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면/경수]브라더콤플렉스 김준면11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넓은 강물에 어린아이가 실수로 띄어놓은 돛단배가 물결을 타고 쉼없이 흘러가듯 흐르고 있었다. 경수와 준면의 애매한 관계가
더 진전되지도 그렇다고 해결되지도 않은 채. 주방에서 준면과의 키스 이후로 경수는 형에 대한 자신의 마음과 형이 현재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이
어쩌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조심스레 갖게되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경수는 뛸듯이 기뻤다. 그러면 안되는데 너무나도 기뻐서 다시 심장박동이
빠르게 뛰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경수는 애써 자신의 이런 감정을 억눌렀다. 이러면 안된다고 자신의 이성이 자신을 꾸짖고 있었다.
그런 생각은 그날 이후로 가끔씩 자신에게 보내는 준면의 미안함과 죄책감이 서린 눈빛, 자신이 한걸음 다가서려 할때 두걸음 물러나 숨어버리는 준면의
모습을 보면서 더 굳어졌고, 더 경수 자신을 옥죄었다. 나땜에 형의 인생이 망쳐질 수는 없다. 나땜에 형이 손가락질 당할 수는 없다. 나땜에..나땜에..형이
이 사회에서 이 대한민국에서 허락되지 않는 감정과 관계의 끈에 묶여 힘들어하는 모습을...나는 볼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왜..왜 이렇게
형의 방문앞에 서서 문고리를 잡은채 망설이고 있는 것일까.
이제 1월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제 올라갈 고등학교 2학년을 대비해 보습학원이나 학교에서 하는 방과후 수업을 신청하면서 여름방학때와는 조금은
다른 빡빡한 겨울방학 플랜을 바삐짜고 있었다. 찬열과 백현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찬열은 민지와 같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이유, 백현은 이제 자신의
인생을 좀 역전시켜봐야겠다는 이유로 말이다. 원래 공부를 잘하는 형의 영향으로 꾸준히 공부를 해오던 경수 역시 원래대로라면 그 대열에 끼어야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1월이 되자 어머니의 입에서 또 한번 프랑스 학교로의 전학얘기가 나온것. 이제는 결정을 해서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할때라며 경수에게 결정은 내렸니라고 나긋하게 물어오셨다. 항상 경수와 준면이 하는 일이라면 열성적으로 앞서서 응원해오셨던 어머니는 그날도 역시
경수가 내리는 어떠한 결정이든 따르고 지지할 것이라는 믿음의 눈빛을 보냈다. 선택은 순전히 경수만의 몫이었다. 하지만 경수는 준면의 대답이
듣고 싶었다. 준면의 대답은 일전에 듣지 않았느냐고 의문을 가질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준면의 대답이 아니었다. 준면의 진심어린 대답이 아닌 이 사회가
형성한 형이라는 위치에서 그 가면을 억지로 부여잡은 채 말하고 있는 거짓된 대답이었다. 경수는 알고있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형을 생각한다면
형이 좋은 형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만큼 자신이 좋은 동생이 되려면 형이 힘들어하지 않고 찬란한 미래를 그리며 여느 청년들처럼 살아나가려면
그 거짓된 대답의 거짓을 부정하고 진실인척 받아들였어야했다. 모른척, 진짜 준면의 진심이 그렇다고 생각하면서. 지금 준면의 방문 앞에서 망설이는
경수의 모습은 경수 자신이 봐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쩌면 이리도 이기적일까 나는. 어쩌면 이리도 못돼먹었을까. 자신의 못난 모습에 경수는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경수의 머릿속에서 이성이 자신을 꾸짖고 있었다. 빨리 그 문고리를 놓으라고, 지금이라도 그 문고리를 놓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면
너는 김준면의 좋은 동생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경수의 본능은 그런 말들을 싸그리 무시한채 문고리를 잡아돌렸다.
문고리를 잡아돌려 보여진 준면의 방은 언제나처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 깔끔한 방에 왼쪽 창가아래 놓여진 반듯하고 깨끗한 책상위에서 준면은
언제나처럼 학생의 본분에 충실하고 있었다. 열리는 방문소리에 준면은 고개를 들었고, 그곳에 서있는 경수를 보았다. 준면은 그날이후로 그래왔듯
두걸음 물러난 그 위치에서 경수에게 억지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 경수야 왜?"
또...또...경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자꾸 자신이 형에게 무언의 거부를 당하는 것 같아서.. 형이 거부하는게 아니라는 걸 그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경수의 심정을 경수의 온몸이 느꼈는지 그 아픔이 목까지 올라와 목울대를 울렸다. 경수는 울리는 목울대를 통해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다잡은 채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건넸다.
"나...나...파리갈까...?"
"......."
준면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너무 까매서 끝을 알수없는 그 짙은 검은색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또 다시 그날처럼. 방에 들어와 아무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흐느꼈던 그날처럼 준면의 눈물샘이 꿈틀한다. 준면은 항상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이 눈물샘이 터져버리기 전에 이 상황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아무렇지 않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좋은 형으로써. 준면은 다시 한번 그날 경수에게 말했던 그때처럼 입에 호선을 그리며 말했다.
"당연히 가야지. 경수야. 좋은 기회잖니."
준면의 잔인할 만큼 인자한 미소에 경수는 마지막까지 조심스레 잡고 있었던 난간을 놓쳤다. 경수가 강하게 부정해왔던. 하지만 놓칠 수 없었던.
그렇다고 붙잡고 있다고 인정할 수도 없었던 그 위태위태한 난간은 준면의 미소로 완전히 경수의 곁에서 떠나버렸다. 기대고 있던 난간이 사라지자
경수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 했다. 하지만 주저앉을 수 없었다. 자신이 주저앉으면 준면은 자신에게 있어 난간과도 같았던 그 가면을 준면이 그렇게
쓰고 있으려고 버텼던 그 가면을 벗어버리고 달려와 자신을 일으켜 줄 것을 경수는 알고있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일어설 수 있겠지만 준면은 그 가면을 벗은
대가로 이 현실의 쌀쌀한 바람을 얼굴로 다 맞아내며 힘들어하겠지. 경수 역시 준면을 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경수의 입꼬리가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는 듯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유학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어차피 그곳에서 경수가 머물 원룸은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었기에 그동안 경수가 준비해왔던 포트폴리오 자료와
전학수속을 밟은 학교 서류, 그리고 경수가 이곳에서 꼭 가져가 싶은 물건 몇가지...그거면 준비는 충분했다. 준비와 유학수속이 막바지가 되어갈 무렵
경수는 문득 생각나는 몇사람이 있었다. 자신과 중학교때부터 붙어다녔던 찬열과 백현..그리고 트러블이 있었지만 지금은 찬열과 백현 못지 않은 사이가
되버린 종대..아 진짜 정신없는 놈! 경수는 자신을 자책했다. 그래도 자신에게 몇 안되는 소중한 친구들이었는데 준비 막바지가 될때까지 얘기 할 생각
조차하지 않고 있었다니. 방학도 방학이고 찬열과 백현이 때아닌 열공모드로 들어가 만날 기회가 없어서 그랬다고 변명아닌 변명을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경수의 무심함을 다 덮어줄수는 없었다. 바로 휴대폰을 켜 찬열, 백현, 종대를 선택해 전체문자를 돌리려는 찰나 경수는 종대의 이름에서
멈칫했다. 그리고는 전체문자 창을 취소시키고 종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루한 신호음이 경수의 휴대폰을 타고 흘러나왔고, 그것은 얼마되지 않아
뚝 끊겼다. 그에 경수는 입을 열었다.
"종대야 좀 나올래. 할 말이 있어."
카페에 모습을 드러낸 종대는 좀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다. 경수가 먼저 자신한테 할말이 있다고 전화를 건 적이 없었을 뿐더러 이렇게 단 둘이 만난적은
그때 종대와 경수가 처음 친구가 된 날 그날이후로는 단 한번도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카페에 들어온 종대를 보자 경수는 자신의 위치를 알리며
손짓했고, 이어 종대에게 음료를 시키라고 권했다. 종대의 음료가 나오자 한참 침묵을 지키고 있던 경수가 말을 꺼냈다.
"나..2월달에 프랑스 간다."
갑작스러운 경수의 소식에 토끼눈이 된 종대는 빤히 경수를 바라볼 뿐이다. 경수는 종대의 의도를 눈치채며 알아서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전에 엄마가 프랑스가서 미술 공부하는게 어떻겠냐고 그랬거든. 어차피 2월달에나 갈 수 있으니깐 천천히 생각하라고 그러셨고. 고민이 많이
됐었어. 좋은 기회인건 당연하지만 거기가서 얻는게 있다면 여기를 떠남으로써 내가 포기해야하는 것도 있었으니깐. 내가 포기해야할 것들의 무게가
나에게는 너무 크게 다가와서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었어. 근데..그것들은 알고보니깐 포기해야 맞는 것들이었더라. 당연히 포기해야하는 것들
이었는데. 나는 계속 그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바보같이 미루고만 있었어. 근데 이제 안그러려구. 이제 포기하려구. 그리고 떠나려고."
종대는 묵묵히 경수의 말이 다 끝날때까지 듣고만 있었다. 포기해야할 것. 종대는 경수에게 있어 그것이 무엇인지 알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자신이 생각한 것이 맞는지는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맞다면 너무 가슴이 아플테니깐.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맞을테니깐. 갑자기 승도가 떠올랐다.
자신의 과거의 전부. 자신의 아픈 기억. 하지만 아름다웠던 추억..종대는 경수마저 승도처럼 떠나보내기 싫었다. 눈 앞에서 바보같이 또 놓쳐버리고
싶지 않았다. 영원히 곁에 있고 싶었다. 혹여 그것이 친구일지라도. 오늘 경수와의 만남 이후로 굳게 닫혀져 있던 종대의 입이 열렸다.
"나도 같이 가고 싶어."
승낙해버렸다. 가까운데를 따라 나서듯 말하는 종대에게 경수 역시 그에 맞추어 쉽게 '그래'라고 말해버렸다. 엄연한 이용이었다.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종대를 이용해서라도 준면을 잊고 싶다는 경수의 나쁜 마음이었다. 자꾸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자신의 본능적인 모습때문에 경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진정 양의 탈을 쓴 늑대였단 말인가. 경수는 자신이 어디까지 이기적이고, 나빠질지가 두려웠다.
프랑스로 떠난다고 백현과 찬열에게 말했을땐 역시 경수의 예상대로 그들은 펄쩍 뛰었다. 도경수 너 그렇게 안봤는데 진짜 배신이라는 둥, 이제 우리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줄만 알았는데 다 속임수였다는 둥 섭섭함을 숨김없이 드러내었다. 그런 둘의 모습에 그들이 자신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기에 경수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물론 찬열과 백현은 결국 프랑스로 떠나는 경수를 응원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른 아침 공항에는 종대의 가족, 경수의 가족, 찬열과 백현 그리고 곧 떠나려는 종대와 경수가 서 있었다.
"가서 공부 열심히 하거라. 경수 학생도."
종대의 아버지가 종대와 가벼운 포옹을 했고, 경수에게도 역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이어 종대와 경수는 각자의 가족들과 포옹을 했고, 찬열과
백현과도 역시 싸나이의 뜨거운 포옹을 했다.
"야! 잘가라! 너네! 외국물 먹었다고 우리 잊으면...씨..."
백현이 종대와 경수에게 소리를 치다 갑자기 울먹거리면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친다. 그에 찬열은 당황했는지 백현을 때리며 '야 울긴 왜울어
이자식아!'라고 타박을 줬고, 백현은 '그럼 어떠케해...눈물이 나...'라며 훌쩍훌쩍거렸다. 찬열 역시 그런 백현을 보더니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야..뭘 또 눈물이나...으헝헝..'이라며 함께 울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 다 쏟아내는 찬열과 백현의 모습에 오히려 경수와 종대는 당황하여 그들을
달랬다.
'안녕하십니까. ㅇㅇ항공을 이용해주시는 고객여러분. 곧 10시 20분 프랑스행 비행기가 이륙할 예정이니 해당되는 탑승객 여러분들은 서둘러 탑승
해주시기 바랍니다.'
종대와 경수가 탈 비행기의 이륙예정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이제 진짜 떠나는 건가 싶은 마음에 종대와 경수는 다시한번 가족들과 포옹을 했고,
훌쩍거리던 백현과 찬열 역시 다시한번 종대와 경수를 뜨겁게 안는다. 그리고..멀찌감치 서있었던, 경수가 계속 이곳에서 비행기를 탑승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만든 그가 경수에게 다가온다. 그리고는 경수를 껴안고, 머리를 토닥거리며 말한다.
"잘 다녀와. 내 동생아."
끝까지 김준면은 도경수에게 좋은 형이 되고 싶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딱 그 위치에서의 좋은 형.
항공게이트로 경수와 종대의 모습은 금방 사라졌다. 이젠 모두 떠나버려 텅빈 게이트를 준면은 하염없이 쳐다봤다. 다시 마룻바닥에서 물이 새려고 한다.
더 이상 준면은 그 물을 닦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준면이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할 대상은 떠나고 없었으니깐.
휴...드디어 완결이 났네요...ㅠㅠ 그동안 저의 작품을 사랑해주신 독자님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꾸벅)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찾아뵐께요~
는 무슨!
많이 놀라셨죠??ㅎㅎㅎㅎㅎㅎㅎ
이제 과거씬이 끝났어요ㅠㅠ 아직 경수와 준면이의 마음들이 정리가 되지 않았는데 완결이라니요!!ㅎㅎㅎ
끝까지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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