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하루 끝에서
찬열세훈
作. 5월의 장미
하루의 달이 지고, 하나로 묶은 머리를 풀고선 커다란 대아에 그대로 따뜻한 물을 한 가득. 그 안에 얼굴을 담고 긴 머리를 푹 담그니 그대로 한 가닥씩 넓게 퍼진다. 지랄 떠네. 엎드려있는 내 등을 콱 밟고 방 안으로 들어가는 민영이의 얇은 다리가 보인다. 머리 좀 잘라, 이 새끼야. 민영의 얇은 목소리가 귓가를 둥둥. 민영이가 신었을 커피색 스타킹이 하늘을 날아 내가 담그고 있던 대아 앞에 떨어진다.
망할 년. 으슬으슬 찬바람이 불어오는 밖에서 붉은 대아 안에 쭈그리고 누워 있는 내 꼴을 보고선 그래도 하나뿐인 오빠라고 따뜻한 물을 내 몸 위로 한바가지 붓는다. 약수터에서나 볼 법한 파란색 바가지. 그리고 푸른 하늘. 푸른 눈동자. 푸른색 운동화. 손톱은 검정색. 하늘 높이 올라갔던 앞머리. 촌스럽던 말들. 그래도 잘생겼던 그 사람.
“찬열이는 안 와”
알아. 망할 것아.
떠나간 박찬열. 버려진 오세훈.
소설로 치면 3류, 영화로 쳐도 3류. 로맨스치곤 너무 짭짤했던 이야기. 아랫도리에 불 붙은 것처럼 만나면 헉헉거리기 바쁘기만 하던 우리. 10평 남짓한 방구석에서 전기장판 없이도 금새 뜨거웠던 우리. 그리고 불처럼, 차가워지자 바로 재가 된 사이. 눈을 감았다가 뜨면 찬열이의 얼굴 대신, 민영이가 보인다.
“차갑잖아! 오민영, 디질래?”
차가운 물을 담아서 내게 붓고선 꺄르르. 이 다닥다닥 붙은 집들에게 다 울릴 정도로 크게 웃던 민영이가 녹이 슨 파란 철문을 바라보고선 한 숨을 쉬었다. 복 떨어진다니까. 대충 손을 뻗어 나만큼이나 하얀 종아리를 찰싹. 그래도 울상이 생긴 얼굴은 쉽게 펴지지 않는다.
“박찬열을 봤어.”
민영이의 말에 나는 점점 식어가는 물 안에서 치던 손장난을 멈추고선 하늘을 쳐다봤다. 환한 햇살이 내려쬐는데 왜 이렇게 추울까.
“여전히 잘 지내더라.”
“응.”
“박찬열이 아직도 좋아?”
내 옆의 자그마한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는 바가지로 따뜻한 물을 내게 붓는다. 다시금 손장난을 시작하며 나는 민영이를 쳐다봤다.
“응. 좋아”
내 말에 입술을 깨문 민영이 바가지를 내게 던졌다.
“돌아올지도 몰라.”
거짓말
“오빨 되찾겠다고 내게 그랬어.”
거짓말. 여전히 박찬열은 거짓말쟁이. 염병. 짧은 욕설을 내뱉고선 녹슨 철문을 밀고선 그대로 민영이는 밖으로 뛰어나간다.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선 나가는 모습이 꼭 나 같다. 혼자 남은 빨간 대아 안에 나는 제일 거짓말쟁이. 너를 잊지도, 보내지도, 버리지도 못한 못난 아이. 머리를 잘라야겠다. 아마 민영이는 그대로 출근을 할 것이다.
술집여자와 병신
사람들은 우리 남매를 그렇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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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턱턱 막혀요. 헬프 미!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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