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와 여고생
w. 꽃
그 아이를 처음 만난건. 그래,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난 여름이었다.
그날도 다른 평범한 날과 다름 없이 흰 자판을 두드리며 무의미한 글자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을때, 현관문 밖에서 아주 작게, 똑똑 ㅡ 문소리가 났다. 초인종이 아닌 노크소리에, 원고 작업을 방해하지 않으려 애쓰는-물론 그 존재 자체가 가장 방해가 되었지만- 출판사에서 보낸 독촉의 사람인가, 하는 예의상 의례적 추측을 하며 잔뜩 짜증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 서있는건 내 시선보다 한참 아래에서야 정수리가 위치한 작은 여고생이었다. 사람이 많이 드나들지는 않는 집이었지만, 굳이 말하자면 가끔 사인을 요구하거나 원고를 요구하는, 지극히 채무 관계에서 찾아오는 딱딱한 사람들 뿐이었다. 하지만 맹세코 그 누구도 이런 식의 방문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 아니 그 아이는 잔뜩 비에 젖어 어중간한 길이의 머리칼에선 물기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고, 아이의 눈에도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가 함께 흘러 내렸다.
누구 ···
좀 들어갈게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을 벗었고, 나는 감히 그 동작을 말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도 퍽 예의를 따지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아이의 이런 태도는 몹시도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아이가 내 사랑해 마지않는 소파에 작고 더러운 몸을 뉘였을때는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내게 벌어진 이 재앙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오분전만 해도 나는 머리를 싸매고 새로운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 치고 있었을 뿐이었다. 노크소리에 문을 열자 낯선 여고생이 당당하게 집안으로 입성해 내 소파를 축축하게 만들었다. 나는 꽤나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었다.
··· 얘, 꼬마야. 날 아니?
꼬마야, 까지 말했을때 아이는 감고있던 눈을 떠 원망스런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미안한 마음마저 드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나는 집주인의로서의 위엄을 보여야 했다. 이건 엄연한 무단 가택 침입이었다. 하지만 날 아느냐 물었을때에는 오히려 아이의 대답이 두려웠다. 나를 정말 잘 아는 사람이면 어떡하나, 불쑥 나타난 내 딸이거나, 어머니가 낳으신, 한참 어린 막내둥이거나 하는 말도 안되는 출생의 비밀까지 상상하며, 나는 황급히 내 과거를 되짚어 반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아이가 귀찮은 듯이 눈을 감으며 몰라요. 하고 다시 고개를 돌리자, 나는 울고 싶어졌다.
아이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그제서야, 아이를 집 밖, 아이가 본래 있던 곳으로 데려다 놓기를 체념하고서야, 나는 아이의 존재에 대해 새삼 실감하며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이가 입은 교복은 날때부터 주어진 것 마냥 퍽 잘 어울렸다. 다만 그 또래에 비해 작은 체구에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다리와 팔목에는 푸르뎅뎅한 멍자국도 여럿 눈에 띄었다. 누가 보든 귀하게 자란 집 자식같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비에 젖었는지 가여운 몸은 잠결에도 부들부들 떨었고, 입술을 파르랬다. 나도 모르게 이불을 덮어 주고서야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려는 거지. 누굴 향했는지 모를 물음이 허공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