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이 다가오고 날씨는 굉장히 추워졌다. 옷을 겹겹이 입어도 덜덜 떨리는 겨울날에 다 큰 백련이는 괜찮겠지만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끼들은 이 추위에 따뜻한 엄마 품에서 나오기 싫은건지 얼굴도 내비춰주지 않았다. 일주일째 아기 강아지들을 구경도 못해 본 순자는 오늘 일어나자마자 백련이의 집으로 달려 온 것이다. 눈을 빠꼼히 뜬 하얀 새끼들이 다시 백현이의 품으로 고개를 묻었다. 저 작은 것들도 살겠다고 버둥거리는게 영 사랑스러운 순자였다.
"응?"
백련이의 집안을 구경하던 순자는 다른 새끼들과는 달리 꼼짝도 하지 않는 놈을 발견했다. 바들바들 떠는 것을 보니 저도 추워하는게 분명한데 움직이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다른 새끼들에 비래 몸집이 유달리 작은 것도 영 신통치 않았다. 순자는 손을 개집 안으로 집어넣었다. 엄마품속으로 들어가라는 의미로 강아지의 엉덩이를 살살 톡 쳐주는데도 가만히 있는데, 그 모습이 불안해서 순자는 별 수 없이 그 강아지는 잡아 꺼냈다. 그러고 보니 눈도 잘 못 뜨고 눈곱도 껴있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순자는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오늘은 참 많이도 달리는 순자였다.
"할매!! 할매, 이 개시키 좀 보소!!!"
순자는 두 손으로 강아지를 감싸고 방으로 들어갔다. 뭔 호들갑이여- 하며 순자를 나무라자, 얼른 강아지를 할머니에게 내보인 순자는 어뗘? 하고 물었다.
"오래 못 살겄네."
"뭔 말이여, 할매!!"
"이 놈은 날때부터 비리하더니 안디여. 정주지말고, 큰개새끼한테 갖다줘부러."
"백련이 고년, 신경도 안쓴단 말이여!"
"그럼 그냥 내비둬! 지어미도 버린 새낄 뭣헐라고!"
"내가 살릴껴!!!"
순자가 소리를 냅다 지르고 강아지를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순자는 속상했다. 작은 몸으로 가쁜 숨을 내쉬는 백구가 너무 안쓰러웠다. 건넛방에서 "거 쓸떼없는 짓 하지 말어!!" 하는 할머니의 소리가 제 문지방을 넘자 순자는 문을 쾅 닫았다. 따듯한 바닥에 백구를 놔뒀다. 저도 몸이 아플 때 할머니가 방을 뜨끈뜨끈하게 해주셨고, 그 다음 날 바로 나았으니 분명 이 백구도 나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엄마 백련이도 버린 백구가 꼭 자신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순자에겐 할머니라고 있었지만 백구는 아무도 없으니까.
"꼭 살어. 백구야."
내가 너 키워줄텐께. 순자는 백구의 작은 머리통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백현아!! 이놈의 개스끼!! 이거 어쩔껴!!!"
오늘도 순자네 집은 시끄러웠다. 그 날 이후 백구는 무럭무럭 자랐다. 백현이라는 제법 사람 같은 이름도 붙여줬다. 백련이와 그 새끼들은 백현이를 인정하지 않는 건지 무리에 끼워주지도 않아, 언제나 순자와 함께였다. 여전히 형제들에 비하면 턱없이 작기는 했지만 애교도 부리고, 다리가 짧아 슬프긴 하지만 달리기도 아장아장 잘하고, 먹기도 잘 먹고, 말썽도 잘 부렸다. 오늘처럼.
"여기 말린 것들 니가 다 먹은 것 이제? 엉덩이 맞아야 되겄네! 일루와! 안와?!"
순자는 사자후를 내뱉을 할머니를 생각하며 머리를 잡았다. 또 백현이가 먹은 것을 알면 호되게 야단을 칠 것이 분명했다. 방에 애를 데리고 가 벽에 몰아세우고 머리를 몇 번 때리다 백현이가 낑낑대며 할머니의 손등을 작은 혀로 핥으며 또 애교를 부리면, 할머니는 또 어쩔 수 없이 질 수 밖에 없고. 그럼 나머지 화살은 다 순자의 것이 분명했다.
"너 잡히면 혼쭐을 내줄 것이여!"
순자는 백현이를 쫓아갔다. 아직 몸이 작고 약한 백현인 좀 달리다가 힘이 부치는지 달리는게 시원찮았다. 요놈! 잡았다! 하며 순자가 팔을 뻗은 순간 백현이는 작은 몸을 마루 아래로 숨겨버렸다. 마루사이에서 백현이 앙! 하며 순자를 향해 짖었다. 어째 그 모습이 얄미운 순자였다.
"이놈의 개새끼! 은혜를 원수로 갚어?!"
어쨌든 순자는 백현이가 건강해서 다행이었다.
"순자야!"
"왜, 할매!"
밥 먹으라는 할머니의 우렁찬 목소리에 순자가 달려갔다. 역시나 그 소리에 제일 먼저 튀어나간 건 백현이. 순자가 왔을 땐 이미 하얀 털이 복슬복슬 난 엉덩이를 씰룩이며 자신의 밥그릇에 얼굴을 묻고 미친듯이 흡입하고 있는 백현이가 있었다.
"오메- 잘 먹는거. 많이 묵거라."
순자가 백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숟가락을 들었다. 조촐하지만 맛있는 저녁이었다.
"너 요새도 뒷산에 가는겨?"
"백현이 산책시키고, 거기 먹을 수 있는 풀떼기들도 많으니께."
"앞으로 가지 말어."
"와 그런댜?"
"요즘 호랑이가 내려온다는 것 같구먼. 저어기 김씨할배도 당혔어. 다행이 목숨이야 건졌지만. 밭이랑 울타리는 다 무너지고, 닭장에 닭이 한 마리도 없다는구먼."
"할배가 실제로 본것이여?"
"그렇다니께."
토박이인지 몸집도 엄청나게 컸다고 하는구먼. 우리 집 한 채만 할거여. 에이- 할매 그건 좀 아닌 것 가텨. 아무튼 이 년아, 조심 좀 허라고.
하는 할머니의 말을 들은게 이틀 전이었다. 정말 소문이 맞는 것인지 자주 가던 뒷산에는 쑥이나 약초를 캐러 오는 사람들이 한명도 없었다. 뒤따라오는 백현이를 보며 "아따- 사람 없으니 이렇게 좋구먼-" 하고 순자가 웃었다.
"백현이 너도 좋제?"
앙!
순자는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초록 풀밭에 털썩 누웠다. 따라오던 백현이는 누워있는 순자의 주위를 뱅뱅 돌다가 어디론가 달려갔다. 어디가! 하는 순자의 외침에도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가던 백현이 갑자기 멈췄다. 뭔가 하는 듯 하더니 다시 달려오는 백현이의 입에는 분홍 꽃이 물려있었다.
"나 주는 것이여?"
순자가 손을 펴자 백현이 꽃을 손바닥위에 올렸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놈인 줄 알았는디, 요런 깜찍한 짓을 한단 말이제?"
순자는 백현이의 몸을 들어 제 배위에 올려놨다. 꽤 포근(?)한지 백현이가 뱃살을 발로 꾹꾹 밟다가 엎드려 눈을 감았다. 바람도 살랑살랑. 햇빛과 얼굴을 가려주는 그늘. 배위의 백현이와 손에 있는 꽃. 평화로운 날이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잠이 들었던 건지 순자가 눈을 번쩍, 하고 떴다. 배 위에 있어야 할 백현이 보이지 않아 멍한 정신으로 눈을 돌려 찾는데 아까부터 이상하다 했더니, 백현은 순자의 치맛자락을 물고 끌어당기고 있었다.
"너 시방 뭐하는 거여."
계속 잡아끄는 행동이 평소와는 달라 순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배고픈겨? 집에 가야 되것네." 아직 밝은 하늘은 자기 전과는 달리 붉었다. 아마도 해가지는 시각이리라. 또 뒷산에 갔냐며 할머니가 뭐라고 하기 전에 돌아가야 겠다고 생각한 순자가 풀이붙은 옷자락을 탈탈 털었다.
앙앙!
아까만 해도 제 치맛자락을 물고 당기던 백현이 이제는 짖기 시작했다. 오냐, 얼른 집에 가자. 하고 순자가 발걸음을 떼려는데 뒤에서 생전 처음 느껴보는 위압감을 느끼고야 말았다.
'시.. 시방 뒤에 뭐가 있는거여..?"
그러고 보니 백현도 자신의 뒤에 무언가를 향해 발발 짖는 것이 예감이 좋지 않은 순자였다.
'요즘 호랑이가 내려온다는 것 같구먼.'
할머니의 말이 생각나자 순자가 덜덜 떨기 시작했다. 백현은 더 거세게 짖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앙앙 거리는 앙증맞은 목소리였지만. 서서히 고개를 돌리자 순자는 제가 타도 끄떡없을 정도로 커다란 호랑이와 마주해야 했다. 너무너무 무서웠지만 강렬한 눈빛과 윤기가 흐르는 화려한 가죽은 이때까지 봐왔던 어떤 동물보다도 대단한 것이어서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장씨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정말 산을 지키는 신령들은 호랑이들 이고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산을 괴롭히고 아끼지 않으면 신령님들이 마을로 내려와 쑥대밭으로 해놓고 간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오줌이 절로 나오고 몸이 벌벌 떨리며 경기를 일으키다 정신을 놓게 되는데. 일어나면 집이라는 것이었다. 아저씨의 말처럼 순자는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했다. 그 눈과 마주치려니 비명 또한 쏙 들어가고 말았다. 그 정신없는 혼란 속에서 들리는 것은 호랑이의 앞발만한 백현이었다. 조그만한게 무서운 게 없는지 순자의 앞에서 호랑이와 1:1로 맞붙고 있었다.
'백현아.. 그만혀....'
넌 한입거리도 안되니께.. 그래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나오는 것을 보니 눈물이 핑 도는 순자였다. 내가 헛키웠던 것이 아니여. 하며 순자가 눈물을 훔쳤다. 아, 여기서 죽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그때, 순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호랑이가 시선을 내렸다. 이제야 백현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하긴 저 집채만큼 커다란 호랑이한테 백현이는 개미에 불과할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