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최승철] 해변의 인어왕자님
w. 뿌존뿌존
그래, 아마 작년 이맘때였을거다, 내 몸 속에서 위궤양이라는 병이 발견된게.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병은 날 지독히도 괴롭힌다.
아픈데, 이상하게 암으로 발전하진 않는다.
한마디로 찌질하다. 찌질하게 날 깔짝이며 괴롭혀댄다.
"음,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몇달만 요양해보는게 좋을 것 같아."
순 엉터리야, 의사선생님의 사무적인 어조에 입술을 비죽이며 건물을 나섰다.
딱 한달이야, 한달 있다가도 낫지 않으면 병원을 옮길테야.
-
"우와- 바다네? 세봉아 바다다 바다!"
아직까지도 날 어린애 다루는 듯이 말하는 엄마의 태도에 이골이 나
하얀 거품을 내며 바스러져가는 파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계속해서 모래를 괴롭히는게 꼭 내 병 같아 고개를 획, 돌렸다.
그때는 몰랐다, 이 바다가. 이 부서지는 파도가 이렇게 소중한 것일줄.
내가 요양을 하게 될 곳은 바다 앞에 있는 작은 오두막이었다.
말이 좋아 오두막이었지 그냥 나무집이었다.
방은 한개 있었는데 날 돌보느라 힘들 엄마를 위해 양보했다.
나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었으니까.
그 탓에 난 늘 엄마와 자기전 인사를 나누고 창문 앞에 앉아 부서지는 파도와 그 위에 비친 수많은 별을 보는 것을 습관으로 갖게 되었다.
파도는 저렇게나 요란한데, 그 위에 비친 별들은 고요하기만 한게 신기하고, 또 얄미워서.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이곳은 내 몸에겐 좋은 곳일진 모르겠지만 내 정신에는 썩 좋은 곳이 아니었다.
늘 반복되는 하루와 시간 마다 먹는 약은 내겐 큰 도움이 안됐다.
그래서 그랬다, 그래서 더 간절히 바다만 바라봤다.
날 위한 인어왕자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고.
-
".......거기 사람이에요?"
내 목소리만이 울려퍼지는 고요한 밤바다.
이럴 줄 몰랐는데 우리 집 앞 해변에 누군가 누워있는걸 봐버렸다.
그래서, 그래서 나도 몰래 바깥으로 걸어나왔다.
새벽 2시, 엄마가 잠든 틈을 타.
"괜찮아요?"
사실 윗통을 홀딱 벗고 홀딱 젖어서 바닷가에 누워있는 사람이 괜찮을리가 없다는 것 쯤은 나도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렇지만 물었다. 혹시나 괜찮을까 싶어서.
괜찮냐 물을 수록 그 사람에 대한 궁금증은 점점 커져갔고 난 해선 안될 짓을 범했다.
"으아아아아악!"
그 사람의 하반신에는 멀쩡히 달려있어야 할 두 다리 대신
생선의 것과 꼭 닮은 지느러미가 달려있었다.
인어였다.
날 구원할 인어 왕자.
-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 주저 앉자 놀란 나를 놀리듯, 차가운 밤 파도가 내 다리를 덮쳐왔다.
너무 차가워 다리가 얼어버릴 것 같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건 조금씩 꿈틀거리는 그 남자의 지느러미 때문이겠지.
".....괜찮아요?"
지금 생각하면 그 사람이 한국 말을 할 줄 안다고 당연하게 생각한 것이 참 이상하지만,
그때는 아무 생각없이 물었다, 괜찮냐고.
내가 계속 해서 물을 수록 그 남자의 미간은 점점 더 찌푸려졌다.
달빛이 어슴푸레 그 남자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묘하게 빨려들어가는 느낌.
몸을 휘감는 이상한 느낌때문에 괜히 손가락을 만지작 거렸다.
남자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괜찮아요?"
".....돌려보내줘요, 바다로."
".....괜찮아요?"
"괜찮을거라고 생각하는거예요? 인어가, 뭍에 누워있는데?"
그리고 그 남자의 차가운 말투는
내 몸 가득히 짠 바닷물 처럼 밀려왔다.
날 구해줄 인어왕자를 내가, 구해야했다.
-
"으......."
남자를 끌어 바닷속으로 넣어버리기 위해 남자를 들어올렸다.
정말 무겁다, 손이 빠질 것만 같다.
"치, 그렇게 무겁다고 낑낑댈거면 왜 괜찮냐고 물어본거야"
"여기 계속 있고 싶어요? 생명의 은인한테 말이 많네"
"보아하니 요양? 요양이지?"
"왜 말 까냐?"
"....나랑 처지가 비슷해보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게"
"...인어가 처지같은 것도 있어? 인어는 다 왕자 공주 아닌가"
"왕자면 뭐해. 아빠한테 잡혀사는데."
"그래서, 탈출하다가 여기까지 밀려오셨다. 그거지?"
"그래, 뭐 그런걸로 치자. 너는?"
"위궤양. 그게 낫지도 않고 커지지도 않아서."
"위..위궤양"
"아, 넌 잘 모르겠구나."
인어왕자를 낑낑 거리며 옮기다 힘들어져 잠시 커다란 바위에 등을 대고 앉았다.
촉촉히 젖은 바위에 등이 젖어들어갔다.
색색 거리는 남자의 숨소리 만이 우리 둘사이를 가만히 감싸,
꽤 묘한 분위기가 우리 둘을 감쌌다.
괜히 헛기침을 하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야, 뭐, 너도 그런거 있냐?"
"뭐?"
"이름 같은거"
"최승철"
"응?"
"내 이름. 최승철"
"오, 의외로 평범하네. 나는 막 찰리 엘리자베스 5세 정도 되는 줄"
"........편견이야. 너는?"
"나?"
"응, 너는"
"김세봉."
"예쁜 이름이네"
최승철, 그 인어왕자의 이름은 최승철이라고 했다.
남자의 큰 눈이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별 같았다. 일렁이는 파도 위에서 가만히 빛나는 별.
나는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는데 가만히 빛나는 너라는 별.
"좋아"
"뭐가?"
"너랑 이렇게 얘기하는거."
"............"
"저 바다 속은 너무 답답해"
"....그래?"
"응"
".............."
"그러니까 내 친구가 되어줘, 매일 이 시간에 여기서 나랑 만나자"
쓰기만 했던 날 달콤하게 적신 승철의 제안.
지루하기만 한 무채색의 일상에 파란색 물감 한 방울이 번지는 느낌.
서서히 물들어갔다. 그래서 그랬나봐.
"좋아. 내일, 새벽 2시"
-
승철은 정말 내 삶의 크나큰 변동이 되어주었다.
승철에게도 내가 그런 의미였을까?
승철과의 시간이 계속 될수록 나는 파도를 보며 그와 얘기하는게 썩 유쾌하진 않았다.
왜냐면, 일렁이는 파도가 꼭 내 마음 같았거든.
안되는걸 알면서도 자꾸 달려가는 내 마음.
"그래서, 오늘은 약 먹기 싫다고 엄마랑 싸웠어"
"치, 어머니께서 얼마나 힘드신지 잘 알면서."
"맞아, 그래서 내일 일어나자마자 엄마한테 사과하려고"
"착하네 우리 세봉이"
승철과의 해변에서의 작은 일탈은 내 삶에서 작은 물꼬였고
내 병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고 있었다.
이젠 속이 아프지 않아.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걸 알면서도 애써 모른체 했다.
그만큼 왕자님은 내게 소중한 존재였으니.
"자,"
"이게 뭐야?"
"진주"
"진주?"
"응,"
"이렇게 귀한 걸 왜 나 줘?"
"넌 내 첫번째 친구잖아."
"고마워, 나도 뭐 줄게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소원 하나만 들어줘"
"그래"
"이제, 넌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냥 잠자코 들어. 알겠어?"
자꾸만 피어오르는 몽글몽글한 느낌.
인어와 인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면서도 자꾸 서로를 찾는다.
바보같지만 네가 좋다, 승철.
"알겠어"
"그리고, 내가 너한테 질문을 하나하면 무조건 그 답은 응이야. 알겠지?"
"응"
-
꿈에서 깼다.
창문 밖에 비친 에메랄드빛 바다.
그리고 부산스런 조그만 오두막
"가자마자 의사선생님 뵈자, 선생님이 너 보려고 집도시간도 미루셨대"
"응,"
가방을 싸 집을 나섰다.
매서운 바닷 바람에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자 손 끝에 만져지는 하얀 진주.
"세봉, 얼른 타. 오래걸려"
"알겠어"
엄마의 재촉에도 바다를 보고 한참을 섰다.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꼭 쥔 진주 한 알이 널 만날 수 있게 마법을 부려주면 좋으련만.
바다에 대고 크게 외쳤다.
"잘 있어!!"
"뭐해, 얼른 타-"
"정말 고마웠어!"
엄마가 날 보고 비웃는다.
"세봉아, 의사선생님 기다리신 다니까"
"나도 많이 행복했어! 너 때문에!"
"세봉아- 나중에 꼭 다시 오자, 오두막도 너 보고 싶을거래.
인사해준다. 잘 가 세봉아- 하고"
아이처럼 날 다루는 엄마의 말투에도 화를 낼 수 없었다.
너와의 마지막 작별인사.
진주를 여전히 꼭 쥔 채로 차에 올라탔다.
서서히 멀어지는 오두막.
가만히 바다를 바라봤다.
세게 몰아치는 파도, 일렁이는 내 마음.
안녕 승철, 안녕 내 사랑.
-
"난 이제 더 이상 뭍에 못 올라와"
"........뭐?"
"잠자코 듣기로 했잖아."
"..........."
"아버지가 많이 아파, 사실 바라던 거였는데,
또 아빠라고 괜히 마음이 시큰해"
"..........."
"그리고, 난 네 병이 다 나았다는것도 알아.
괜히 네가 밍기적 거리면서 날 보러오는 것도"
"............그런거 아니야"
"쉿, 나는 네가 정말 좋아, 넌 정말 내 전부야. 넌 내 바다야"
"..........."
"그러니까, 날 잊지말아줘,
나중에 네가 완벽히 다 나아서 멋있는 어른이 되어서
이 바다에 돌아와줘."
"..............응"
"아니, 아직 질문 안했어"
"질문이 뭔데?"
"대답은 무조건 응이야, 알지?"
"응"
"세봉"
"응?"
"너도 날 좋아해?"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