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마자 앞을 가리는 무언가를 떼어냈더니 삐뚤빼뚤한 글씨가 만들어낸 문장이 빼곡히 적혀 있는 파란색 포스트잇이다. 이건 또 어디서 찾은 거야, 방에 이런 게 있었을 리가…. 그나저나 이마에다 붙여놓을 건 또 뭐고. 몸을 일으키니 기계적으로 나오는 하품에 두 눈이 눈물로 차올랐다. 눈을 대충 슥, 비비고서 시계를 바라보니 저녁 6시. 2시간 동안 여기서 혼자 뭘 한 거야. 남자가 온통 누비고 다녔을 방이 아까보다 더 정돈된 듯한 모습이다. 이거 완전 우렁각시네. 칫솔 위로 주욱 짠 치약이 입 안에서 거품을 만들어낸다. 그대로 다시 침대 위로 돌아와 벽에 붙여 놓은 포스트잇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다시 볼 일이 있으려나. 없을텐데. ˝*3월인데도 날씨가 쌀쌀한 게, 아직 겨울이 다 가지는 않았나보다. 바람결에 다 마른 머리가 기분 좋게 흩날렸다. 사과대로 가는데 첫 수업이어서 그런가. 아니면 오랜만에 연필 잡는 수업을 들어서 그런가, 왜 이렇게 설레는지 모르겠다. 강의실로 들어서니 몇 없는 사람들이 나와 시선을 마주한다. 무리하게 일찍 왔나. 까먹고 전공 책을 안 사두는 바람에 같이 수업을 듣는 표지훈한테 좀 같이 보자고 하려했더니, 이 새끼 간도 큰 지 무려 1박 2일로 놀러 갔단다.그렇다고 해서 강의를 빼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처음이라 제대로 수업을 할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혹시나, 나 같은 방랑자가 있으면 염치없이 빌붙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결국엔 강의실에 도착하고야 말았다. 앞자리는 무리일테니 그냥 맨 뒷자리로 결정. 일찍 온 게 무색할 만큼 금방 속속들이 채워지는 자리들이 보이고,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빼냈다. 천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후끈한 공기가 뒷자리까지 도착했는지 온통 더운 기운에 입고 있던 집업을 벗었다. 우리 과와는 절대적으로 비교되는 광경이다. 추우면 니들이 더 많이 껴입고 와라, 하던 우리 교수님은 엄청나게 단호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엥, 지호다. ˝˝ … 어? ˝˝ 지호가 왜 여기 있어요? ˝˝ 준면 씨야말로, ˝아, 맞다. 심리학개론. 어제 남자가 들고 있었던 책의 이름이 번뜩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같은 수업이었네. 비어있는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걸어오는 남자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가득했다. 부전공, 이라 말하자 손뼉을 짝 치며 와 잘됐다! 한다. 번호라고 적어놓고 올 걸 그랬나 하면서 생각했었거든요, 도복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말을 하는 동안 세 명이 남자에게 인사를 했다. 셋 다 남자를 선배라 칭했다. 몇 살 이냐고 물어볼까, 공중에서 천사와 악마가 둥둥 떠다니면서 물어봐, 물어 보지마. 싸우는 것처럼 별 거도 아닌데 괜히 고민이 되었다. 남자에게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어제는 정말 겨우겨우 정문 찾아서 집에 갔어요. 오랜만에 오니까 이 놈의 학교가 어찌나 큰 지. 아, 맞아. 지호는 몇 학년이에요? 어제 물어봤어야 되는 건데.말을 이어나가던 남자가 먼저 묻기에 조금은 뜨끔하는 마음으로 대답 했다.˝ 2학년이요. ˝˝ 아, 정말요? 난 나랑 동갑인 줄 알았더니. ˝˝ 몇 학년이신데요? ˝˝ 동갑이라는 건 장난이고. 나는 3학년, 스물다섯이에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무려 25살이란다. 그 나이에 칠칠맞게 넘어지고 다니기나 하고, 군대는 또 어떻게 갔다왔대. 그래서 남자의 다리를 슬쩍 보니 오늘은 긴바지다. 나도 모르게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럼 내가 선배네? 특별히 형이라고 부르게 해줄게. 형이라고 해봐요, 준면이 형. 우쭈쭈, 소리가 곁들여질 것처럼 나를 귀엽다는 식으로 말하는 남자는 마치 동생에게 장난치는 꼬마아이 같았다. 아무 말 않고 가만히 있자 왜, 싫어요? 지호는 나랑 친해지기 싫은가보네요…, 되게 섭섭하다. 어제의 나처럼 뾰로통해져서는 책의 모서리를 만지작대며 입술을 주욱 내민다. 이걸 어떻게 형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네 살씩이나.˝ 나중에요, 나중에. ˝˝ 어차피 할 건데 지금 한 번만 해봐요, 응? ˝˝ 음…. 싫어요. ˝˝ 왜? 왜? 그게 뭐가 어렵다고. ˝˝ 그럼 먼저 놓으세요. ˝했더니 말이 없다. 갑자기 하라니까 저도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그게 뭐가 어렵다고, 먼저 놔요. 다시 한 번 강조해주니 지호야, 잠깐만 조용히 해봐요. 하면서 손끝으로 내 입을 막았다. 왼쪽 눈, 오른쪽 눈을 마주보느라 남자의 동공이 이쪽저쪽으로 왔다 갔다 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대뜸, 관둬요. 한다.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남자의 표정.˝ 왜요? ˝˝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게 더 재밌는 것 같거든. ˝˝ …. ˝˝ 지호야ㅡ, 하는 거 말이에요. ˝정말 그런 것 같은 눈치다. 내 나이 스물하나에 나는 왜 이렇게 생겨먹어 가지고서는, 당연한 건데도 이런 어린 애같은 남자를 형이라고 불러야한다는 게 나에게 살짝, 그리고 조금 자존심이 상한달까. 오랫동안 덩치가 산만한 선배들과만 지내 와서 그런가 영 익숙치가 않았다. 가뜩이나 나보다 어려보이는 것도 억울한데 말이지. 언뜻 보기에도 당연히 내가 형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래, 지내다 보면 자연스레 되겠지. 앞으로 엄청나게 마주칠 것 같으니.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안녕하세요, 선배. 신입생 변백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응, 안녕ㅡ. 너 참 실하게 잘생겼다.변백현? 그렇게 흔한 이름이던가.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반자동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라. 뭐지, 저 익숙한 뒤통수는.-도덜이 왔어영.4편이 생각보다 빨리 써졌네요, 기분이 좋아요!그나저나 3편에서 잠깐 했던 단풍 얘기는 잊어주셔요. 뭐 그렇게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다만은.이 글의 배경은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는 3월이니까! 단풍이 있을 리가.. 없지....... 죄송합니다. 저으 착각 ^~^요거 그냥 평범하게 흘러가는 얘기가 될 것 같아요. 가볍게 읽어주시면 좋을 듯 싶어요!고럼 저는 찬백이들 망상 속으로 떠납니당 안녕
이 시리즈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우지호X김준면] 도복이와 덜렁이 4 6
13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베프가 계류유산됐대...내가 말실수한건지 봐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