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유치원 가방은?〃
〃챙겼어.〃
〃수저는?〃
〃챙겼어.〃
〃물통은?〃
〃…챙겼어.〃
〃칫솔이랑 치약은?〃
〃……아빠.〃
〃아직 안 챙겼어?〃
〃……아빠?〃
〃응, 딸-〃
〃아빠부터 챙겨.〃
[카이/디오] 녹색 어머니 회
0323 作
병아리 색 유치원 가방을 둘러맨 이쁘장한 이 아이는 18살에 어린나이에 사고를 쳐 얻은 종인의 딸 희주다. 눈은 반쯤 간긴 상태로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메로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는 희주의 표정은 보기 좋게 구겨져 있었다. `아, 아빠 지각하겠어!``응…. 몇신데?``8시!!!``…뭐?` 이제야 눈이 뜨인건지 쌍커풀 진 눈이 크게 떠진다. 쯧쯧, 맨날 이래. 연한 파스텔 톤의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은 희주를 품에 안곤 급하게 오피스텔에서 빠져나오는 종인(23, 건축 디자이너) 이다.
그저 늦었다, 늦었다 라며 발걸음을 급히 옮기는 종인의 품에 안겨 나이 답지 않은 긴 한숨을 내쉬는 희주다.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대 딸-〃
〃그러니까 내가 아침에 깨울 때 제때제때 일어났으면 이렇게 안 뛰어도 되는데 아빠는 맨날 일어나지도 않고….〃
작은 입에서 터져나온 잔소리에 종인은 자신의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아, 엄마한테 벗어나니까 딸이 잔소리네. 계속해서 오물오물 거리며 말을 뱉는 희주에 종인은 고개만 끄덕끄덕. 알았어, 아빠가 다-잘못했어. 반성할게. 성의없는 답변에 그저 입술만 삐죽이는 희주였다. 맨날 이런식이야.
종인과 희주가 살고있는 아파트와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는 않은 유치원이 신호등 건너편으로 보인다. 종인의 품에서 답답히 안겨있다 내려달라는 듯 버둥거리던 희주의 발이 땅에 닿았다. 그때, 종인의 옆으로 어린 목소리가 스쳤다.
〃얘들아-!! 천천히 조심해서 건너세요.〃
이 목소리는 경수의 것이였다. 귀찮다며 경수에게 녹색 어머니회 일을 떠맡긴 엄마를 대신해 촌스러운 녹색 앞치마를 둘러매곤 자신의 반만한 아이들을 보며 생글생글 웃어보이던 경수의 몸이 어딘가 툭하고 부딪히더니 휘청하더니…. 툭. 손에 들고있던 봉이 도로위에 굴렀고 다행히 경수는 손바닥에 작은 생채기만 생겼다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을뻔 했지만 금새 표정이 일그러졌다.
경수의 몸에 부딪힌 건 감은 건지 뜬건지 모를 눈을 한 종인이였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혈기왕성한 5살 영웅이를 보며 감탄하던 종인이 혹여 자신의 딸이 장군의 큰 살덩어리에 부딪혀 다치진 않을까 해서 피하다 경수와 부딪힌 것이였다.
경수는 자신에게 사과라도 한마디 건넬 줄 알았던 종인이 갑자기 멈춰선 자신의 다리에 얼굴을 박고 코를 문지르고 있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혀 앉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다.
〃괜찮아? 아빠가 갑자기 멈춰서 미안해. 안 다쳤지?〃
…어이가 없는 경수다. 딱 봐도 그 여자아이보단 자기가 더 다친것 같은데ㅡ물론 경수 생각에ㅡ 자라나는 새싹들이 듣는 이 곳에서 누구 좋자고 자신의 앞에 있는 이 남자에게 욕을 내뱉을 수는 없는 노릇에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경수다. 끝까지 사과는 커녕 쳐다보지도 않곤 여자아이에게 이것저거 물어대는 남자의 가지런한 뒷통수를 한 대 내려치려다 이내손을 거둔 경수다.
오, 미카엘. 이 새끼를 구원하소서.
〃저기요.〃
〃희주야, 코 아파? 병원 가 볼까?〃
〃저기요…?〃
〃코피는 안나네. 다행이다.〃
〃저기요!!!!!!!!!!!!!!!!!!!!!〃
이제야 귀찮다는 표정이라도 돌아봐주는 남자에 고마워 미칠 지경인 경수다.
〃저 한테는 사과 안하세요?〃
꽤나 당당히 말을 내뱉던 경수가 무안하리만큼 종인은 경수를 위 아래로 훑었다. 그 표정은 마치 `뭐야, 이 좆만한 새끼는.`이런 표정이였다. 물론 종인은 그런 의도로 내민 표정이 아니였다 해도 종인 안티 렌즈를 장착한 경수에게는 적어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제가 왜요?〃
왜요?! 지금 왜-요라고 하셨어요? 마음속의 경수의 외침이였다. 주여, 왜 저를 시험에 드시나이까. 울그락 붉그락 해진 경수의 표정은 꽤 볼만했다.
〃지금 그 쪽 때문에 여기, 여기 손바닥 까진거 안보이세요?!〃
경수가 잘못했네. 거의 보이지도 않는 생체기를 종인에게 들이밀던 경수는 여전히 아무 반응도 없는 종인에 급히 손을 거두었다.
〃아, 아무튼 사과, 하시라구요.〃
〃죄송합니다.〃
…??? 내가 바라던 건 이런 쉽게 터져나온 사과의 답이 아니였는데? 그럼. 하는 소리와 함께 경수의 앞으로 지나치는 종인이다. 경수의 앞을 스쳐지나가던 종인의 표정을 잊을수가 없는 경수는 벙졌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뒤에서 분노를 내뿜는 경수를 뒤로하고 희주의 손을 붙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종인의 표정이 미묘하다. 방금 전 경수 앞에서의 그 딱딱했던 표정은 어디갔는지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이유? 귀여워서. 자신보다 한뼘 반 쯤 작은 남자가 초록색 앞치마를 매고 바락바락 자신에게 달려드는 모습에 첫눈에 반했던 것이였다. 아, 내 취향이 남자였던가. 종인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멍하니 의무적으로 발을 움직이던 종인을 가만히 올려다보던 희주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빠. 나는 엄마가 남자라도 괜찮아.〃
엉뚱한 말을 내뱉은 희주가 건너편에 있던 유치원 선생님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눈치가 빠른 희주였다. 경수를 만나고부터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희주가 내뱉은 말을 꽤나 앙큼했다. 사라진 자신의 딸의 뒷 모습에 큰 웃음을 터트리던 종인의 웃음이 그쳤다.
아, 근데 그럼 저 사람도 애 아빤가? 뭐, 그럼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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