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와 여고생
w. 꽃
지난 며칠 간 아이에게 빠져 산 탓에 나는 밀린 여름 방학 숙제를 하는 초등학생처럼 쫓기듯 원고 작업에 들어갔다. 사실 내 다음 소설을 독촉하거나 갈망하리만큼 몹시 바라는 이는 전무했다. 나는 그저 운이좋게도 신인 베스트 셀러 작가 목록에 잠깐 발을 들이는, 제법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촉망받는 소설가일 뿐이다. 어디 대회에서 수상을 한 것도 아니고 어떤 비평가의 극찬을 받은 작품도 아니다. 가혹하게 말하자면, 나는 과거 잠깐의 영광에 취해 목이 마른 어줍잖은 글쟁일것이다. 출판사는 제법 수입을 올린 내 전작-이자 첫작-이 내심 마음에 들었는지, 그와 같은 작품은 다신 나오지 않으리라 장담한 모양인지, 그것도 아니면 친절하게도 어린 작가를 위한 잠시나마의 배려인지, 나를 향한 독촉을 끊었다. 그럼에도 내가 스스로를 채찍질 하면서까지 다시 없을 걸작을 만들기를 바라는 까닭은, 잠깐 만진 돈의 향기도 아니요, 신문에 짧게 올라간 인터뷰 기사도 아니요, 오롯, 나만의 만족감을 위해서였다.
아무튼 나는 그런 연유로 다시 본업이었던 창작의 고통속으로 돌아갔다. 아이도 없는 텅 빈 집안에, 오랜만에 잡아보는 키보드와 컴퓨터 화면에 익숙하지 않은 나를 구제해 주려는 듯, 바로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발이 넓은 편도, 사람을 자주 만나는 편도 아니었다. 출판사의 강압으로 재작년에나 하나 구입한 핸드폰은 첫작을 출판한 이후로 알람 역할-그것도 자주는 아니다-외에는 울리는 법이 없었다. 간혹 오는 어머니의 전화는 집전화가 맡았고, 몇 없는 대학 친구와의 문자도 끊긴지 오래였으며, 바깥 활동이 없는 까닭에 스팸 메세지도 전무했다. 그래서 나는 이 시점에 울린 모르는 번호의 전화에 심히 당황할 수 밖엔 없었다. 받을 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대로는 상대방 쪽에서 먼저 끊겠다 싶은 마음에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젊은 여자의 음성이 들렸다.
아, 아버님이시죠?
네,네?
잘못 걸린 전화라면 오히려 좋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주제넘은 섣부른 판단은 불쾌했다. 아버님, 이라니! 나는 아직 결혼도 못해본 스물 일곱 건장한 청년이었고, 목소리에서부터 이런 오해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건너편의 여자는 자신의 추측이 확실한 듯 아랑곳 않았다. 그래,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 하는 마음에 잠자코 있었다. 여자는 어디 고등학교의 담임이라고 했다. 학생이 몇 주 간 병을 이유로 결석을 한 모양이다. 얼마나 아픈지 찾아가 보고 싶다고 했다. 더 이상의 침묵은 일을 키울 것 같았다.
죄송하지만 전화를 잘 못 거신 것 같네요.
네? 아, 진이 아버님 아니세요?
··· 머리를 망치로 얻어 맞은 것 같았다. 일을 하고 있다며 대충 둘러대고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몇 주 간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몇 주라면 아마 아이가 우리 집에 온 날부터리라. 아이는 매일 아침이면 교복을 입고 학교를 나섰다. 아니, 잠깐. 학교를 갔었나? 아이는 단 한번도 '학교'에 다녀 오겠다고 한적이 없었다. 교과서가 있을 리가 없었다. 숙제는? 아이가 공부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던가? 아이는 그동안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아니, 사실 거짓말이랄 것도 없었다. 교복을 입고 가방을 매고 떠나는 모습에 학교에 갔으리라, 하는, 그래 내 착각이었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너무도 허술한 거짓말을 스스로 안대를 씌우며 억지로 믿었는지 모른다. 나는 진실을 외면. 했었다. 아이가 떠날까봐 두려워 진실을 묻지 않았다.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는 아침마다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학교에는 아프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에겐 아버지라며 내 번호를 말했다.
아이는 첫 만남부터 나에게 진실이었던 적이 없었다.
아저씨, 나 왔어요!
몇 시간이 지났는지, 아이가 다시 어딘가에서 돌아왔다. 집안에 뛰어 들어와 양말을 벗고, 찻물을 끓이며 머리를 빗는 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아이의 환한 모습에 배신감과 가증스러움을 참을 길이 없었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 모습도, 저 웃음도, 그래 모두 거짓이었다. 애초에 출처 모를 작은 어린 아이를 받아 들인것이 잘못이었다. 그래도 나는 바보같이 아이와의 생활에 즐거워 하며, 그래, 그랬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이 시점에서도 아이와의 잔정이 남아있음을 고백해야겠다. 나는 아이를 보내기 원치 않았고, 지금도 원치 않는다.
나가.
··· 네? 아저씨 뭐라고···
꺼지라고. 내 집에서.
죄송해요. 한 마디만 하면, 어디 이해하는 시늉이라도 해보려고 했다. 그 짧은 몇주간의 생활이 나에게는 그렇게도 고마워, 뉘우치는 기색이라도 있으면,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넘어가려 했다. 그래, 그 아이에게 그정도의 관용은 당연했다. 하지만 아이는 나의 희망을 산산히 짓밟았다. 모든 것을 알아버렸다는 듯, 아이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현관을 나섰다. 몹시도 슬픈 눈빛이었다. 그건 자책이나 원망, 미움과는 달랐다. 아이는 예상했다는 듯 웃는것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확인할 길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아이는 내 집을, 아니, 우리의 집을 떠났다.
처음 아이가 내 집에 들었을 때 처럼, 소름돋는 침묵과 식어버린 찻물 향기가 코를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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