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사이를 흘러간 석진의 이름에 여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왜일까. 이건 어디로부터 오는 눈물인걸까.
너에 대한 그리움으로부터 오는 눈물일까 아니면 나의 아픔으로부터 오는 눈물일까. 모르겠다.
다만 확실히 알 것 같은 건 가장 나약해 있을 때 네가 나타난 건 하늘의 장난이라는 거다.
“….”
“여주씨! 어디 아파요?”
눈에 눈물을 달고 문을 바라보고 있을 무렵 다시 병실 문이 열렸다. 문 앞에는 의사와 간호사가 여주의 눈물을 보고 놀란 얼굴을 하고 서있었다.
간호사가 입맛도 없고 잠도 못 잤다는 말을 의사에게 옮긴 듯 싶었다. 여주는 놀라 다가오는 의사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품 했어요. 밤에 못 잔 잠이 이제 오려나 봐요.”
능청스러운여주의 말에 의사가 안도어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는 여주의 말에도
의사는 주의해야할 여러 가지 말들을 전했는데 여주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프시면 꼭 호출 하시고….”
마지막 말을 잇던 의사가 한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여주의 시선을 따라갔다. 여주의 시선 끝에는 닫힌 병실 문이 있었다. 의사가 작게 웃었다.
“도우미 기다려요?”
“네. 도우미이자 제 친구요.”
“많이 보고 싶나 봐요.”
“아니요. 그냥 심심해서 기다리는 거예요.”
병실 문이 뚫릴 것 같은 시선과 달리 덤덤한 목소리에 의사가 더 말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간호사와 함께 나갔다.
여주는 착실히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석진의 오겠다는 말 한 마디에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하며 문 앞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가 된 것 같았다. 혹시나 제가 없는 사이에 석진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늘 도망가듯 가던 옥상공원도 오늘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진짜 개도 아니고….”
여주가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시간이 자꾸 흘러갔다. 석진의 부재가 길어질수록 시계를 올려다보는 여주의 행동도 잦아졌다.
여주의 손가락이 시계의 초침을 따라 원을 그렸다.
저 시곗바늘을 제 손으로 돌리면 석진이 제 눈앞에 앉아있을까. 그럼 빠르게, 많이 시곗바늘을 돌려 볼텐데.
오늘따라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더디게 가는 시간일지 모르겠다고 생각을 덧붙인 여주가 문득 이런 제 모습이 낯설고 생소해서
앙상해진 제 두 다리를 침대 밑으로 내리곤 벽에 달린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거울에 제 얼굴이 비춰졌다.
제 얼굴에 서린 웃음기라니.
제 얼굴이 웃는 낯으로 변해있는 걸 제 눈으로 한참 바라보던 여주가 거울 앞에서 한 번 더 웃어 보이다 입 꼬리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안 어울려. 어색해.
거울 앞으로 다가갔던 발걸음을 그대로 돌려 침대위로 제 두 다리를 막 올렸을 무렵 제 병실 문 앞에서 정확하게 멈춘 발걸음소리에 여주가 제 숨을 다급하게 들이켰다.
이번엔, 석진일까.
제 볼을 손바닥으로 아프지 않게 친 여주가 고개를 돌렸다. 바로 열릴 것이라 생각했던 문은 뜸을 들이는지 몇 초 있다 조심스럽게 열렸다.
“…안녕.”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얼굴은 제가 좋아하던 그때의 모습과 변함이 없는 석진이었다. 꼭 제가 좋아하게 된, 딱 그때와 달라진 게 별로 없는 석진이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으며 제게 작게 손을 흔들어왔다.
“늦었어.”
왔다, 이번엔. 정말로.
얼굴을 봐서 좋으면서도 입에선 투덜 가득한 목소리가 나왔다. 제 목소리에 석진이 미안하다는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그 모습이 어쩐지 웃음을 불러 여주는 바보같이 웃어버리고선, 그렇게 제게 와준 석진을 반겼다.
“잘 잤어? 늦게 와서 미안.”
“뻥이야. 안 늦었어.”
“그래도…, 다음엔 빨리 올게.”
결심하듯 다물어진 입술에 힘을 주는 석진의 행동에 여주가 조용히 웃었다.
…어쩌지, 놓자고 결심했는데.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아. 힘겹게 묶어두면 뭐해. 널 보면 원래 묶여있던 적 없던 것처럼 풀려버리는데.
이렇게 너와 있으면 '우리'가 나란히 있었던 그때로 꼭 돌아간 것만 같잖아. 자꾸 욕심 부리고 싶어지잖아.
그때의, 그 날의 우리, 지금의 우리를. 나는 또다시, 너를 좋아하게 되는 걸까.
“오늘은 뭐했어?”
“나? 너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미안…. 진짜 일찍 올게.”
“장난이야. 난 그냥 있었지. 넌 오늘 뭐했어?”
저를 놀리려고 계속 하는 말임을 알 텐데도 연신 미안해하는 얼굴에 여주가 대화를 돌리자 석진이 눈을 굴리며 제가 오늘 했던 일을 떠올리고선 입을 열었다.
“오늘은 과제 발표를 했는데….”
석진이 책을 읽어주듯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눈을 맞추며 조곤거리는 목소리와 벌어지는 입술이 귀여워 여주의 입가에 저도 모르는 미소가 걸쳐졌다.
석진은 자신이 어떤 발표를 했는지, 발표 후에 어떤 반응이었는지 그리고 그 다음 강의 때는 무엇을 들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해줬다.
여주는 들어도 모르는 이야기건만 재밌다는 얼굴로 간간히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짠!”
“이게 뭐야?”
“마지막 강의 끝나고 받았어.”
“받아? 누구한테?”
이야기를 다 끝내고 목이 마른지 가방을 뒤적여 과일주스를 두 개 꺼낸 석진이 여주에게 하나 건넸다. 유기농이라 적힌 문구를 바라보던 여주가
이미 병을 따 주스를 들이 키고 있는 석진에게 묻자 순식간에 다 마신 주스를 내려놓은 석진이 말했다.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같은 과 아니였어?”
“응. 아니야. 아! 다른 과에서 유명한 애였다.”
“유명해? 예뻤어?”
“난 잘 모르겠던데. 친구가 그렇게 말해줬어.”
석진이 제게 주스를 줬던 여자를 떠올리려 노력하다 이미 생각나지 않는 얼굴에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여주가 제 주스를 까 석진에게 건네며 놀리듯 말했다.
“눈 높네. 여자친구 연예인급으로 만나는 거 아니야?”
장난처럼 말하자고 생각했는데도 정작 나오는 목소리에는 질투가 가득 담겨있어 여주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얼결에 제 주스까지 마시는 석진의 얼굴엔 의문이 가득했다.
짠! 8ㅁ8침벌레 열일하지여?(웃음)
1화에 댓글 달아주신 독자님들 모두 너무 감사해요.
셋째 홍일점님께서 다정한 석진이와 당차고 씩씩하지만 외로운 탄소를 너무 잘 그려주셔서
제가 조용히 잘 묻어가구있슴니당(웃음)
소설체로 글을 써보는건 처음이어서 많이 부족한데
홍일점님께서 너무 예쁘게 마무리해주셔서
8ㅁ8 넘나 감사드리는 것!
히이, 3화도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나우이즈굿에서도, 쿠키조각에서도 또 만나요:)
항상 따뜻한 하루 보내요, 다들! 아라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