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그만 받기를 설정한 글입니다
W. 정국에 뷔 예보
회상 上
정국은 어릴 적부터 머리가 좋았다. 영재 혹은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자라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 미술이면 미술. 그런 그를 뒷받침 하는 건 집 안의 재력이었다. 4살 시절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고, 7살이 시절에는 토론 대회에 나가 1등을 해오기도 했다. 아버지는 의원님이라 불리었고, 어머니는 교수님이라 불리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가방을 울러매는 시간동안 1등이라는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 모든 어른들에게 신뢰는 얻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모두 정국을 좋아했다. 제겐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님의 기대를 가장한 압박감 때문에. 그렇게라도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어주던 부모님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해야만 사랑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라도 사랑이 받고 싶었다. 공부에만 삶을 매진하다 보니 그의 주변에 친구라는 존재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다가오더라도 저의 집 안 돈을 보고 다가오는 속물들이라 여겼다.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하지 아니했고, 혼자 있는 것을 즐겨했다. 의도치 않는 제 성격 탓이지만. 어릴 때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서툰 사람이었다, 정국은.
" 이름이 정국이랬나? 되게 얼굴이 낯이 익다, 너. "
" ……. "
" 아니 일주일동안 이렇게 말을 걸었음 한 번 정도는 답을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님, 벙어리냐? "
사람과 단절된 세상에서 살아오던 정국에게 다시 손을 내밀었던 건 탄소였다. 고등학교 입학 직후, 정국을 졸졸 쫓아다니며 귀찮게 했었다. 정국의 옆자리를 고집하며. 공부를 하고 있을 때면 옆에 앉아 조잘거리기 바빴고, 점심시간만 되면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정국의 앞자리를 차지해 같이 먹곤 했다. 정국은 그런 탄소가 귀찮았고, 싫었다. 저와 다른 부류의 아이였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고, 욕을 즐겨했으며 가끔씩 알싸하게 풍겨오는 담배 냄새가 싫었다. 꼭, 그놈들이 생각나서. 부딪히고 싶지 않아 무시했다. 언젠간 다른 놈들처럼 재수없다고 욕하며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정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탄소는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았다.
" 너 근데 피부 관리 받으러 다니냐? 피부 씹 좋네. 나보다 더 좋은 듯. "
" ……하. "
" 어, 한숨 쉬었다! "
" 야, 넌 자존심도 없냐? 난 너같은 년들이 제일 싫으니까 좀 꺼지라고, 내 앞에서. "
" 헐, 대박. "
" ……. "
" 욕하는 거 존나 섹시해……. "
정국은 그때부터 탄소가 미친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더 철저히 무시했고, 없는 사람인냥 취급했다. 다른 날과 다름없이 야자를 마친 정국이 제 옆에서 꾸벅꾸벅 조는 탄소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그를 지나쳐 무심하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애초에 공부와 거리가 먼 탄소가 야자에 빠지지 않기 시작했던 이유는 정국이었다. 그저 그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꾸벅 졸다 책상과 머리를 박아 잠에서 깼을 땐, 이미 정국이 자취를 감춘 후였다.
" 아, 존나 정없는 새끼. 그래도 좀 깨워주고 가지……. "
탄소는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뭔 놈의 사내 새끼가 저렇게 철벽을 쳐? 좀처럼 넘어오지 않는 정국을 욕하면서도 떠오르는 얼굴에 두 볼을 붉혀댔다. 쓸데없이 존나 잘생겼어.
탄소가 정국에게 다가간 이유라 하면, 단지 처음은 호기심이었다. 잘생긴 애 하나 꼬셔서 사겨보자. 뭐, 이런? 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 저를 이렇게 대했던 사람이 있었나 싶었다. 열의 다섯은 예쁘장한 탄소의 외모에 사족을 못 써 넘어왔고, 또 남은 다섯은 드센 성격의 탄소가 무서워 마지못해 넘어오곤 했다. 근데 정국은 그 둘 모두에 해당이 되지 않으니 더 궁금했다. 잘생기고 뭐 하나 빠지는 거 없는 놈이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불쌍하기도, 가엽기도 했고. 그렇게 저에게 넘어오지 않는 정국에게 오기로 다가가기 시작한 마음은 어느 새 저도 모르게 커져버렸다. 내가 진짜 이 놈을 좋아하고 있구나, 라고.
* * *
정국은 어느 순간부터 그저 귀찮게만 여겨졌던 탄소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하루 종일 쫑알대며 시끄럽게 굴어야 할 이가 엎드려서 일어나지 않는 건 물론이고, 밥을 먹으러 갈 시간에도 요지부동으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조용한 걸 좋아했고, 더이상 저를 귀찮게 하지 않기를 바랐던 정국이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거슬렸다. 교실을 빠져나가려다 계속해서 시선이 끌리는 탓에 하는 수 없이 신경질적이게 머리를 헤집고 탄소에게 다가갔다.
" 야. "
" ……. "
" 야, 김탄소. "
불러도 대답없던 탄소는 두어 번 더 부르고 나서야 몸을 부시시 일으켰다만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의도치 않게 흘러내린 눈물들로 범벅되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정국이 놀라 어깨를 붙잡았다. 하루 종일 옆자리에 앉아서 애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몰랐다니. 정국은 저를 자책하며 급하게 탄소의 얼굴을 살펴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탄소는 코를 훌쩍이며 울망한 눈으로 정국을 올려다봤다.
" ……전정국. "
" …야, 너. "
" 나 아파. "
" ……. "
" 나 아픈가 봐. "
" ……. "
"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나…. "
이상하게도 그때 정국은 미치도록 심장이 뛰었더랬다. 귀 끝이 빨개지고, 저를 빤히 쳐다보며 훌쩍이던 탄소의 두 눈을 마주보지 못하는 제가 낯설었다. 정국은, 사랑을 받는 것 만큼이나 주는 것도 서툴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두려워 했다. 탄소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도, 그런 탄소를 사랑하게 되는 것도.
그 뒤로 정국은 변했다. 저와 탄소만 모르게. 탄소가 묻는 말이면 줄곧 대답을 해주었고, 탄소가 웃을 때면 저도 모르게 따라웃곤 했다. 주변 사람들은 정국을 보며 하나같이 의문을 품었다. 쟤가 저렇게 웃을 수 있던 애였나? 저렇게 웃음이 많던 애였나? 쟤도 웃을 줄 아는 구나. 정국은 어느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오직, 김탄소라는 사람으로 인해.
" 어, 너 방금 웃었다. "
" 지랄. 내가 언제. "
" 뭐래.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거든? "
" 안 웃었다고. "
" 별거 아닌 걸로 지랄이야. 웃었음 웃었다고 하면 되지. "
" ……. "
" 그냥, 예뻤다고. 좀 자주 웃어. "
" ……너도. "
" 뭐라고? "
" 아무 말 안 했는데. "
" 아, 어. "
저를 흘겨보며 앞서가는 탄소를 보며 또 한 번 웃어버렸다. 빨리 따라오라며 소리를 빽 지르는 탄소의 옆으로 다가가 걸었다. 정국은 문득 생각했다. 내가 남으로 인해 웃어본 기억이 있었던가. 그런 것들을 따질 새도 없이 정국의 어느 새 제 일상들에 행복했다. 그 하루하루가 소중했고, 잃고 싶지 않았으며,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 * *
5월 중순. 더운 여름. 다른 날과 다름없는 하루였다. 아침 일찍 학교로 온 정국을 향해 밥은 챙겨먹었냐며 좀 챙겨 먹으라고 툴툴거리면서 잔소리를 해대다가 빵 하나 건네는 탄소도, 수업하는 내내 정국의 얼굴만 뚫어져라 바라보느라 정국에게 핀잔을 듣는 탄소도, 점심시간에 밥을 먹을 때면 은근슬쩍 정국의 식판에 있는 맛있는 메뉴들을 가져가 입에 넣는 탄소도, 밤 늦게까지 야자를 하는 정국의 옆에서 열심히 졸아대던 탄소를 깨워 집으로 데려다주는 것도. 어느덧 정국과 탄소의 당연한 하루의 일상들이었다. 연신 하품을 하며 목을 긁적이는 탄소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정국이 탄소의 집 앞을 데려다주고 나서야 발걸음을 돌렸다. 탄소가 손목을 잡아채는 바람에 다시 몸이 돌려졌다만.
" 그냥 가게? "
" 뭐. "
" 그냥 가냐고. "
" 그러니까 뭐. "
" 존나 무드없는 새끼. "
" 야. "
" 네가 안 하면 내가 하지, 뭐. "
그대로 까치발을 들어 정국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고 떨어지는 탄소였다. 손은 잡은 적도, 그렇다고 포옹을 해본 적도 없는 둘이었다. 뭐, 물론 그럴 사이도 아니었다만. 그렇다고 시도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늘 탄소가 정국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손을 잡으려고 할 때마다 귀신같이 알아챈 정국이 머리를 밀어내곤 했다. 그때마다 투덜거리는 탄소에 또 웃음짓는 정국이었고. 입술을 맞대고 떨어진 탄소가 배시시 웃음 지어보였다.
" 하고 싶었어, 뽀뽀. "
" ……. "
" 조심해서 가라? 오늘도 데려다줘서 감사. "
정국은 한참 귀 끝이 빨개져 벙 쪄 있었다. 손을 휘휘 저은 탄소가 집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야 정신이 들어 저를 향해 젓는 팔을 잡아당겨 그대로 탄소를 품에 안았다. 갑작스레 안긴 정국의 품은 한 없이 따뜻했고, 포근했다. 땀이 유독 많은 정국이라 여름엔 누군가와 부딪히는 것 조차도 싫어했다. 그럼에도 온 몸으로 탄소를 끌어안았다. 혹여나 놓칠 새라, 도망갈 새라 꼭 부등켜 안고 있는 정국에, 멍하니 있던 탄소도 어느 새 정국의 허릿춤을 끌어안고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 내가 그렇게 좋냐? "
" 아니. "
" 구라치네. 그럼 난 왜 안아? 재수없어. 그래도 난 너 좋아. "
"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진다던데. "
" 야, 나도 알 거든? 그래서 맨날 내가 지잖아. 자존심 상하게. "
" 이젠 내가 질 것 같네. "
가로등 등불 하나 켜진 그 길거리에 마주 안은 둘 사이에 작은 목소리 조근조근 내뱉는 정국의 그 고백들이 간질거렸다. 정국의 말 하나하나에 탄소는 더욱 정국을 끌어안았고, 정국은 서툴게 팔을 올려 탄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좋아해. 네가 생각하는 거 이상으로. "
무더운 여름, 사랑을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서툴었던 정국에게 뒤늦게 찾아온 봄이었다.
* * *
ㅠㅠㅠㅠㅠㅠ여러분.. 제가 너무 늦게 왔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를 매우 치세요! 죽여버려도 좋아요! 어서! 나를! 죽이세요ㅠㅠ
오늘 화에서는 과거의 정국이와 여주가 서로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 그런 걸 담아보았어요. 틀어지게 된 계기는 아마 중편이나 하편에..
그리고 암호닉은 회상! 과거편이 다 끝나면 그때 받을게요ㅠㅠㅠ 그때가 아마 시간이 널널하게 제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서ㅠㅠㅠㅠㅠ
늘 봐주시는 우리 독자님들 너무 감사해요ㅠㅠ 요즘 추운데 꼭꼭 껴입고 다니시기! 감기 걸리면 고생이에요.. 오늘도 사랑합니댜 ♡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지금은 암호닉 안 받아요ㅠㅠㅠ!!!! 회상편 끝나면 받을게요!!!
♡ 제 마음 훔쳐간 양아치들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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