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We Want
Written by.흑지
*
촉촉이 젖어 물기어린 낙엽이 바람에 휘날려 한 없이 밑으로 추락했다. 떨어지는 낙엽만큼이나 날씨는 제법 쌀쌀해졌다. 놀이동산에 다녀온 이후로 세훈은 낯설 정도로 과묵해졌다. 말이 없었다. 벌써 삼일 째였다. 매일같이 붙어 있던 주말이었는데. 그마저도 모두 침묵으로 물들었다. 세훈은 백현이 했던 말들을 곱씹어 보고 있었다. 딱히 종인에게 티를 내지 않았지만 많이 신경 쓰고 있었다. 백현은 제 나이 또래답지 않게 꽤나 어른스럽게 세훈을 타일렀다. 그래서는 진전이 없어. 모든 일에는 척도가 있는 거야. 당장은 어렵더라도 차분히 예전의 것들을 버리고 조금씩 변해가면 된다고 조언을 했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김종인이 나한테 상처받았을까? 늘 있던 투덕거림이라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려 들지 않았다.
“…세훈아, 벌써 삼일 째야. 내가 불편해. 나랑 말 좀 해.”
“…어.”
“혹시 백현이가 했던 말 신경 쓰고 있는 거야?”
“….”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어. 변백현보다 내가 널 더 잘 알아서. 넌 이런 애구나. 난 어느 정도 받아들여서.”
종인이 먼저 다가와, 세훈의 어깨위로 손을 얹었다. 널 이해하기로 했어. 그냥, 그러려고. 네가 괜히 심각해지니까. 내가 더 신경 쓰이는 거 알아? 나도 덩달아서 표정굳히기 직전에 너한테 말하는 거야. 그 날은 재밌게 놀았던 것만 생각하자, 난 그것만 기억하려고.
답답하게 숨통을 죄이던 넥타이를 끌어내리고 와이셔츠 첫 번째 단추를 풀었다. 세훈은 그래. 짧게 대답을 하고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종인은 조금 기분이 언짢아졌다. 왜 그러지? 나한테 화났나? 혹시 다른 무슨 일 있나? 갖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불현듯 학교에서 루한과 세훈이 따로 점심시간에 빠져나갔던 게 생각났다. 그래, 오늘 오세훈은 점심밥을 먹지 않았다. 그건 루한도 마찬가지였을 거고. 분명 백현과 저와 관련되지 않은 다른 곳에서 문제가 있었을 거다. 그 생각까지 그치자, 종인은 어찌해야 될지 몰라서 손톱만 잘근잘근 씹었다.
스산하게 바람이 불었다. 어찌나 바람이 거센지, 창문이 요동치며 흔들렸다. 학교에 다녀와서도 한참동안 침묵이 지속됐다.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까지 벌써 삼일 째였다. 왠지 불길했다. 아침부터 몰아치던 바람, 흐린 날씨, 잿빛구름. 그냥 기우이겠거니, 생각하기엔 집은 한없이 적막했다. 차라리 이럴 바엔 시끄러운 학교가 나았다. 종인은 느릿하게 교복을 벗어 옷걸이에다 걸어놓고 편안하게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오후 여섯시 정각. 아직 밤이라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도어 록의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도우미 아주머니인가? 아침을 차려주시고 오후에는 오시지 않는데…. 문이 열리고 낯선 구두 굽 소리가 들렸다. 뭐야? 비교적 현관문과 가까운 방에 있던 종인이 문을 열어 그 대상을 먼저 확인했다.
“…아버지, 안녕하세요.”
종인은 꽤나 어색하게 인사했다. 잦은 업무와 외근으로 집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피곤한 안색으로 그래, 종인아, 잘 있었니? 하고 다정하게 안부를 물었다. 네, 저는 잘 있었어요. 많이 피곤해보이시네요. 상투적으로 답하며 종인이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세훈이 안에 있니?”
“아, 네. 방에 있어요.”
아버지는 빠른 걸음으로 종인을 스쳐지나갔다. 사실, 처음부터 아버지라고 부르기에는 뭐했다. 오세훈의 눈치를 보며 겨우 입에 붙였던 호칭이었다. 절대 쉽지 않았지만 철저하게 저와 피가 섞였다고 믿는 오세훈의 생각을 깨버릴 수 가 없었다. 그걸 깨버리는 순간, 오세훈이 저를 밀쳐내고 집에서 쫓아낼까 싶어서 그게 무서웠던 거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여나, 만에 하나, 오세훈과 사이가 서먹해진다거나, 관계가 뒤틀리면 분명 크게 화를 입을 거다. 그게 무서웠다.
“오세훈.”
“아빠, 이른 시간인데 어….”
“…네 소유의 창고를 확인했다.”
“….”
오세훈이 가진 창고라면 단 한 개뿐이 없었다. 그 창고는 불법적인 밀수입품인 마약들이 있는 창고였다. 세훈은 크게 당황한 듯, 눈을 조금 크게 치켜떴다가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그 창고가 제 이름으로 사들인 거라,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아버지는 세훈에게 들리도록 낮고 길게 한 숨을 쉬었다. 그리고 뒤이어 말을 이었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응?”
“…죄송해요.”
“김부장이 오늘 낮에 입건되었어. 대마초 흡연 건으로.”
“….”
그게 네 창고에서 나온 거라는 걸 회사임원들이 말해주었다. 김 부장 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 역시도 연계되어 있었던 거지? 아니, 어떻게 이 어린 나이에 그런 무시무시한 짓을 했니? 내가 알기론 작년부터라던데. 그래,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네 소유의 창고를 숨겨야했다. 언론을 막고 SR제강과는 관련이 없는 척 해야 했어. 물론 대기업의 부장 격이라 쉬쉬하고 넘어갈 수는 없을 거야. 웬만한 일반인들도 마약을 하면 기사에 다 뜨는데, 오죽하겠니. 네 소유의 창고를 급하게 봉쇄했다. 안에 있던 내용물들은 모두 폐기처분했어. 아마 너는 이 사건과 전혀 연관이 없게 될 거야. 다만, 너는.
“너는 아비에게 크나큰 실망감을 줬어.”
“…죄송합니다.”
“회사임원들과 그런 짓을 꾸몄다고? 네 나이가 몇이야? 벌써 후계자자리 확정이 난 것도 아니고.”
“죄송합니다.”
“큰 실수였지만 처음이라서 용서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실수가 거듭될수록 네 입지는 좁아질 거야. 그걸 알아야 해. 세훈아, 너는 어릴 때와 달라. 지금은 종인이도 내 아들이고 너도 종인이와 똑같은 아들이야. 처음부터 너를 키웠다고 내가 너와 종인이를 다르게 생각할 것 같았다면 그건 착각이었다고 말해주고 싶구나. 어쩐지 아버지의 한없이 따뜻했던 음성이 조금씩 차게 식어간다는 걸 느꼈다. 천재라고 해서 모든 걸 다 거머쥘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건 세훈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성적이 좋다고 해서 아버지의 칭찬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그냥 너무 당연한 게 되어있었다. 너는 대기업사장님 아들이니까. 당연히 이만큼 하는 게 당연해. 역시 유전자가 좋으니까 똑똑하구나. 명석하구나. 그런 말들만 수두룩하게 들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아들인 내게 관심이 없었다. 물론 와이프였던 세훈의 엄마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일, 일. 무조건 일.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회사의 고위 간부들은 모두 아빠를 좋아하고 아빠의 말에 잘 따랐다. 그리고 세훈에게도 과분할 정도의 관심과 애정을 주었다. 그건 어릴 적 세훈이 단순히 귀여워서가 아니라, 오 사장의 아들이었기 때문일 거다. 세훈은 참 정이란 걸 모르고 컸다. 엄마가 살아계시던 초등학생 시절만 해도 엄마의 사랑으로 충분하게 삶을 행복하게 이끌어갈 수 있었는데, 엄마는 한 순간의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리고 2년 정도 지난 후, 아빠의 또 다른 아들이 나타났다. 아버지의 첫사랑, 그 여자의 아들이라고 했다. 나는 김종인의 등장이 못미더웠다. 그냥, 개꿈을 꾸나보다 했다. 꿈이 왜 이렇게 현실성 있지? 짜증난다. 토 나온다. 생각했을 때는 내 뺨이 아버지 손에 맞아 매몰차게 돌아가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아버지에게 손찌검을 맞았다.
“다음에도 이런 실수를 한다면 네게 있던 첫 번째의 권한을 모두 종인이에게 넘길 거다.”
세훈은 짐짓 놀란 듯 눈을 크게 치켜떴다. 처음부터 원치 않았던 일들이 갑자기 휘몰아치려고 했다. 김종인이 내 자리를 빼앗는다. 후계자자리에서 물러나 이 인자가 된다. 생각만 해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처음 김종인을 봤을 때 그 감정은 분노였고 질투였다. 아버지의 첫사랑의 아들? 우리 엄마는 어떻게 살아왔는데! 그렇게 멱살이라도 잡고 따지고 싶었다. 물론 소년의 직접적인 잘못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단지 그 존재가 짜증났다. 나와 나이도 똑같고, 아니 생일로 따지면 한 살 많고 하나도 닮지도 않은 게 형제라고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는. 그런데 지금은 …내가 김종인을 필요이상으로 너무 많이 담아두고 있었다. 작은 말 하나, 행동, 웃는 표정, 자잘한 습관들까지. 눈을 감고 있어도 모두 생각나는 하나하나의 행동들이, 소년의 티 없이 맑은 미소들이 자꾸만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래도 안 돼. 이 자리는 내 것이 여야 해. 분명 김종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오늘 오후 8~9시경에 김 부장 기사가 뜰 거다. 회사와 관련이 없다고 뜰 테니, 신경 쓸 필요는 없어.”
“….”
“대신 그 기사를 한 번 보면서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라.”
마약이 얼마나 인식이 나쁜지, 또 마약사범이 얼마나 규제가 강한지 기사를 보고 깨달았으면 좋겠구나. 네가 어린 나이에 그런 것에 손을 댔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어른들 돈벌이에 네가 이용당했다 생각할게. 똑똑한 네가 이용당했다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냥 어른들보다는 네가 어리니까. 넌 아직 미성년자니까. 그래 그렇게 아비가 덮어두마. 아버지의 음성이 점점 멀어져간다. 아버지는 복도를 지나, 근방으로 들어가려다가 아직 열려있는 종인의 방문을 확인하고 종인을 불렀다.
“아, 부르셨어요?”
“종인아, 네 어머니 산소에 못 간지 오래되었지?”
“…이 집 오고 나서 딱 한 번, 열여섯 살 때가 마지막이었어요.”
“같이 다녀올래? 벌초할 시기는 지났지만, 잡초라도 뽑고 오고.”
“…네. 같이 가요.”
“내일부터 며칠간 회사에 출근하지 않을 생각이다. 너도 학교서 점심만 먹고 조퇴하고 오렴.”
어머니의 산소, 언급조차도 없었고 갈 분위기도 잡지 못해서 어정쩡하게 이 년을 보내며 손목에 있는 묵주 팔찌를 매만진 후, 기도를 드렸다. 올해도 기일에 찾아뵙지 못할 거 같네요. 엄마 보고 싶어요. 사실 아빠도 많이 보고 싶은데, 엄마를 조금 더 좋아하는 제게 섭섭해 하진 않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엄마를 보러 가면 아빠도 보러가는 거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해주세요. 그렇게 스스로 한없이 기도를 되뇌며 지나갔던 기일이었다. 기독교 신자인 오세훈의 집은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래서 종인도 간혹 기도를 하던 세훈을 보았던 적이 있다. 손모양이 조금 다르다. 왼손과 오른손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인 뒤, 무어라고 입을 달싹였다. 손모양만 다르지, 기도하는 것은 별반 틀린 게 없는 듯 했다.
“혜영이 보러 못간지 오래됐다. 종인이 너랑 비슷할 걸?”
“…아버지는 바쁘셨잖아요. 제가 못 찾아봬서 제일 죄송하죠.”
“그건 그렇고 요새 생활하는 건 좀 어때? 세훈이랑은 좀 편해졌어?”
“…네, 학교생활도 재밌어요. 세훈이도 애들이랑 두루두루 다 친하고.”
“정말? 중학교 때 얘기 전해 들었는데, 워낙 닫힌 성격에 친구도 몇 없고 골라 사귀는 식이었다고 하던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똑같았어요. 그런데 올해 좋은 친구들 사귀면서 성격이 변했어요.”
종인은 그렇게 세훈을 포장해주었다. 사실 올해 세훈이 변한 것 중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종인은 애써 티내지 않았다. 티내는 게 더 이상할지 모르니까. 그냥, 적당 선을 유지해서 다른 남자형제들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사이인 척 하고 싶었다.
“다행이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12월이구나.”
“그러네요. 벌써 그렇게 됐네요.”
“벌써 열아홉이라니 믿기지 않는 구나, 이제 고3이 되는 거지?”
“네, 수능 봐야죠.”
“…부담주면 안 되는 건데, 난 네가 잘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혜영이 아들이니까.”
어쩐지 자꾸만 엄마의 이름을 부르는 아버지가 낯설게 느껴졌다. 아버지라고 불러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니까. 아마도 애정의 척도는 종인보다 종인의 죽은 어머니인 혜영에게 더 기울어 있었을지도 몰랐다. 집중력도 좋고 영특하고 어릴 적부터 어찌나 혜영이가 네 자랑을 해대는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말하는 아버지의 음성이 잘게 떨렸다. 가래 섞인 기침소리를 내며 아버지가 두어 번 정도 크게 기침하셨다. 요, 며칠 잠을 못 잤더니, 감기가 오려나, 아버지는 한 숨 주무마. 하며 아버지가 복도를 지나가셨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종인은 저도 모르게 빠른 발걸음으로 세훈의 방 앞까지 왔다.
“세훈아, 얘기 좀 해. 제발.”
“너랑 할 말 없는데.”
“밖에서 하는 말 들었어? 응?”
“그거 때문에 온 거야?”
묻는 세훈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그거 때문에 온 거라면 틀렸어. 나 피곤해. 방문이 거세게 닫혔다. 종인의 눈이 허망하게 문 표면을 응시했다.
*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 창문을 응시하던 소년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재활훈련도 어느 정도 받았고 조금씩 자의의 힘으로 발을 땅에다 내뻗고 양 손으로 봉을 잡은 채, 걸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무릎이 조금씩 삐거덕 댔지만 매일 진통제를 링거로 맞는 탓에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았다. 찬열은 혼동하고 있었다. 제 감정을, 저를 비집고 들어온 소년들을 떠올리며 얻지 못하는 그들의 사랑을 갈구했다. 좋아 보이더라, 변백현. 도경수는 어떻게 설득한 거야. 대단하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말들. 병실에서 등 뒤로 손을 잡던 오세훈과 김종인까지도. 어떻게 김종인과 저렇게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거지. 어쩌면 처음부터 나만 혼자였던 운명인 걸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데. 그럼 도경수 제외하고 두 번째는, 두 번째는 애매했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씩 꼭 생각나는 걸보면 아마도 종인을 좋아하게 되었나보다. 애매했는데, 확신이 들었던 건, 오세훈이 자꾸만 치기를 부리며 김종인을 저만 소유하려 들었을 때, 속에서 열이 들끓기 시작했다. 내가 더 잘해주고 있었는데, 내가 더…!
“목발이라도 잡고 학교 나가고 싶네요.”
“이제, 학교 나가도 괜찮아요.”
“아, 진짜요?”
“그 보호자, 세훈군이 다리 멀쩡해지면 나오라 했지만, 지금도 일상생활 하는데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없는데.”
“그럼, 그냥. 바로 퇴원시켜주세요. 통원 치료받으러 꼬박꼬박 올게요.”
병원에만 있기 갑갑해서. 찬열이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며 간호사 누나에게 말하자, 그러면 자기가 전해주고 오겠다고 하고 간호사가 병실에서 나갔다. 새로 갈린 링거를 내려다보던 찬열이 오랜만에 핸드폰 전원을 켰다. 요새는 앱게임도 잘 하지 않았다. 그냥 병원 안이 되게 무료하고 재미없는 곳이라서 재밌게 해왔던 게임마저도 질려버렸다. 핸드폰을 키자마자, 카카오톡이 몇 백 개가 쌓여있었다. 그 중 대다수는 앱게임초대, 생명 그런 거였고 나머지는 몇 안 되는 친구들의 안부문자였다. 변백현의 카톡도 있었다. 잘 지내냐? 안 보이니까 허전하네. 도비. 하면서 친근감이 묻어나오는 한 줄을 보내왔다. 그리고 스크롤을 위로 올리던 손길은 어느덧 한 자리에 멈춰 섰다. 크리스「학교 안 나온다고 멋대로 거래까지 끊고 잠적하냐?」,「네가 그러면 약을 제공한 오세훈한테 화살이 돌아갈 텐데.」부터해서 「루한이 화났어.」 오세훈 지 약 끊으면서 창고에 물량도 줄였다더라. 까지 보낸 게 도합 열 개는 되는 거 같았다. 「안 읽지?」어쩐지 제 옆에서 크리스가 제 머리통을 쳐올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카톡. 김종인이다. 쓸데없이 오지랖 부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의외로 길게도 보내왔다. 「다리는 괜찮아? 많이 아프지?」 이건 병문안 전에 보낸 거다. 그 위에 것은 이미 읽었었지만, 위로 올리다보니 한 번 더 읽어보게 됐다. 「너 없으니까. 빈자리 되게 허전하다. 나 혼자만 반에서 짝이 없어. 크크 빨리 나으라고.(웃음) 이 이모티콘처럼 밝게 웃으면서 학교 나와. 박찬열 없으니까 엄청 심심하네. 경수랑 자리 바꿔줬다가 친하지도 않은 김종대랑 뻘줌해서 죽는 줄. 근데 김종대 의외로 한국인치고 중국 애들이랑 친해. 박찬열 너는 저번에 그 나 처음 옥상에서 불렀던 중국인친구도 있고 의외로 발 넓더라. 아 이게 본론 아니고! 박찬열 스릉흔드. 보고 싶다고! 얼른 학교 나와라!」까지 해서 정이 잔뜩 배어있는 그 횡설수설한 톡을 읽으며 찬열이 입가에 잔잔하게 미소를 뗬다. 카톡을 읽고 있으니, 간호사 누나가 팔 안쪽의 황토색 테이프를 떼어내며 바늘 뺄게요. 하고 조심히 링거바늘을 뺐다. 찬열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링거를 맞았던 쪽 팔을 간호사가 건네준 솜으로 문질렀다.
“퇴원수속 밟았고요. 다리 불편하신데 보호자 안 불러도 괜찮겠어요?”
“보호자도 저랑 동갑이잖아요. 괜찮아요. 집에 어머님 계세요.”
간호사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찬열에게 목발을 쥐어줬다. 깨끗한 새 목발이었다. 손잡이는 초록색 고무, 그 밑기둥은 탄탄한 플라스틱으로 된 가볍고 편안한 소재의 목발이었다. 찬열은 옷은 어떡해요? 하고 물었고 내일정도까지만 갖다 주시면 되요. 하고 간호사는 짧게 말했다. 찬열이 다친 것은 사고였기 때문에 전에 입었던 교복바지는 찢어져서 너덜거리고 피에 절어 곧바로 버렸다. 병원에 실려 왔기 때문에 간호사도 그 상황을 아는 듯 했다. 사복 없죠? 그냥 이러고 가도 돼요. 말하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 몇 주 봤다고 아직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친 누나마냥 다정했다. 물론 찬열에게는 누나가 없었지만 그냥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
교실 안이 어수선했다. 백현은 오전부터 뭔가 다른 날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조례 시간 전에 꼭 한 번씩은 반에 찾아오던 세훈이 보이질 않았다. 종인의 얼굴도 침울하기만 했다. 혹시 에버랜드에서 내가 했던 말 때문인가? 생각했던 백현은 복도에서 울리는 언성 높은 소리에 깜짝 놀라, 복도 창문을 통해 그 대상들을 확인했다. 루한과 오세훈이다. 루한은 한국말과 중국어를 섞어가며 오세훈에게 뭐하는 짓이냐고 갑자기 안 팔아? 안 판다고? 처음부터 안 팔았으면 될 걸. 왜 그랬어? 묻는 목소리가 꽤나 고조되어있었다. 말려야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 둘의 옆에도 사람이 몇 사람 더 서있다. 크리스도 있고 타오도 있고 온통 중국아이들 틈에서 오세훈이 있다. 왜? 오세훈은 중국애들 뿐만 아니라, 한국 친구들도 있는데. 루한의 편을 들어주는 아이들이 쟤네라면 오세훈편도 들어주어야 했다. 싸움의 내막은 알 수 없었어도. 한국 애들이 의리가 없나? 하면서 반을 둘러보던 백현은 경수의 뒤통수와 종인의 뒤통수를 한번씩 번갈아보다가 고개를 도리 저었다. 저런 피 터지는 싸움에 아무도 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근처에 앉은 민석의 얼굴도 쓰윽 훑었다. 표정이 꼭 초조하고 불편하고 그냥 이 모든 상황을 얼굴에 다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백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민석의 자리 앞으로 갔다. 민석은 떨리는 눈동자로 제게 다가온 백현을 바라보았다.
“민석아, 쟤네 왜 싸워.”
“…몰라, 루한이 많이 화난 거 같아.”
“…너도 몰라? 매일 같이 다녔잖아.”
“중국어로 …무슨 약? 그런 소리만 하더니, 욕하면서 제 물건들을 던져서 부쉈어.”
그것뿐이야. 난 정말 몰라. 쟤 화나면 정말 무서워. 나는 루한이 화나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그냥 무섭고 무서워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민석의 말과 표정에는 분명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래,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굳이 안 좋은 얘기를 꺼내서 가까운 사람에게 전하고 싶지 않았을 거다. 루한도 매일 붙어 다니는 민석에게 말하지 않은 걸 보면 알만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에 무슨 기사가 하나났었는데. 그게 오세훈네 회사에 관련 된 기사였지. 뉴스로도 간략하게 나왔었다. …약? 마약 관련 뉴스였던 거 같다. SR제강과는 연계성이 없는 것으로 진술해, 출처가 불분명하지 않은 약들, 대마초 흡연, 코카인 소량 발견. 까지 해서 아까 약? 민석이가 했던 그 무슨 약이 혹시 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껴 맞추어지고 있었다. 백현은 이번에는 종인에게로 갔다. 종인의 뒷자리에 앉은 경수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 건 이 일을 알고 있을 것 같은 김종인이었다.
“김종인, 오세훈이랑 루한 왜 싸우는 지 넌 알지?”
“…몰라, 그냥 추측만 하고 있어.”
“어제 저녁에 기사난 거 알고 있어?”
“…아, 그거.”
종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오세훈이랑 연관 있는 거야? 되묻자, 종인이 목소리 좀 낮춰. 라고 말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싸움의 원인도 다 그런 거에 있겠네. 멋대로 끼운 조각들이 한 데 뭉뚱그려져, 내가 진짜 해답이야. 하고 혼돈하게끔 했다. 종인의 옆에 앉아있는 찬열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학교 나온 건데. 분위기가 별로네. 하며 코끝을 매만졌더니, 그래도 너도 보고 친구들도 보고 좋네. 하면서 찬열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현이 다시 제 뒷자리로 돌아갈 때 즈음 찬열이 종인에게 속삭였다.
“약에 관련된 거 함부로 누설하지 마.”
“…왜?”
“오세훈은 몇 안 되는 아이들과 뒷거래를 했어. 알려지면 세훈이 위신이 깎일 거야.”
“…나도 알아.”
“변백현에게는 왜 그랬어? 애매하게라도 대답을 하면 안 돼. 쟤는 생각이 깊은 애라서 조금만 말해줘도 금세 의중을 눈치 챌 수 있는 애야.”
“…변백현도 오세훈의 약점을 알아. 그건 네가 알고 있던 약점과는 다른 거야.”
종인이 먼저 찬열의 귓가에서 입을 떼어내고 말했다. 됐어. 그만 얘기해. 너랑 얘기한다고 해결 될 문제 아니야. 종인이 차갑게 고개를 돌렸다. 다른 약점? 그게 뭔데. 되묻는 찬열에게 종인은 다시 고개를 돌려 정면을 본채, 허공을 바라본 채로 말했다. 지금까지의 오세훈을 버릴 수 있는 거, 지금껏 살아온 높은 콧대, 자존심을 모두 뭉개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약점이래. 종인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정적이 흘렀다. 일순, 종인이 다시 입을 떼고 말했다.
“그게 나래.”
“….”
“오세훈 약점이 나래.”
오세훈이 김종인을 좋아한다. 어느 정도 눈치 채고 있었지만, 정말 오세훈이 제 성질을 다 죽이고 상대방을 위할 만큼 김종인을 좋아하나? 그 생각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오세훈이 그럴만한 위인은 못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세훈은 중학생 때부터 찬열과 친구였다. 내가 아는 오세훈은 절때 누굴 좋아한다고 해서 제 뜻을 꺾어가며 순종할만한 녀석이 아니다.
“나 오늘 조퇴해. 점심시간에 그냥 가려고.”
“뭐? 그냥 간다고? 오세훈 때문이야?”
찬열은 금세 내뱉었던 말에 후회했다. 아니, 부모님 산소. 말하는 종인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점심은 먹고 오랬는데, 점심 먹을 기분이 아니다. 말하는 종인에 찬열이 바로 맞받아쳤다. 매점 들렸다가, 편의점이라 끓인 물도 있고 전자레인지도 있고 다 있던데. 하고 말하자. 종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먹을 기분 아니야. 찬열은 그 맛없는 병원 밥도 꼬박꼬박 먹으면서 약을 챙겨먹었었는데. 그런 말을 하는 종인에 찬열이 나랑 같이 먹자. 나도 급식 안 먹을래. 하고 종인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렸다. 같이 먹는 거다? 되묻는 목소리에 종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점심시간에는 어떻게 된 건지 무리에 확실한 균열이 생겼다. 원래 무리에 끼지 않던 크리스와 종대도 있었고 타오, 루한, 민석. 다섯이서 밥을 먹었다. 세훈은 밥을 먹지 않으려고 했지만 백현의 고집에 못 이겨 급식실에 왔다. 김종인 어디 갔어? 묻는 백현의 목소리에 아버지랑 따로 어디 갔다 온대. 하고 세훈이 힘없이 말했다. 안 그래도 핏기 없이 흰 피부에, 입술 색마저 죽어있어. 얼굴이 아파보이기까지 했다. 백현은 깨작깨작 밥을 먹는 경수를 채기다가도. 세훈을 이따금씩 챙기며 세 사람의 친목을 지켰다. 이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잘 하지 못했던 일이다. 박찬열이 그래서 힘들었구나, 뒤늦게 깨달았던 순간이 작년 봄이었나? 무튼 이제 백현은 홀수관계의 친목에 편애가 기울어지면 한 사람이 아프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혹여나 오세훈이 친구가 없다고 생각할까 봐. 나는 네 친구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 한 결정이었다. 가뜩이나 김종인도 없었다.
“당분간 밥 우리랑 먹어.”
“…어.”
짧은 대답 후, 한동안 길게 말이 없었다. 말없이 밥을 먹고 식판을 비우고 나왔다. 정문으로 익숙한 뒷모습을 한 소년이 눈에 띄었다. 종인이다. 종인은 저 멀리에 보이는 아버지의 차를 타고 사라졌다. 세훈의 눈이 그곳에 머물렀다가 이내 허망하게 발끝으로 시선을 돌렸다. 백현이 세훈의 팔뚝을 잡고 학교건물 쪽으로 끌었다. 어쩐지 그러지 않으면 세훈은 한참이고 말없이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서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
듬성듬성, 아무것도 매달지 않은 가난한 나무들이 보였다. 모두 바람에 휘날려 나뭇잎이 한참이고 떨어진 뒤였다. 낙엽이 사람이 지나가는 길마다, 바스락 거리며 밟혀왔다. 종인은 얼은 손을 비비며 후드집업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차가 올라올 수 있을 만큼만 올라와서 산소까지 걷는 중이었다. 아버지는, 아저씨는 비닐봉지에 조촐하게 소주 하나와 편지하나를 꺼내들고 묘지 앞에 내려놓았다. 옆에는 작은 꽃 한 송이가 놓였다. 흰 백합꽃이었다. 아저씨는 잡초를 뽑아내며, 코를 훌쩍였다. 꽤 추운 날씨라 그런지 손이 벌겠다. 종인은 묵묵히 아저씨가 하듯, 잡초를 뽑아내었다. 친아버지처럼 부르기엔 아저씨는 아버지와는 너무도 다른 사람이었다.
“여기, 양아버지랑 같이 오는 건 처음이라, 엄마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집에선 편안하게 부르더니. 세훈이 있어서 그랬어?”
종인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도 표정에서는 숨겨지지 않는 미약한 슬픔이 담겨있었다. 내 두 번째 아버지는 허탈한 듯 웃으며 소주를 종이 잔에 따랐다가 단번에 묘지에 부었다.
“혜영아, 만약 내가 너와 결혼을 했더라면, 네 아들인 종인이를 못 만났겠지.”
확실하게 아저씨가 나와의 사이가 벌어진 순간이었다.
“그래도 난 좋아, 네 아들을 키울 수 있어서.”
네 아들을 내게 맡겨두고 가서 고마워 혜영아. 종인에게도 다 들리게 묘지를 정리하는 아저씨의 음성이 귓가를 울렸다. 네 아들을 맡겨줘서 고마워. 그 말에 종인은 번뜩 정신이 들었다. 맡겼다고? 엄마와 아빠는 분명 사고사였다. 나를 누군가에게 맡길만한 말을 전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종인의 눈이 자꾸만 흐릿해졌다. 엄마, 아빠가 죽었던 그 날이 자꾸만 회상되기 시작했던 거다. 눈 안을 가득채운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린다. 방화 아니라면서요. 종인은 저를 3년 동안 키워왔던 아저씨에게 처음으로 적대감을 가졌다.
“대체 3년 전에 아저씨는 뭘 하고 계셨어요?”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아저씨, 아저씨. 입 밖으론 꺼내지 않았던 호칭이 순식간에 밖으로 표출되고 말았다. 종인은 어느덧 울고 있었다. 묘지에서 무릎을 꿇은 채, 이제 와서 미안해요. 엄마. 하고 묘지에 손을 얹고 몸을 웅크린 채로 오열했다. 등을 두드리는 손길에 종인이 어색하게 허리를 세웠다. 종인의 붉어진 눈과 똑같은 아저씨의 붉은 눈을 응시했다. 전혀 닮은 얼굴은 아니었지만 이 순간의 슬픔은 엇비슷한 뭉텅이였다. 그렇다고 그 중년의 남자에게 주었던 의심의 눈초리를 풀었던 건 아니었다. 종인은 다시 한 번 물었다.
“아저씨는 다 알고 있잖아요. 왜 나한테는 안 말해줘요. 우리 엄마일이고, 아빠 일인데.”
중년의 남성이 붉어진 눈시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바삭한 나뭇잎으로 눈물이 저며 들었다. 꽤나 다부진 눈매로 제 엄마를 빼다 박은 얼굴로 우는 소년의 얼굴이 낯설었다. …네 엄마의 부탁이었어. 짧게 답을 한 뒤, 남자는 손에 들린 소주를 묘지에 부었다. 시원하게 떨어져 내리는 액체들이 묘지를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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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망해따.. 이게 머지.. 흑지 도망이여... 19편부터 망스멜 나더니... 근데. 아까워서 연중은 못함. 다쓰고 갈거야.....허헝.. 막장드라마.ㅠㅠㅠ
원래 구상한 거 다 맞는데.. 20편 급전개 죄송해여.. 여기서 어떻게 끌어야할지 모르겟어서..ㅠ.ㅠㅠ
암호닉 끌올하게여 (암호닉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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