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글잡에 글을 쓰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네요.
늘 끈기 부족과 시간을 핑계로 연재를 끝마친 적은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멋지게 마치고 텍파나눔까지 갔으면 하는게 제 바램이예요 ㅎㅎ
백도 학원물도 준비하고 있으니까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고, 사실 나이도 어리고 글솜씨가 좋지도 않아서 올릴까 말까 하다가
그냥 휙 둘러보고 가셔도 좋으니까 제 글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싶어서 고민 끝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신알신과 암호닉은 제게 크나 큰 힘이 될 것 같네요
오늘 수능 날이었는데 고3 분들 수능 잘 치셨는지요! ㅎㅎ 중간고사 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말이 코앞 ㅠ.ㅠ
중학생 때 부터 이렇게 힘든데 제가 고3이 되면 어느 지경일까 겁도 나네요 ㅎㅎ
그럼 사담은 뒤로! 즐감하세요~
준면은 두 달 정도 흐르면 열 아홉 살이 되는 평범한 남학생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몸이 약하긴했지만 그 정도는 심하지 않았고, 그저 운동장을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지루한 체육시간이 그를 옭아매고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준면의 삶은 꽤 즐겁고 평탄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달리기를 할 때마다 심장이 가빠옴을 느끼는 횟수가 늘어났고, 숨기려 했던 그 증세는 준면의 부모님에게까지 전해져 결국 준면은 서울에서의 학교 생활을 마치고 강원도의 산골 구석으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김준며언! 거기서 잘 지내라! 서울 물 먹고 귀티 좔좔 흐른다고 촌년들 다 죽는 거 아닌가 몰라.”
“아 그러니깐! 거기 가서 또 우리가 작—살내주고 와야 되는데, 아쉽다. 방학 때 너네 집 털러 갈거다!”
장난기 어린 친구들의 마지막 인사에 가볍게 손을 흔든 준면은 그닥 가볍지만은 않은 마음을 거머쥔 채 트럭에 올랐다. 짐을 가득 실은 트럭에는 준면의 부모님이 이미 탑승을 완료한 상태였고, 공기 좋은 시골로 가는 것이 기분 좋은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대학 못 가는데 아쉽지도 않아요? 준면이 부루퉁한 표정으로 묻자 성격 좋게 미소 지으며 엄마가 답했다. 대학 그런 건 수시로도 갈 수 있잖니, 굳이 갈 필요도 없어, 너희 할아버지 유산이면……
돈 지랄들 나셨네. 준면은 창 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현실을 외면했다. 한참을 달리고 달려 준면의 가족이 머무를 행선지에 도착한 트럭은 거친 소리와 함께 멈춰 섰고, 준면은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짐을 이리저리 나르기 시작했다.
“집이 뭐 이렇게 음침해, 맘에 안 들어.”
“어린 애처럼 굴지 말고, 빨리 아빠 따라서 서랍장부터 옮겨!”
퉁명스레 집을 훑어보던 준면에게 핀잔을 준엄마가 옷가지부터 들어올려 트럭에서 내리자 준면은 인상을 잔뜩 구기며 아빠를 도왔다. 아유, 참 잘들 오셨어. 서울에서 귀농하는 게 유행이라더니 진짠가 보네, 하여튼 우리 동네 공기 맑고 물 좋으니까 앞으로 잘 지내봐 으응! 인심 좋아 보이는 할머니가 싱글벙글 웃음 지으며 준면의 가족을 반겼고 준면은 예의 상 애써 미소 지으며 고개를 까딱인 뒤 냉기를 풍기는 집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기분 나쁘다. 온 집안에 뜨끈히 보일러를 데우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낡은 박스를 집 안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짐과 사람들로 득실거리는 집 안을 빠져 나오자 낡은 쓰레기와 판자 더미들이 준면의 눈에 들어왔다. 저것들은 또 뭐지……. 이왕 시골에 온 거 제대로 촌놈이 되어 놀아보자 하는 생각에 쓰레기 더미를 이리저리 헤집자 옷가지인지 뭔지 추정되지 않는 무언가가 준면의 하얗고 고운 손에 잡혔다.
“으아!”
기겁을 하며 그 무언가를 던져버리자 살아있는 생명체는 맞는 모양인지 낮은 으르렁거림이 들려왔다. 산짐승인가……. 곱디 곱게 자란 준면은 이런 야성미 넘치는 상황에 적응이 되지 않는지 식은땀을 찔찔 흘리며 아빠를 불렀다. 이리 좀 와 봐요! 하지만 여린 준면의 목소리는 굵직굵직한 어른들의 기합 소리에 묻혀버렸고, 그 생명체는 어느덧 준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미, 미안해. 그럼 안녕!”
허겁지겁 쓰레기 뭉치를 내려놓고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그 생명체는 제법 온순한 눈빛으로 준면의 주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싶어 자신의 주머니를 살피자 그 속에 담긴 것은 초코 빵이었고 준면은 굶주림에 찌든 표정으로 자신의 주머니를 바라보는 그 생명체에게 조심스레 빵을건넸다.
“먹을래……? 근데 넌 뭐니, 개인가, 아님 뭐지 이게…….”
준면의 손에서 재빨리 빵을 낚아챈 생명체는 후다닥 빵을 먹어 치웠고 입가 주변에 묻어나 있는 초콜릿의 흔적까지 모두 다 핥아먹었다. 흑빛 털에 둘러싸여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 생명체를 두고 부모님의 부름에 준면이 후다닥 달려갔다.
“엄마, 여기 짐승이 있어. 우리집 뒷켠에 쓰레기 더미가 있길래 가 봤더니……”
“아유 또 허튼 소리! 판타지 소설 좀 그만 보래니까 그래. 어서 앉아, 저녁 먹어야지. 여보!”
진짠데…….판타지 소설은 개뿔, 준면은 그런 책을 접한 적도 없었다. 흥미가 아예 그런 쪽엔 없었으니까. 시시콜콜한 얘기를 들어주기에 오늘 우리는 너무 바쁘다며 준면의 이마를 통하고 튀긴 엄마는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식탁에 올려놓으며 방에서 꾸물거리는 아빠를 불렀다. 밖에…… 짐승이 있는데……. 준면의 작은 중얼거림에 아빠는 호탕히 웃으며, 그래 시골엔 짐승들이 참 많지, 모두 너의 친구들이란다 하는 쓸데없는 말만 내뱉을 뿐이었다. 짜증이 치밀어 오른 준면이 밥을 먹기도 전에 숟가락을 거칠게 내려놓으며 큰 바가지와 주걱을 가져와 청국장과 밥, 그리고 콩나물을 이리저리 한 데 모아 비비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 어렴풋이 봤던 개밥과 얼추 비슷한 모양이 나오자 뿌듯한 미소를 지은 준면은 물음표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부모님을 두고 밖으로 빠져 나왔다.
“헤헤, 배고프지. 이거 먹어볼래? 음…… 좋아할런가 모르겠는데.”
준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생명체는 허겁지겁 바가지를 들고 가 얼굴을 쳐 박고 음식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식사라기 보단 청소에 가까울 정도로 음식물을 해치운 그 기괴한 생명체는 음식을 제공한 준면에 대한 감사 인사인지 온화한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핥아 내리며 준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서운 애야……. 그의 식성에 감탄하며 조심스레 바가지를 주워 든 준면은 한참을 생명체의 얼굴을 쓰다듬다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짝하고 손뼉을 쳤다.
“알겠다. 너 개지? 개는 개인데 버려져서 들짐승이 되어버렸어. 맞지?”
“……”
“에휴, 말도 못하는 애한테 뭘 바란 거야. 아무튼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 내일은 꼭 엄마 아빠한테 널 소개시켜 줘야겠다.”
준면은 그의 정체를 알아낸 게 뿌듯한지 엉덩이를 탁탁 털고 일어나 말을 이었다. 참, 네 이름은 이제부터 카이야. 내가 제일 좋아했던 만화 캐릭터 이름이 카이였거든. 그럼 카이 안녕, 잘 자! 경쾌한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온 준면은 부모님의 꾸중도 달게 받아들이며 생글거림을 멈추지 못한 채 방으로 들어섰다. 달빛이 방 안을 가득 비추고, 앞으로의 생활을 축복하는 듯 했다.
꼬끼오—. 경쾌한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시골마을의 아침이 밝았고, 준면은 가디건까지 꽁꽁 여민 뒤 통통 튀어 오르듯 밖으로나섰다. 준면아, 조심해! 이미 자신은 열 여덟, 아니 이제 열 아홉을 바라보는 다 큰 아이이건만 단지 몸이 약하다는이유로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부모님께 늘 불만을 품고 있었다. 부루퉁한 표정으로 닫힌 대문을 향해 메롱하고 혀를 내민 준면은 자신 있게 고추장과 흰 쌀밥, 그리고 나물까지 야무지게 비벼 카이의 안식처로 추정되는 쓰레기 더미 앞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러고 보니 집이 무지 더럽네, 내가 좀 치워줘야 하나. 카이는 지난 밤 추위를 잘 이겨낸 건지 하품을 내뱉으며 밖으로 기어 나왔고, 준면은 그런 카이를 슥슥 쓰다듬으며 애완견 다루듯 미소 지었다. 아이 귀여워.
“근데 카이야, 너 이런 데서 살면 안 추워?”
“……”
“그리고, 요즘 세상 되게 무서워서 별 쌍놈들이 널 잡아갈지 몰라.”
어디 보자……. 자신이 카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곰곰히 생각에 잠기던 준면은 어제 부모님께 카이의 존재를 알리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쉬웠는지 후다닥 달려가 집 앞 텃밭에 심을 씨앗들을 챙기던 부모님을 끌고 쓰레기 더미 앞으로 이끌었다.
“우리 집 뒷켠에 이렇게 더러운 데도 있었나? 정리할 게 산더미예요 여보, 어쩜 좋아.”
“엄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예요, 잘봐요 지금부터.”
어린 아이마냥 붕붕 뜬 목소리로 어쩔 줄 몰라하던 준면이, 조심스레 쓰레기 더미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고운 목소리로 카이를 불렀다. 카이야, 카이야! 얼른 나와 봐, 착하지 우리 카이. 그런 준면을 노망 난 노인네 보듯 똥 씹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부모님은 못 참겠는지 준면을 질질 끌어 나오게 했다.
“바보 같은 짓 말고 들어가서 공부나 하렴. 이사 와서 농땡이 부리는 것도 하루면 족해, 수시 준비 해야지.”
“아, 진짜 여기 개가 있다니까요! 안봐줄 거면 나 카이 데리고 집 안에 드러누워 버릴 거야.”
“그 개가 어딨는데!”
날카로운 엄마의 외침에 대응이라도 하듯, 쓰레기 더미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셋은 딱딱히 굳었다. 그리고 준면은 입 꼬리를 씩 올리며 자랑스레, 봐봐요 하고 맞받아쳤고 결국 준면의 성화에 부모님은 땅에 주저앉아 카이의 등장을 기다려야 했다. 옥수수를 거칠게 물어뜯던 아빠가 다 먹지도 않고 달지도 않고 원, 하고 땅에 옥수수를 내팽개치자 카이가 후다닥 달려 나와 그 옥수수를 날카로운 이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얘예요, 카이! 이름도 지어줬어요, 멋지죠?”
“여, 여보! 이게 개라니 우리 준면이 교육을 다시 받아야겠어요, 이런 날짐승이 무슨 개니 개는!”
호들갑을 떠는 엄마와 아빠와는 달리 준면은 옥수수를 물어 뜯는 카이를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옳지,잘 먹네 우리 카이. 아빠는 서둘러 서울에 있는 생물학과 교수인 자신의 친구를 불러야 한다며 전화도 터지지 않는 이 곳에서 스마트폰을 들어올리며 요란을 떨었고, 엄마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커진 두 눈을 제자리로 되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들였다. 다들 왜 난리예요, 우리 카이가 말을 얼마나 잘 듣는데. 준면이 멀뚱히 묻자 부모님은 당분간 그 더러운 짐승을 멀리 하라고 단단히 혼을 낸 뒤 텃밭으로 향했다.
“웃긴다, 그치. 너 한 번 보고 저렇게 난리인 사람들이, 돈 좀 많다고 호들갑 떨고 잘난 체 하는 거 보면 웃겨 죽겠어 카이야. 너도 그러니?”
하지만 카이는 답이 없었고, 준면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지 두 눈을 말똥히 뜨고는 거친 카이의 털을 쓰다듬으며 얘기를 이었다. 네가 개면 어떻고 짐승이면 어때, 넌 날 해치지 않았잖아. 그럼 그걸로 된 거야. 사실 여기에 무지 오기 싫었거든. 친구들도 없고, 까맣게 때 탄 사람들하고 부대끼면서 사는 게 영 거북해서, 내 폐가 빵하고 터져버려도 요양 따위는 오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박박 우겼는데 와 버렸어. 근데 괜찮아 이젠! 널 만났잖아. 자신의 말이 오그라든다고 느꼈는지, 되게 느끼하다 하고 말을 이은 준면은 자신의 하얀 얼굴을 카이의 목덜미에 이리저리 비볐다. 까만 때가 자신의 얼굴에 옮겨 묻는 게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안되겠어 카이야 하며 준면은 카이를 집 안으로 이끌었다.
“널 보고 저렇게 구린 반응을 해 보인 어른들에게 본 때를 보여주자. 네가 이 묵은 때 찌든 때만 제거하면 얼마나 폼 나는 동물인지 말이야!”
욕실에 물을 받아놓고,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카이의 콧잔등을 슥 쓸어준 뒤 욕조에 카이를 밀어 넣었다. 차가운 물의 온도에 놀란 건지 풍덩거리며 몸서리를 치는 카이에 옷이 몽땅 젖어 버렸지만, 준면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깔깔대며 바디워시를 자신의 손바닥의 가득 묻혔다. 이리 온 우리 카이. 주인님 말을 잘 들어야 예쁨 받을 수 있는거야. 진지한 개념을 외우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은 준면이 카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카이는 어느덧 그의 손길에 익숙해진 건지 잠자코 서 있었고, 드라이기로 털까지 뽀송뽀송하게 말린 준면이 뿌듯하게 웃어 보였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니까. 씻겨놓고 보니까 너 완전 멋있는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신기한 건지 거울에게 달려들 기세인 카이를 붙들고 준면은 방으로 달려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왔다. 자, 우리의 뽀대나는 모습을 여기에 담는 거야. 서울에 있는 애들한테 보내면 아마 부러워 뒈질거다, 그치? 해맑게 웃어 보인 준면은 카메라 렌즈에 자신과 카이의 모습을 찍어 자신의 SNS에 올렸다.
[우리 예쁜 카이랑. 강원도의 공기는 더럽게 맑다. 서울 거지들아 잘 지내냐!]
준면은 업로드가 다 되었다는 메시지가 뜨자마자 휴대폰을 거실에 내던지고 열쇠가 찰칵이는 소리에 카이를 한 가득 끌어안았다. 엄마랑 아빠가 오려나 봐…… 우린 어쩌지 카이야? 카이는 그걸 자신한테 물으면 어쩌냐는 표정으로 끙 앓으며 준면을 바라보았고, 둘의 모습에 경악한 부모님은 장바구니와 짐들을 우당탕 떨어트리며 기겁하고야 말았다.
“김준면! 이러려고 너 시골 데려온 줄 알아? 얼른 그 짐승새끼 밖으로 안 내보낼래!”
“왜요 우리 카이가 왜 짐승인데요! 얘는 개예요. 서울에서도 잘 키우던 개를 왜!”
“그게 개라고? 아, 이럴 수가. 여보! 준면이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된 거예요! 폐가 아니라 머리가 다친 게 아닌가 몰라.”
한탄 섞인 말을 끝으로 부모님은 부엌으로 자취를 감췄고, 준면은 씩 웃으며 카이를 쓰다듬었다. 이렇게 귀여운데 말이야, 그치? 준면은 그런 카이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카이를 앉혀놓고 본격적으로 카이의 외모를 살피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이와 번뜩이는 두 눈이 심상치 않아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개과인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자부하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있지, 네가 만약에 내가 잠든 사이에 사람이 된다거나 말이야, 뭐 그런 일들이 터져버리면 어쩌지? 준면은 상상에 빠진 감수성 풍부한 소녀처럼 두 손을 착 포개 키득거리다 이내 제 생각이 얼마나 우스운 지 알아차리곤 웃음을 터트렸다.
“시골이라서 해가 빨리 지네. 준면이 너 빨리 준비 안 하고 뭐해? 오늘 회관에 인사 드리러 가야한대두.”
엄마의 재촉에 준면이 툴툴거리며 집을 나섰고, 쓰레기 더미에 얌전히 쪼그려 앉아있는 카이를 쓰다듬고는 떼내기 싫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을 회관엔 뭔 일로 간대. 돌멩이를 툭툭 건들며 투정부리는 준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은 엄마는, 애써 미소 지은 채 빨간 립스틱을 덧바르며 애처럼 굴지 말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준면에게 내질렀다. 네네, 애처럼 굴지 않겠어요, 그렇고 말고. 속으로 욕을 잔뜩 퍼부으며 차에 오른 준면은 부릉거리는 시동 소리와 함께 자신을 바라보는 카이에게 눈인사를 남겼다.
“준면아, 좋게 얘기할 때 카이인지 넥타이인지 하는 놈은 밖에 내놓자. 키우는 건 좋아, 하지만 집에 들이는 건 안돼, 절대로 말이다. 아까 전에 가까스로 전화 연결돼서 서울 사는 상혁이 삼촌한테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글쎄 저 기괴한 아이가 늑대일 수도 있다잖니.”
역시 아빠는 조금 말이 통하는, 융통성이 아주 약간은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카이를 키울 수 있다는것을 허락 받은 것에 대한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카이가 늑대일 수 있다는 것이 준면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뭐, 그래도, 개과는 개과잖아요, 내가 반은 맞췄네. 준면이 여전히 창문에 시선을 고정한 채 투덜거렸다.
“그래. 지금은 저 놈이 단순히 먹이를 먹여주는 널 주인으로 섬길지 몰라도 언제 야생성을 드러낼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게야. 게다가 넌 우리 집의 유일한 아들이야, 기둥이고! 곱게 기른 만큼 널 다치게 할 순 없다. 그러니까 너무, 애완견 다루듯이 하지 말란 소리야. 서울에서 키우던 말티즈 치치하고는 급이 달라요 달라!”
준면은 달갑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가 지금은 날 주인으로 섬기지만 뒤통수를 때릴 수도 있다? 그것은 존재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고 말고. 준면은 카이에게 무한적인 신뢰를 주며 아빠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곱게 기른 만큼 날 다치게 할 수는없다라……. 그냥 돈벌이 해올 쭈구리 하나가 사라져서 아쉬운 거겠지.마을 회관에 다다르자 준면이 폴짝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아유! 새 손님들이 오셨네, 사실 나두 강원도 온지는 얼마 안됐어. 본래 살던 데가 전라도라……. 그나저나 아들 분이 차암 곱네. 딱 우리 경수랑 나이대가 비슷해 보이네. 경수야! 이리 나와라 어여!”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준면의 손을 부여잡고 고개를 끄덕이며 경수라는 사내를 불렀고, 밤톨머리에 큰 눈을 뜨고 통통 튀어나온 아이가 준면을 경계 어린 시선으로 훑어 내렸다. 키도 나보다 작아 보이는 게 꼴에 텃세냐. 준면은 관심 없다는 듯 그저 상에 차려진 번지르르한 음식들에게만 관심을 쏟아 부었고, 엄마 옆에 자리를 잡으려는 준면을 제지한 경수가 까무잡잡하고 때가 낀 손을 척하고 내밀었다.
“바, 반갑다! 도경수다. 날 때부터 여기서 살아서 나이만 안 어렸어두 내가 이장이야 완전. 강원도 사람이라 해서 다 사투리 쓰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궁금한 거 있음 저 노망난 할망구 대신에 나한테 와라.”
턱 끝으로 건방지게 준면을 반기던 할머니를 가리킨 경수는 자신의 옆을 먼지가 나게 탕탕 두드리며 무뚝뚝하게 앉아라 하고 얘기했다. 꽤, 재미있는 아이 같았다. 잡채를 깨작이다 배가 부르다며 숟가락을 내려놓은 준면을 퉁명하게 바라보던 경수는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어제끼며 말을 이었다.
“서울 애들은 다 먹는 게 그리 시원찮든? 사내 놈들이 원……. 시골 살려면 이제 고된 일도 많이 해야할텐데 고작 그거 먹고 쓰겠나. 장작은 캘 줄 아니 너?”
분명 사투리는 아니었지만 매끄럽지 않은 말투에 준면은 뭐라 대답할지 잠시 생각에 잠기다 고개를 저었다. 하얗고 상처 하나 없는 준면의 손을 흘끗 내려다본 경수는 우악스럽게 밥을 입 안에 구겨 넣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니 손 보고 대충 감은 왔다. 내일 회관까진 아니더라두 너희 집 아래 파란 지붕 집으로 와, 내가 알려주지. 스승이라도 된것 마냥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경수에게 말없이 고개를 까딱인 준면은 자랑거리를 곰곰히 생각하다 자랑스레 얘기했다.
“그러는 너는 늑대 키워봤냐? 난 이틀 째다.”
“늑대? 그런 걸 키워서 뭣해. 잡아먹거나 풀어주는 게 좋을 거다, 언제 니놈도 먹혀버릴 지 몰라.”
“흥……. 우리 카이는 절대로 그럴 애가 아냐. 너야말로 내일 우리 집으로 와라! 우리 카이를 보여주지.”
흥이야. 지가 뭔데 선배인 거처럼, 나보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숟가락만 말없이 빨아제끼던 준면이 뚱하게 경수에게 물었다. 너 몇 살이냐? 자신의 나이를 대는 것도 어려운 건지, 가만히 허공을 올려다보던 경수가 대답했다. 열 여덟. 이제 2013년이 되면 열 아홉이지. 너도 딱 내 또래 같다만. 준면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갑이네, 쪼끄만 한 게 발랑 까져가지고는.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걱정스레 올려다보던 준면은 내일 경수에게 보란듯이 카이를 자랑해 체면을 세우고 말겠다는 다짐을 한 채 집으로 들어섰다. 잘 자 카이야. 검은 빛 털을 슥 쓸어주며 카이에게 밤 인사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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