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도 나는 알파로 살았다. 내 머리는 꽤 좋은 건지 이 곳에서도 뒤쳐지지 않고 잘 따라가고 있었다. 외국이라 그런지 한국인은 몇몇의 알파와 베타만이 있다. 그런데 요즘 날 귀찮게 하는건 베타녀석.
"오싹! 같이가."
"떨어져."
"그런식으로 쳐다보면 상처받는다?"
"하..."
베타주제에 신체조거은 굉장히 좋다. 키도 크고 덩치도 크다. 이녀석이 친해져봐야 귀찮기만한 베타여서 떨쳐내려는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눈빛이다. 마치 내가 지금 모두를 속이고 알파의 껍질을 뒤집어 쓰고 있다는 걸 알고있는 듯한 눈을 하고 있다. 이 녀석 앞이면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에 옆에 붙어있고 싶지가 않다.
"너 왜그렇게 홍정호를 싫어하냐?"
"그냥..."
"여기는 알파랑 베타랑 편나누고 싸우기엔 한국인이 너무 적어. 웬만하면 잘 좀 지내봐."
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한국인 모임의 중심이 되는 한국학생회 회장이 이 녀석이다. 좀 조용한 곳으로 가고싶다고 아버지께 얘기를 드리니 한적한 마을로 오게됐고, 한국인도 많지 않은 곳으로 오게됐다. 차라리 많은 곳으로 가는게 나았을까 엮이고 싶지 않아도 한국인과 엮이게 되버린다. 더 싫은건 내가 그렇게 싫다고 하는데 질리게 쫓아다닌다는거다. 그 정도로 티를 냈으면 적당히 알아서 떨어져나가야되는거 아닌가.
"적당히 지내려고를 안해. 저쪽이."
"원래 성격이 그래. 그래서 베타치고는 알파들하고도 잘지내지. 한국에 있을 때도 그랬다더라."
"대단하네."
비꼬는 투였지만 정말 대단하긴하다. 서양보다 동양이 알파와 베타 사이가 더 벌어져있다. 그런데도 저렇게 잘 지내는 거보면 대단하다. 성격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눈이 마음에 안 든다.
"여기들있었네? 빨리와. 싸움났어."
"뭐?"
"영국인이랑 한국인이랑 싸움났어. 정호가 말리고 있긴하는데 뒤처리는 니가 해야될 것 같아서."
하루에 한번씩은 일어나는 싸움 덕에 골치 아프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더니 뛰어간다. 난 천천히 뒤따라갔다. 가보니 다 정리되어있다. 한국학생회 회장이 영국인, 한국인과 같이 선생과 이야기를 하고 있고 홍정호는 말리다 다쳤는지 새하얀 휴지를 꾹 누르고 있다. 구경꾼들도 사라지는 걸 보니 구경할 것도 없어보여 뒤돌아가려는데 홍정호 무리한테 발견되버렸다.
"오재석."
"왜?"
"우리 오후에 동아리 모임이 있어서 정호 데리고 양호실 좀 가라."
"싫... 알았다."
여기서 조용히 생활을 하려면 적당히 하라는 회장의 말이 생각나 알겠다고 했다. 나의 대답에 부탁한 녀석들이 더 놀란 눈치다.
"그... 그럼 부탁한다."
많이 찢어진건지 햐얀 휴지는 피로 물들었다. 나에게 준 휴지를 다시 홍정호에게 건네니 고맙다, 하며 다시 지혈을 한다. 양호실로 가 적당한 설명과 함께 상태를 보여주니 놀라서 이것저것 찾을 동안 나보고 지혈을 하고 있으라며 거즈를 쥐어준다.
"오재석한테 지혈을 받을지 몰랐는데?"
"나도 너한테 지혈을 해줄지 몰랐다."
"오재석."
"왜."
"너 나 왜그렇게 싫어하냐?"
"글쎄."
"난 너 좋은데."
"낯간지러워, 새끼야."
"넌 알파같은데 알파 특유의 재수없는게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어서 좋아."
그래서 내가 널 싫어하는거다. 몰라도 될 걸 너무 많이 알고있다.
"무슨말이야."
"그러게. 나도 뭔말인지 모르겠다."
살짝 떼니 피가 멎은 것 같다.
"피도 멎은 것 같은데 난 간다."
"왜. 더 있다 같이가."
"너 싫어서."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면 상처야."
"그런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해봤자 안통해."
그 날 이후로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엮이는 일도 많아졌고 대학도 같은 계열로 가다보니 같은 대학을 가게됐다.
"아, 오싹."
이 녀석은 큰 키를 이용해 매일 뒤에서 안는다. 이제는 싫다고 빠져나가는 것도 이력이 나 그냥 냅둔다.
"왜."
"잠 좀 재워줘."
"개새... 야. 너 벌써 며칠째 우리집에서 자고 있잖아."
"내 룸메가 매일 여자 데리고 와서 자. 미치겠어. 하지말랬더니 여자 소개시켜준데."
"그럼 소개받으면 되겠네."
"한번만. 부탁해."
저렇게 직접적으로 부탁하는 말에는 약한 나라 결국 녀석을 집에 데리고 왔다. 베타니까 가능한거다. 알파였으면 아침에 내 냄새를 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절대 안 데려왔겠지. 집에 들어와 가벼운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거실로 나가려는 차에 침대에 던져놓은 핸드폰이 운다. 발신자는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학교애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hello?"
'...'
"여보세요?"
'...'
"who is this, please? 누구세요?"
'...'
"누나야?"
'...'
잘못걸린 전화인지 장난전화인지 아무말이 없다. 뭐야, 하며 끊으려는데 목소리가 들린다.
'찾았다.'
너무 짧은 말이라 누구의 목소리인지 인식하긴 힘들었지만 나를 찾을 사람은 한사람 밖에 없다. 윤석영이 아닐수도 있지만 윤석영일거란 생각만으로도 난 움질일 수가 없었다.
"똑똑. 오싹. 저녁 안 먹냐?"
"...너 혼자 먹어."
"너 왜그래?"
"그냥 신경 쓸 일이 있어서."
"알았다. 말하고 싶을 때 말해."
모르는 번호따위 받지말았어야 했다. 영국으로 오기 전 윤석영이 했던말이 생각난다. 도망가면 자기 옆에 두고 어떻게되든 모른다는... 만약 그 전화가 윤석영이라면 난 어떻게 될까? 아니다. 윤석영일리가 없다. 누나가 주위사람들 입단속을 시켰을텐데... 한국사람들과 연락하는 건 누나를 통해서밖에 없는데...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한지 모르겠다.
-띵동띵동
여러생각으로 터져버릴 것 같았던 머리가 초인종소리에 아무생각도 안 든다.
"내가 나가볼게."
잘 들리지 않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남자 둘의 목소리정도만 들릴 뿐 대화내용은 도통 들리지가 않는다. 내 방으로 발걸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고 들어온건 홍정호.
"오재석."
"어?"
"뭘 그렇게 놀라. 김비서아저씨 왔다가셨어. 어머니가 걱정많이 하신다면서 이거주시고 가시더라. 뭐냐?"
"약."
"아, 니가 매일 먹는 그거?"
박스. 그 안엔 몇개월치 분량의 약이 있다. 그래. 아니였던거야. 그냥 장난전화였던거야. 잘못걸린 장난전화. 그렇게 나를 안심시키며 잠을 청했다. 억지로 잠을 자서 그런지 눈을 뜨니 아직 깜깜하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쥐니 3시. 잠깐 잠을 잔 것도 그리 달게 잔건 아니다. 왜 그 녀석한테만 이렇게 벌벌 떠는지 모르겠다. 내가 오메가라서? 그걸 다른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닐까봐? 아님 내가 몸을 처음 내준사람이라서? 난 처음부터 윤석영이 내가 오메가임을 알아도 아무대나 생각없이 말하고 다닐 녀석이 아니란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나혼자 이토록 불안해하고 도망치고 그런걸까? 아니면 더이상 동등한 관계가 아닌 내가 윤석영에게 속해있다는 기분이 더러운 것일수도... 내 본래의 피가 오메가야도 철저하게 알파의 교육을 받고, 알파사이에서도 잘난 알파로 자라왔기에 난 알파만큼이나 아니 알파보다 알파라는 것에 더 자존심이 세다. 윤석영도 그런 나를 아니까 그 날의 일이 있기 전처럼 행동하려 했던거겠지. 새벽엔... 너무 잡생각이 많아진다.
"어? 너 벌써 깼냐?"
물도 마실겸해서 밖으로 나가니 홍정호가 있다.
"너는? 아직 안 잔거냐?"
"나도 깼어."
"그래?"
물을 마시고 홍정호 옆에 앉았다.
"아 맞다."
"왜?"
"나 한국갈거 같아."
"그래?"
"이주 정도. 길면 한달."
"오래가네. 무슨일 있냐?"
"그냥 집안일. 야."
"왜?"
"이제는 나 안 싫어하냐?"
"낯간지럽게 뭐냐?"
"피하지말고. 대답해봐."
"내가 싫어하는 놈 집까지 들일정도로 대인배로 보이냐?"
푸흐흐하고 실없이 웃는다.
"다행이다."
"뭐가."
"난 너 많이 좋아해서."
"지랄을 한다. 잠이나 자라."
"진짜로."
"그래."
"힘들면 말해. 니가 나보다 잘난 알파인긴 해도 나 꽤나 쓸모있어."
"그래."
"너랑 친구가 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 먼저 들어간다."
"그래."
난 모두를 속이고 사는 삶인데도 사람복은 있는 것 같다. 오늘은 고등학교때의 그 녀석이 생각난다. 지금은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데 그냥 생각이 난다. 내가 윤석영에게 오메가임을 들키지 않았더라면 윤석영도 그냥 홍정호와 그 녀석처럼 나랑 지냈을까? 역시 새벽엔... 너무 잡생각이 많아진다.
"여기서 바로 공항으로 가는거냐?"
"응. 어차피 집을 야금야금 여기로 다 옮겨서."
"눌러앉을 생각말고 다시 오면 기숙사로 가라."
"매정해."
"매정은 무슨 얼어죽을 놈의 매정."
"배웅도 안해주고."
"넌 나한테 배웅받고 싶냐?"
"나도 별로다, 새끼야."
택시를 잡아 짐을 싣고 간다. 집으로 돌아오니 집이 너무 조용하다. 얼마나 오래 같이 있었다고 벌써 그 생활에 적응을 한건지. 읽다만 책 한 권을 집어 읽었다. 정신없이 책을 읽다 끝장까지 다 읽고 책을 덮으니 벌써 밖은 어둑어둑해졌다. 영국에서의 겨울은 낮이 너무 짧다. 슬슬 배가 고파져 냉장고를 여니 텅텅비어 있다. 홍정호만 집에 오면 냉장고가 항상 빈다. 장을 보러가야겠다. 한국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라면도 못 끓이던 내가 장이란 것도 보기 시작했고, 요리도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 한다.
"햄이랑 라면이랑..."
그래도 아직은 한국마트 없이는 못 산다. 이것저것 잔뜩 사고 집으로 향하는데 현관 앞에 누가 서있다. 집주인 아주머니네 손님인가? 그 사람을 지나치려는 때에 그 사람이 날 잡았다. 그리고 나보다 키가 큰 그 사람을 올려다봤다.
"왜이렇게 꼭꼭 숨어있었어?"
드라마처럼 난 내가 들고있는 걸 모두 떨어트려버렸다. 그냥 온몸에 힘이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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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 오늘은 분량이 적네요... 앞으로 계속 이럴듯...ㅠㅠ
아 그리고 한회 분량정도 비축분이 남아있다고 했지
한회 분량만 하면 완결이라는 뜻이 아니예요ㅠ
이제부턴 어떻게 올릴까요?
1. 양 적어도 자주
2. 가끔씩 오더라도 양 넉넉하게
사실 뒷부분은 큰 틀조차 짜여있지가 않아서 고뇌를 하고 있어요...........
음... 아직 해피가 좋을지 새드가 좋을지도 모르겠고.............
어렵네요ㅠㅠ
그래도 댓글 달아주시는 여러분 덕에 항상 힘내서 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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