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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화
* * * * *
남자는 비틀었던 입매를 원상복귀시키며 먹잇감이 누워있는 매트리스 근처 벽에 기대어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먹이사슬의 최상위 생물이 그 아래의 모든 생물을 보는 것과 다름없는 눈빛이었고 그 시선이 닿는 그녀는 움찔거림 뒤에 꼼짝하지 않았다. 그토록 큰 움직임이 있었는데 남자가 못봤기를 바라는 바람으로 버티고 있는 것인지 조금의 율동(律動)도 없는 그녀의 몸짓은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내...착각인가? 방금 움직였던 것 같은데?"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남자의 목소리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약 한 시간이 흘렀을 때 약간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그녀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가 이 자리에서 떠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한 시간 전과 똑같이 근처 벽에 기대어 그녀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중이었고 조심스러운 한숨에 썩은 시체보다 감정없는 눈동자에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띄우며 꾹 닫혔던 입술을 열었다.
"내가 없는 줄 알았어?"
"!!!!!!"
갑작스레 흘러나온 남자의 질문에 먹잇감으로 정해진 그녀는 몸을 덜덜 떨었다. 실내의 차가운 공기보다 더욱 시린 추위가 그녀를 덥쳤고 사시나무 떨 듯 격렬하게 떨었다.
이윽고 검은 천으로 둘러쌓인 눈에서 기어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남자에게 애걸했다. 참았던 눈물은 한번 쏟아지기 시작하자 끊임없이 흘러내려 마치 폭포수(瀑布水)와 같았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
"제발 살려주세요...흐흑...제, 제발. 살려...살려...주...세요."
대답없는 남자에게 살려달라고 눈물어린 목소리로 말하는데 처연하기 그지 없어 안타까움이 이를데가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애달픈 그녀를 보내줄 마음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짜증이 스물스물 찾아와 어서 처리하고 싶어졌다.
그래도 바로 죽일 수 없었다. 허무하게 죽여버리려고 수고스럽게 데려온 것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왜?"
"제발......"
"네가 네 발로 스스로 온거야."
"흑흑..."
분명 남자를 따라간 것은 그녀의 의지(意志)였다. 근사한 이상형의 남자가 접근해서 멋지게 데이트 신청하는데 어느 누가 거부할까. 특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백의 백이면 허락을 하고 함께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당할 것을 알았다면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고 남자를 따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핑크빛 사랑만 바라며 온 것 뿐이었고 그것이 죄라면 죄였다. 자괴감과 공포감이 뒤섞여서 그녀를 괴롭혔고 피를 토하 듯이 소리내어 울었으며 매트리스에 깔린 하얀 요가 축축하게 젹셔시도록 눈물을 흘리었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남자의 눈빛은 점차 차갑게 식어갔고 입술은 삐뚜룸하게 올라갔다. 명백한 조소(嘲笑)였다.
"계속 울거야?"
"...흐읍...흐..."
전혀 울음을 그치지 않는 그녀를 잠시 쳐다보고 벽에서 등을 떼어내고 어디론가 걸어갔다. 원룸 형태의 공간의 한쪽에 세워진 서랍장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는데 그것은 구속구(拘束具)였다. 동물 외피를 무두질하여 부드럽게 가공한 가죽으로 만든 것인데 두껍고 질겨보여서 쉽게 끊어지지 않을 만큼 억세보였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 사용하는 것이 아닌지 끝부분이 닳아 있었고 군데 군데 흠집이 나 있었다. 남자는 구속구를 들고 연약한 먹잇감에게 다가갔고 그녀의 목에 채웠다. 구속구에 달린 금속이 그녀의 피부에 닿았고 금속의 차가움에 움찔했다. 남자는 금속줄을 잡아서 평평한 벽에서 툭 튀어나온 걸이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남자의 비인정한 일련의 행동에 그녀는 애걸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으며 이내 떨어지는 남자의 한마디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입에도 목에 채운 것처럼 채워줄까? 난 그게 더 좋은데? 시끄럽지도 않을테니까. 안그래?"
"......"
"......이제 조용하군. 앞으로도 조용히 해봐. 그럼 더 오래살지도 모르지."
결코 살려준다는 말은 없었다. 남자는 끝까지 잔인했지만 남자는 그러한 자신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약간의 귀찮음은 느끼고 있었다.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에 불과했고 조금도 양심의 가책(呵責)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남자는 '사람의 감정'을 알지 못했다. 남자의 인간적인 감정은 '그날' 이후로 죽어버렸기 때문에.
* * * * *
애애애애앵!!!
앰뷸런스(ambulance:구급차) 소리와 구급대원의 상황설명, 이동식 침대의 바퀴소리, 땀이 찰 정도로 다급히 뛰는 인턴의 뜀박질, 여기저기 지시를 내리는 레지던트 등이 ER(emergency room:응급실)은 항상 바쁘고 조용한 날이 없는 곳이다. 응급의학과 의사들 뿐만 아니라 내과 및 외과 등 다른 과에서도 지원받기도 하는데, 그만큼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곳이기도 했다.
태환은 오늘 하루 내내 ER에 붙들려 도움을 주고 나오는 길이었다. 오늘은 오전부터 대형사고가 있었는데 유람선 전복사고(顚覆事故)로 수많은 경상자를 비롯해서 중상자, 사망자까지 다양한 희생자들로 즐비했다. 이곳 뿐만 아니라 인근 병원에서도 받았지만 모두 수용(受容)하기 힘들 만큼 사상자(死傷者)가 많았다.
우선 죽음을 넘나드는 목숨이 다급한 환자부터 수술실(operating room)에 입실시켰지만 그래도 부족해서 임시적으로 무균실(無菌室)을 만들어 수술을 집도할 정도였고 그래도 안될 때는 ER 내에서 임시조치한 후 수술실로 들여보냈다. 태환은 수술실로 들어가기보다 ER에서 환자를 치료했는데, 미숙한 인턴보다 경험이 풍부한 레지던트 치프에다 천재적이라는 말을 듣고있는 태환이 총괄하는 편이 능률적으로도 더 좋았기 때문이다.
하루가 부족할 만큼 차례차례 치료를 하다보니 자정이 넘어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남은 환자들은 대부분 경상자들이어서 인턴들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맡기고 나왔다.
"으...죽겠다."
이런 경우가 한 두번 겪은 일은 아니었지만 무척 힘들었다. 그도 그럴게 근무가 끝난 후 쉬지도 못하고 미국 집에 있는 짐들 일부를 택배로 부치는 둥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한 탓이었다.
아무래도 미국에 일부의 짐은 두고 한국으로 떠나야 될 것 같았고 나중에 시간내어 미국을 방문해야될 듯 싶었다.
"Dr.Park. Do you finish work?(닥터 박. 일 끝났어?)"
"Yes, I do.(끝났어요.)"
"You look tired.(피곤해 보인다.)"
"Um...(음...)"
조금 앓는 소리를 내며 라이언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그도 태환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고로 바삐 움직였을텐데 에너자이너라도 되는지 멀쩡해보였다.
물론 다크써클이 눈밑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가 얼마나 피곤한지 알 수 있었지만 태환은 얼굴까지 탈색되어 푸른빛까지 돌 정도였기 때문에 라이언의 피곤함은 태환에 비해 덜해보였다.
"You go through trouble until leaving the day. Our pretty boy.(가는 날까지 고생하네. 우리 예쁜이.)"
"Me, too.(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느새 옆에 온 마이클이 차트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다가와 동감을 표했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태환은 널스 스테이션에 널부러지듯이 기대어 턱을 괴고 차트를 넘겼다. 자정이 넘어감에 따라 한국으로 떠나는 날이 되었지만 근무 시간은 완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그는 환자보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원내의 카페테리아도 문을 닫아서 자판기에서 뽑은 것이지만 마이클이 건네주는 커피를 마시며 약간의 농담따먹기로 약간의 피로감을 푼 후 그들은 각자의 맡은 전투지로 향했다.
"아, 씨발. 어떻게 된게 요~만큼의 증거도 없는거야! 젠장할!"
"선배. 그만해요. 옆에서 듣는 저도 짜증나요. 차라리 자철선배랑 갈걸."
"뭐? 우엑~ 넌 쩡아~쩡아~하는 걸 듣고 싶냐? 옆에서 듣는 내가 다 토할 것 같던데..."
"닭살 돋긴 한데...뭐 어때요? 나쁜 말도 아닌데...이제 면역이 되서 아무렇지 않아요."
"와~ 대단하다. 니가 대단한 건지...널 감염 시킨 자봉바이러스가 대단한 건지 알 수가 없네. 알수가 없어."
"감염은 무슨...자철 선배가 바이러스에요?"
"그냥 바이러스면 다행이지. 그 놈은 치료할 치료제가 없는 악성이야. 악성."
성용과 다래는 탐문하러 나온 상태였다. 탐문 수사를 안해본 것은 아니었고 좋은 결과를 얻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만할 수도 없었다.
다른 증거도 없었고 더이상 긁어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 방법 밖에 없었다. 혹시 어쩌면 이런 생각으로 밖으로 나온 것이었고 서내에 처박혀 있어봤자 다 알고 있는 내용들 뿐이라 답답해서 짜증만 났다.
실종 사건 전담팀은 청용을 필두로 성용, 자철, 다래 4명이었으며 이번 탐문 수사는 성용과 다래, 청용과 자철로 나뉘어 시작했다.
그렇게 나눈 이유가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간 했던 탐문 수사에서 한번은 청용과 성용, 자철과 다래로 했었고 다른 한번은 청용과 다래, 성용과 자철로 구성하여 탐문한 적이 있었다. 그 중에서 성용과 자철이 한팀이 되었을 때 탐문은 커녕 서로 잡기 바빠서 제대로 된 결과를 가져온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청용과 다래는 찢어져서 각 한사람씩 맡아서 컨트롤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떨어뜨려 있어도 서로를 욕하기 바쁘니 다래는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냐?"
"실종자 주변인물을 탐문해봤자 또 그 대답일게 뻔하니까 이번 탐문은 예상해 본 실종 장소로 가보려고요."
"예상 실종 장소에? 거기가 어딘데?"
"우리가 맡은 곳은 실종자 김소영씨인데 그 여자분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곳으로 예상되는 장소에요."
"그래?"
"네. 거기가 어디냐면..."
성용과 다래는 실종자 김소영의 친구에게서 들었던 그녀의 단골가게로 향했다. 실종 예상일에 함께 놀았던 친구들이 말하기를 김소영은 단골가게가 있었고 예약해둔 물건이 마침 들어와 먼저 자리를 떴다고 진술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이후로 행선지가 불분명해서 거기를 파고들면 작은 실마리를 얻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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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투척!!!>_<
어떠신가요? 좋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ㅎㅎ
범인의 살인동기는 한참 있어야 나오고요. 사연도 있습니다.
그 사연이 우울하다고 해서 동정할 수 없겠죠? 미친놈이니까요.
추가 등장인물도 나올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국대 등장 예정입니다ㅎㅎ
아직 이야기는 초반부에 입성한 정도 밖에 안됩니다.
범인이 누군지 궁금하셔도 기다려주시고 앞으로 나올 이야기를 지켜봐주세요.
아...귀걸이랑 7일도 써야하는데...으어..언제 쓸지...큽ㅠㅠ
※ 오타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