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규! (oh, my gyu!)1
성규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세상에서 제일 까칠한 남자가 되자고 결심했다. 좋은건지 안 좋은건지 성규의 다짐은 항상 이루어지곤 했다.
어린 나이에 팀장 자리에 오른 성규는 자신이 어리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도 있었지만, 컴플렉스가 더 컸다. 스물아홉의 나이는 그렇게 어리다
할 나이가 아닌데도 팀장 자리에 비하면 어린 나이였다. 그래서인지 성규는 사원들이 자신을 무시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게 끔찍히도 싫었다.
그런 성규가 호야에게 사원들이 자신을 무시하면 어쩌냐고 물었을 때 호야는 얘기했다. 넌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내 죽빵 칠 것 같아. 성규가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호야는 어깨를 들썩이며 얘기했다. 까칠하게 생겼다고 이자식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호야의 말에 동의했다.
성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긴 했으나 마음 속으로는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럴 바에는 세상에서 가장 까칠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런 성규에게도 복병은 있었다. 성규가 가장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자신의 장점중의 하나는 미감이었다. 어린 아이에게 어느 이모가
제일 예뻐? 라고 물어보면 망설이지 않고 누군가를 지목하는 것 처럼 미감은 배워서 생기는 게 아니라 탑재되는 것인데, 성규에게는 그런
미감이 탁월했다. 성규가 어린 나이에 한 에이전시의 팀장 자리까지 올라온 것도 전부 미감 덕분이었다. 성규가 캐스팅한 모델들은 대부분의
모델처럼 정돈된 얼굴에 딱 떨어지는 핏을 갖고 있는 몸을 가진 모델들이 아니었다. 그런 모델들은 디자이너의 옷을 입으면 얼굴보다 옷이
부각되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는 모델들인데, 성규가 캐스팅 한 모델들은 오히려 얼굴이 더 눈에 띄었다. 하지만 얼굴이 옷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조화롭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다. 모델의 얼굴과 약간의 프리함이 옷의 과한점이나 부족한점을 채워줬다. 그래서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던 에이전시 관계자들이나 런웨이 관계자들도 막상 런웨이서 선 모델들을 보자 성규를 달리봤다. 그리고 그에게 타고난 미감이 있다고 인정
했다. 그런 성규이기 때문에 유독 시각적인 것에 약했다. 길을 가다가도 새끼 고양이를 보면 와르르 무너져 바로 손을 내밀고 마는 남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우현에게 약한 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김 팀장님."
성규는 자신을 보는 우현의 눈을 보며 잠깐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 고 생각했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미쳤지! 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
왔을 게 분명한데 오늘따라 성규는 유독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우현이 분홍색 바탕에 땡땡이가 박혀있는 셔츠를 입고 왔기 때문이었다.
하얀 피부가 아닌데도 분홍색이 너무 잘 어울렸다. 자칫하면 오바같이 보일 수 있는 핫핑크에 가까운 색인데 어쩜 저리 잘 어울리냐고 성규는
감탄했다.
"팀장님 오늘은 회식 참석 하실거죠?"
"아니요, 난 회식 참여 안 합니다."
성규의 대답에 활짝 웃던 우현의 입꼬리가 바로 내려갔다. 성규는 아쉬워서 자칫하면 손을 뻗을 뻔 했고, 우현이 길 잃은 새끼 고양이처럼
자신을 쳐다본다는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팀장님 저번 주에도 참석 안 하셨고, 저저번주에도 안 하셨고…이번에도 안 오실 거예요?"
아아, 성규는 그대로 쓰러질 뻔 한 몸을 가까스로 추스렸다. 하지만 강력한 시각의 자극 앞에서 손바닥으로 관자놀이를 짚고 말았다.
"잠깐, 들리긴 하겠습니다."
어? 정말요? 정말이죠? 를 반복하며 다른 사원들에게로 걸어가는 우현의 뒷모습에서 성규는 폴랑폴랑이란 글자가 보이는 듯 한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정말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귀중한 복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미감이 스스로를 위기에 빠뜨릴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던 성규였다. 여자도 아닌 남자에게 이렇게 훅 가버리다니. 정말로 위험한 일이었다.
*
성규가 회식에 참석하는 걸 즐기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술이 무지하게 약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끔 회식에 참석하게 되더라도 절대
술을 마시지 않는 성규인데 오늘은 벌써 두 잔을 마셔버렸다. 삼 개월 간 의도적으로 술자리를 피해왔던 성규였다. 우현이 술을 준다면 거절할
자신이 아닌 걸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규는 소주를 마시면서도 역시 자신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눈웃음을 치며 술을
따라주는 우현의 얼굴 옆에서 생글생글이라는 글자를 보았다. 이번에는 분명 보았다고 생각하며 사람과 건배를 했을 때, 성규는 정말로 이러다
죽겠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우현과 손이 닿은 것 뿐인데 정말로 온 몸에 전율이 올랐다. 세상에. 성규는 세상에 세상에를 반복하며 술을
마셨다. 그리고 지금, 필름이 끊긴 게 분명했다.
"팀장님 취하셨어요?"
"…당신 때문입니다…"
성규가 자꾸만 우현에게 몸을 기댔다. 성규가 내일 이것을 기억한다면 코피를 뿜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현은 쓰러질 듯 기대오는 성규를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가냐는 사원들의 질문에는 성규 핑계를 대며 성규를 쉽게 부축하여 식당 밖까지 나왔다. 이런 헐랭한 모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한 남자였는데. 우현은 역시 귀엽다고 생각했다. 까칠이 김팀장이 자신에게 약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약한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분명 체감하고 있었다. 말투는 딱딱해도 자신을 보는 성규의 표정은 한껏 풀어져 있는 걸 얼마
전에 눈치 챘다. 다른 사원들과 함께 있을 때는 전혀 안 그런데 유독 둘이 있으면 표정이 바뀌는 김팀장이었다. 우현은 자신의 키와 비슷한
성규를 쉽게 자신의 등에 업혔다. 그리고 부축이라는 핑계를 대며 성규의 엉덩이를 살짝 주물거렸다. 역시 말랑말랑해. 우현은 성규의 양쪽
엉덩이에 말랑말랑 이라는 글자가 쓰여있을 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며 조금 웃었다.
*
"팀장님 일어나셨어요?"
소주 두 잔에 정신을 잃은 성규는 지금 이 상황이 황당했다. 속옷만 남겨 놓고 사라진 자신의 옷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우현이 왜 여기에 있는지 그리고 지금 이곳은 어디인지 물어볼 게 한 두개가 아니었다. 그런 성규를 아는 듯 저희 집이에요. 하고 방긋 웃어
보인 우현은 성규가 입을 편한 트레이닝복을 침대 위에 올려두었다. 입고 나오세요. 북어국 끓여놨어요. 우현은 또다시 방긋 웃었고, 성규는
그 웃음에 반할 새도 없이 술에 취했던 자신이 무슨 말 실수라도 하지 않았는지 기억하려 애썼다. 하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대학생 때
부터 술 못 먹는 약점 때문에 많이 당했었는데 우현의 앞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물론 우현을 연애감정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고,
그저 아름다운 미술품을 보듯 그 자체에 반한 것 뿐이었다. 그러나 술에 취한 자신이 무슨 말을 했을지는 본인도 모르는 것이었다. 성규는
정말로 미감이 도움이 안 될 때가 올줄은 몰랐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성규가 문을 열고 나오자 우현은 속으로 감탄했다. 분홍색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정말로 잘 어울리다니. 우현은 자신의
미감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저기, …우현씨 내가 뭐 실수한 거 있습니까? 있다면 미안합니다."
의자에 앉자마자 사과부터 하는 성규를 보며 우현은 잠시 웃음이 터져나올 뻔 했지만 겨우 참았다. 우현은 왼 손에는 밥그릇을 오른 손에는
국그릇을 들고 성규의 앞에 내려 놓았다. 그 모습을 보며 손 데이면 어쩌나 하는 성규의 걱정은 모를 것이었다. 실수하신 거 없어요. 우현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성규는 안심하며 국을 한 수저 떠먹었다. 세상에 요리도 잘 하다니. 혼자살기 시작한 후 부터 인스턴트만 먹어오던 성규
는 기가막히게 인스턴트와 집밥을 구별했다. 우현이 한 게 틀림없었다. 성규는 우현이 모자란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며 밥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팀장님."
"…뭐 할 말 있습니까?"
"허벅지가 정말 섹시하시던데요?"
툭. 둔탁한 소리를 내며 성규의 젓가락이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대리석 바닥이었다면 마찰 소리가 심하게 났을 게 분명했다.
"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왜 그렇게 당황하세요. 농담이에요 김팀장님. 저 씻고 올테니까 더 드시고 싶으시면 냄비에서 떠 드세요."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소리 없이 미친듯이 웃는 우현에 비해 성규는 멍하니 망연자실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성규의 머리 속에 든 생각은
단 하나였다. 엿됐다.
인티에 글쓰는 건 처음이네요
떨려요.
초록글에 올라간 글들 보면 현란한데 하는 법도 모르겠고...
그냥..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여러분의 사랑 현성으로 글쓰게 되어서 기뻐요. 앞으로 자주 만나요. 댓글은 사랑해용!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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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택 3까지 나온 마당에 이나은은 진짜 불쌍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