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 Miss Right
Please be My Color!
태어날 때부터 난 온통 세상이 흑백이었다. 남들이 말하는 푸른 하늘의 색도, 청량함의 색도 심지어 내 피부색까지 흑색으로 보였다. 안과에 가보니 이건 아무리 찾아봐도 나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고칠 수 없다는 말도 덧붙혔다. 그 때부터였을까. 내 삶이 절망으로 빠진게. 내가 보이는 세상처럼 변해버린게. 온통 흑백인 세상에 학교에서 미술 시간은 달갑지 않았다. 색도 모르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그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난 미술시간만 되면 항상 손에 잡히는 무언갈 잡아 채색했다. 내겐 흑백이었지만 다른 이의 눈엔 어떤 색이라도 있었을테니까.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대박, 천재아니야?"
"너 미술학원 다녀? 색 진짜 예쁘다."
사실 난 뭣도 모르고 채색을 하는 것 뿐인데 이렇게 수많은 칭찬을 들어왔다. 그래서 반에선 '말 없는 애' 와 '색감 예쁘게 채색하는 애' 로 불렸다. 그렇게 기분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이,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갔다. 아이들에게 놀림은 받았지만, 그렇지만, 꽤 나쁘지 않았던. 그래서 그리 기쁘지도 좋지도 못 한 학창시절이 되곤 말았지만 말이다. 뭐, 내가 말하는 이 시절의 기억들은 일부만 남아있는 것이고 나도 잘 모르지만. 수능 이후 사고로 내 기억 일부가 날아가 버려 이정도밖에 기억 못 한다. 그래도 앞서 말했던 것 처럼 꽤 나쁘지 않았던 학창시절이었지 않을까 싶다.
Please be My Color!
대학교 첫 날. 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입학식 때에 신입생 대표라고 하며 한 남자아이가 들어섰는데 희미하게도 단상의 색이 보였다. 정말 희미하지만 온통 흑백인 세상에 다른 색 하나가 보였다. 그 날 밤은 잠도 못 이뤘던 거 같다. 공책에 그 색이 어떤 색이었는지 한 번 적어보기도 했다. 물론 그 색은 굉장이 탁하고 거무침침한 색깔이었다. 흑색 세상인 나에게 비슷할 거 같은 색이었다. 그리고 그 아일 보며 설렜던 마음도 굉장히 이상했던 하루였다.
첫 전공 수업 때 내 앞에 신입생 대표 아이가 앉아있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나에게 색이 보였다. 온통 같은 색인 강의실 벽 색깔이 뚜렷하게 보였다. 이유는 내 흑백 세상과 대조되는 색깔이라 그런 걸까. 첫 전공 수업 이전에 잠을 잘 안 자서 꾸벅꾸벅 잠이 몰려 들어와 버텨보려 애써 노력을 했지만 자버려 그대로 강의 끝까지 자버렸던 거 같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엔 누군가가 날 쳐서 그 반응 때문에 깼던 거 같다. 앞을 쳐다보니 신입생 대표 아이가 내게 한 유인물을 주고 있었다.
![[세븐틴/권순영] Please Be My Color!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8/07/5/331a466bd7419e728fecb7bb53824b5e.gif)
"이거, 과제인데... 너 자길래 내가 가지고 있었어."
"그리고 너랑 나랑 2인 1조로 같은 조야."
"... 어, 어. 고마워."
"이 뒤에 강의 없음 나랑 같이 PPT 짜러 갈래?"
"어? 어... 그러자. 그래."
색이 짙어졌다. 그 아이의 몸이 옅은 흑백으로 변했다. 빠르게 변화되는 내 눈 밖의 세계에 난 당황 할 수 밖에 없었다. 발표 자료를 짜러 카페로 가는 도중에도 탁 트인 하늘의 색이 보였다. 내 세계가 변하가고 있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저기 벚꽃 색 예쁘지 않아?"
머뭇거려진다. 우리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에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내 비밀이 들킬까봐. 그래서 난 오늘도 색에 대한 거짓말을 늘여놓는다. 산처럼 쌓인 거짓말들은 날 집어 삼킬 듯 덮쳐온다. 식은땀이 흐르고 다리가 후덜거린다. 역시나, 색은 나에겐 과분한 존재다. 내 흑색세상이 옅어진 지금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게 끝이면, 이렇게 까지만 변하고 이젠 안 변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 때문에.
"......"
"저기... 뭔 생각해?"
"... 아. 예쁘네."
색에 대한 두 갈래가 나뉘어져있다. 채색과 흑색. 난 오늘도 채색이라 적혀져있는 길을 보고선 흑색으로 간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은 척 평범한 척 행동한다.
Please be My Color!
"그래서 여긴 이렇게 하면 좋을 거 같아."
나른한 오후 햇볕이 커튼을 비집고 들어온다. 짤랑 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울려퍼지는 사람들의 담소 소리. 그리고 커피 향과 달작찌근한 간식들의 내음까지 모든게 조화를 이루어 운율을 그린다. 노트북 타자를 가볍게 치고선 그 아이에게 보여줬다. 그러고보니, 같은 조인데 이름도 모르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쓴 맛이 입가에 맴돌았다. 늘 마셔도 적응이 안 되는 아메리카노 맛이다. 사람들이 왜 어른의 맛이라는지 이젠 이해가 갈 거 같기도 하다.
"어, 근데 여기 색이..."
"아. 미안."
![[세븐틴/권순영] Please Be My Color!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9/14/21/9b452e1008fd6e860b288cd19501d6b8.gif)
"아니, 아니. 예쁘다고."
얼굴이 불타오르는 거 같다. 심장이 쉴틈없이 뛰고, 손은 덜덜 떨려온다. 처음 느껴본 이상한 감정에 눈만 굴리고 있었을까 아까 그 아이가 가르킨 벚꽃의 꽃잎이 보였다. 바람에 휩싸여 흩날리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흑색인 내 세상에서 처음 맛보는 달콤함이란 정말로 황홀했다.
"얼굴 빨개졌어."
"응?"
전에 친구끼리 대화를 할 때 들은 문장 하나가 있었다. 비록 그 문장은 내게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의문꾸러미만 던져주었지만.
"아, 맞다. 우리 이름도 서로 모르고 있었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제 감정도 컨트롤 못 하고 얼굴만 빨개진다.'
"난 권순영이야. 잘 부탁해."
"네 이름은 어떻게 돼?"
이젠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얼굴이 빨개진다는 것은 내 몸 안에서 무언가가 들끓고 화산 폭팔하듯 급격히 온도가 올라간다는 뜻이다.
"난, 이너봉이야."
봄의 달달한 꽃내음이, 전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젠 한아름 내 곁에 다가왔다, 그와 함께. 전엔 알지못했던 일상의 아름다움들이 그로 인해 서서히 보여지기 시작했다. 내가 손을 먼저 건내자 순영이는 내 덜덜 떨리는 손을 덥석 잡고선 웃으며 위아래로 흔들었다. 잠깐이라도 닿았던 그의 손엔 따뜻함이 묻어있는 듯 했다.
난, 오늘 새로움을 접함과 동시에 사랑을 접했다.
Please Be My Color!
" ... 이상으로 5조 발표 마치겠습니다."
숨막히는 정적이 끝이 나고 전등에 불이 들어오며 짙은 흑색이 밝은 흑색으로 변했다. 내가 사랑을 맛본 그 순간에만 주변의 색이 옅어진거지 평소에는 진한 흑백이 될 뿐이었다. 잘했네. 둘 다 A. 평소 까다로우시던 교수님의 통 크신 점수가 내려지자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가는 듯 했다. 강의가 끝나고서야 발표를 마치고도 남아있던 긴장이 풀리게 되었다. 눈을 잠시 느릿하게 감았다 뜨니 눈 감은 것과 다를바없는 세상에 한숨이 쉬어졌다. 내가 그 때 보았던 건 무엇이고, 지금 난 뭘 해야 일반인처럼 보일까. 색이 보이지 않다는 것은 정말로, 정말로... 겪어 본 사람만 아는 감정에 둘러싸여있는 것 뿐이다.
"너봉! 뭐 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훅, 들어온 순영이의 얼굴에 어색히 미소를 지었다.
"그냥..."
![[세븐틴/권순영] Please Be My Color!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10/29/22/7bcd20285f7ead21db72533c714447f7.gif)
"고민 있어? 있으면 얘기 해."
"이 오빠가 다 들어준다!"
오빠는 무슨. 웃음이 피식 나왔다. 내가 지금 지고 있는 이 고민들을 다 너에게 털어놓으면, 넌 날 멀리하게 되겠지. 다른 사람들에게 색이 보인다는 것은, 색을 몸소 한아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색의 아름다움을, 영롱함을 접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난 그 이치를 신이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준,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 하나의 창초물 이라고 생각한다.
색은 신이 만들어낸 것 중 가장 아름답고 영롱한, 황홀한 창조물. 난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에 절망하고 좌절한다.
"아니야. 그냥... 피곤해서."
"아, 그래?"
"힘내, 너봉아. 저번까지 빠르게 여기까지 달려왔으니깐, 이젠 조금 천천히 걸어도 돼."
![[세븐틴/권순영] Please Be My Color!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9/20/16/0854ee364c636daf51f43da3e45eb8fa.gif)
... 아. 잠시 넋을 놓았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신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창조물을. 신이 빠짐없이 24시간내내 조각을 해 만들어낸 거 같은 아름다운 창조물. 내가 사랑을 처음 느낀 창조물. 나에게 색을 보여줬던 창조물. 너무나 아름다워 눈을 뜰 수 없는 그 창조물은.
바로, 내 색이 되어줄 순영이다. 색이라는 아름다운 창조물과, 또 하나의 아름다운 창조물인 순영이. 그것들은 나에게 큰 존재로 다가와 날 덮친다.
비록 내가 색을 보지는 못하지만, 순영이의 색도 보지 못하지만. 색이 뭔지도 모르는 무지한 자이지만 이것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 색과 순영. 그 두 개만은 내 손에 꼬옥 그러쥐어 간직하고 싶다. 순영이를 올려다보니 세상이 밝아진다. 그래, 그는 어쩌면 날 이 흑백세계에서 꺼내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일지도 모른다. 색에 무지한 날 가르쳐 주고 색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건 나의 색이 되어준다는 것. 그 사람이 나에게 하나의 색이 된다는 것이다.
난, 오늘도 그를 접함으로써 하나의 색을 느끼고 맛본다. 색에 대한 세상의 이치를 맛보지 못한, 신의 창조물을 보지 못한 미천한 나에게 색이 몇 발짝 다가왔다. 손만 닿으면 닿을 듯한 그 거리에서 오늘도 잡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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