 속이지 않는다.남자가 그 걸 알았으면 좋겠다. 뭐, 당장 알지 않아도 상관없다. 이제 차차 알아 가면 된다.
“꺼져”
왜냐면 나는 상당히 불친절하고 불평이 많은 당신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
남자가 나의 앞집으로 이사 온지 삼일 째 되는 날. 처음 마주쳤던 그 날도 두 번 째 보았던 어제도, 남자는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밤 10시에 계단에 쭈그려 앉아 던힐을 피웠다.몸에 언제나 담배냄새가 나는 것이, 생각보다 지나친 골초인 지도 모르겠다. 첫 째 날, 우리는 이웃으로서 인사를 나누었다. 401호 주민과 402호 주민으로서. 남자는 별로 달가워 보이지는 않았다. 둘 째 날, 나는 첫 째 날 인사를 하느라 하지 못했던 말을 남자에게 하였다. 담배는 몸에 좋지 않으니 그만 끊으라고 말이다. 남자는 신경을 끄라고 말했고 나는 남자를 꾸짖었다. 피고 있던 담배를 지져 끈 남자는 미간을 팍 찌푸렸다. 사나운 인상이었다.
‘나한테 대체 왜이래’
남자가 내게 묻기에 나는 당연한 듯 대답해 주었다. 우리는 이웃이니까. 더한다면 당신이 마음에 든 이유도 있고. 남자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어제 남자와 대화를 하며 안 것은 그는 무표정으로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담배를 물 땐 적어도 그랬다. 어쩌면 남자에게 나타난 그 알 수 없는 표정은 작지만 꽤 큰 변화일 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빠르다. 문을 연다는 것 말이다. 아니, 남자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놓여있고 그 무방비함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파고들 틈을 만드니까. 그리고 셋 째 날. 언제나 똑같은 시간 밤 10시. 문 앞 계단에서 남자가 먼저 나를 불렀다.
“꼬맹이”
그다지 달갑지 않은 애칭으로 말이다.
“꼬맹이 아닌 데요?”
“아닌 게 아닌 거 같은 데?”
어쨌건 남자가 먼저 나를 불렀다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다. 정말로 생각보다 빠른 일이었다. 나는 당연한 듯 남자의 손에 들린 담배를 뺏었다. 갑자기 확 끼쳐오는 담배 냄새에 머리가 아파온다.
“담배 좀 그만 피죠?”
“마누라 잔소리는 이제 그만 하지?”
남자가 내게서 담배를 도로 뺏으려 하기에 나는 급하게 바닥에 꽁초를 버린 후 발로 불을 껐다. 짧은 탄식이 들린다. 내가 지금 당신 목숨을 연장해 주는 거라고. 칼을 서린 눈빛이 나를 본다. 이러다 목도 베겠네. 나는 남자를 보며 어깨를 한 번 으쓱한 후 남자의 앞에 섰다. 남자가 나를 올려다 보기에 허리를 숙여 드러난 남자의 어깨 죽지에 코를 갖다 대었다. 움찔, 몸이 떨리는 게 느껴진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저씨 몸에서 담배 냄새 되게 진하게 나요”
“칭찬 아니지?”
“네”
빠른 대답에 남자가 어깨를 으쓱한다. 남자가 오늘 하루 담배를 얼마나 많이 핀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몸에서 나는 담배냄새는 전혀 좋지 않다. 나는 내 이웃이 흡연으로 빨리 죽는건 원하지 않는데. 나는 숙였던 허리를 피고 남자에게 본론을 물었다.
“왜 불렀어요?”
“후회하겠지."
“네?”
남자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먼저 말을 건건 자신이면서 아무 말도 내게 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먼저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였다는 냥. 그래서 그냥 나는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아직 남자는 문을 열기에 2% 준비가 덜 된 것 같기에. 그 2%를 채워주기 위해서. 남자의 앞, 평평한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쭈그려 앉았다.
“저는 도경수에요.”
나는 손가락으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닥은 생각보다 차가워서 손끝이 시렸다.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함께 부르며 놀았던 동요를 마음속으로 부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침 먹고 땡.
“401호에 살고-”
점심 먹고 땡.
“나이는 스물 하나."
창문을 열어 보니-
“노래를 불러요. 바에서.”
비가 오더래.
“401호에 혼자 살아요.”
지렁이 세 마리 기어 가더래.
“혼자거든요”
해골바가지-.
나는 텅 빈 바닥을 보았다. 손가락은 어떠한 자국도 남기지 못했다. 그저 아까 그 시린 바닥 그대로. 나는 아무 흔적조차 남지 않은 바닥을 한 동안 가만히 보고 있었다. 오랜 침묵을 깬 것은 남자였다. 남자는 꽤 억울하다는 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잠깐. 이건 반칙이다. 당신이 먼저 나를 불렀잖아. 그래놓고 이제 와서 나한테 이러는 게 어딨어?
나는 바닥을 보던 눈으로 남자를 보았다. 어딘가 울적해 보이는, 아무것도 든 것 같지 않은 그저 텅 빈 검은 어둠이 나를 사로 잡는다. 첫 날 보았던 남자의 고독한 눈동자를 기억한다. 아 역시, 나는 당신이 마음에 든다니까. 정말로. 나는 남자에게 친절해지기로 했다. 느릿하게 남자의 검은 눈을 보며 말했다.
“아저씨가 외로워 보여서요.”
그리고 활짝 웃었다. 초승달 모양으로 접힌 눈동자 사이로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볼 수도 없었다.
*
“말랐네요 아저씨는”
나는 파인 나시 사이로 드러난 남자의 툭 튀어나온 갈비뼈를 손가락으로 밑에서부터 위로 훑었다. 손가락이 토돌토돌, 갈비뼈를 따라 쑥 들어갔다가 또 빠져 나온다. 남자와 만난 지 6일 째 되는 날. 우리는 역시 매일 밤 10시에 집 앞 계단에서 만났다. 굳이 약속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엔 남자 역시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늘 내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고 2층을 막 오를 즘에 담배 냄새가 내려왔거든. 담배를 핀다며 핑계를 대긴 하지만. 남자는 확실히 엄청난 애연가임은 분명했다. 5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꽤 많이 친해졌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나는 남자를 옆으로 밀치고 옆의 빈자리에 앉았다. 차가운 계단에 엉덩이가 시려온다. 남자가 입으로 연기를 후-하고 뱉어 냈다.
“살이 빠졌어”
“다이어트?”
“아니"
“그럼 왜요”
“아프거든”
“어디가요”
남자가 두 팔을 자신의 무릎 위에 걸치고 왼손가락으로 자신의 오른 팔뚝을 두드렸다. 마치 피아노를 치듯이 말이다. 일정한 박자로 살을 파고드는 손가락은 뭉퉁하게 끝이 잘리어 아무 자국을 내지 못했다. 나는 무엇에 홀린 듯 그 손 끝을 멍하게 지켜보았다.
“암이래.”
남자의 마지막 말에 그만 모든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암. 분명 익숙하지만 낯선 단어. 매주 하는 주말 드라마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비극적인 소재. 가장 뻔하면서도 또 가장 독한 그 것. 암. 암. 암. 나는 연기를 뿜는 남자의 옆얼굴을 보았다. 정신이 멍했다. 시선을 느낀 건지 곧 입을 연다.
“폐암”
“…지금 소설 써요?”
내 말에 남자는 큭큭, 낮게 어깨를 떨며 웃었다. 소설 같아? 하며 되묻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고갯짓을 본 남자가 다시 고개를 돌려 담배를 깊게 빨았다.
“소설이면 좋겠네.”
하얀 구름과자가 흰 연기를 공중에 뱉는다. 말린 입꼬리가 쓸쓸함을 더한다. 정말 사실이라면, 소설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당신은,
“미친 아저씨네”
그냥 나 좀 죽여 주세요- 하고 저승사자한테 가서 빌지. 왜 그런 구름과자를 들고 멋도 안 나게 죽으려고 하는 걸까. 그 와중에 남자가 툴툴 거리며 말했다.
“아저씨 소리 좀 그만하면 안 되냐?”
“…아저씨 이름이 뭔데요"
“이민기”
이민기. 남자의 이름은 이민기라고 했다. 6일 만에 나는 남자의 치부와 이름을 알았다.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나는 이민기, 세 글자를 소리 내어 발음 해 보았다. 입술이 모아지지가 않는 것이, 도경수. 입술이 두 번이나 모아지는 내 이름과는 많이 달랐다.
“민기.. 민기형... 이상한데.”
“민기 오빠 하던 가”
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웃었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지만 남자는 눈까지 휘며 소리 내어 웃기에, 꼭 처음 보는 남자의 모습에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난 지금 당신이 신기해.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납득을 해야 하는 거지. 내 앞에서 웃고 있는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어떻게 이 걸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우리 앞집에 이사 온 지 막 6일이 된 남자가 폐암이라는 병을 가졌다.
“심각해요?”
“말기"
그것도 말기. 나는 남자의 손에 들린 하얀 막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정신이 빠진 듯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지 죽음, 한 글자가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났을 뿐.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남자에게 물었다. 즉발적인 것이었다.
“죽어요?”
내 말에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우리 둘 사이를 가로 막았다. 남자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쓸어내리던 갈비뼈의 한 조각, 조각이 눈에 밟히고 푹 꺼진 양 볼,앙상한 팔목, 유난히 적어 보이느 머리숱 그리고… 나는 피우던 담배를 입에서 뗀 후 거칠게 기침을 하는 남자의 흔들리는 등을 보았다. 어제 내가 건넨 감기약이라도 사먹으라고 한 말은 애초에 쓸모도,소용도 없는 말이었다. 또, 또다. 다시 죽음이다. 이번엔 급발적인 것이 아니었다. 예정된 죽음. 죽는 사람도 자신이 죽는 다는 것을 아는, 준비된 그런 죽음 말이다. 남자는 여전히 손에서 담배를 놓질 못했다. 남자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남자는 죽고 싶어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남자가 내 곁에 있는 이상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기를 바란다.
“담배 그만 펴요”
“알았어.”
“진짜?"
“마지막이야”
“정말?”
“정말 마지막.”
남자가 의미를 되새기는 듯 입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마지막. 기대를 하지 않고 꺼낸 말이건만 남자는 그러하겠다 대답을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은 남자가 문 담배를 빼앗지 않기로 했다. 남자가 어떤 이유에선 즉 이제와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 끊겠다고 하는 말은 살고 싶다는 말인가? 어찌 되었든 남자가 일찍 떠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릎을 끌어 당겨 안았다. 편안하다.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으니 온통 어둠뿐이다. 나는 코끝에 매캐하게 와 닿는 향을 맡으며 남자에게 물었다.
“담배 왜 피는 거에요? 맛있나?”
“너는 왜 사냐”
“음.. 그러게요”
“그런 거야”
나는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게 그런 것인가? 산다는 것과 담배를 핀다는 것이 어떻게 같은 맥락으로 해석이 될 수 있느냔 말인가. 둘은 완전히 성질부터 다른 것을.
“하지만 담배는 몸에 나쁘잖아요.”
그리고 당신 몸에는 더더욱. 나는 파묻은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처럼 남자의 몸에선 미미한 담배 냄새가 난다. 담배의 작은 불씨가 남자의 가는 생명줄을 태우는 모습이 선명히 눈 앞에 그려졌다.
"담배가 아저씨 목숨을 갉아 먹는 거 같아요"
"…"
"폐에 불을 질러서. 그래서 타 죽어가는 거죠"
"…"
"당신 몸뚱아리가."
내 말에 남자는 입 꼬리를 올리며 나를 보았다. 꽤 호기로운 눈동자로 말이다.
“아직 어리네.”
나는 그 말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많아 봐야 5살 정도 밖에 차이가 안나 보이는 남자가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것이. 꼭 조롱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나도 먼저 남자를 아저씨 취급하긴 했으니. 남자가 말을 이었다.
“사는 것도 몸에 나빠”
“…”
“생각해 봐.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 우울, 피로 뭐 이런 것들은 다 살면서 얻는 거거든. 아니 살아서 얻는 거지.”
“…”
“그러니까. 산다는 건 피곤한 일이야. 몸에 해롭지. 담배 만큼이나. 아니 담배 보다 더.”
글쎄….
“그래서 죽으려고요?”
“이런. 너무 직설적이네”
“죽으려던 거 아니었어요?”
폐병에 걸린 주제에 그렇게 매일 같이 담배를 피워 대는 게, 나는 당신이 죽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줄 알았는데. 또 다시 우리 사이엔 긴 침묵이 이어졌다.
“맞아”
남자는 필터까지 타들어 갈 것 같은 담배를 깊게 빤 후 바닥에 버리고 발로 지져 불을 껐다. 나는 엉망이 된 꽁초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저렇게, 남자의 목숨이 또 단축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바닥의 꽁초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남자에게 말했다.
“왜 죽고 싶어요?”
“글쎄..”
남자는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렇게 살 필요를 못 느꼈었어"
"…"
"별로 삶에 미련이 안 남았었는데…"
그리고 남자는 더 이상 말을 잇질 않았다. 소나기가 내리는 건지 창 밖에서 쏴-하고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온갖 것들에 부딪히는 빗방울들의 총탄과도 같은 매서운 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알 수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아저씨 용감하네요.”
왼쪽 얼굴에 남자의 시선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죽어버린 담배꽁초를 보았다.
“죽음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가엽잖아요. 원하지 않는데 죽는 사람들.. 죽을 수밖에 없는데 죽음을 무서워하다니. ”
“…”
“오히려 아저씨가 나은걸 지도 모르겠어요.”
“…”
“그런 사람은 너무 가여워서... 가엽잖아요.. 죽고 싶지 않은 데.. 죽음이 무서운 데 죽을 수 밖에 없어서 죽어야 한다니... 얼마나 무섭겠어.”
나는 내가 무슨 말을 내뱉는지 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의식의 흐름에 맡긴 말들이었다.
“그러니까 차라리 다행이에요.”
“…"
“아저씨는 죽고 싶어 하니까-”
“…”
“아저씨는 그저 아저씨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거잖아요.”
“…”
“그러니까 아저씨는. 아저씨는 가여운 사람이 아니에요.”
“…”
“만약 아저씨마저 가엽게 죽는다면..”
나는 말끝을 흐렸다. 감정이 복받쳤다. 여러 가지 생각이 조잡스럽게 엉키었다. 죽은 담배꽁초 위로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하늘하늘, 바람에 몸이 흔들거리는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가여운 여자가. 그리고, 내가.
“그건. 그건 너무…. 내가 가여워요.”
나는 엉엉 울었다. 무릎에 고개를 박고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그런 나를 위로해 준 건 남자였다. 내가 남자를 위로해야하는 상황에, 남자가 우는 나를 달래고 있다. 남자가 나를 끌어안고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하고서. 슬퍼 보이 기도, 어쩌면 안타까워 보이기도 하는 눈빛으로. 하지만 눈물을 멈출 수는 없었다. 더 이상 가여운 나를 상상하는 건 너무나도 비참하기 때문에. 그래서 다행이다 당신이 외로운 사람이라서. 하지만 가여운 사람은 아니여서.
*
남자와 만난 지 7일이 되는 오늘. 건물에 들어서자 이제는 익숙해진 담배냄새가 솔솔 내려온다. 나는 냄새를 맡자마자 빠르게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역시나. 입에 아슬아슬하게 담배를 문 남자가 보인다. 자동적으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성큼성큼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안 핀다면서”
“그러려고 했어”
“근데”
“피나 안 피나 어차피 죽는 건 똑같은 데 굳이 안 피워야 겠나 싶더라고”
나는 뚫어져라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래. 나는 이제 남자를 말릴 마음은 없다. 남자의 말에 따르면 남자는 죽고, 그리고 죽고 싶다고 했다. 죽음에 폐암이라는 조건 하에 담배보다 더 좋은 수단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남자를 말리지 않겠다.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말리는 것 역시 내가 가여운 일이니 말이다. 대신에 나는 오늘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12시간이 더 지난 지금까지 하루 종일 마음에 품고 있던 말을 남자에게 하였다.
“아저씨 집에 갈래요”
남자는 나를 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무심한 눈빛이 허공을 향했다.
“안 돼”
“왜요”
“아무 남자나 집에 들이면 안 되는 거야”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조금 미간을 찌푸렸다. 여전히 나를 보지 않는 시선에 심통이 난다.
“아저씨 저한테 먹힐 거 에요?”
내 말에 남자는 우습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곧 입술을 앙 다문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말이 없다. 나는 대답을 기다렸다. 담배가 필터까지 다 타들어 갈 때가 되어서야 남자가 계단에서 일어났다. 남자가 나를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닫히지 않은 낡은 철문을 보았다. 끼익, 소리를 내며 틈이 벌어졌다가 좁혀졌다가를 반복한다. 아무튼 서툴다니까. 조심스럽게 남자를 따라 들어간 집은 나의 집과 방향만 달랐다 뿐이지 데칼코마니를 해 놓은 듯 다른 곳이 없었다. 남자는 방으로 들어가 이불이 깔린 바닥에 앉았다. 집을 둘러보던 나는 남자를 불렀다.
“아저씨”
“왜”
“여기서 살긴 살아요?”
텅 빈 집안을 둘러보았다. 바닥에 깔린 이불과 베개, 작은 장롱과 그 옆의 더 작은 서랍. 그리고 방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기타 케이스. 그 것이 다였다. 침대도, 소파도, 그 흔한 텔레비전도. 남자의 집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마저도 남자의 방 안에 있는 것이 다였다. 거실은 그저 텅 비어 먼지가 쌓인 채 가구 하나 없었으니.
남자는 별 다른 표정이 없었다. 나는 허한 거실을 두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피곤하다는 듯 방의 널 부러진 이불 위에 팔로 눈을 가린 채 누워 있었다. 두 개가 나란한 형광등은 하나가 고장이 나 불이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남자의 길게 뻗은 다리를 보다 걸음을 옮겨 남자의 장롱을 열었다. 분명 지금은 바람이 쌀쌀하게 부는 가을이건만 남자의 옷장엔 팔이 짧은 얇은 V넥들과 남자가 즐겨 입는 목이며 팔이며 푹 파인 나시, 면 티셔츠 밖에 들어 있는 것이 없었다. 모두 회색, 검은색, 하얀색. 무채색이다. 보기만 해도 우울함이 밀려오는 옷들에 나는 그냥 문을 닫았다. 옆으로 몇 걸음을 옮겨 서랍 앞에 섰다. 먼지가 그래도 적게 쌓인 것이, 비교적 깨끗한 느낌을 주었다. 제일 위의 서랍을 열자 안을 가득 채우는 약들이 보인다. 종류를 알 수 없는 약들이 담긴 갖갖이 크기의 약통들과 색색의 알약들. 아침, 점심, 저녁이 나뉘어 있는 반투명의 약봉투. 나는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하얀 약통을 집어 들었다. 무게가 묵직하다.
“무슨 약이에요?”
약통의 겉엔 아무런 글자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하얀 통 안에 이름 모를 하얀 알약들이 가득 채워져 있을 뿐.
“항암제”
“아저씨꺼에요?”
“어”
“하나도 안 먹었네.”
나는 서랍을 좀 더 뒤졌다. 처방전으로 보이는 종이가 서랍의 바닥에 깔려있다. 나는 그것을 꺼내려 애썼으나 그러지 못했다.
“그만하지?”
남자가 내 팔을 붙들었기 때문에. 남자가 말리는 짓을 더 할 마음은 없었다. 나는 키가 큰 남자를 올려 보다가 잡힌 팔을 풀었다. 대신 내가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나는 남자를 아까 남자가 누워 있던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방을 밝히던 하나의 형광등 마저 껐다. 방이 온통 어둠으로 물들었다. 나는 힘들게 자리를 찾아 남자의 맞은 편에 앉았다. 이불을 끌어 우리의 다리를 덮었다. 꽤 두툼한 이불이 포근했다. 내 행동에 남자가 인상을 쓰고 물어온다.
"뭐하자는 거야"
"얘기 하자는 거요."
오늘 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것이었다. 우리 아직 못 나눈 얘기가 많은 거 같으니까. 나는 남자를 보며 웃어 주었다. 시선을 느낀건지 피곤하다는 듯 남자가 눈을 감고 등을 벽에 기댔다. 어쨌든, 싫다는 말은 안했네. 나는 무릎을 세운 후 몸 가까이로 끌어 당겼다. 이불에서 독특한 향이 난다. 남자의 몸에서 나는 미미한 담배 냄새도 아닌 독특한 향. 나는 어림으로 이것이 남들이 말하던 노총각 냄새라고 짐작했다. 남자. 노총각. 남자. 노총각. 남자는 총각인가?
"그나저나 아저씨는 몇 살이에요?"
"몰라?"
"네"
"그러면서 아저씨, 아저씨 그랬어?"
"안 알려 줬잖아요"
부루퉁한 내 말투에 금방 남자가 대답을 한다.
"85"
"팔오?"
"응"
"세상에. 스물 아홉?"
"왜"
"동안이라서. 기껏해야 스물 여섯인 줄 알았는데"
남자는 내 말이 마음에 든 건지 피식, 바람빠지는 소리를 냈다.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으나 분명 입꼬리도 올렸을 거다. 서서히 어둠에 적응한 눈이 희미하게 나마 남자의 얼굴 윤곽을 잡는다. 점차 또렷하게 보인다. 유난히 지쳐 보이는 남자를 보니 나는 문득 내가 없는 시간에서의 남자가 궁금해 졌다. 밤 10시가 아닌 아침 10시의 남자.
“아저씨는 낮에 뭐해요?”
“…어디 가”
“어디?”
남자는 알려주기 싫다는 듯 대답이 없었다.
"일 해요?"
"아니"
"그럼 백수?"
그런가…. 말 끝을 흐리며 남자가 대답한다. 남자는 비밀이 많다. 일단 지금 하는 일은 없다는 거네. 굳게 닫힌 남자의 입은 말을 더 이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도 깊은 질문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 것들은 모두 나중에 찌끄러기와도 같은 잔재가 되어 나를 괴롭힐 것이 뻔하기 때문에.
“원래 뭐했는데요?”
“노래”
의외의 대답에 눈이 크게 뜨였다. 그제서야 잊고 있던 방 한 구석의 기타가 생각이 났다. 나는 완전히 어둠에 적응한 눈으로 기타를 찾아와 다시 앉았다. 지익-하는 소리와 함게 기타 케이스가 열리고 까만 바디의 기타가 나타난다. 기타를 꺼내 알맞게 들었다. 팽팽한 기타줄에 손끝이 스칠 때 마다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 것이, 이래서 기타는 좋다
“쳐주세요.”
“…”
나는 혼자 줄을 튕기며 놀던 것을 멈추고 남자에게 기타를 내밀었다. 아랫 입술을 지긋히 깨물더니 받으라는 내 손짓에 그제서야 기타를 건네 받는다. 내 품에는 조금 크던 기타가 남자의 품에는 딱 알맞게 들어 맞는다. 줄을 몇 번 튕겨본 남자가 알맞게 기타를 튜닝한다. 지금 보니 길고 가는 손가락이 담배만 걸려있기엔 너무 아까운 손이다. 튜닝을 마친 듯 다시 기타줄을 튕기던 남자는 준비가 끝난 건지 허리를 곧게 세우고 기타를 바로 잡는다. 곧 남자의 손이 현을 부드럽게 탄다. 나는 귓가를 파고 드는 은은한 기타 선율에 눈을 감았다. 부드러운 선율이 방 안을 가득 울린다. 마냥 빠르지 않고,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빠르기. 단조로 이루어진 음계가 밝지도,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오묘한 느낌을 준다. 몽환. 꿈을 꾸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흑백의 꿈을 꾸는 것 같은 착각.
"무슨 노래에요"
"내가 만든 노래"
남자가 만든 노래.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정말로 이 노래는 남자에게 맞춘 것 처럼 남자와 잘 어울렸기 때문에. 남자가 아니고서 누가 이렇게 남자와 닮은 노래를 만들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의 기타 선율은 끝 없이 반복 되었다. 나는 남자에게 질문을 계속 하였다. 우리가 주고받는 대화에 남자의 기타 선율이 작게 깔렸다.
"아저씨는 어디에서 왔어요"
"서울"
"여기도 서울이잖아. 음악 했으면.. 홍대?"
"응"
"왜 여기로 온 거야?"
"도피"
도피라. 남자와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남자는 정말로 어딘가에서 도망쳐 온 부랑자처럼 보였으니. 사랑의 도피는 아닐테고..
"뭐로 부터의 도핀데요?"
"모든 현실로 부터"
나는 남자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현실. 남자와 이상하게 괴리감이 느껴지는 단어였다. 남자와 현실을 연관 짓기가 힘들었다. 아니, 별로 하고 싶지 않은 걸 지도 모르겠다. 남자가 처한 현실은 너무도 암담하니깐. 굳이 그 암담함과 남자를 연결지어 남자를 가엽게 여기고 싶지는 않았다. 남자는 가엽지 않아야 하니깐.
"여기가 마지막이야?"
"아닌 거 같아"
"그러면 그 다음은?"
"아무도 없는 곳"
남자가 말하는 아무도 없는 곳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도 없는 곳이라. 정말로 아무도 없는 외딴 무인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철저히 남자가 고립된 남자를 아는 사람이 없는, 그러니 아무도 남자를 모르는 그런 곳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로 아무도 없는 곳이거나. 그러니까 남자 조차 존재하지 않는 곳 말이다. 대화의 전환이 필요했다. 나는 여전히 기타를 연주하는 가는 손가락을 보았다. 손 끝 마다 굳은 살이 박혀있는 게 남자가 얼마나 오래 기타 줄을 잡았는 지 어림 짐작이 되었다.
"과거에 아저씨는 어땠어요?"
"…"
"들려줘요. 아저씨 옛날 얘기"
남자가 연주를 멈추었다. 그리고 기타에 몸을 기댄다. 상념에 잠긴 듯 한동안 남자는 말이 없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의 어스름이 남자의 얼굴을 더 또렷하게 잡았다. 높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꿈처럼 몽롱한 순간이다.
"노래하는 걸 좋아해서 노래를 했어. 그걸로 밥 벌어 먹고. 거지같이 살았어."
"아저씨 답네"
"그러다가 내 몸 안의 미친 세포가 나를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
"그게 다야"
남자는 아주 쉬운 일이라는 듯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절대고 그건 쉬운 일도, 아무것도 아닌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정말로 남자가 떠난 뒤 남자가 남긴 삶이 저게 다 일까봐. 그건 슬픈 일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 머릿속에 떠오른다는 건 괴롭다. 나는 몸을 움츠렸다. 괜히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 동안 고개를 박고 생각을 했다.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소통은 언제나 일방통행이었다. 내가 남자를 향하는 그런 일반통행. 나는 이불에 묻었던 고개를 들고 남자를 보았다.
"나한테는 궁금한 거 없어요?"
"…"
"없어?"
"말해줘"
"응"
"너한테 가장 괴로웠던 일"
괴로웠던 일이라. 남자가 무엇을 알고 싶어 내게 그런 것을 묻는 지 모르겠다. 나는 몸을 둥글게 말았다. 나는 다리 사이에 고개를 묻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괴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사방이 온통 어둠인 곳에 서있는 내가 보인다. 위아래를 구분할 수 없는 곳에 나는 물 위에 떠있는 것 처럼 그저 꼼짝 못하고 있을 뿐이다. 곧 검은 어둠의 소용돌이가 생겨난다. 나는 회오리에 휩쓸린다.
"나 혼자 세상에 남겨졌을 때"
"…"
"바다 위를 부유하는 뗏목에 혼자 남겨 졌다는 걸 알았을 때"
"…"
"내가 너무 가여웠어."
*
바지 주머니에 삐죽 튀어나온 붉은 담배곽이 보인다. 오늘은 어째 입에 담배가 없다 싶었는 데 주머니 속 담배곽은 여전하다. 나는 검지손가락을 이용해서 붉은 담배곽을 튕겼다. 그다지 묵직하지 않은 무게가 반 정도 남은 것 같다. 남자는 내 행동을 흘끗 보더니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린다. 무심한 표정이다. 나는 남자에게 물었다.
"이게 맛있나? 달고 그래요?"
"아니. 더럽게 맛 없어."
"근데 왜 펴?"
"글쎄"
"솔직히 말해요. 정말로 죽고 싶어서 피는 거에요?"
"글쎄…"
애매한 대답에 인상이 쓰인다. 내가 인상을 쓴 걸 느낀 건지 남자가 잽싸게 말을 잇는다. 무마하려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너는 담배 피지 마”
“안 필 거 에요"
팩하고 토라진 내 대답에 남자가 웃었다. 나는 이상하게 남자의 웃음에 약했다. 저렇게 고른 이를 드러내면서 웃는 웃음에는 더. 결국 지는 건 나다. 나는 무릎을 끌어 안고 얼굴을 기대었다. 남자의 옆 얼굴은 언제나 곧고 바르다. 나는 지긋하게 남자에게 물었다.
“끊으려고 한 적 없어요?”
“있어”
"언제?"
"음.. 예전에"
“실패했어요?”
“실패라..”
말을 길게 잇던 남자의 입이 앙 다물렸다. 습관처럼 남자가 아랫 입술을 깨물었다. 혀로 입술을 축이더니 곧 닫혔던 입이 열린다.
“끊으려고 했는데 누가 못 끊게 만들더라고”
“누가?"
“있어."
저렇게 애매한 대답이 세상에 어디 있다는 말인가. 여전히 남자는 비밀이 많다. 하지만 남자에 관한 깊은 질문은 피하기로 했으니깐. 나는 질문을 전환했다.
"왜 끊으려고 했어요?"
한동안 정적이 이어졌다. 나는 대답을 생각하는 남자를 기다렸다. 느릿하게 남자가 입을 열었다.
"살고 싶었거든"
생각지 못한 대답이 었다. 살고 싶었다고 말을 하는 남자. 한 번도 내가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 모습에 당황함이 몰려 왔다. 내가 알 지 못하는 남자. 그렇게 말을 하는 남자의 모습은 담담하고 감정이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물었다.
"왜요?"
남자는 또 다시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하지만 이번엔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돌아온 남자의 대답은 다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켜주고 싶은 애가 있어서"
'애인?"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내 질문에 남자가 한 쪽 입꼬리만을 올려 웃었다. 자조적인 웃음이 었다.
"근데 왜 안 끊었어요"
내 물음에 한 쪽 입꼬리를 올려 웃던 남자의 입이 일 자로 굳게 닫힌다. 남자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이제는 익숙한 일이었다. 대답을 생각하는 남자는 기다리는 일. 남자에겐 언제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결정을 짓는 것에 대해. 나는 그 시간을 기다려 줄 수 있다. 덤덤하게 남자가 말했다.
"어차피 난 죽는데"
"…"
"내가 살려고 발버둥을 쳐도 나는 죽는데"
"…"
"그러면 내가 죽은 뒤 남겨진 애가 불쌍하잖아"
어쩌면 남자는 내 생각보다 착하고 미련한 사람 일 지도 모르겠다. 배려심이 많은 건지 미련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말을 하는 남자의 표정이 오묘했다. 슬퍼 보이기도 했고, 우스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동시에 나는 남자가 말하는 그 아이가 남자에게 꽤나 큰 존재임을 느꼈다. 묘한 감정이 일렁인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대답대신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대답을 해주지 않을 걸 이제는 안다. 타들어가는 담배 꽁초와 죽어가는 남자의 몸, 짧아지는 남자의 삶. 이 세 가지가 어지럽게 머릿속을 헤집었다. 나는 남자를 보았다. 울적하고, 울적하고 슬프다. 나는 처음으로 드러난 남자의 외로움을 본 것이다.
**
남자의 슬리퍼 옆에 내 발을 갖다 대 보았다. 내 발도 절대 작은 편은 아닌 데 남자의 발은 작지 않은 나의 발 보다도 더 컸다. 남자는 키도 크고, 발도 크고, 손도 크고. 나보다 작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5부 바지 아래 드러난 남자의 다리를 보았다. 긁히고, 멍들고, 흉터가 남은 상처가 여럿이다. 남자의 과거를 고스란히 담은 것들인 것이리라. 상처가 무어냐 물어면 남자는 분명 답을 해주지않을 것이다. 나는 낮게 남자를 불렀다.
"아저씨"
"어"
"아저씨는 살면서 뭐가 제일 힘들었어요"
남자가 나를 보았다. 무엇을 원하냐고 묻는 것 처럼 보이기에 나는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해 먼저 눈을 돌렸다. 나는 발바닥을 바닥에 붙였다 떼었다를 반복하였다. 일정한 박자로 탁탁, 신발창과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외로운 거"
나는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처음으로 남자가 나의 앞에서 자신의 외로움을 말한다. 언제나 눈빛으로만 전해지던 그 외로움이 이제는 말이 되어 남자의 입에서 토로된다. 괜히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뛴다. 나는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물었다.
“왜요?"
남자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심장이 쿵쿵 뜀박질을 했다. 공허한 남자의 눈동자가 허공을 향한다. 남자가 담배를 깊게 빨았다가 입에서 떼었다. 뿌연 연기가 입에서 뱉어진다. 곧 연기가 공기 중으로 샅샅히 흩어졌다.
“사니까”
“…”
“산다는 건 외로운 일이야”
남자는 벽에 난 작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나도 남자의 시선을 따라 밤하늘을 보았다. 여전히 별이 반짝이지 않는. 오늘은 간신히 이곳을 비추던 달마저 종적을 감추었다. 남자와 나는 같은 하늘을 올려다 본다. 검고 어두운 하늘을. 생각이 뒤엉킨다. 꼭 우리가 이 곳에 고립되 있는 사람들 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긋이 남자에게 물었다. 어쩌면 나에 대한 물음 일 지도 모르는 물음을.
“어떻게 하면 외롭지가 않을까요?”
“음…”
남자는 꽤 진지한 고민이라도 하는 듯 말꼬리를 길게 빼었다. 손가락에 걸린 담배의 재가 아슬아슬, 떨어지지 않고 간신히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남자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남자의 큰 눈동자가 크게 한 번 뱅글 돌았다. 남자는 생각이 났다는 듯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나를 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반짝하고 빛났다.
“섹스하면?”
남자는 자신이 한 말이 웃긴 지 예의 그 표정을 지었다. 눈은 웃지 않으면서 입 꼬리만을 씨익- 올리는 그 표정을. 나는 남자의 말이 웃기지도, 우습지도 않았다.
“시시 하네”
그저 시시하게 느껴졌다. 섹스를 하면 외롭지가 않다고? 외로움이, 그 바다가 섹스를 하면 뒤로 밀려나? 밀물이 들어오고 썰물이 빠지 듯이?
“되게 시시하네요, 아저씨”
나는 남자를 표정 없이 보았다. 남자가 허-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남자는 웃었다. 어딘가 화가 난 듯 보이기도 했고, 또 즐거운 것 같기도 했다. 어린놈이 자신이 시시하다며 당돌하게 구니 재밌기도 하겠지. 하지만 정말로 시시한 걸. 외로움은. 외로움은 절대 겨우 그딴 것으로 밀려 나지 않는데. 남자가 내 눈을 보면서 말했다. 재밌다는 듯 올라간 두 입 꼬리가 개구졌다.
“그럼 나랑 잘래?”
“…”
“시시하다며. 니가 나랑 자면 되겠네.”
“네”
“뭐?”
어디서 그런 당돌함이 튀어 나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당황한 듯 되물어 오는 남자를 그저 말없이 직시할 뿐이었다. 남자의 손에 들린 담배의 타버린 재가 우수수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문 앞에 섰다. 열쇠를 문에 꽂고 돌렸다. 철컥, 하는 소리가 들리고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나는 남자를 향해 돌아 보았다. 당황으로 물든 남자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담담하게 남자에게 말했다.
“들어와요”
남자와 만난 지 10일 째 되는 날. 나는 남자와 섹스를 했다.
**
남자와의 섹스는 생각보다 아프고, 아프고 또 아팠다. 잠에서 정신이 깨기도 전에 생소한 고통이 허리에서 척추를 타고 아찔하게 전해왔다. 고통을 참으며 서서히 눈을 뜨자 낡은 집의 천장이 보인다. 우리 집이네. 옆자리가 허전했다. 나는 코를 찌르는 알싸한 담배향에 베개에서 고개를 들었다. 남자의 마른 등이 보인다. 툭 튀어나온 날개뼈가 가뜩이나 말라 안쓰러운 남자를 더욱 가여워 보이게 만들었다. 어둡고 습한 방안과 작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한줄기의 햇살. 그리고 피어나는 담배연기가 어딘가 이질적이게 느껴져서 나는 한참을 그 그림 같은 장면을 보고만 있었다.
“등 뚫리겠네. 그만 쳐다보지 그래?”
아…. 나는 남자의 말에 멍청한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낡은 침대가 삐그덕,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나는 반 쯤 일으킨 몸을 침대 헤드에 기대었다. 어딘 가에라도 몸을 기대지 않으면 허리가 곧 또각, 소리를 내며 부러질 것 같기에. 나는 이를 악 물고 신음을 억눌렀다.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어때?”
“뭐가요”
“섹스”
“아파요”
내 말에 남자가 킬킬하고 웃었다. 하지만 여전히 담배를 피우는 등은 미동이 없기에, 어쩌면 남자가 입으로 웃는 소리만 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웃지 않는 표정으로 웃음소리를 내는 남자라. 그로테스크 하지만 또 남자에겐 썩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왜 그랬어.”
“뭐가요”
남자는 너무 많은 말을 생략한다. 두서없는 질문은 언제나 내게 다시 남자에게 되물어야 하는 상황을 만든다.
“왜 나랑 섹스 했어?”
처음부터 그렇게 물어보면 좀 좋아. 그러니까 남자가 물은 ‘그런 것’이 자신과 잔 것이라니. 자신이 생각해도 이해가 잘 가지 않나 보다. 하긴, 여전히 나도 잘 모르겠으니 남자는 오죽할까. 나는 남자의 앙상한 등을 보며 생각했다. 참으로 외로운 등이다. 나는 남자의 등에 대고 말했다.
“외롭다고 징징거렸잖아”
허-.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는 남자의 감탄사와 함께 집 안 공기를 탁하게 물들던 담배 연기가 멈추었다. 나는 남자가 담배 곽에서 개피를 더 꺼내려하기에 들릴 듯 말 듯 작게 말했다. 피지 말지. 남자는 금방 대답했다. 시끄러워. 그리고 남자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남자의 마른 등 너머에서 하얀 담배연기는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너한테 자달라는 말은 아니었어.”
“어쨌든. 그래서 싫었어요?”
“그건 아니고. 네가 그러지 않아도 됐다는 말이야.”
“누가 그러던데요. 외로운 사람끼리 뭉쳐야 한다고.”
“누가 그러든”
“우리 엄마가”
언젠가 엄마는 내게 그랬다. 사람은 외로운 사람끼리 만나야 한다고. 그래야 한 쪽이 비참하지가 않다고. 한 쪽이 외롭지가 않으면, 외로운 한 쪽은 그 한 쪽의 외로움 까지 모두 가져 버려 외로움이라는 바다에 빠져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건 너무 가여운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외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아마 본인들의 말에 따르면 외로운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다 부인이 있고 자식이 있는데도 엄마에게 외롭다는 말을 했다. 정말 외로운 건 나 하나밖에 남지 않은 엄마인데도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건지, 아니면 속아 준건지 모르겠지만 그들을 만났다. 엄마는 그들을 사랑했다. 진심으로. 엄마는 언제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거짓이었다. 엄마는 그것을 몰랐을 뿐이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거구나. 엄마는 가엽다. 그들은 엄마를 속이고 엄마는 더욱더 바다에 깊이 빠졌다. 엄마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엄마는 단지 순진했을 뿐이다. 엄마는 똑똑했지만 정작 자신을 알 지 못했다. 어쩌면 알려고 하지 않은 걸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그래서, 그래서 엄마는 결국 그 바다에 빠져서 죽어버렸다.
엄마가 남긴 유서라곤 달랑 ‘외로워’라는 말이 적힌 A4용지가 다였다. 그리고 엄마가 죽으면서 남긴 것이라곤 ‘나’가 다였다. 나는 천장 형광등에 감긴 줄과 그것에 목을 매단 채 죽은 듯 죽어있는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외로운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나보다도 더 외로운 사람을.
나는 급격히 몰려오는 피로감과 무기력함에 헤드에 기댔던 몸을 밑으로 축 미끄러뜨렸다. 침대에 미끄러진 몸에 베개가 머리에 알맞게 닿는다. 나는 이불을 끌어 올려 내 온 몸을 가렸다. 이불이 발끝부터 머리 끝 까지, 모든 것을 뒤덮는다. 두껍지 않은 이불을 통해 조금은 작아진 남자의 말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너는 외로워?”
“네”
“네가 왜”
글쎄…. 나는 좀 더 이불 안으로 파고들었다. 깊게 파고들수록 답답하고 먼지가득한 공기가 코를 간질인다. 눈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간다. 먼지가 눈을 간질인 탓일 것이다. 나는 몸을 옆으로 누웠다. 왼쪽 눈에서 흘러나온 물이 콧대를 타고 흐르고 오른쪽 눈에서 흘러 넘쳐 다시 이불을 적신다. 나는 삐그덕 거리는 침대의 소리에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축축하게 젖어들어간다. 곧 나를 억누르고 있던 답답한 공기가 서서히 개운한 공기로 바뀌었다. 얼굴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까와 달리 트인 공기가 들이쉬고 내쉬어 진다. 나는 감은 눈을 떴다.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 눈을 들여다 보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살아가는 중이니까”
산다는 건 외로운 일이다.
*
남자와 이렇게 햇빛이 드는 곳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는 늘 밤 10시, 별 마저 보이지 않는 시간에 집 앞의 계단에서 오렌지색 불빛에 의지한 채 서로를 보았기 때문에. 햇빛을 받는 남자는 아름다웠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과 날리는 먼지. 그리고 그 중심에는 뼈가 앙상하게 마른 남자. 나는 미와 슬픔은 언제나 붙어 다닌다던 조지 맥도날드의 말이 이해가 갈 것도 같았다.
“뭐가 그렇게 외로워”
나는 지긋이 물어오는 질문에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것일까? 남자는 나를 보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반찬이 올려진 식탁위를 보았다. 김, 김치, 계란, 햄. 기본적인 반찬들. 혼자 먹을 땐 몰랐는 데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먹으려고 하니 그렇게 조촐해 보일 수가 없는 밥상이다. 남자의 손에 들린 젓가락을 보면서 처음으로 나는 수저를 버리질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혀로 바짝 마른 입술을 축였다.
“나는 처음 부터 외로웠어요"
"…"
"그래서 뭐가 그렇게 외롭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어요"
정말로. 나는 처음 부터 외로웠으니깐. 나를 외롭게 만드는 것은 없었다. 단지 내가 외로운 사람일 뿐이다. 남자의 입이 열리려 하기에, 나는 남자가 말을 하기 전에 잽싸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별로 안 외로운 것 같아요”
“…”
“아저씨를 만나서 그런가.”
엄마 말 대로 아저씨가 내 외로움을 다 가져가 버린 걸까요? 나는 마음 속으로 질문을 삼켰다. 언제나 혼자 생각하던 질문이 었다. 점점 말라가는 당신이 내 외로움을 다 가져가 버려서 아픈 건 아닌지 하는. 내 마지막 말에 하얀 밥을 실어 나르던 숟가락이 순간 멈추었다. 그리고 다시 숟가락이 입 안에 들어가기 까지, 그 짧은 순간을 모두 지켜보았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오물거리는 남자를 살펴보았다. 옷을 입지 않은 남자의 배는 푹 꺼져 허리가 앙상했다. 남자가 죽어간다는 느낌을 순간 강하게 받았다.
“그러고 보니 살이 더 빠졌네. 많이”
“…”
“머리카락도 많이 빠진 것 같고..”
남자는 묵묵히 밥을 삼킬 뿐이었다. 찬찬히 남자의 머리끝부터 식탁에 가려 보이지 않는 발 끝 까지 살피던 나는 이상하게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내려 놓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몇 분의 침묵 끝에 조심스레 남자에게 물었다.
“아파서 그런 거죠?”
남자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그렇다고 대답해. 내 외로움까지 가져가서 그런 게 아니라고. 아파서 그런 거지? 그지? 나 때문이야? 그래서 죽어 가는 거야? 아니지? 당신은 아니잖아. 엄마랑 다르잖아. 그지? 빨리 대답해. 어서.
“응”
그래. 다행이다. 그제서야 나는 더 이상 떨리지 않는 손으로 젓가락을 쥘 수 있었다. 나는 젓가락으로 입 안에 밥을 떠 넣었다. 밥 알이 입안에서 분산되었다. 드르륵 하는 의자 끄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이로 밥알을 씹으며 눈을 치켜뜨고 남자를 보았다. 묘한 표정의 남자가 반찬이 올려진 상을 바라본다.
“더 안 먹어요?"
"입 맛이 없어"
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거친 기침을 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서는 기침 소리가 여전히 들려온다. 나는 식탁 위에 남겨진 아직 김이 올라오는 하얀 쌀이 가득 찬 밥그릇을 멍하게 보고만 있었다.
**
남자는 오늘따라 유달리 지쳐보인다. 말 수도 적고 반응도 느렸다. 그런 남자 덕에 지루한 쪽은 내 쪽이었다. 하지만 지친 남자를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평소처럼 세운 무릎에 얼굴을 기댄 후 남자를 보았다. 남자의 입에 물린 하얀 막대와 그것을 물고 있는 입술을 번갈아 보았다. 보라빛의 입술, 그리고 하얀 담배. 남자의 입에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담배의 끝이 붉게 타오른다. 한참을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나는 남자를 불렀다.
“아저씨”
"왜"
“나도 하나 줘요”
남자가 인상을 쓰며 나를 돌아 보았다. 나는 어떠냐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여전히 남자의 미간에는 주름이 잡혀 있기에 손가락으로 그 주름을 펴준 후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남자가 고개를 몇 번 젓더니 담배곽을 꺼낸다. 7개 피가 남아 있다. 나는 남자가 쥐어준 담배를 입에 문 후 남자에게 가까이 했다.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준다. 나는 붉게 끝이 타들어 가는 담배를 가만히 보고 만 있었다. 깊게 빨아. 옆에서 들리는 남자의 말에 나는 담배를 깊게 빨았다.
"켁켁,"
그와 동시에 나는 입에 물려 있던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독한 연기에 머리가 띵하게 울렸다. 코 끝이 찡하게 울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대체 이걸 왜 피는 거야?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긴 담뱃대를 오래 쳐다보았다. 나는 남자가 발로 담배를 지져 끄는 것을 보며 한참을 숨을 켁켁 거렸다. 목구멍이 따가웠다. 눈에 맺힌 눈물 까지 닦아 내고 나서야 진정을 할 수가 있었다. 나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맛 없어."
내 말에 남자가 웃었다. 눈은 변함이 없는 데 두 입꼬리가 올라간 괴기한 웃음이 었다. 남자는 웃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저런 맛도 없는 거 때문에 죽는다니"
"…"
"억울하다"
내 말에 남자가 물었다. 네가 왜. 글쎄.. 나는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몸이 얼음장 처럼 차갑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가 긴 팔을 꺼내 입은 이 날씨에 남자는 여전히 소매가 없는 차림이다. 내일은 계절감을 상실한 남자를 위해 담요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손이 많이 가는 사람 같다.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나는 오랫동안 남자가 말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손 끝으로 남자의 허벅지를 톡톡 두드렸다. 미동이 없다. 얼굴을 살피니 두 눈이 속눈썹을 길게 드리운 채 감겨 있다. 나는 왠지 모를 안도감에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저씨 자요?"
"미안. 졸았네."
남자는 내 말에 몸을 움찔 떨며 잠에서 깨었다. 정말로 남자는 피곤한 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이런 남자의 모습은 처음 보았기에 나는 속상한 감정이 앞섰다. 남자가 무얼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지친 남자의 모습을 보는 건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다. 나는 허공에 띄워진 남자의 손을 잡았다.
"손 얼음 같아"
남자의 손은 몸 보다도 더 차가웠다. 혼자서 겨울을 겪는 사람처럼. 녹여줘야지. 한참 남자의 손을 잡고 놀던 나는 남자를 끌어 당겨 허리에 팔을 둘렀다. 이렇게 하면 남자가 따뜻하겠지. 당황한 건지 남자의 행동이 순간 멈추었다. 아랑곳 않고 나는 남자의 가슴팍에 머리를 기댔다. 쿵쿵 거리는 심장 소리가 내 귀를 울린다. 심장의 고동이 느껴진다. 쿵덕쿵덕 하는 규칙적인 리듬이 아닌 불규칙적인 박자로 뛰는 심장이.
"아저씨 심장이.."
나는 놀란 마음에 남자를 올려다 보았다. 남자의 검은 눈 보다 붉어진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곧 미미하게 흔들거리는 남자의 눈동자도. 남자는 말을 잇질 못하는 나의 볼을 움켜 잡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곧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떨어졌다.
"피곤해서 먼저 들어가 볼게"
남자가 허리에 감긴 내 팔을 풀었다. 두 팔이 힘 없이 떨어졌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집 문이 닫혔다. 그리고 혼자 남겨진 나는 오렌지 빛 불이 나갈 때 까지 한참 동안 남자가 황급히 들어간 402호의 철문을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늦었네”
계단을 올라오는 내게 다짜고짜 늦었다고 말하는 남자를 바라 보았다. 어디 하나 장난기 없이 진지한 표정이다. 나는 입술을 입 안으로 말아 넣었다.
"아저씨"
"응"
"지금 9시 50분이에요"
잠시 멍해진 표정의 남자가 그런가... 하며 말 끝을 흐린다. 슬리퍼에 신긴 남자의 얼어버린 발이 눈에 들어온다. 빨갛게 변한 발. 대체 언제부터 기다린 걸까. 아무래도 남자를 위해 담요를 들고 나오는 게 맞는 것 같다. 나는 남자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문 앞에 섰다. 담요가 어디 있더라.. 급한 마음에 행동이 조급해졌다. 주머니 속 열쇠가 잘 잡히지 않았다. 한참을 뒤적 거린 후에야 나는 입구에 열쇠를 꽂을 수 있었다. 철컥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전히 담요가 있는 곳이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나"
"…"
“내일 떠나”
나는 잡은 문고리를 돌릴 수 없었다. 누군가 나를 향해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 꼼작을 할 수가 없었다. 떠나. 어디로 떠난다는 걸까?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서 병원으로 간다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난 다는 것일 까. 아직도 남자의 손에는 불빛을 내며 타는 담배가 들려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전자는 아닌 듯싶었다. 그렇다면.. 나는 마른 입술을 축였다.
“그런데요?”
부루퉁한 대답이 나도 모르게 앞섰다. 머리가 복잡했다. 남자가 계단에서 일어 선다. 내 등 뒤에서 남자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나는 뒤를 돌아 볼 수가 없었다. 남자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으니깐. 가까운 곳에서 나직하게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안해”
“뭐가요”
“외롭게 해서”
남자가 내게 사과를 한다. 외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절대 남자가 사과를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생각보다 빠른 이별이 었다. 아니 어쩌면 나는 이미 남자가 곧 떠난 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어제 밤 얼음장보다 차갑던 남자의 손을 잡을 때 부터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라. 나는 또 다시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떠나보낸다.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하지만 남자는 괜찮다. 가엽지 않으니. 나는 꽤 가벼운 마음으로 남자를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나는 엄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외로운 남자를 만나서 다행이야.
“하나만 물어도 되요?”
“응.”
“후회해요?"
“뭘?"
“뭐든”
“음..”
나는 대답대신 하나의 열쇠를 받았다. 우리 집 열쇠와 모양이 꼭 비슷한 것이 아마도 402호의 집 열쇠이지 싶었다.
“내일 열어봐.”
나는 손바닥에 올려 진 열쇠를 꼭 쥐었다. 열쇠의 울퉁불퉁한 부분이 손바닥을 아프게 찔렀다.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았다. 전과 변함없이 그저 텅 빈 검은 눈동자를.
“어디로 갈 거 에요?”
“하나만 묻는 다더니”
“마지막이잖아”
“아무도 없는 곳.”
남자는 살짝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아무도 없는 곳. 예전과 똑같은 대답이었다.
“이렇게 빨리 떠날 거, 여긴 왜 온 건데?”
그래, 이 질문은 내 감정이 담긴 것이 맞았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나는 ‘원망’이라고 말을 하겠다. 어째서 지금와서 내가 남자를 원망하는 지는 모를 일이다. 단지 나는 예정된 이별엔 익숙지 않으니깐. 어쩌면 나는 남자를 원망한다는 감정에 핑계가 필요한 걸 지도 모르겠다.
“원래 여기였거든”
“…”
“아무도 없는 곳이”
검은 눈동자가 나를 빨아 당긴다. 나는 남자의 눈을 통해 나를 보았다. 그 검은 눈동자에 삼켜진 나를. 남자가 말했다. 꽤 울적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나는 나즈막하게 물었다.그런데?
“지금은 네가 있잖아”
어느 순간 나는 남자에게 ‘아무 것’이 아닌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남자에게 ‘나’라는 존재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나는 묻지 않기로 했다. 떠나는 사람에게 깊은 질문은 남겨진 사람에게 좋지 않으니. 하지만 남자의 그 말은 꼭 나를 피해 떠난 다는 것처럼 들려 꽤나 슬프게 느껴졌다.
“만약 그곳에서도 누군가를 만나면요? 다시 떠날 거 에요?”
“아니,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아.”
남자는 눈을 밑으로 내리깐 후 목이 타는 지 침을 꼴깍 삼켰다. 남자의 목젖이 울렁거렸다. 그 장면이 슬로우 모션이 되어 내 눈에 들어온다. 우리에게 흐르는 시간이 모두 느리게 느껴진다.
“정말, 거기엔 아무것도 없거든”
나는 내게 눈을 맞춰오는 남자를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자가 정말 영영 떠나버리는 구나. 정말로 영영. 다신 돌아오지 않겠지. 그리고 다시 돌아 올 수도 없겠지. 그래도 다행이다. 남자는 그저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니. 엄마와 다르다. 남자는 용감하니까.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도, 죽음을 무서워하지도 않으니. 그저 남자가 원했던 거니까. 이렇게 내 머릿 속으로 되내이고 되내인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남자와의 작별을 받아 들일 수 있는 것 같았다. 남자의 눈이 슬퍼 보였다. 곧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사람 처럼. 그래서 나는 남자의 두 눈에 입술을 맞춰 주었다. 두 번의 입맞춤 뒤 남자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오늘은 입술이 후하네"
"마지막이니까"
다행이다. 마지막 보는 남자의 모습이 웃는 모습이라서. 이제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남자를 떠나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게 웃어주는 남자를 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해봐요"
"…"
"뭐든 좋으니까."
남자의 곧은 시선이 나를 향했다. 투명한 눈동자에 내가 비친다. 천천히, 느릿하게 남자의 입이 열렸다.
"좋은 것들만 보고 살아"
"…"
"경수야"
남자는 나와 만난 지 13일이 되던 날 내게 마지막을 고했다.
**
똑같이 낡고 허름한 계단. 페인트가 다 벗겨진 벽면. 오직 변한 건 두 번째 계단에 걸터앉아 던힐 라이트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입으로 연기를 피워야 할 남자가 없다는 사실 뿐이었다. 나는 텅 빈 계단을 보았을 때가 되어서야 아, 남자가 떠났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크게 슬프지 않았다. 그저 조금 허할 뿐이다. 나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혼자 이던 예전으로. 나는 가방을 뒤적여 열쇠를 찾았다. 남자가 내게 남기고 간 402호의 열쇠. 침을 한 번 삼킨 후 열쇠를 돌려 문을 열었다. 조심스럽게 들어간 집안은 역시나 고요했다. 나는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남자가 떠난 집안은 전이나 지금이나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텅 빈 거실을 둘러 보다가 방으로 향했다. 불을 켜자 역시나 한 쪽의 형광등에만 불이 들어온다. 방 안의 가구가 그대로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닥에 깔려 있던 이불만 없다 뿐이지 옷장도, 서랍도, 기타 케이스도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문 턱에 서서 방안을 지켜보던 나는 서랍 위에 올려진 것들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담배곽이 었다. 남자가 피던 붉은 던힐 담배곽. 모서리가 구겨진 담배곽이었다. 꼭 이주일 전, 남자와 처음 만난 날 보았던 그 담배곽과 같이. 나는 담배곽을 열어 보았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온 몸을 휘감았다. 담배곽 안에는 6개피의 담배가 남아 있었다. 정말로 이상했다. 이주일 전, 남자와 처음 만난 날 보았던 오른쪽 모서리가 구겨진 담배곽과 남겨진 6개피의 담배.
나는 남자의 서랍 제일 윗 칸을 열어 보았다. 남자의 서랍을 가득 채우고 있어야 할 약들이 없다. 아니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 때 그 하얀 약통을 들어 보았다. 가볍다. 뚜껑을 열자 3알 밖에 남지 않은 하얀 알약이 바닥을 드러낸다. 이건 안되는 일이었다. 나는 서랍 안의 모든 약통 꺼내었다. 텅 비어 있거나 아니면 한 두알이 남아 모두 바닥을 보이고 있다. 손이 벌벌 떨려왔다. 분명 길게 이어져 있던 아침, 점심, 저녁이 쓰인 남자의 약봉투는 이제 저녁 분을 하나만 남겨 두었다. 어째서. 어째서. 약들을 모두 꺼내자 바닥에 깔린 하얀 종이가 보인다. 남자의 저지로 보지 못했던 처방전일 터였다. 나는 망설였다. 저 하얀 종이를 뒤집었을 때 내가 마주해야 할 현실을 알고 싶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하얀 종이를 집어 들었다. 제일 위에 적힌 세 글자. 처방전. 그리고 그 밑엔 '환자명' 이민기, '나이' 29, '성별' 남, 등 기본 사항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교부 날짜.
'20XX년 10월 2일'
일주일 전. 내가 남자의 집에 간 날. 남자가 내게 자신의 병을 털어 놓은 다음 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 앉았다. 수 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왜 난 한 번도 남자의 담배곽을 신경 쓴 적이 없던 것인가. 조금만 신경을 기울였어도 쉽게 알 수 있었던 것을. 13일, 남자가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는 그 모든 시간 동안 남자의 자리 밑에는 담뱃재가 떨어져 있던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남자는 내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어 담배를 입에 물었겠지. 죽어가는 폐에 억지로 그 하얀 막대를 쑤셔 넣었을 거야. 내 앞에서 담배를 피고 집에 들어가서는 거친 기침을 쏟아 내며 집에 들어가서 화장실에서 피를 토했을 것이다. 13일 동안 14개의 담배. 남은 한 개피는 내가 한 번 피고 버린 그 것일 테다 낮에는 병원을 다니고 밤에는 나를 만나 담배를 피고. 남자는 연기를 한 것이다. 죽고 싶은 사람의 연기.
생각해 보면 남자는 내게 죽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래. 늘 나 혼자 착각 해선 남자가 죽고 싶다고 믿었던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겠지. 왜냐구? 그게 아니면 남자는 너무 가엽잖아. 불쌍하잖아. 그러면, 남자가 가여우면 남자가 떠났을 때 남겨진 내가 너무 가여우니깐 그랬다. 내가 가여운 건 싫으니깐. 하지만 지금, 당신이 떠난 지금..
나는 이제서야 모든 걸 알았다. 남자가 말하던 지켜 주고 싶다던 그 아이가 나라는 것도 남자는 그 혼자 남을 가여울 아이를 위해 죽고 싶은 연기를 한 것도 모두 다. 남자는 지켜주고 싶은 아이를 위해 살고 싶다고 말했고 그 아이는 나였다. 남자는 나를 지켜주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담배를 끊으려고 하였고 그리고 그것을 막은 것 역시 나였다.
[그러니까 차라리 다행이에요.]
[…]
[아저씨는 죽고 싶어 하니까-]
[…]
[아저씨는 그저 아저씨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거잖아요.]
[…]
[그러니까 아저씨는. 아저씨는 가여운 사람이 아니에요.]
[…]
[만약 아저씨마저 가엽게 죽는다면..]
나는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돌리고 싶었다. 어째서 남자는, 어째서. 차라리 끝까지 연기를 하지 그랬어. 그냥 내가 죽을 때 까지 당신을 죽고 싶어 하던 사람으로 기억하게 만들지 그랬어. 왜 당신이 떠난 지금에서야 모든 사실을 가르쳐 주는 건데. 대체 왜…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죽고 싶어해서 다행이라고. 그래서 폐병에 걸린 주제에 담배를 피는 남자를 말리지 않았다. 남자는 죽고 싶어 하였으니깐.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나를 위해 꾸며진 남자의 연극이었다. 내가 보이는 곳에서 남자는 담배를 물었고 없는 곳에선 항암제와 진통제에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남자가 살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가장 슬퍼할 것은 나이니깐. 살고 싶어 하는 죽어가는 남자를 보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가여울 것이고 불쌍하다고 나는 생각했으니깐. 그래서 다행이라고. 하지만 모두 내 변명이 었고 내 허상이 었다.
내가 틀렸다. 남자가 나보다 외롭다는 것은 모두 착각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온전한 나의 착각. 나는 나를 위해 남자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남자는 나를 위해 자신이 외롭기를 자처했다.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사람은 나였고 나를 구하기 위해 바다를 향해 헤엄쳐 온 것은 남자였다. 결국 ‘나’의 외로움의 바다에 빠져 죽은 것은 내가 아닌 나를 구하러 오던 남자였던 것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미안함과 공허함. 후회들은 남자가 떠난 이상 모두 부질없어 진 것임을. 남자는 떠났다 이미. 절대 돌아오지 도, 돌아 올 수도 없는 곳으로.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던 나는 남자의 처방전의 뒷 면에 쓰인 글씨를 이제서야 알아 차렸다. 하얀 종이 위에 적힌 눈물에 번진 글자들. 내 물음에 대한 남자의 대답임을 나는 금방 알 수가 있었다. 무엇을 후회하느냐고 묻더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 삐뚤삐뚤하게 쓰인 글씨를 읽는 그 순간 나는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너를 조금 더 빨리 만날 걸’
남자와 만난 지 14일. 남자가 떠났다. 정말로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남자조차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1. 상당히 글이 정신없이 끝났다. 복선이라고 깐 건 많지만 왠지 정말 나만 알 것 같다.
2. 나름 심오한 뜻을 가지고 썼으나 이건 뭐.
3. 이민기X도경수를 써야 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 그리고 한글2010을 키는 순간 바로 이 소재가 떠올랐다. 왠지는 모름. 그냥 음패덕후여서 그런 듯
4. 쓰다가 몇 번이 날라갔는 지 모르겠다. 진짜 4번 째 날아가니깐 쓰기가 싫어졌지만... 30장 넘게 써 놓은 게 아까워서 그냥 붙잡고 썼ㄷr..
5. 그래서 그런지 다시 이민기X도경수를 못 쓸 거 같다... 주병희X도경수로 하나 더 쓸랬는데 너무 지쳐써..
6. 이거는 정말로 단순히 내 취향으로 쓴 글. but 공감 못 받는 취향이었고..
7. 그리고 자기 이상형X최애를 엮는 다는 건 맞는 말 같다.(이민기 사랑해요)
8. 이민기의 마지막 대사. "좋은 것들만 보고 살아"라는 대사는 이민기가 출연한 넬의 '그리고 남겨진 것들' 뮤직비디오에서 나온 대목이다. 직접적인 목소리 연기가 아니라 입모양으로 유추되는 부분.
(참고로 넬의 '그리고 남겨진 것들' 뮤직비디오는 이민기와 송재림의 동성애적 코드가 담긴 뮤직비디오로 다들 한 번 보시는 걸 추천 드림니당. 마지막 죽어가는 이민기의 연기가 제가 딱 생각하는 이 글 속 이민기의 모습과 닮았거든요. 이 뮤비 보고 영감 받아서 카디를 쪄야지ㅂ_ㅂ)
9. 손발이 차가워 지는 것, 시간을 잘 인지 하지 못하는 것, 입 맛이 떨어지는 것 모두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10. 마지막 부분을 보시고 다시 처음부터 보시면 다 보일 거에요. 이민기가 한 연기를.
11. 그리고 4번을 다시 쓰면서 느낀 건데 절대 처음 쓸데의 느낌은 나오지 않는다. 처음엔 문장을 꽉꽉 채워서 썼는데 4번째 쓰니깐 그냥 대충 묘사만 하고 끝. 이래서 날라가면 다시 안쓰려고 하는거..
12. 브금 생각을 많이 했는데 Baby Now 랑 이거 중에서 고민을 많이 하다가 이걸 골랐는데 아직도 의문...
13. 제목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은 정말 아무 상관 없이 그저 내 옆에 백설공주 책이 있길래..
14. 도경수 홈5 요정
15. 이 글로 영업을 꿈꿨으나 fail
P.S. 혹시 이해가 안 가는 부분 있으시면 물어봐 주 thㅔ요.. 문제는 저도 모를 수도 있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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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 = 걍 신혼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