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후로 시간이 지났지만 제조과 김대리님에게는 딱히 연락이 없었다. 나도 연락을 따로 하지 않았고. 그 날, 괜히 꼬장을 부리는 재석이와 석영이에게 집안일을 시켰다. 청소부터 시작해서 설거지, 빨래까지 처음에는 하기싫다고 칭얼거리더니 요즘에는 곧잘한다.
"으아. 깨끗한 집에 들어오니까 기분좋다."
"좋아? 오늘 청소 내가 했다."
"잘했어."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옆으로 바짝 달라붙는다. 나는 또 움찔하고 조금 옆으로 피하고. 머리를 털며 화장실에서 나오는 재석이.
"야. 청소 내가 했잖아."
"나도 뭐, 저것도 치우고 저것도 치우고..."
"그건 니가 어지르고 다시 치운거잖아."
"그건 맞는데..."
"그래. 재석이 잘 했어."
아직 축축한 머리를 쓰다듬어 줬더니 입을 벌려 말을 더 하려다가 다시 다문다.
"머리 말려줄까?"
"응?"
그냥 요즘 석영이만 놀아준 것 같아서, 라고 하면 또 발끈하겠지...
"그냥. 여기 앉아봐."
쇼파 밑에 앉혀놓고 수건으로 물기 좀 닦아내다 드라이기를 켜 말려줬다.
"안 뜨거워?"
"응? 어. 괜찮아."
대충 머리가 말랐을 때 드라이기를 끄고 재석이 앞으로 가 머리를 정리했다.
"다 됐다. 잘생겼네, 재석이."
어이없다는 듯 표정을 하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가는거 보니 좋은가보다.
"나도! 나도 할래!"
"넌 아까 씻었다며."
"또 씻으면 되지."
"물값 아깝게. 그냥 자라?"
"치사해. 잠도 안 재워주고."
어깨만 들썩이니
"진짜 주인 나빠!"
"응. 난 나쁜 주인이야."
문 닫고 들어가자 방문을 쿵쿵거리며 뭐라하는 석영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모른척 침대에 누웠다. 으아, 좋다. 진짜 매일 요즘 같기만 하면 좋겠다. 언제 감겼는지 모른채 눈을 떴다. 손을 뻗어 핸드폰을 잡으니 여섯시다. 요즘 마음이 편해서 그런지 항상 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일어난다. 더 빨리 일어나는건 아니지만 누워서 늦장을 부리는 것 같아 기분은 좋다. 오늘은 모닝콜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서 씻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니 석영이만 깨서 쇼파에 앉아있다.
"일어났어?"
"응. 주인..."
가까이서 얼굴을 보니 눈을 반만 뜨고 있다.
"졸리면 자."
"응."
그리고 쇼파에 눕는다. 밥을 차려놓고 깨지않게 조용히 나왔다. 사람으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예전 같았으면 현관까지 나와서 빨리 오라고 닥달했던 애들이 요즘은 내가 나가서까지도 퍼질러 잔다. 생각해보니까 하루죙일 집에만 있는데 가장이 돈벌러 가는데 배웅정도는 해줘야되는거 아니야? 버스정류장에서 혼자 궁시렁대며 오늘 저녁에는 뭐라 한마디 해야겠네, 라고 생각하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쳐다보는 기분이 들어 슬쩍 쳐다봤다.
"김주인씨?"
"어어...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그 때, 소개팅 아닌 소개팅을 해버린 김대리님이다.
"이쪽 사세요?"
"예. 그 때 데려다주고 놀랐어요. 가까이 살아서."
"아, 예."
서로 어색한데 버스 안와서 괜히 핸드폰 만지다 입을 먼저 뗐다.
"이쪽에서 출근하기 힘들죠? 버스가 하나밖에 없어서."
"평소엔 차로 출퇴근하는데 어제 술을 좀 많이 마셔서요."
"아아..."
"주인씨는 차 없어요?"
"예? 예."
아아, 하는 김대리님하고 다시 이야기가 멈춰서 어색해지려고 할 때 다행히 버스가 왔다. 버스를 타는데 아주 애매모호하게 맨 뒷자리 두자리만 남았다. 아... 진짜. 평소엔 자리도 많더니... 일단 가서 창가로 앉고 김대리님은 옆에 앉았다. 어색하게 회사까지 갔다. 괜히 평소보다 빨리 나와서...
"저 아침에 커피 한 잔 마시는데 주인씨도 하실래요?"
"예?"
"제가 살게요."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카페로 들어선다.
"뭐 마셔요?"
"아, 전 아메리카노요. 아이스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요."
하고 돈을 낸다.
"아니, 제가 사야되는데... 저번에도 택시비 내시고..."
"밥 사라고 했잖아요. 오늘 저녁. 어때요?"
"예?"
"커피 나왔습니다."
"여기요."
"예에... 감사합니다."
"오늘 주인씨가 저녁 사요."
"예? 아, 예."
"가죠?"
"네."
얼떨결에 저녁 약속까지 해버렸다. 아침에도 엄청 어색했는데...
"주인씨."
"예?"
"오늘 저녁에 약속있어?"
"예?"
"뭘 그렇게 놀라. 약속 없으면 한잔 하자고."
"약속 있어요."
"그래? 아쉽네. 오늘 다 안된다고 그러네."
"아... 죄송해요."
"괜찮아."
차라리 이대리님이랑 술 마시러 가는게 속 편하겠다. 같이 가는 건 예의도 아닌 것같고 내 지갑 사정도 재석이랑 석영이 때문에... 아, 전화해야겠다.
"받아라, 받아라."
[여보세요?]
"석영아. 나."
[주인?]
"응."
[와, 나 이거 처음 받아봐. 짱 신기하다. 주인 여기 안에 들어가 있는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 아무튼 나 조금 늦을 것 같아서."
[늦어? 많이?]
"그건 잘 모르겠어. 너네끼리 저녁 먼저 먹고..."
"주인씨."
"잠깐만. 아, 김대리님."
"전화 중이였어요? 먼저 전화해요."
"예? 예."
[누구야?]
깔린 목소리로 누구냐 묻는데 조금 아주 조금 무서웠다.
"회사사람. 아무튼 먼저 저녁 먹어."
[주인.]
"응?"
[너무 늦지마.]
"알았어. 끊어."
날 쳐다보는 김대리님을 보며 괜히 찔려,
"남동생이 집에 와서..."
"아, 그래요?"
눈을 휘며 웃는 모습을 보고 다행이다, 라고 생각을 했다. 뭐가 다행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 가야할지 모르겠어서 결국엔 근처 맛있다는 돼지갈비집으로 갔다.
"더 좋은 거 드셔도 되는데..."
"이거면 충분해요."
김대리님이 집게를 들어 고기를 구운다. 잔잔한 이야기가 오가긴 하는데 어색한건 어쩔 수 없다.
"마실 거..."
"술 괜찮아요?"
"예? 예."
"소주로."
"네."
소주를 시켜 한 잔, 두 잔 마시니 분위기가 유해진다.
"술이 좋긴 좋네요."
"그러게요."
"주인씨."
"예?"
눈을 똑바로 보는 김대리님에 괜히 눈을 살짝 피하며 대답했다.
"왜 연락 안 했어요?"
"네?"
"연락 기다렸거든요."
"아니, 저기... 김대리님은..."
"저는 그 때 저장이 안 됐더라구요. 이대리님한테 물어보기는 좀..."
하면서 알죠? 라고 한다. 하긴, 이대리님한테 잘못 들어가면 여기저기 소문이 날 수도 있긴하니까...
"전 주인씨 마음에 들어서, 이거 먹어요."
"예, 감사..."
말하면서도 고기 잘 굽는다.
"진지하게 말해야되는데 장소가 좀 그렇긴하죠?"
"아니예요."
"주인씨도 좋은 감정이면 한 번 만나보는 건 어떨까 하고 얘기하는 거예요."
"아..."
"근데 오늘 보니까 주인씨는 저한테 마음이 없는거 알았거든요."
"아니..."
"대신 나 거부는 하지말고 생각해봐요. 보채지 않을게요."
"...예."
밥을 먹고 같이 버스까지 타고 집으로 왔다.
"들어가요."
"예. 조심히 가세요."
멘붕이다. 오늘 좀 늦게 나갈껄... 좀 생활이 편안해졌다 싶으니까 이런일이 터지냐.
"나 왔어."
"왔어?"
"응."
"주인!"
달려드는 석영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살짝 피했더니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는 둥, 주인이 변했다는 둥 난리가 났다.
"석영아. 미안한데 진짜 너무 피곤하다."
"주인 왜그래?"
"피곤하대잖아. 주인, 신경쓰지말고 들어가."
씻는 것도 귀찮다. 지친다. 진짜 몸이 지치는 것보다 정신적으로 지치는게 이렇게 힘들구나. 정말 씻지도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잠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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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죠? 계속 바빠서ㅠㅠ 개강 후보다 개강 전이 더 바쁜 것 같아요ㅠㅠ 젤리님 koogle님 지몽님 키키님 다들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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