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흔하게는 흑방(黑幇)이라고 불렸고 다르게는 방회(幇會) 또는 방파(幇派)으로 불린 100년이 넘어가는 역사 깊은 조직의 수령이 바로 타오의 아버지였다. 부인을 셋이나 둔 아버지는 무려 9명의 아들과 딸이 있었고 그 중에서 타오는 5번째 아이이었다. 후계자로써 가망은 없는 서열이었지만 아버지는 철저하게 적자생존의 법칙을 추구하셨고 타오는 그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14살 무렵에 후계자 자리를 위협하는 형제들의 피를 묻히고 타오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는 한번도 보여 준 적 없던 환한 웃음으로 타오를 맞이했고 그를 후계자로 선택을 하였다. 그렇게 후계자가 된 15살 무렵의 타오는 아버지를 따라 거대한 저택에 도착을 했고 그곳에서 그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다.
[인사해라.]
아름다운 남자였다. 그 날 오후의 햇살은 유독 따사로웠고 그 빛에 반사되어 옅은 갈색의 머리칼은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마치 그림과 같았다. 화려할수록 독이 강력하다는 말이 맞는지 남자는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자였다.
[무례하구나. 어서 인사 드려라. 이분이 우리의 진짜 주인님이다.]
수령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가 그저 대타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그 남자의 눈빛에 타오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서 그의 눈은 그 무엇보다 독했다. 그는 눈으로 타오의 몸을 열고 해부하여서 그 속 안을 다 헤집어놓는 듯 했다. 어린 아이였던 타오로썬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이었다. 숨을 쉬면 죽을 것 같았다. 그 분은 손에 그 어떤 무기도 들고 있지 않았고 살기도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 분 주변 공기의 무게가 타오의 목덜미를 짓누르는 듯 했다. 타오는 그 때 모든 것을 이해했다. 감히 아버지가 수령이 될 수도 되어선 안되었다. 이 괴물 같은 자를 이길자가 있을 리가 없었다.
[수령님]
[응응.]
10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어린 타오가 봤던 그 모습 그대로 아름다웠다.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사람처럼 늙지도 약해지지도 않은 채 수령의 자리를 지켰왔다. 늙지 않고 죽지도 않는 인간이라니. 번거롭게 타오의 아버지 뿐만 아니라 그 위의 할아버지까지 끌어들여서 꼭두각시 수령을 세운 이유가 있었다. 괴물은 자신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방어막을 쳤던 것이다.
[저…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만…]
[쉿. 나중에. 지금 중요한 순간이란 말이야]
타오에게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인 루한은 현재 벽 뒤에서 부엌을 몰래 염탐을 하고 있다. 놀랍게도 루한은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다. 타오는 루한의 시선을 따라서 부엌을 보자 만두피를 손에 쥐고 멍하게 있는 한국 소년이 보였다. 민석이라는 이름을 가졌던가? 민석은 만두피를 서툴게 편 후에 만두속을 넣고 있는 듯했다. 빈말로 만두를 만들라는 소리는 아니었는지 민석은 정말로 만두를 만들고 있었다.
[큭큭. 내가 장담하건대…… 재 만두 처음 만들어보는 것 같아.]
루한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민석을 계속해서 훔쳐보았다. 자신있게 만두를 만들줄 안다고 한 모습과 다르게 민석은 만두속을 넣은후에 만두피를 닫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터진 만두피를 보면서 울상짓는 민석을 바라보면서 루한은 또 다시 큭큭거리며 웃었다. 여태동안 살아오면서 당황한 적이 손에 꼽히는 타오는 최근들어서 가장 당황했다. 웃고 있는 루한이라니. 굳이 루한이 타오 앞에서 연기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웃음은 진짜라는 것이었다. 10년이란 시간을 옆에서 보좌해오면서 타오가 느낀 점은 루한은 연기를 습관적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가볍게 가면을 바꿔가면서 사람들을 속였다. 루한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그런데 왠 한국소년이 만두만드는 모습에 쉽게 진짜 웃음을 내보였던 것이다.
"으악. 힝……”
민석은 또다시 만두피를 터트린 것인지 징징거렸다. 마치 강아지가 끙끙대는듯했다. 어제는 꼬질꼬질한 모습을 보았기에 몰랐었지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모습을 보니 확실히 사랑스러운 소년이긴 했다. 사랑 받고 사랑을 주는 것에 익숙한 것이 보였다. 그렇기에 절대 루한과 어울리지 않은 자였다. 10년이란 시간을 같이 보내왔어도 루한을 파악하기란 역부족이었지만 적어도 그나마 알게 된 사실은 루한은 뭐든지 부정적인 쪽을 추구한다는 것이었다. 예전에 이따금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서 루한은 여자를 찾아 매음굴을 찾았던 적이 있다. 루한의 요구는 언제나 같았다. ‘가장 몸을 굴린 여자’. 루한은 그러면 약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닌 여자와 밤을 같이 하고 돌아오곤 했다. 부두목급 임원을 뽑을 때에도 가장 잔인하고 가장 인간미가 없는 건조한 자들을 뽑았다. 그런데 부정적인 것과는 거리가 전혀 먼 소년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것은 의외라는 것을 넘어서는 이상한 일이었다.
[아아…이제 만두를 찌을려고 하네.]
[아네…그러네요]
민석은 결국 터진 만두피를 수습하지 못한 채 울상인 표정을 하고 만두를 찌을 준비를 하였다. 안 그래도 통통한 볼에 불만 가득한 바람을 볼에 불어넣자 더 통통해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 루한은 잠시 민석을 더 구경하다가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갔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아까 전의 장난기 있는 웃음을 싹 지웠다. 그 모습에 타오는 이제야 자신이 아는 수령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서 조금 안심을 했다.
[애기해봐.]
[우선…한국에서 20,26, 그리고 27군이 제 2차 전역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원 물자는 제 시간에 도착해서 다들 무기를 받았다는 정보를 받았습니다.]
[26군…이 우리 쪽 애들이 있는 부대였던가?]
[네. 팽덕회 총사령관은 우선 저희 조직이 지원한 인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
[그래. 합리적인 선택이네. 총사령관다운 생각이야……]
자신의 조직원이 꽤나 전쟁터에서 굴려지고 있다는 것에 루한은 그다지 놀라진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일개 조직에 불과한 흑방이 전쟁터까지 간 데에는 루한의 타고난 장사 감각 덕분이었다.
루한의 조직은 다른 조직과 마찬가지로 마약밀매, 청부살인, 돈세탁, 도박, 그리고 매춘 등 돈이 될만한 모든 일에 다 손을 대고 있었다. 그 중에서 흑방은 경제성과 정치성 방회의 중간쯤에 해당되는 분야를 장악하고 있었는데 루한은 중국 정부기관과 손을 잡고 중국 내의 권력투쟁의 더러운 부분을 도와주어서 자신의 조직을 중국 권력자들에게 필요 불가결한 존재로 만들었다. 정치계에서 권력자는 손 뒤집는 것보다 쉽게 바뀐다. 하지만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인 루한은 국민당의 손을 재빠르게 놓고 공산당의 손을 들어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을 도왔다. 덕분에 물질적 혜택과 함께 정치판에서 힘을 가지게 된 루한은 조직 내의 모든 불법을 합법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위치의 조직을 한 단계 나아가서 더 깊숙이 국가에 침투시키기 위해서 루한은 이번에는 군사 지원이라는 카드를 꺼내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공산당은 같은 공산주의인 북조선을 지원하게 다는 명목으로 전쟁에 개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전쟁준비가 어려웠던 공산당은 루한에게 손을 벌렸다. 그렇게 조직원의 지원, 무기의 지원, 그리고 물자지원을 통해서 루한은 국가이란 고객이자 채무자를 얻게 되었다.
[지원은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요?]
[음…글쎄…어쩌 피 타국의 전쟁 따위에 그 머리 잘 돌아가는 인간이 발을 오래 담글 리가 없어. 아마 곧 끝날 테니 만족할 만큼은 대주는 게 좋겠지.]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언제까지 광동에 있을 예정이신가요? 지금 상해지역의 패권싸움이 점점 심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진중방(震中幇)이 노골적으로 저희 쪽 사업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또..]
[그 구역 내 자잘한 조직들을 처리하고 몇몇 놈들은 손을 잡았겠지. 상해 지역 주요 조직들이 지금 흑방을 집중적으로 노린다고 생각한다고? 맞아 정답이야. 일단 큰 놈 먼저 해치우자는 생각이겠지.]
[어…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응응. 지난번에 심심해서 놀러 간 적 있거든.]
[하아…제발 위험한 일은 말아주세요. 지난번에 뜬금없이 한국에 가겠다고 했을 때도 정말 걱정했습니다.]
[걱정? 너가? 누구를?]
[그…]
정곡을 찌르는 말에 타오는 할 말을 잃었다. 루한을 걱정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다만 루한이 괴물이라는 것이 알려질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뿐이다. 조직일을 미뤄둔 채 전쟁에 놀러 가겠다는 루한을 말렸던 것은 단순히 피투성이가 되어도 살아있는 수령의 모습을 감춰야겠다는 생각이 급해서였다.루한은 언제나 이렇다 사람의 마음 속을 다 꿰뚫어본다. 타오는 루한이 수령 대리자리를 맡고 있는 자신에게도 의지를 하지 않고 혼자서 다니는 것은 사실 자신의 마음을 이미 읽어서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기에는 루한이 의지를 하는 적을 본적은 없었지만. 동물이든 물건이든 사람이든. 루한은 모든 것에 초월한 듯 애정은커녕 관심도 가지질 않았다.
‘똑똑’
“저어...말씀하고 계신 거 아는데…만두가 불어터질 것 같아서…”
“아아~ 들어와.”
경직된 방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변했다. 공기 속에 가시가 날카롭게 서있었던 것처럼 차가웠던 공기가 거짓말처럼 부드러워졌다. 민석은 눈치를 보듯 문틈 사이로 빼꼼히 얼굴만 내밀었다. 반갑게 환영하는 루한에 용기를 얻었는지 만두 몇 개가 올려진 접시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민석은 타오가 꽤나 겁나는지 삐죽 대면서 천천히 걸어와서 루한의 책상 위에 접시를 올려놓았다.
“드..드세요.”
“우와. 맛있겠다. 근데 한국의 만두는 원래 옆이 터져있나 봐? 그치?”
“으…네…네에…”
민석은 거짓말을 하는 게 찔리는지 눈도 못 마주치면서 웅얼웅얼 대답을 했다. 순진한 민석은 자신의 거짓말에 루한이 속아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양심의 가책에 괴로워하는 게 역력한 표정을 했다. 한국인과 무리 없이 대화하는 수준에 이르는 루한이 한국의 만두 모양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민석이 귀여운지 루한의 입 꼬리는 올라가서 내려올 생각을 안 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신세가 된 타오는 조금 뻘쭘하게 서있었다. 민석은 타오의 인상이 날카롭고 경직되어있어서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음식은 나눠먹어야 한다고 교육받고 자랐기에 타오에게 만두 그릇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설마 자신에게 만두를 권할 줄은 몰랐기에 타오는 당황해서 [어..어]하며 망설인 사이 루한은 재빠르게 타오의 말을 막았다.
“타오는 만두 싫어해”
“아…정말요? 그래도 하나 드셔보시지……”
“타오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만두야.”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아는 타오는 딱 잘라서 자신이 만두를 싫어한다고 거짓말을 하는 루한을 황당하게 쳐다보았다. 만두를 싫어한다고 말한 적도 없거니와 루한이 타오의 식습관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다.
[이제 가봐. 상해 일은 알아서 처리하고 있으니깐.]
루한은 타오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휙휙 젓고 입으로는 만두를 우물거렸다. 타오는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하고 문 밖으로 나갔다. 연기라고 치기에는 목적이 없다. 사랑에 빠진 사람같이 구는 루한은 그 속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루한은 인간의 감정과 멀다고 생각해왔기에 타오는 계속해서 다른 속셈이 있을 거라는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
“저 한번도 제대로 애기한적 없었는데…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루한이 아직도 중공군인줄 아는 민석은 루한을 적군의 목숨을 살려준 은인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루한이 별다른 말을 안 해도 꽤나 단순하게 살아가는 편인 민석은 단호하게 자신은 되살아나지 않았다고 하는 루한의 말을 믿고 전쟁으로 인해서 정신이 이상했던 자신의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수줍게 웃는 민석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루한은 꽤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듯했다. 민석은 그런 루한을 보며 눈치를 흘끔흘끔 보더니 질문을 넌지시 했다.
“근데… 전 언제까지 이곳에 있게 되는 건가요?”
“음…”
“아 저…그 종인이…아니 그러니깐 제 친구랑 친구 가족들이 잘 피난 갔는지도 궁금하고 제가 여기서 할 일도 별로 없고…그래서…”
“응?”
“목숨을 살려주신 점 정말 평생 갚아도 모자랄 은혜이지만…너무 걱정이 돼서요”
“으응?”
“화..나셨나요?”
“미안. 나 죠선말 좔 못 해서…”
“에? 분명 여태 동안 알아들으셨는데.. 거..거짓말이시죠?”
“응 고짓말이야.”
“….장난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루한의 살기에 눌려서 겁먹을때를 고새 잊어버렸는지 민석은 장난치는 루한에게 정색을 하며 답을 요구했다.
“음음…”
“제발…부탁 드립니다.”
“좋아. 보내줄게”
“어? 정말요?”
“아니. 안 정말이야.”
“….”
순식간에 얼굴이 급격히 냉동되는 민석의 표정에도 루한은 여전히 부드럽게 웃음만 지었다.
“알았어. 알았어. 대신 기한을 둘께”
“기한이요?”
“언제로 할까?...내가 죽는 날이면 되려나?”
“죽는….날…..”
“너무 놀란 표정 짓지마. 장난이야.”
“아…아하하…”
“평생 데리고 있을 순 없으니…그래…내가 만두가 질리는 날로 하자. 너는 그냥 만두를 계속 만들어주면 되는 거야. 어때? 목숨 값으론 꽤 싸지 않아?”
“아..아! 감..감사합니다. 저 만두 옆 안 터트리고 열심히 만들께요!”
“아하하. 한국 만두는 원래 옆에 터진 거 아니 였어?”
“……”
거짓말을 정말 못하는 아이구나. 루한은 젖살이 아직도 덜 빠진 이 소년이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댓글및 암호닉 남겨주신 분들 사랑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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