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Ocean J
뭐냐. 라는 그 질문에 학연이던 택운이던 곧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게, 뭘까. 학연이 멍하니 재환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삐딱하게 꺾은 채 자신을 보고 있는 재환의 표정이 ' 어이 없다. ' 라고 말 하고 있었다.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재환과 택운을 번갈아 보던 학연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재환과 택운은 앙숙이라고 했다. 어쩌면 그 날 나에게 그토록 모질게 굴었던 것도, ' 택운 '과 잤다는 오해 때문에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래, 내가 다른 남자와 잤기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라, 자기와 앙숙인 택운과 연관 되어 있기에 화가 난 것이다. 그런 택운과 함께 붙어있는 나를 봤으니, 화가 날 법도 했다. ―그 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했다. 5초간의 정적. 택운이 아무런 감흥 없이 멀뚱히 재환을 보다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아직 학연의 이마에서 손을 떼지 않은 상태였다. 그 사이에도 학연의 체온은 계속해서 올라 가고 있었다. 택운이 걱정스러운 듯 학연에게 또박 또박 말을 건네었다.
" 우선 들어 가. 추워. "
" ...아. "
" 더 아프고 싶어? "
" 아니, 그게.. "
" 지금 뭐냐고, 이 상황. "
재환이 천천히 걸었다. 학연을 향하던 시선이 택운에게로 돌려졌다. 학연의 이마에 얹어져 있던 새하얀 택운의 손을 탁, 하고 쳐낸 재환이 눈을 날카롭게 치뜨며 그르렁거렸다. 네가 여기 왜 있냐고, 정택운. 추운 날씨라 가뜩이나 손이 하얗게 터 있는 상태에서 꽤나 센 마찰이 가해지자 금방 빨갛게 부어 올랐다. 무언가에 긁힌 듯 붉은 선이 그어진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던 택운이 재환의 쪽으로 몸을 틀었다. 차학연, 더 아프게 만들고 싶어? 지금 열 올라서 얼굴 빨간 거 안 보이냐? 편지에 글을 쓰듯 유하고 덤덤하게 이야기 하는 택운의 모습에 더욱 열 받은 재환이 택운에게 무언가를 말하려던 찰나, 또 다시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재환이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학연이 다 죽어가는 기침을 토해내며 으슬으슬 떨고 있었다. 아, 가지가지하네. 진짜. 습관처럼 눈 두덩이를 꾹꾹 누르던 재환이 학연의 옆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섰다. 택운과 학연이 그를 멀뚱히 바라보자, 재환이 입술을 비죽이며 말했다.
" 뭐해, 안 들어와? "
" ... ... "
" ... ... "
" 차학연 다 죽어간다. "
아, 날씨가 왜 이렇게 추워? 쓸데 없이. 재환이 온 세상의 불평 불만을 해 대며 제 집인 양 안으로 사라지자, 남겨진 학연과 택운이 서로를 마주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재환이 완전히 개차반은 아니었네. 는 사실 택운도 매우 추웠기에, 옷을 여미고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갔다. 코를 훌쩍이던 학연이 빨개진 코 부근을 문지르다 한숨을 쉬며 대문을 닫았다.
그들의 상황과는 달리 매우 고요하고 평화로운, 차학연의 집 앞 골목길 되시겠다.
미안. 나 혼자 사는 집이라 이불도 하나 밖에 없어. 좁은 방 안에 이불을 꽁꽁 싸매고 있는 학연과, 이불이 없어 겉 옷만을 여미고 있는 재환과 택운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학연은 물론 택운의 앞 인지라 자존심 때문에 추운 티도 못 내고 있는 재환은 애써 안 추운 척 양반 다리를 하며 여유롭게 앉아 있다. 그러나 달달 떨리는 재환의 입가를 본 택운은 재환 몰래 그를 비웃었다. 코를 훌쩍이느라, 기침을 하느라 정신 없는 학연이 제대로 떠 지지도 않는 눈꺼풀을 들어 올려 재환의 눈치를 보자, 재환이 그 시선을 느끼고 학연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상태가 더 안좋아 진 것 같았다. 그러게 왜 바깥에 나와서 지랄이야, 지랄은. 재환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코트 주머니를 뒤적였다.
" 약 사 왔다. "
" ... ... "
" 그러게 누가 그렇게 골골대면서 밖에 있으래? 덜 아프지? 어? "
" 미안.. "
" 아픈 사람한테 뭘 그래? "
택운의 목소리가 들리자 마자 재환이 그를 째릿하게 쳐다보았다. 네가 무슨 상관인데. 재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던지듯이 말하자, 택운이 특유의 멍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러는 너는 무슨 상관인데. 내가 차학연하고 같이 있건 말건.
" 너랑 차학연이랑 연애 해? "
" ...이..! "
" 아니잖아. 그럼 됐네. "
그래도 궁금해 하는 눈치니 말은 해 줄게. 몇일 전에 길을 가다가 차학연을 만났는데, 얼굴이건 몸이건 엉망이더라고. 아마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 같던데. 차학연이 그렇게 된 이유가 아마, 내가 거짓말을 해서 일 거야.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택운에 재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슨 소리야? 저게.
" 내가 저번에 차학연이랑 나랑 잤다고 한 거. "
" ... ... "
" 거짓말 이라고. "
멍청하게 그걸 곧이 곧대로 믿은 네가 차학연을 그 꼬라지로 만들었다고. 택운의 입을 멍하니 바라 보던 재환이 입을 다물 생각도 못하고 학연에게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주위의 말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건지 여전히 이불 속에 파묻힌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다 거짓말이었다고? 차학연하고 정택운하고 잤다는 게 아니라고? 재환의 고개가 다시 택운에게로 돌려졌다. 뭐야, 정택운에게 왜 화가 나지 않지. 당장 주먹질을 해도 모자란데, 왜지.
차학연이 다른 새끼랑 자지 않은 게 다행스러워서. 재환의 가슴 속을 꽉 메우고 있는 감정이었지만, 재환은 끝내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 재환이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택운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비틀었다. 뭐지, 저 반응은.
재환이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서 한 쪽으로 밀었다. 주머니에서 꺼낸 약 상자의 한 귀퉁이가 꾸깃하게 접혀 있었다.
" 감기약은 병원 처방전이 필요하대. 그래서 해열제만 사 왔어. "
" 으으.. "
" 아, 너 밥 안 먹었다고 했지. "
" ... ... "
" 가지가지하네. 진짜. 가지가지 해. "
다행히 ' 약은 밥을 먹고 난 후에 복용해야 한다. ' 라는 철칙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던 재환이 한숨을 푸욱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을 먹여야 겠다. 그래- 오늘 하루 간병해 주는 걸로 사과하는 셈 치지 뭐. 재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쌀은 있냐? -..응. 뭐 하게? 기다려 봐. 죽 해 줄 테니까.
죽을 해 준다. 라는 재환의 말이 끝을 맺자 마자 골골거리던 학연은 물론 가만히 말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택운이 동시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 안 돼! "
" 안 돼. "
그들의 고함에 등을 돌려 주방 쪽으로 걷던 재환이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저것들이 미쳤나, 왜 저래? 학연이 덮고 있던 이불을 팽개치고 재환을 뜯어 말렸다. 나 죽 안 먹어도 되니까, 만들지 마. 약만 먹어도 될거야. 애절하다 못해 불쌍한 학연의 말투에 재환이 못마땅한지 팔짱을 꼈다. 왜?
" 그야.. 너. 요리 해본 적 있어? "
" 아니. "
" ... ... "
" 근데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니까? "
너무도 당당하게 ' 아니. ' 라고 말 하는 재환에 학연이 할 말을 잃었다. 언제 학연의 뒤를 따라 온 건지, 택운이 조용히 입술을 열었다. 쟤 요리 못해. 난 요리 잘해. 또박 또박한 음성으로 재환에게 들으란 듯 말한다.
왜 또 끼어들어. 재환이 눈을 치켜뜨며 택운을 노려보자, 택운도 그를 피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또 슬슬 살벌해지는 분위기에 영문을 모르는 학연만 중간에서 눈치를 보느라 곤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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