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 - 괜찮다
' 가끔, 간절히 바래본 적이 있었어요.
깨어 나면 기억 조차 희미한 찰나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기를,
꿈에서 깨어나면, 하얀 백지의 상태처럼 모든 것이 잊혀졌기를.
추억은 사라지겠지만, 적어도...모두에게 힘든 기억은 남지 않을테니까. '
더 아프기 전에,
더 상처 받기 전에,
그만... 헤어집시다, 우리
[EXO/징어] 헤어집시다, 우리 (부제: 관계의 역습 下) 07
" 안녕하세요, 제일모직 오팀장님 맞으시죠? "
" 아, 네. "
" 김 현우 실장입니다. "
" 아, 오징어입니다. "
이쪽으로. 김 실장을 따라 징어가 회의실로 향하고자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흐르듯, 연이은 히트에 자연스럽게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의 엔터테이먼트 기업이 된 SM은 오랜
기억속의 모습보다 더욱 컸고, 어색했으며 또 불편했다. 쭈뼛쭈뼛. 김 실장을 따라 복도를 거닐던 징어가 회의실로 발을 들여 놓았다. 그리고 그 곳에는,
" ...아.. "
루한이 앉아 있었다.
" 오 팀장님, 이 쪽은 EXO-M 멤버 루한 씨, 아시죠? "
" 아,알죠. 유명하신 분인데 모를 리가요. "
실장과 둘이서만 진행하는 회의라 전달 받았던 징어에게, 예상 치 못한 상황은 그녀를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 중국 시장은 이 친구를 중심으로 마케팅을 진행해주셨으면 합니다. EXO-M 전체가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지만, 이 친구가 이번 콜라보레이션 컨셉과 유독 잘 맞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요. "
" 참고..하겠습니다. "
" 아, 전화가 오네요. 잠시, 실례 좀. "
" 아, 네. "
울리는 진동에, 김 실장이 양해를 구하고는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회의실에 적막이 감돌았다. 시선을 어디둘 지 방황하던 징어의 눈이 서류로 향했다. 맞은 편에 앉은 이의 시
선이 자꾸만 저를 따라오는 것을 모르는 척 하는 것도 힘에 부쳤다. 통화가 길어지는 듯, 김 실장은 꽤나 오랫동안 회의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회의실 안으로, 루한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울렸다.
" 나좀 봐. "
징어가 고개를 들었다. 늘 다정하다고만 생각했던 맑은 눈동자가, 흐릿했다.
" 할 말..없어? "
" 오랜..만이예요. "
" 그것..뿐이야? "
" 더 멋있어졌다. 여전히, 잘생겼고.. "
" 오징어. "
" 말투는, "
" ........ "
" 조금 달라졌네요. 오빠 늘, 헷갈려서 반말 존댓말 붙여 썼었는데... "
" ........ "
" 발음도, 완전 한국사람 다 되었구나.. "
징어가 어색하게 미소지었다. 루한은 여전히 멋있었으며 그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것이 그렇듯, 눈치 채기 힘든 부분까지 변화는 스며든다. 부드러운 소년
의 이미지가 강했던 루한의 얼굴은, 어느 새 살이 빠져 남자의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징어야, 밥 먹었어요? 보고싶어요. 반말과 존댓말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 서툴렀던 그
의 한국어는 8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더 이상 흠 잡을 곳 없을 정도로 발전해있었다. 물끄러미, 시선을 마주하던 루한이 입술을 짓이겨 물었다.
" 처음엔, 미치는 줄 알았어. "
" ......... "
" 그 다음엔, 화가 나더라. "
" ......... "
" 그 후에는 그리웠어. "
" ........ "
" 힘들었어. "
" .......... "
" 보고 싶었어. "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온 루한의 말에, 징어가 주먹을 꼬옥 쥐었다.
" 너는, 고작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사라졌는데.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품안에 있던 애가 사라졌는데.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갔는지. 전화를 아무리 해도, 없는 번호
라고! 너와 통화할 수 없다고만 하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해답이 없어서, 널 찾을 방법이 안보여서.."
" ......... "
" 1,2년 동안은 스케줄만 겨우 소화해 낼 정도로 살았어. 스케줄을 하면, 방송에 나가면. 웃고, 말하고 아무렇지 않게 노래하고. 그러다가도, 불쑥 불쑥 네 생각이 나서, 나는
웃고 있는데. 모니터 속의 나는 밝게 웃고 있는데..너는 없고, 너는 없는데..그런데도, 나는 좋다고 병신같이 웃어야했어. "
" ....오빠. "
" 그래, 매일 밤이 괴로웠어. 밤만 되면, 매일 밤이 오면 네 꿈을 꿨어. 꿈에 네가 나왔어. 항상 꿈 속을 해메이다, 나는 매일 밤 기절할 듯 발작을 일으켰어. 미친놈처럼. "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질적인 비속어와, 그것들을 토해내는 잔뜩 억눌린 목소리가 아프게 박혀왔다.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두 주먹이, 위태롭게 떨려왔다. 참아보려, 입술을
새게 깨물어 보아도, 차오르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 비 오듯 땀을 흘리고, 비명을 지르고 까무러치는 날 민석이와 준면이가 지탱해줬어. 그래, 그렇게 엉망진창인 삶이 계속되더라. "
" ....오빠.. "
" 그렇게 괴롭고, 힘들고 아픈데도 살아졌어. "
" ......... "
" 여전히 네가 너무 그리웠는데, 그리운 건 여전한데, 여전히 힘든데. 살아졌어. "
" ........ "
" 화가 났어. 네가 미웠어. 네가 너무 미웠는데, "
" ........ "
" 내 눈앞에 이렇게 앉아 있는 너는, "
" ........ "
" 내가 어떤 화도 낼 수 없게 만들어. "
" ....... "
" 묻고 싶은게 너무 많은데, 아무런 답도 주지 않는 네가 미워야 하는데, "
" ....... "
" 전혀 미워지지가 않아. "
" ....흐윽.. "
" 왜 이제야 왔어. "
흐느끼듯 내뱉어진 루한의 말에, 징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을 챙겨 회의실을 도망치듯 나섰다. 물기 어린 눈을 한 루한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서는 자리를 박차
고 일어났다.
" 어, 오팀장님? 야, 루한!! "
막 통화를 끝냈는지 회의실로 들어오는 듯한 김 실장의 부름을 무시하고선, 루한이 징어의 뒤를 좇았다. 다급하게 건물을 빠져나온 징어가, 차를 가져 오지 않은 자신을 책망
하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머리가 복잡했다. 누군가, 자꾸만 머리를 두들기는 것 처럼 아팠다. 메여오는 목이 뜨거웠다. 그 때, 징어의 뒤를 좇아온 루한이 징어의 손목을
휘어 잡았다. 마주한 서로의 눈에 물기가 잔뜩 어려있었다.
" 데려다줄게. "
" ...놔 줘요. "
" 데려다준다고! "
루한이 울부짖었다.
" 내가, 내가 불안해서 그래. "
" ......... "
" 이게 꿈은 아닐까, 이대로 네가 또 사라지는 건 아닐까, 불안해서. 내가 무서워서 그래. "
" ......... "
" 데려다줄게, 징어야.. "
" ......... "
" ...제발. "
흐느끼듯 부탁해오는 루한에, 징어는 고개를 숙였다. 이내, 주차장에서 차를 가져온 루한이 징어를 조수석에 태웠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루한을 만난 이후, 자꾸만 욕심이 생기는 저를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리웠고, 그리웠다. 여전히, 그를 떠올리며 빈이가 듣지 못하도록 입을 막고
울어야만 했던 일상을 기억한다. 그리웠던 얼굴, 그리웠던 목소리. 그리웠던 온기. 안기고 싶었다. 그의 품에 안겨, 따뜻한 품에 안겨 울고 싶었다. 하지만, 안된다고. 몇 번이고
스스로를 매질했다. 이제와서, 그를. 그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었다. 숨기고자 했다면, 피하고자 했다면. 처음 결심했을 때 처럼, 숨겨야만 하고 피해야만 한다. 그리웠던 익숙
함에 기대어, 나약해져서는 안되었다. 제 손으로 끊어냈던 모든 것들을 이제와서 제 손으로 망칠 수는 없었다. 루한이 끊어내지 못한다면, 저가 끊어내야만 한다. 그에게 상처
를 줄 지 언정, 그를 무너지게 만들 수는 없다.
" 다 왔어. "
" ...고마워요. "
징어가 조수석 문을 열고 내렸다. 이미 해는 저물어, 어둑해져있었다. 미련을 두지 않으려, 징어가 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어깨 위로 팔이 감겨 왔다. 등 뒤로 익숙한 향기와 함
께 온기가 느껴졌다.
" ...오빠.. "
" ..네가, 아이 엄마라고 해도 상관없어. "
루한의 입에서 나온 말에 징어의 몸이 굳었다.
" 네가, 누군가의 아내라고 해도 상관없어. "
" ...오빠. "
" 불륜이라고 손가락 질 받는대도 상관없어. "
" .......... "
" 내가 다 받을께. 손가락 질이든 욕이든 내가 다 받을께. "
" .......... "
" 내가 다 할께. 너는, 그냥 그대로만 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다시, 시작하자. "
" ........... "
" 내 곁에 머물러줘, "
" .......... "
" 네가 없는 세상을..상상 할 수가 없어. "
루한이 징어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잔뜩 물기 어린 목소리로 내뱉어지는 그의 말들이, 간절해서. 너무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다. 징어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를, 그를 놓아
주어야만 한다.
" ....오빠, "
" .......... "
" 나는..아직도 택시가 무서워요. "
" .......... "
루한의 몸이 경직되는 것이 느껴졌다.
" 그 날 이후로, 지금까지..여전히, 택시를 탈 수가 없어요. "
" ......... "
"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오면, 확인도 못하고 지워버려요. "
" ......... "
"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손부터 떨려와요. "
" ......... "
" 길을 걸어가다, 그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한 사람만 봐도 온 몸이 떨리고, 눈물부터 나와요. "
징어는 그를 위해,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뱉어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루한에게 상처가 될.
" 내가, 내가 지켜줄게. 나, 너 지킬 수 있어...내가, 너 "
루한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 ..오빠는 나 못지켜요. 못지켰잖아. "
" ..징어야, 징어야, 제발.. "
징어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오빠는, 오빠 자신하나 지키기 힘든 사람이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오빠는 오빠나 지켜요. "
어깨를 감싼 팔이 스르륵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징어는 왈칵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참아야만 한다, 조금만 더 참아야만 한다.
" 내가 오빠한테 바라는 건, 그거 하나 뿐이예요. "
겨우 힘주어 씹어뱉듯 말한 징어가,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 엄마, 엄마아아!! "
징어의 발걸음이 멈추어 섰다. 루한의 고개가 올라갔다. 징어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떴다. 빈이가, 종종 걸음으로 달려와 징어에게로 몸을 던졌
다.
" 비,빈아. "
" 빈이, 엄마 기다렸어요오. 보고 싶었어요오. "
자신을 향해 함박 웃음을 짓는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징어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빈이의 눈동자를 볼 때마다, 그와 닮은 눈동자를 떠올리며 얼마나 많이 울었던가.
뒤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루한을 뒤돌아 보지 않으려, 징어가 빈이를 감싸 안은체 걸음을 옮기려했다.
" 어어, 아저씨이이이 !! "
잔뜩 신이 난 목소리에, 징어의 걸음이 멈추었다. 빈이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 징어의 눈동자가 허공에 머물렀다.
" 엄마아, 저 아저씨가 빈이 그네도 태워주고, 아스크림두 사준댔는데.. 어, 아스크림이다 !! "
양 손에 콘 아이스크림을 쥐어 든 찬열이 루한의 맞은 편에 서 있었다.
| ♡ 암호닉 ♡ |
피자 님/ 형광팬 님/ 루루 님/ 김치만두 님/ 요지 님/ 지우개 님/ 씅 님/ 불낙지 님/ 만두 님/ 준짱맨 님/ 크림치즈 님/ 찡 님/ 비타민 님/ 원주민 님/ 치킨 님/ 라바 님/ 슈밍 님/ 민트초코 님/ 양념 님/ 소고기돼지고기 님/ 진리 님/ 히동 님/ 뽀또 님/ |
암호닉 빠지신분 댓글로 꼭 말씀 해주셔요!!
+) 사담
다음 편부터는 다시 과거 입니당. 말씀드렸다 시피 루징 에피예용...찬열이만큼 애절한 루한을 그리고 싶었어요. 찬열이가 몰아붙이는 타입이라면 루한은 애절한걸로..
안애절했다면 죄송합니당..X-) 아, 진짜 현재편은 기빨리는것 같아요. 저까지 우울우울 감정이 막 다 깎여 나가는 것 같아 ㅠㅠㅠㅠ
마지막은 현재편 삼자대면으로 장식했습니당. 독자님들 댓글 ㅠㅠㅠㅠㅠㅠㅠㅠ감동이예요 사랑합니당 하트 (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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