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외과 VS 소아과 :: 09
By. 아리아
한참을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니 갑자기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황급히 빠져나와 뒤를 돌자 큭큭대며 웃는 그의 목소리가 제 귓 속을 파고 들었다.
"먼저 안겨놓고 왜 혼자 부끄러워합니까."
"아니 권교수님이 안아달라고 하셨잖아요-"
"먼저 부탁 해놓고 놀리실거면 이제 교수님 부탁 안 들어드릴래요."
"그럼."
점점 가까이서 들려오는 발자국소리에 저도 모르게 슬슬 앞으로 나아갔지만 이내 뒤에서 따스하게 안아오는 그에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은 힘없이 떨어졌다.
"부탁말고 내가 하면 되죠."
"ㅁ, 무슨."
"김교수님."
"......"
"이만하면 충분히 다가간 것 같은데."
"김교수가 조금만 다가오면 안됩니까."
무엇때문인진 알 수 없지만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을 머뭇거리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자 다시 한번 제 마음을 분홍빛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였다.
"기다릴게요."
첫사랑을 시작하는 소녀는 이런 기분일까. 피식 웃어보이며 제 머리를 살짝 헝클이곤 문고리를 잡고 있던 제 손을 겹쳐 잡아 문을 열어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
"교수님."
"응?"
"병원 홍보 책자에 쓴다고 교수님들 사진 찍어야 된다고 별관으로 오시래요."
"아, 응. 고마워. 드레싱 혼자 할 수 있겠어?"
"저 레지던트 된지가 언젠데 그거 하나 못 하겠어요- 얼른 다녀오세요."
"불안해서 그런다 불안해서."
"와, 얼른 가기나 하세요."
입술을 삐죽내밀곤 카트에서 재료를 챙겨 병실로 향하는 찬이가 귀여워 소위 말하는 엄마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다 손목에 차여진 시계를 흘깃 보곤 급히 별관으로 향했다.
대충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로 따라가자 각 과별로 모여있는 교수님들에 익숙한 얼굴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 쪽 종이에 촬영 순서 나와 있으니까 참고해 주세요."
촬영 기사님의 말에 제가 확인하고 오겠다며 벽 쪽의 종이 앞으로 다가선 순간 창문을 타고 들어오던 햇빛이 사라져 고개를 돌리니 요즘 제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데 1순위인 그가 서있었다. 반가운 마음과 더불어 이따금 피어오르는 몽글몽글한 마음에 살짝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권교수님!"
"..아, 네."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는 이게 아닌데? 분명 어제만 해도 다가와달라며, 기다리겠다며 여자 마음 설레게 하는 멘트는 다 친 사람이 저렇게 표정을 굳히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는게 당연한건가?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건지, 그새 저에게 정이 떨어진건지 도저히 알 수 없어 아예 몸 전체를 그 쪽으로 틀어 눈을 마주하자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는 그에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무슨 일 있으ㅅ,"
"권교수님! 저희 차례에요!"
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개만 꾸벅하곤 NS 교수진들 사이로 스며드는 그에 우리 과의 순서도 확인하지 못한 채 넋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김ㅇㅇ, 뭐하냐?"
"어? 아, 어. 순서 확인 하려고."
"아까부터 서 있던데 아직도 확인 못 했어?"
옆에서 들려오는 석민이의 목소리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입으로 좋아한다던 여자는 더러운 거 보듯이 피하더니 저 여교수들 사이에선 환하게 웃고 있는 권교수였다. 아니, 어깨에 팔은 왜 올려?
"야. 듣고 있냐?"
"......"
"손톱 물어 뜯지 말고. 대학 다닐 때 고쳤으면서 또 하지."
꽤 예전에 고친 버릇이 또다시 튀어나왔나보다. 저도 모르게 제 이 사이로 뜯겨나가는 손톱들이 싱숭생숭한 제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고 그걸 말리려 석민이가 제 손을 잡아내린 순간 생글생글 웃고 있던 권교수의 시선과 제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손'
석민이의 큰 손에 잡혀 있던 제 손을 본건지 인상을 쓰며 입모양으로 이야기하는 그에 괜한 오기가 생겨 그 손에 깍지를 껴 들어보이며 뒤돌아 사람들 사이로 숨어들어갔다. 권교수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리를 옮긴 후, 영문도 모른 채 제게 잡혀와 얼떨떨 해 하던 석민을 뒤로 한 채 툴툴거리며 소아과 교수님들 쪽으로 향했다.
사진은 어떻게 찍었는지도 모르겠다. 홍일점이라는 이유로 가운데 앉아 찍었다는 것 빼곤 그저 억지미소를 지으며 플래시 앞을 지킨 것이 끝이었고 거의 마지막 차례였던 탓에 억지미소를 짓게 만든 장본인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나쁜새끼."
"누가."
"아, 시ㅂ, 깜짝아. 너네 아까 다 찍지 않았어? 안 가고 뭐해?"
"오후 진료 없어서, 할 것도 없고 너 데리고 밥이나 먹으러 갈라 했지."
"...치맥, 콜?"
비장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자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지훈이와 저보다 더욱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석민이의 사이를 파고 들어가 팔짱을 끼곤 콧노래를 부르며 치킨집으로 향했다.
***
"많이 마시진 마. 응급 콜 들어오면 우리 셋 다 징계다-"
엄마같이 저와 석민이를 챙기는 지훈이에 턱부근을 간지럽히며 오구오구를 시전하자 술을 부어버리겠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그에 조용히 손을 원상 복귀 시켜 놓을 수 밖에 없었다.
한 잔, 두 잔, 쭉쭉 들이키다 보니 어느새 알딸딸 한 것이 구름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야, 너 전화 온다."
전화 온다는 석민이의 말에 휴대폰을 확인하자 발신자엔 다름 아닌 권교수의 이름이 떠 있었고 수신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낮에 촬영장에서 저를 피했던 그의 얼굴이 떠올라 휴대폰을 덮어버렸다.
"안 받아?"
"받기 싫어. 나 맥주 좀."
"그만 마시지? 너 내일 출근 어떻게 하려고."
"나 내일 오프- 얼른 주세요, 아저씨."
술잔을 내밀며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리자 못 말린다는 듯이 혀를 내두르며 제 잔을 가득 채워주는 지훈이였다.
지잉- 지잉-
잊을만 하면 테이블 위를 울려오는 진동 소리에 결국 수신 버튼을 눌러버렸다. 아, 나 취했는데.
"왜요."
"어딥니까."
"알아서 뭐하시게요."
"..술 마셨습니까."
"네, 마시면 안됩니까?"
제 말 딱 두마디를 듣더니 술을 마셨냐고 물어보는 그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혹시 막 내 주변에서 보고 있었다던지 그 생각까지 갔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곤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알아서 뭐하실거냐구요. 데리러 오기라도 하시게요?"
"네. 그러니까 술집 이름 부르세요."
화가 난 것인지 단호한 말투로 제게 응대하는 그에 살짝 쫄아 꼬리를 내렸다. 병원 앞 치킨집이라 하곤 그의 답은 듣지도 않은 채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반항이었다.
딸랑-
손님이 왔다는 걸 알려주는 맑은 종소리에 밝게 인사하는 종업원의 목소리는 제게로 뛰어오는 듯한 발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김교수님."
"..왜요."
"많이 마셨습니까."
"네."
시선을 술잔에 고정한 채로 이야기 하는 저에 제 옆 의자를 당겨 앉곤 가까이 다가오는 그에게서 조금 뒤로 물러났다.
"데려다 줄테니까 일어나요."
말은 청유형이면서 행동은 명령형이었다. 제 소지품을 챙기곤 팔을 잡아 자리에서 일으켜 세운 뒤, 벙쪄 있는 석민이와 지훈이에게 꾸벅 인사를 하는 그였다. 인사 후, 팔을 잡고 있던 손을 제 손으로 옮겨가 잡아 끄는 그에 힘없이 따라갈 수 밖에 없었고 갑자기 마주한 시원한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 번 타봤다고 꽤 익숙해진 그의 차 조수석에 올라타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지금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간 제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올지도 모르겠고, 그의 입에서도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에.
"김교수."
"......"
"나한테 화 난 거 있습니까?"
"..아니요. 권교수님이 더 있어 보이시는데요."
"네, 난 있습니다."
제 턱을 잡아 돌려 자신을 보게 만드는 그에 눈길 하나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전화 왜 안 받았습니까."
"무음이라 못 들었는데요"
"그럼, 술은 왜 마셨는데요."
낮에 촬영장에서완 달리 다정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그에 이상한 자신감이 마음 한 쪽에서 비집고 나와버렸다.
"..권교수님 때문에 속상해서요."
계속 이야기 해보라는 듯 지그시 바라보는 그에 하나하나 제 마음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권교수님 보자마자 좋아서 인사했더니 정색하면서 뒤로 가놓고선, 사진 찍을 땐 여자들 사이에 둘러싸여서 활짝 웃고있지."
"네."
"아니, 나 좋다면서 다른 여자 어깨에 손은 왜 올려요? 그래놓고 석민이가 제 손 잡으니까 막 표정 이렇게 하면서 뭐라 그러고."
낮에 보았던 그의 찌푸린 표정을 따라하며 이야기 하다 핸들에 얼굴을 감추며 큭큭 웃기 시작하는 그에 입을 삐죽이며 툴툴 거렸다.
"왜 웃어요. 저 진지한데."
"김교수 지금 질투 합니까?"
정곡을 찔러오는 그에 고개를 황급히 돌리곤 제 마음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저 질투 같은 거 해본 적이 없는데요."
"지금 하는 것 같은데요?"
"아니라니까ㅇ."
자꾸만 저를 가둬오는 그에 짜증이 나 고개를 확 돌려버리자 입술이 닿을듯 말듯 한 거리에 그의 얼굴이 있었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다 헛기침을 하며 괜한 창문을 내렸다.
제가 버튼을 눌러 내리자 자신의 옆에 있는 버튼을 눌러 다시 창문을 올려버리곤 다시 자신을 보게끔 만드는 그에 침을 꿀떡 삼켰다.
"나 감기 걸렸습니다."
"김교수한테 옮으면 어쩌나 싶어서 떨어져 있었던 거고, 어깨에 손은 기사님이 시키셔서 한겁니다."
"..아."
"이교수랑 손잡고 있는 건 진짜 짜증나서 빼라고 한건데, 아주 깍지까지 끼고 도망 잘 가시던데요?"
장난스레 자신의 진심을 전해오는 그에 괜히 어린아이 같이 투정을 부렸나 싶은 마음과 동시에 별거 아닌 걸로 질투라는 감정을 느낀 제가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래도, 뭐 나쁘진 않습니다."
"김교수 질투하는 것도 보고."
"..아, 몰라요. 저 지금 쪽팔려서 죽을 것 같으니까 보지마세요.
"난 얼굴 보고 싶은데."
제 턱을 조심스레 잡아올리는 그에 시선을 마주했다. 제 작은 질투 하나에도 예쁜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정하게 바라보는 그를 보고 있자니 그의 진심이 제 마음 속에 스며 들어와 따스하게 감싸 안았고 그 진심은 제가 한발짝 다가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권교수님 감기 걸리셨어요?"
"네."
"..그, 옮겨도 되는데."
제가 뱉어놓고도 아, 이건 아니야. 미쳤나봐. 하며 고개놀 숙이려던 순간 제 뒷목을 조심스레 잡아와 입맞추는 그였다. 놀라기도 잠시, 그의 리드에 맞추어 입맞춤을 이어나갔고 이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어 생긴 틈으로 말캉한 무언가가 들어와 제 속을 헤집어 놓았다. 가벼운 버드키스로 마무리 한 후, 서로의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쓸어주며 속삭였다.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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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왜 아무도 SV인거 말 안해주셨어욬ㅋㅋㅋㅋㅋㅋ저도 방금알았습니다..고치러갈게요....껄껄...
에에 여주 질투했대요 얘네 사귄 첫날 부터 뽀뽀해요!!!!!부럽다!!!!!!!!!독자님들이 주신 소중한 소재 살짜쿵 섞고 변형해봤어요!!다들 너무 감사드려요 오구 이뻐라
그나저나 플디 일하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숫자변태 플디ㅠㅠㅠㅠㅠㅠㅠ세븐틴 500일도 너무너무 축하해요♥
댓글 하나하나 진짜 정독하고 있어요ㅠㅠㅠ사랑해요진짜ㅠㅠㅠㅠ
암호닉은 18일 이후로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시험 끝나고!!! 그럼 안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