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째, 내가 좋아하는 거 알면서도 무덤덤한 민윤기
(부제:무덤덤한 척 하는 거냐, 아님 진짜로 아무렇지 않은 거냐.)
노앤써 윤기
나 반찬 떨어짐.
PM 20 : 38
저녁 무렵, 씻고 쇼파에 기대어 편히 티비를 시청하는 도중 핸드폰 진동이 울려 확인해보니 윤기였다. 반찬이 떨어졌다는 문자를 보고 어이가 없어서 '그래서 이시간에 뭐 어쩌란 말이냐.' 라고 답장을 할까 고민하다가 혹시 이 멍청이가 반찬도 없이 맨 밥과 물로 끼니를 때우는 건 아닐지 걱정이 밀려왔다. 그래 민윤기처럼 복잡한 거 싫어하고 단순한 애라면 불가능 한 얘기도 아니니까. 결국 윤기에게 마음 약해진 나는 하는 수 없이 '내가 무슨 네 급식 아주머니냐!' 라고 일부러 툴툴거리며 답장한 뒤 모순스럽게도 나는 이미 장 보러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늘 보는 윤기 얼굴인데 화장 안해도 괜찮겠지. 아냐 그래도 예의상 눈썹 입술 정도는... 엄마는 갑자기 분주해진 내 모습을 보는 게 익숙한 듯, "또 윤기 반찬 만들러 가니? 우렁각시가 따로 없네 따로 없어." 라며 웃으셨다. ...누군진 몰라도 민윤기 각시 될 사람은 참 불쌍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집 밖을 나섰다.
* *
띵동. 초인종 한번 눌렀더니 윤기가 곧바로 도어락을 풀어 문을 훤히 열어주었다. 그래도 나름 지 생각해서 양 손 가득 장 본것들 바리바리 싸들고 찾아왔건만 왔냐, 라는 말 한번 없이 그렇게 훽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버리는 민윤기였다. 내가 쟤한테 뭘 바래... 힘겹게 장 본것들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설때 다음엔 꼭 안오겠노라 다짐했다. 그래봤자 한달 뒤에 또 오게 될 나인 걸 알지만. 끙끙거리며 힘겹게 짐들을 식탁 위에 올려놓자 괜히 생색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민윤기 너때문에 내 용돈이 식비로 다 나가거든?!대꾸도 없고 나한텐 관심도 없던 민윤기가 봉투에서 비엔나 소세지를 발견하곤 "오, 햄" 하더니 그렇게 세상 반가운 얼굴이 아닐 수가 없었다. 너 솔직히 말해 나 밥줄 삼으려고 친구 하는거지. 민윤기는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어" 하더니 큭큭 웃는다. 곧이어 덧붙이는 말이, "너 없었으면 나 죽었어." 란다. 그와중에 주책 맞게 두근거리는 심장은 또 뭔지. 하여간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에게 져준다는 말이라더니, 그 말 틀린 거 하나 없다.
반찬을 대충 5여가지 종류를 만들어 놓고 반찬 통에 담고 있을 때 쯤 그새를 참지 못하고 옆으로 다가와 날름날름 주워먹는 민윤기에게 저리 가라며 저지를 해도 애초에 말을 들어먹을 리가 없는 윤기란 걸 깨닫자 반찬과 밥을 그릇에 따로 담고 아예 밥상을 차려주기로 마음을 고쳤다.
"야 진짜 맛있다."
멈출 줄 모르는 수저질에 꼭꼭 잘 씹어 먹는 윤기를 보니 금새 힘든 것이 싸악 풀리는 기분이었다. 잘 먹는 윤기 앞에 마주보고 앉아 그가 밥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따로 뭘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 이라고 한다면 내가 너무 주책 맞아 보일까. 그나저나 윤기는 뭘 먹는 모습도 잘생겼네. 하얀 피부에 반질반질한 붉은 입술에, 성격은 조금 ...손이 부들부들 거리게 할 때가 많긴 하지만 이젠 뭐 너무 익숙해져서 화가 나지도 않네.
그러고보니 내가 민윤기 좋아하게 된 지 올해로 벌써 5년째다. 고등학생 때 처음 만난 민윤기는 까칠하고 제 멋에 살고,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전교권을 놓친 적이 없었던 모범생이었다. 지민이 덕분에 친구 먹게 된 윤기였지만 정말 이상하게 날이 갈 수록 다른 남사친들과는 달리 윤기에게서만 느껴지는 묘한 감정이 나도 모르게 자리잡고야 만 것이다. 2년째 짝사랑을 열렬히 앓다가 열아홉 되는 새해 첫 날에 용기내어 고백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차이고 말았고. 그 이후에도 민윤기는 내가 고백했다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아-주 꺼림칙없이, 나를 친구로 대해주었다. 그리고 그 때 난 생각했다. 아, 민윤기는 내가 돌로 느껴지는 구나. 그 때 그렇게 생각해놓고 왜 여태까지 계속 혼자 만의 짝사랑은 멈추지 못 한 건지 내 자신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주위사람들도 여전히 민윤기를 좋아하는 나를 보며 그렇게 헌신하다가 헌신짝 된다고 안쓰럽게 바라본다. 뭐, 아무렴 어때. 내가 민윤기를 그냥 좋아한 게 아니라 아예 답도 없는 민윤기 바라기가 되려고 작정을 했나보지 뭐.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짓을 하고 있는거지... 그렇지... 응...
"너 얼굴 보면 체 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보지마."
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민윤기가 반찬을 집으면서 무심히 말을 툭 내뱉는다. 저게 말이라도 예쁘게 하면 증말... 기가 빠지는 듯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 예에, 체 할 것 같으면 얼른 치워드려야죠." 하며 의자에 놓여진 외투를 걸치곤 나갈 준비를 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10시 가까이 되는 한밤중이었다. 윤기야 나 간다. 인사해도 답하지 않을 것 같았던 그가 갑자기 바지 주머니를 주섬거리더니 식탁 위에 신사임당 한 장을 올려놓는다. "차비 해." 시선은 분명 내게 향하지 않은 무심한 그였지만 나름대로 저를 생각해준 듯 보였다. 가끔가다 저렇게 츤데레스러운 윤기를 볼 때면 설레는 마음 티내지 않으려고 괜시리 퉁명스럽게 "됐거든." 이라고 대답이 나간다.
"됐다면서 챙기는 거 봐라."
"니가 준 거니까 마다하진 않을려고 히."
잘 가라. 그 와중에도 윤기는 뒤도 안 돌아보고 열심히 밥만 먹을 뿐이었다. 누가 자기 할 일에만 집중하는 성격 아니랄까봐, 사람이 가는데도 배웅은 커녕 굳이 일어서지도 않고 꿋꿋하게 밥을 먹는 윤기다. 귀찮으니까 빨리 가라는 뜻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좀 서운하긴 하지만. 내가 아는 윤기는 원래 이런 애였으니까 뭐. 신발을 바르게 신고 문을 열려고 하는 찰나 그가 식탁 너머로 뭐라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야 9339#. 앞으로 나 없을 때도 집와서 반찬 좀 해놓고 가."
"....저게 진짜 차라리 출장뷔페를 불러라!"
"니가 해준 게 제일 맛있는데 뭐하러."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민윤기의 그 한마디가 귓가를 간질거리는 기분이었다. 아니, 잠깐만. 아무한테도 알려주지 않는 집 비밀번호를 나한테 알려준거야? 민윤기가? 민윤기가아아? 윤기는 아무 생각없이 툭 내뱉은 립서비스였을 지 몰라도, 그 한마디에 괜히 좋아서 배시시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다가 저건 민윤기의 함정일 뿐이라며 냉정하게 생각하자고 내 이성에게 외쳤, ...지만. 이미 이성이고 나발이고 민윤기에게 두 손 두 발 든지 오래인 나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참나, 알았거든. 히히히."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어버렸다. 민윤기가 미쳤냐, 음흉하게 웃어 왜. 라고 되물어도 이미 나는 민윤기가 이전에 한 말만 듣고 귀를 막아버린지 오래다. 오늘 아무 말도 듣지 말아야지. 윤기가 한 말 잊어버릴라.
* *
과 모임... 과 모임...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다. 신입생이랑 친해질 겸 과 사람들끼리의 친목을 다지기 위함이라고는 말 하는데... 말만 그렇지 그냥 입만 한번 열면 술 한잔, 또 한마디에 한잔, 그냥 단체로 술판 벌이자고 하면 될 것을 꼭 저렇게 포장해야 되나 싶기도 하다. 참석 하고싶지 않은 자리지만 이럴 때 꼭 눈치 없는 복학생 선배들이나 과탑은 한 명도 빠지지 말라며 눈치를 주는 탓에 빠질래야 어떻게 빠질 수가 없는 자리였다. 똑똑한 아이들은 미리 구비해둔 각종 약봉지와 함께 아프다는 티를 팍팍 내며 인증샷을 보내오지만 나 같이 미리 준비성 없고... 또, 별다른 잔머리도 굴러가지 않는 불쌍한 아이들은 모두 참석한다는 의사를 전해야만 했다. 다행히 윤기가 있어서 그나마 과 모임에 갈 이유가 생겼지만은.
야 윤기야 윤기야 민윤기 너 언제와?
PM 20 : 12
세상에 모임시간 한시간이 지나도 윤기는 오질 않는다. 설마 안 오는 건 아니겠지 하며 불안한 마음에 급하게 윤기한테 문자를 보냈더니 답장도 안 온다. ...내가 누구 때문에 왔는데! 민윤기가 오지 않을 거라곤 왜 생각을 못 한 걸까. 애초에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싶어서 스스로 부정한 건지도... 아, 아니 그것보다. 진짜 얘가 안 온다고 하면 어쩌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내게 "윤기는 안 와?" 라며 묻는 선배의 말에 일단 "올.. 걸..요?" 하고 대충 대답을 얼버무렸다. 때 마침 외모 원탑 오신다며 선배들이 환호를 하길래 살짝 기대감에 가게 출입문을 쳐다봤더니 누가봐도 나 잘생겼소. 하며 이목구비 자기주장을 심하게 하는 웬 새내기 한명이 들어왔다. 너무 유명해서 왠만한 사람들은 이름을 다 알 정도였다. 김태형이라고 했었는데. 그나저나 너 이자식 민윤기.... 왜 안 오는 것이냐...!
"누나 옆에 앉아도 될까요?"
귀엽게 생긴 새내기가 왜 굳이 내 옆에 앉으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그냥 출입문에서 가까운 자리이기도 하고 대충 보이는 자리가 여기 뿐이라고 치자. 내 옆자리는 윤기가 앉을 자리라며 아쉽게도 거절... 하기는 무슨. 불편하긴 해도 아무도 안 앉을 바엔 누구라도 앉아주면 그냥 고마워, 하고 자리를 내어주는 거지. "그래." 대답하기 무섭게 새내기가 감사합니다, 하며 옆에 와 앉는다. 인사성도 바르고 귀여워서 과 사람들이 예뻐해주는 가 보다. 태형이에 대한 무의식은 이쯤에서 접어두기로 하고, 아니 윤기야... 안 오면 안 온다고 답장 좀 해주겠니.
"거의 온 거 같은데 그냥 마시자. 모두 잔 들고 건배-!"
허어, 이거 참. 몇 분이 지나도 등장하기는 커녕 답장도 없는 민윤기가 야속하게만 느껴질 때 쯤 옆에 앉아있던 태형이 누나 하며 말을 걸어온다. 응? 하고 대답했더니 술을 잘 못 마시냐며 되묻는다. 그렇기도 하고, 별로... 안 좋아해서. 마치 의외의 대답을 받았다는 듯 태형이가 아 그래요? 놀란 듯한 표정을 짓는다. 네가 그러니까 꼭 내가 무슨 술만 달고 사는 사람 같잖니...
"사실 나도 술 잘 못마셔요."
"으음... 그렇구나."
"누나 나랑 게임할래요?"
"응? 어떤 거?"
"야 게임은 다 같이 해야 재밌는 거지! 같이 해 같이"
앞에서 떠들며 웃고있던 선배가 그와중에 우리가 하는 말은 어떻게 들었는지, 게임은 다같이 해야 재밌는 거라며 술 병 마개를 들고 꼭지 날리는 사람 한 잔 원샷하기! 라며 분위기를 만들었다. ... 보면 저런 게임에서 난 꼭 재수없게 걸리던데... 그냥 눈치껏 빠질까? 했지만 옆에 있는 태형이까지 좋아요! 누나 같이해요. 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차례를 정하는 가위바위보를 했다. 6번째라는 순서가 왠지 모르게 '넌 마실 운명이야...'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눈뜨고 내가 당첨되는 꼴은 지켜볼 수가 없지!
"야! 핰하하 김여주 걸렸다 걸렸어!"
"....."
... 는 무슨~ 정말 보기 좋게 걸리고 말았다. 다들 뭔 힘이 그렇게들 쎈지, 오늘같은 날만을 벼르면서 손가락 힘을 키우셨나. 거침없이 잔에 술을 따르는 선배의 손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제 그만 멈추라고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지만 1도 통하지 않았나 보다. ...잔 끝까지 탈탈 털어 넣어야 속이 후련핸냐아아아-! 모두 내게 시선을 꽂으며 원샷하라고 박수를 친다. 옆에 앉아 있는 태형이도 누나 멋있어요 하며 바람을 넣는다. 이렇게 된 이상 과감하게 잔을 쭈욱 들이키고 마치 내게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태연한 척 해보려 했지만 곧이어 쿠헥, 컥, 크흡 하고 터져나오는 기침으로 인해 아주 우습게 실패했다. 태형이가 누나 괜찮아요? 하며 생수를 컵에 따라 내게 권유한다. 이와중에도 민윤기 생각이 나서 윤기가 태형이 같은 성격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아니다, 뭔가 매칭이 안 되기도 하네. 윤기는 그냥 윤기다운게 제일 좋긴 하다. 오늘같이 지 혼자만 쏙 안 나온 것 빼고는.
* *
"미늉기이이이!!!! 야아아!!!! 너 혼자만 안 나오니까 죠아아아?"
"누나, 잠깐만요 전화 그만! 집 어디예요?"
태형이가 술에 잔뜩 취한 여주를 부축하곤 택시 정거장으로 향했다. 어쩌다 자신이 이 누나를 책임지고 부축하게 되었는진 모르겠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몇 잔 안 마셨는데도 제대로 취하셨네... 끙끙 거리며 눈 앞에 보이는 택시를 잡곤 먼저 여주를 조심스레 차 안으로 넣는 태형이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하는 아저씨의 물음에도 태형은 난감한 듯 잠시만요, 하고 한참 전화기 너머로 행패를 부리는 여주에게 누나, 집 어디예요? 라고 물었다. 여주는 미늉기 왕재수를 연신 외치다가 태형의 물음에 응? 방배 2동... CU... 옆 골목... 하고 헤실헤실 웃었다.
이미 여주에게 전화가 걸려왔을 때 부터 윤기는 느낌이 쎄 했는데, 첫 마디가 미늉기- 하고 발음이 꼬부라진 걸 보아하니 윤기는 역시나 하고 눈치 챌 수 있었다. 아, 술도 못하는 게 괜히 술 먹고 난리야. 짜증 섞인 윤기의 말투에 여주가 서운한 듯 미늉기 왜 안 왔냐, 내가 을마나 기다렸는데. 라며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여주의 전화 너머로 윤기의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지가 애도 아닌데 집 쯤이야 잘 찾아갈 수 있겠지. 하며 아랑곳 하지 않고 끊으려던 윤기가 전화기 너머로 '누나 집 어디예요' 라는 소리가 들리자 자기도 모르게 손이 멈칫했다.
"누나, 누나 다왔어요. 천천히 내려요. 옳지."
"고마워 태형아 나 안 취해써. 여기 울집이야. 이제 드로가, 잘가아"
안 취하긴요. 거하게 취하셨는데요. 편의점 의자에 앉아 우리집이라며 아예 엎드려 잠을 자려는 여주를 다시 똑바로 일으켜 세우곤 태형이 안되겠다며 여주를 등에 업었다. "여기 골목 어디에 있어요 누나?" 여주는 아주 자연스럽게 윤기의 자취방이 있는 빌라를 가리켰고 태형은 여주를 다시 들쳐 업곤 윤기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윤기가 먼저 끊어진 전화를 보고 다시 여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윤기의 답답함 또한 늘어갔다. 먼저 난리 부르스를 떤게 누군데 이번엔 또 왜 안받고 난리냐. 긴 통화 연결음 끝에 전화가 끊어지기 직전 '어! 미늉기다!' 하는 평소보다 텐션이 업 된 여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어디야 집 가는 길 맞아? 답지않게 급하게 캐묻는 윤기에 여주는 '이제 다와써, 늉기 내 걱정해?' 하며 웃었다. "뭔 잡소리야. 다른 사람한테 망나니 짓 할까봐 그러는 거 거든. 빨리 집에 들어가." 라며 역시 윤기 다운 대답이 들려오자 여주는 또 한번 웃었다. 늉기야, 히. 끊어 나 다와써. 엄망 문열어줘-!
분명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왜이렇게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걸까, 윤기는 잠시 고민을 하다 전화기를 귀에서 멀리 떼어내곤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이내 엄마! 엄마-! 하며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돌겠다 진짜로. 머릴 쓸어 넘기며 전화를 식탁 위에 올려 놓은 윤기가 문 앞으로 다가갔다. 도어락을 풀자 '어! 늉기야 왜 우리집에 이써?' 하며 바보같은 소리를 남발하는 김여주와 그녀를 업고있는 게 꽤 힘겨워 보이는 김태형의 모습이 보였다. 문을 열자 아주머니가 아닌 제가 보여서 꽤 당황한 듯한 태형이 '어? 형이 왜 여기 계세요?' 라며 웃긴 질문을 해왔다. 윤기가 "당연히 우리집이니까" 라며 뭐 그런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하는 건가. 싶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얘 나한테 넘겨."
"헐, 설마 여기서 재우려고요?"
"그럼 뭐 어떡하냐."
"아무리 그래도 여자가 남자 집에서 막 자고 그러면 안되는데..."
"얘가 어딜 봐서 여자냐? 그냥 짐승이지. 봐, 술에 꼴아갖곤."
윤기의 말을 듣고 그와중에 대꾸할 정신은 있나본지'너도 남자 아니거드으응!' 하며 발끈하는 여주였다. 태형이 하는 수 없이 '들어가도 돼죠?'라는 말과 함께 등에 업힌 여주를 소파 위에 눕혀주었다. 정신을 못 차리고 헤롱 거리다 여주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중얼 거리더니 금방 잠에 들어버렸다. 태형이 한숨을 돌리곤 윤기에게 '형이라면 꽤 믿을만 하겠네요' 하며 신발을 고쳐 신는다. 허, 뭔소리냐 그건. 생각할 수록 어이가 없는 윤기였다.
태형이 떠나고 난 뒤 윤기는 쇼파 앞에 서서 지금 여기, 눈을 감고 잠에 든 여주를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귀찮게 하네 김여주." 말은 그래도 따지고보면 매일 여주를 귀찮게했던 건 오히려 저라는 걸 잘 알고 있었던 윤기였다. 침대에서 이불을 가져와 덮어주곤 조심스럽게 여주의 신발을 벗겨주는 윤기였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토할 거 같다고 분명 날뛸 거 같은데. 윤기는 식탁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을 가져와 '콩나물 국 끓이는 방법'을 검색했다. 남들이 보기엔 간단한 레시피여도 요알못인 윤기에겐 혼란 그자체였다. 이 나이 먹도록 요리 해본 거라곤 라면 뿐인데 내가 얘 떄문에 별 짓 다 한다 진짜. 윤기가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분명 내일 아침 제가 해놓은 국을 보며 "윤기야 너 웬일이야!?" 하고 좋아할 여주를 상상하니 입꼬리가 근질거렸다. 윤기는 먼저 냉장고에 재료가 있는지 체크했다. 콩나물 있고, 소금, 고춧가루, 다진 마늘 오케이. 이미 마음만은 최고의 요리사가 된 듯한 윤기는 뿌듯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이불도 없이 휑해서 좀 춥긴 했지만, 저거 감기 걸리는 것 보단 훨씬 낫다며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안녕하세요 귤입니다! 첫글이라서 즈엉말 쓰면서도 이게 잘쓰고 있는건가 긴가민가 하네요...하하하...
내용이 매끄럽지 않고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이해해주시길 바라며,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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