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마- sweet dream my dear
지난 편 오타 지적해주신 분들 너무 감사드려요! 인강 듣고 밤에 졸면서 썼다보니 제정신이 아니었나봐요
다음 주 부터 바빠질 것 같아서 오늘은 좀 일찍 올리고 갈게요! 날씨가 좋은데 다들 외출 중이신지요..ㅎㅎ
한결같은 댓글과 관심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늘 감사드려요 ㅎㅎ!
준면은 그 날 밤 제대로 밤을 자지 못 했다. 새벽에 으르렁거리며 이를 갈던 카이는 다시 늑대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듯 했고 준면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런 카이를 끌어안았다. 난 네가 사람인 게 더 좋은데……. 그리고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라도 하듯 끙끙거리며 준면을 올려다보던 카이는 인간의 모습을 한 채로 곱게 잠들었다. 새벽 내내 뒤척이던 카이를 괜찮다는 듯 다독이며 잠든 준면은 결국 다음 날 아침부터 피로에 찌들어야만 했다. 하품을 쩍쩍 내밀고 군옥수수를 입에 담는 준면을 빤히 바라보던 카이에게 준면이 씩 미소지었다.
“카이야. 너 지금 이 옥수수 먹고싶지?”
“……”
“너와 나의 원만한 의사소통을 위하여, 너는 세종대왕님이 창제하신 위대한 한글을! 이제부터 배우도록 하겠다.”
말은 안 해도 지금 너 무지 신나는 거 다 알아. 키득거리며 어릴 적 자신이 보고 배웠던 한글 교재를 집어 든 준면이 카이를 앉혀두고 공책을 폈다. 노란색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힘주어 써가며, 이건 가, 이건 나, 하고 읊는 준면이었지만 카이는 말이 없었다. 야 김카이! 너 형아 말 안 들을래 자꾸? 이놈의 입은 먹을 때만 와구와구 움직이냐 응? 준면의 닦달에도 불구하고 카이는 글자를 써내려가는 준면의 얼굴만 빤히 바라볼 뿐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았다.
“너어― 자꾸 이렇게 나온다 그거지? 이제부터 먹을 것도 안 주고, 칭찬도 안 해줄거야.”
“……”
“설마 너 여태까지 내가 한 소리 못 알아들은 건 아니지 카이야? 응?”
절망에 찬 표정으로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는 준면에게 고개를 까딱해보인 카이는 한글 교재를 뒤적이다 한 구문을 쿡하고 긴 손가락으로 짚으며 어물쩡하게 말했다. 몰라……. 뭉그러진 발음이지만 또렷하게 들려온 그 두 글자에 세상이 떠나가라 환호를 내지르며 준면은 카이를 얼싸안았다. 잘했어, 좋아 우리 카이. 준면이 카이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웃음을 터트리자 카이도 옅게 미소지었다. 우리 카이가, 세상에서 최고다! 언덕 아래 경수네 집까지 들릴 듯한 고함을 토해내며 준면은 한글 교재를 신나서 뒤적였다. 자, 이거 읽어볼래? 이건 어때 카이야? 하지만 카이는 그 ‘몰라’ 라는 문장 이후로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오 힘 빠져. 우리 부모님께서 내게 한글을 가르치실 때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진짜 답답하다 너어, 김카이, 이 멍청한 늑대 같으니라고.”
“몰…라…….”
“모르긴 뭘 몰라 임마! 다 알고 있으면서 말 안 하는 거지 너? 바보같아.”
장난스러운 미소를 가득 머금고 몰라 몰라 하고 중얼거리는 카이에게 상이라며 옥수수를 건넨 준면은 밖에서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경수에게 달려갔다. 파란색 티셔츠에 옥수수를 이리저리 흘리며 먹고있던 카이가 준면을 붙잡았다. 어디 가? 눈빛으로 자신에게 그렇게 묻는 듯한 카이의 표정에 준면이, 잠깐 경수한테 다녀올게. 기다리고 있어. 했지만 카이는 고집스레 준면의 뒤를 따랐다. 현관 밖까지 슬리퍼를 직직 끌고 자신을 따라온 카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준면과 그런 준면과 카이를 번갈아 바라본 경수가 퉁명스레 입을 뗐다.
“너희 집엔 그지 새끼도 키우냐. 하여튼 서울 사람들 대가리에 뭐가 들었나, 텅텅 빈 거 아니야? 이상한 짓거리만 해대네.”
“우리 카이 거지 아니거든!”
“카이? 이름 한 번 끝내주시네. 브라질 노예 이름 같구만, 니 어제 파출소 다녀갔대매.”
“경찰서? 응……, 갔었지.”
“그 그지 새끼 보낼 데 알아보려고?”
“당분간은 우리 집에 있겠지만……, 알아봐야지. 엄마랑 아빠가 워낙에 싫어해서.”
시무룩해진 준면이 카이의 크고 따듯한 손을 꼭 붙들며 얘기하자 경수는 실없는 웃음을 터트리며 둘의 손을 떼어놓았다. 시시콜콜한 데 애정 들이붓지 마라, 저것도 그냥 그지야. 울컥한 준면이 뭐라고 되받아치기도 전에, 경수가 투박한 손으로 준면을 붙들고 산 깊숙히로 이끌었다. 가자. 내가 보여줄 게 있다. 준면은 카이에게 집에 들어가라고 말했지만 카이는 집 앞에 멈춰 서 경수와 준면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딘데? 으스스하잖아, 대낮인데 뭐 이런 기분 나쁜 데가……”
“드럽게 시끄럽네. 가만 있어 봐 좀. 여기가 나만의 공간이다. 외국어로 뭐랬지, 아…, 아…….”
“아지트.”
“그래, 그거.”
멎쩍게 웃어보인 경수가 꽤 오래 산 것 같은 커다란 나무 위에 끙 하고 올라가 자신의 옆자리를 탕탕 두드렸다. 여기 앉으면, 온 동네가 다 내꺼 같다. 조오기 노망난 할머니네도 보이고, 우리 집도 보이고, 밑에 파출소랑 이장 할아버지네도 보이고……. 신나서 떠들어대는 경수와는 달리 시큰둥한 준면은 졸졸 흐르는 냇가에 살포시 앉은 살얼음을 손톱으로 톡하고 두드리며 경수에게 물었다. 니 아지트에 나 데리고 와서 뭐하려고. 정곡을 찌른 듯한 준면의 질문에 침묵을 유지하던 경수가 침착히 대답했다.
“이 동네에 내 또랜 하나도 없었다. 두 달 전인가, 안양인가 어디서 이사온 여자애가 하나 있긴 했는데 걘 결국 뒤졌고…”
“죽었다고?”
“아파서 그랬던 건 아니고, 교통사고. 애가 워낙 왈가닥이었지. 그렇게 뛰지말래도 꺅꺅거리면서 뛰댕기고, 그러다 뒤졌지 뭐.”
“…응, 그래서.”
“외로웠다. 많이. 할머니도 장에 물건 팔러 가느라 집이 빌 때가 더 많았고, 이장 할아버지도 몇 년째 아프시고, 마을에는 힘도 없고, 어둡고…….”
그래서, 친구가 생기면 꼭 여기에 데려와서 내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싫다면……, 미안하고. 괜히 소심해진 듯한 경수의 말에 준면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좋아. 공기도 맑고, 좀 춥긴 하지만……. 말끝을 흐리는 준면에게 애써 그럴 필요 없다며 큰 나무 아래로 뛰어내린 경수가 흙탕물로 지저분해진 자신의 바지를 툭툭 털어내며 준면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지 새끼 기다리겠다, 빨리 가 봐라. 오늘 같이 와 줘서 고맙고. 그리고 늘 그랬듯이, 투박한 손으로 준면의 어깨를 두 어번 탁탁 친 경수는 언덕 아래 자신의 집을 향해 도망가듯 달려 내려갔다. 멍하니, 경수가 남기고 간 발자국을 내려다보던 준면이 정신을 번뜩 차리며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김카이, 형아 말 안듣고 집에 없으면 때려줄거야. 준면이 벌컥 현관문을 열어젖히자 신발장 앞에 몸을 웅크린 카이의 모습이 보였다.
“카이야…….”
준면의 작은 부름에 벌떡 고개를 든 카이는 이가 훤히 드러날 정도로 밝게 웃어보였다. 잘했어. 카이는 작게 말을 내뱉으며 준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몰라를 제외하고, 또 다른 문장이 카이의 나긋한 음성에 흘러나온 것이 신기했는지 준면은 카이를 끌어안으며 현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으하하, 우리 카이, 형 일찍 들어왔다고 칭찬 해주는 거야? 준면이 카이의 얼굴 이곳 저곳에 아이 예뻐, 하고 쪽쪽 뽀뽀를 해주자 카이는 대답없이 준면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었다. 말 해봐 임마! 형 칭찬해주는 거냐고! 준면이 장난스레 카이의 볼을 부여잡고 얼굴을 들어올리자, 카이는 얼굴이 빨개져선 몰라, 하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귀여워. 준면은 아무렴 좋다는 표정으로 싱글거리다 흙을 뒤집어 쓴 자신과 카이의 모습을 발견하곤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나 없을 때 한글 공부 열심히 하고 있었어?”
“몰라.”
“어이구, 말 잘한다 우리 카이.”
준면은 카이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카이는 준면의 쓰다듬을 받을 때마다 붉게 달아오른 두 뺨을 숨기려 준면의 가슴에 폭 안겼다. 그런 카이를 마냥 귀엽다는 듯 보듬어 준 준면은 오늘부터라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외투를 벗어 장롱에 걸어넣고 책상 앞에 앉아 두꺼운 문제집을 꼽아들었다. 책 특유의 기분 나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고, 카이의 호기심이 발동한 건지 그 새 준면의 옆으로 쪼르르 달려와 책의 냄새를 킁킁거리며 맡고 있었다. 안 돼, 이건 먹는 게 아니라고 이 식충아. 준면은 덩치가 큰 카이를 밀어내며 연필을 고쳐잡았다. 카이는 준면의 발 밑에 웅크려앉아 준면의 바지 끝을 잡아끌었다. 좋아. 준면이 잘했어 다음으로 카이에게 많이 해주었던 칭찬이었다.
준면이 공부에 빠져들어 듣지 못하자 카이는 재차 확인이라도 시키듯이, 다시 한 번 준면의 바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좋아. 준면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뭐라고 카이야? 하고 되묻자 카이는 밀당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입을 앙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준면이, 카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카이는 준면의 허벅지에 머리를 비비며, 좋아, 잘했어 라며 중얼거렸다. 자신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카이가 신기해 준면은 단호히 카이의 두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안 돼.”
“……”
“카이. 지금은 이러면 안 돼.”
성질이 나는지 눈썹을 꿈틀거리던 카이는 주인인 준면에게 뭐라고 하진 못하겠는지 낮게 시근덕거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한 시간, 두 시간, 기다리라는 준면의 명령에 잠자코 앉아만 있던 카이는 준면이 공부를 끝마치고 나서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카이야. 준면의 미성이 카이를 부르자 두 눈을 번쩍 뜬 카이가 준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잘했어, 좋아 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런 카이를 칭찬해주는 준면이 재밌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카이야. 오늘은 너 다른 데서 자면 안 돼? 어제 너랑 같이 잤더니 여기도 쑤시고 저기도 쑤시고……”
“안 돼.”
“응? 제발. 근데 너 그 말 뜻은 알고 하는 거야?”
“안 돼. 카이. 형아. 좋아.”
한 글자 한 글자, 자신의 의견을 다부지게 말하는 카이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본 준면이 늑대의 학습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깨닫고 손뼉을 짝짝짝 쳤다. 자신이 좋다고 말하는 카이에게 잠시 두근거림을 느꼈던 준면은, 수컷늑대한테 별 감정을 다 느끼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카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카이야……, 형 힘들어. 준면의 애절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카이는 애처럼 칭얼대며 준면의 가슴을 꽉 끌어안고 좋아… 좋아 하고 우물거렸다.
“김준면. 오늘 공부 좀 했니?”
“네. 근데 나, 카이 훈련 시켰어요. 이제 우리 카이 말도 해요!”
“허허, 치치랑 다르게 말도 하고 꽤 키우는 맛이 있네 그래.”
“카이는 치치같은 조무래기가 아니거든요!”
“니말대로, 아무튼 같은 개과잖니.”
잠시나마 아빠와 자신은 말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게 어리석었다고 느낀 준면은 입술을 물어뜯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자신이 입고있던 스웨터를 물어뜯어 엉망으로 만든 카이는 보일러까지 틀어 후끈 달아오른 방 안에 더위를 느꼈는지 상의를 훌러덩 벗어던진 채로 준면을 향해 샐쭉 미소짓고 있었다. 으악! 갑작스러운 카이의 노출에 당황한 건지 두 눈을 잽싸게 가리던 준면이 조심스레 눈을 뜨며 카이의 옆으로 다가갔다. 피곤에 찌든 준면이 침대에 드러눕자 카이도 그 옆을 비집고 들어와 준면의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 어쭈, 까부네 김카이. 검지손가락으로 카이의 콧잔등을 톡톡 두드린 준면이 장난스레 웃어보이자, 카이는 덥썩 준면의 손을 붙잡고 자신의 손과 맞댔다. 족히 한 마디는 차이가 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 차이에 준면이 자존심 상한다는 듯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화제를 돌렸다. 너 야생 동물이라 그런가, 복근 장난 아니다? 자신의 배를 쿡쿡 찌르는 준면에 간지러움을 느낀 건지 카이가 웃음을 터트렸다. 안 돼, 하지마. 카이의 목소리에 준면이 움찔 움직임을 멈췄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카이는 무서운 속도로 말을 배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맞댔던 그 손바닥은, 참 따듯했다.
“아무튼 카이야. 이 형을 너무 좋아하면 안 돼.”
“안 돼……?”
“응. 안 되는거야. 너도 수컷이고 나도 수컷이잖아 짜샤.”
“……안 돼.”
“뭘 알고나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오늘은 말 많이 했으니까 특별히! 이 형님 옆에서 재워준다. 응?”
“좋아.”
은근히 자신의 말과 맞아떨어지는 카이의 대답에 실없이 웃음을 터트린 준면이 카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기에 지기 싫다는 듯, 카이도 준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날 밤은, 준면이 카이의 넓은 가슴에 기대 새근새근 잠에 들었다. 어쩐지 시골에 온 이후로부터 하루 하루가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듯한 느낌에 준면은 카이를 놔줄 수 없다는 듯 카이의 손을 꼭 붙든 채로, 서울의 친구들과 반가운 재회를 하는 달콤한 꿈에 빠져들었다.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조진웅 이재명 조카 범행수법, 나이, 지역 모두 동일.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