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니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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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흘러 어느새 2014년 1월 1일에 정착했고 알람을 맞춰둔 시간에 잠을 잘 자지도 못했지만
벌떡 일어나 백현이를 처다보았다. 잘자고 있네. 아직 일어나기는 이른시간 공항에 도착하면 해가 슬슬 뜨겠지.
일어나서 문앞에 정리해둔 스펀지밥 캐리어를 먼저 확인 해 보았다
꿈이었으면 좋겠어서 이 모든게 꿈이고 나는 백현이와 평생 함께 있으려고 그러고 싶어서 꿈이길 바랬건만
내 소망과 다르게 백현이의 스펀지밥 캐리어는 방문 앞에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정리하곤 거실로 나와 주방으로 가 물 한컵을 들이켰다
컵을 씻으려 씽크대로 다가 선 순간 백현이가 유자차와 우유를 담아 마시던 어린왕자 컵이 내 흰색 컵 옆에 세워져있고 그렇게 나와 백현이는
주방에서 마저도 함께 있었다.
"백현아 일어나, 하늘 보러 가야지?"
"으응.."
"빨리이~"
백현이를 흔들어 깨우니 백현이가 평소와 똑같이 작은 앙탈을 부리고 난 또 그러면 백현이를 재촉하고
그럼 백현이가 힘들게 상체를 들어올리고 눈은 여전히 감은 채 꾸벅 꾸벅 앉아서 졸고있다.
이제 진짜 몇시간이야 몇시간 후면...
"아빠.."
"응 일어나! 빨리 씻고 하늘보러 가야지"
"안아주어요"
눈은 여전히 꼬옥 감고 잠에 취해 손만 슬쩍 뻗어 나에게 향한 얇은 팔을 잡아 내 품에 안았다
내 품에 쏙 들어오는 작은 체구와 내 허리를 감싸는 짧은 다리 두개
그리고 백현이 특유의 향기.
백현이를 안은채로 침실에 나와 화장실로 가 꾸역꾸역 씻기고 나까지 다 씻고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침실로 돌아가면 백현이가
그제서야 잠이 깨서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닌다
"나는 하늘가서 참새랑 이야기 할거야!"
"참새랑 친구 할거야?"
"응! 아빠는?"
"어..?"
"아빠는 하늘 보면 뭐할꺼냐구!"
"아빤.."
사실대로 말 해야할까 지금 백현이에게 옷을 입히면서 넌지시 말해버릴까
그러면 백현이가..가기 싫다고 그냥 나랑 살고 싶다고 그렇게 말을 해 줄까..
다시 약해진 마음에 백현이의 옷을 입히던 손이 느려지고 망설임에 입술을 꼭꼭 깨무니 백현이가 내가 입히고 있던 바지를 뺏어 들어 스스로 입기 시작한다
"이제 백현이 혼자서도 바지 잘 입네?"
"응! 나도 한살 더 있잖아"
"맞네..그럼 백현이 4살이다 그치?"
"응!"
백현이 너가 지금 내 나이 아니 정확히 따지면 18살이 될려면 아직 14년.
내가 너를 보며 쓴 육아일기를 보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 14년
혼자서도 바지를 잘 입는 백현이를 보다보니까 조금 쓸쓸한 마음이 들어 괜히 다시 마음이 울적해진다
내 어깨에 기대 균형을 잡으며 내가 바지를 입혀주는걸 기다리던 작은 백현이는 어디가고 불과 몇개월도 안 지난 것 같은데 이젠 스스로 바지도 입는다
내 손길이, 내 도움이 하나둘씩 줄어간다
백현이 너가 나와 함께 있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줄어간다
"빨리 하늘 보고싶다"
"아빠도.."
"아빠 오늘 왜 그래요?"
"왜?"
"아빠 눈이 막..이렇게 이렇게 되있어"
백현이가 손가락으로 내 눈을 가리킨다 그리고선 이렇게 되어있다며 뜻 모를 말을 하고,
어떻게 예상이라도 하는 듯이 백현이 말투가 조금 축 처져있다.
그냥 여행갔다 온다고 생각하자 백현이가 지금보다 더 넓고 좋은 걸 보러간다고 그렇게 생각하자
"너무 신나서, 하늘 보러가는게 안 믿겨져서 그래서 그런가보다"
"아 진짜? 히, 하늘보면 어떨까..."
*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 백현이는 일찍 일어난 이유 때문에 잠이 들어있고,
나는 잠이 든 백현이를 택시 뒷자리에 내 무릎에 눕혀 조용히 배를 토닥토닥 해주고 가만히 처다보고 있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추억을 갖고 싶은데 더이상 욕심 내면 안되는데 지금 잠이 든 백현이만 처다보며 내 머릿속에 그려 넣는다
언제 나중에 백현이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된다면 어떡할까
"도착했어요. 애기 안고 내려요 뒤에 가방 들어줄게"
"네, 감사합니다"
잠이 든 백현이를 안고 택시에서 내리니 슬슬 해가 뜰려고 한다.
날씨가 쌀쌀해 내 옷속을 백현이를 안고 기사 아저씨가 내려준 짐을 한 손에 잡았다.
"2014년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아..네 감사합니다"
인상 좋으신 택시기사 아저씨의 인사에 목례를 잠깐 하고 캐리어를 질질 끌고 한손에는 백현이를 안아 공항 입구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평소에 한 손으로 백현이를 안았을 때는 무겁고 팔이 아팠지만 지금은 하나도 아프지 않다
지금 이 공항으로 들어가버리면 백현이가 2013년과 함께 가버릴까 그렇게 훌쩍 떠나버릴까 겁이 나서 걸음을 더 느리게 걸었다.
"백현아 일어나 하늘 봐야지 응?"
"음..하늘이야?"
"아니 아직 이제 하늘볼려고 왔지"
"우와아.."
백현이를 땅에 내려주고, 공항 안으로 들어왔다
백현이와 내가 같이 맞춘 파란색 아디다스 신발을 신고 쪼르르 뛰어다니는 백현이를 보니 또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아직 안늦었어 이모에게 전화 드려서 죄송하다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그렇게 말 할 수 있어.
"어! 그런데 아빠 가방 안가져 왔어!"
"어..?"
"왜? 깜빡했어?"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백현이가 내 옆에 탁 앉아선 자신의 스펀지밥 캐리어를 만지작 만지작 거리면서
고민을 하는지 턱을 괴고있다.
"그러면 아빠는 하늘 보러 못가겠다"
"응?"
"아빠는 가방 안들고와서 하늘 못 볼것 같아 어떡해.."
"어떡하지.."
"백현이 하늘 많이 보고싶어했는데.. 백현이 혼자..보러 갔다 올래?"
"왜에.."
백현이가 옆자리에 앉아서 울먹이며 나를 처다보고 나는 자꾸 밖으로 나가려는 눈물을 막으며 꾸역꾸역 이야기 했다.
내가 한마디 할 수록 백현이의 큰 눈은 울상이 되었고 눈물이 툭 떨어질까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럼 나두 하늘 보러안갈꺼야.."
"..."
"아빠 안가면 나도 안가 하늘 나중에, 나중에 보면 돼"
"백현아"
"가자 집에"
눈을 옷 소매로 벅벅 비비던 백현이가 눈이 빨개져서는 나를 보고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나도, 나도 다시 집으로 백현이랑 같이 돌아가고 싶어. 집에가서 아쉬워 하면서 내가 백현이 한테 사과하면서 천천히 짐을 풀고
집에서 백현이랑 내 집에서 그렇게 살고 싶은데 그러면 안돼
그 말이 어찌도 내 마음을 콕콕 쑤셨는지 온몸에 힘이 순식간에 빠지고 모든 소리가 멈췄는지 아무런 소리도 안들리고 나를 젖은 눈으로 처다보는
백현이만 조심스레 내려보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아서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
백현이가 못 보게 내가 우는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찬열?"
"..."
"어릴때랑 똑같네!"
어쩜 이리도 적절한 시간에 한참 마음이 망설여 질때 즈음 얼굴을 본 지 4~5년 정도 됬지만 여전히 얼굴은 눈에 익었다.
돌아가신 우리 엄마 언니. 우리 이모
백현이를 키우실 이모...조금 모습은 변하셨지만 엄마와 비슷하게 생기신 외모에 한 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이모?"
"니모?"
"아~ 얘가 백현이구나..언제 한번 보고 싶었는데 지 누나 쏙 닮았네"
"백현아 인사해"
"짐은? 이거 뿐이야?"
"네.."
이모는 엄마와 쏙 닮은 미소로 백현이를 처다보셨고 백현이는 살금 내 뒤로 숨었다.
낯가리던 애가 아닌데...이모는 백현이의 볼을 살짝 꼬집고는 백현이의 스펀지밥 캐리어를 보시더니 물으셨다.
백현이는 내 팔을 꼭 붙잡고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 힘을 썻고 백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머릿속은 더 어지러워 갔다.
짐 처리하고 올게 하시며 홀연히 사라지신 이모는 몇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나와 백현이 앞으로 돌아오셨다.
"이리 와 가자"
"저기..이모 아직 백현이 한테 말 안했어요.."
"아빠?"
"그건 내가 천천히 말 할게. 안갈려고 떼 쓰면 곤란해 져"
"네.."
"아빠, 아빠!"
이모는 내 팔을 잡고 가지 않으려 버티는 백현이를 억지로 나에게서 떼셨고
나는 백현의 작은 손이 더듬더듬 나를 잡는 그 느낌에 고개를 떨구어 죄인처럼 가만히 기다리고있었다.
백현이가 나를 다급하게 부르는, '아빠'라고 밖에 하지 못하는 백현이의 소리에 점점 마음이 이상하게 꼬이고 있다.
이모는 백현이를 겨우겨우 안아들으시고 이제 막 발걸음을 뗄려고 하는 찰나
"아빠!아빠, 가기 싫어! 아빠!"
"..."
"아빠 나 말 잘 들을게 응? 아빠!"
백현이는 이모 품에서 떨어져 살짝 발을 접지른 후 나에게 절뚝절뚝 걸어와선 내 팔을 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매달렸고
가만히 고개를 떨구어 백현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나는 주체 못할 끌어오르는 감정과 누군가 도려낸 듯 아파오는 심장에 내 팔에 매달린 백현이를 안아
빠른시간에 백현이를 내 무릎위로 올렸다.
이모는 그런 나를 처음에 저지 하려다가 가만히 내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셨다
"아빠,..나 정말 백현이 정말 아빠 말 잘 들을게요 "
"백현아 발목 괜찮아..?"
"제발, 제발 나 아빠랑 있고 싶어"
"백현아"
"아빠 나 버리지 마 응?"
내 무릎에 안아 아니 거의 쓰러지듯이 누워있는 백현이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멈추지 않아 방금 그 눈물자국을 타고
내 손등에 백현이의 눈물이 묻고, 백현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와 입을 열며 나오는 아빠소리와 그 목소리, 그리고 그 표정과 젖은 눈빛
애절한 눈빛에서 나오는 모르는 힘에 나도 이끌려 백현이를 안고 주변사람의 시선은 신경쓰지도 않은 채
그냥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그 감정에, 가슴속에서 나오는 감정에 놔버렸다
"아빠가 나중에..꼭..백현이 찾으로 갈게.."
"으응, 그냥..그냥 같이 살면 안돼..? 응 아빠 제발요.."
"찬열아 시간 다 됐다 빨리,"
"백현아 아빠 꼭 잊어버리면 안돼 알았지?"
"아빠, 아빠.."
"가자 빨리"
"아빠!"
이모의 재촉에 하고 싶은 말 전날 밤에 생각해 두었던 말들은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그냥 아무런 말이나 해버렸다.
백현이의 다급한 부름에 답 할수 없어 고개를 떨구었고 허전해 지는 내 두 다리에 백현이는 떠나 이모 품으로 가버렸다.
다급하게 들려오는 백현이의 애절한 목소리에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가 나는 쪽을 살폈지만
백현이를 안은 이모는 점점 더 멀어져갔고 백현이의 목소리 마저도,
품에 안겨 내 쪽을 처다보며 손을 뻗던 백현이의 모습 마저도
이제는 저 끝으로 사라져 없어질 뿐이었다
한번만 더 조금만 더 백현이의 모습을 보고 싶어 달려나간 곳에는 이모는 온데간데 없었다.
누가 그랬는가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은 망각이라고
그 망할 놈의 망각 때문에 고작 그 것 때문에 백현이에게 가장 중요한 말을 못 해준 것 같다
사랑해, 백현아 사랑해 그 말이 왜 생각나지 못하던가
내 팔을 붙잡고 울며 가기 싫다고 나와 같이 살고 싶다던 백현이에게, 불안함과 공포가 가득 찬 그 눈동자에게
왜 난 사랑한다며 많이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던가
삼촌이아닌 아빠가 되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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