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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속의 버건디 , Killing Me Softly.

02.
















"얼른 다녀와, 내려올 때 문자 주고."

탄소의 핸드폰을 확인한 전정국은 어서 가보라는 듯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임무를 끝내고 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 아침 울리는 알람처럼, 보스는 종종 탄소를 불러내고는 하였다. 항상 특별한 용건이 있어 부르는 것도 아니었다. 열이면 아홉, 매번 같은 상황, 오늘도 별다를 것 없겠지.



복도 맨 끝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 층 버튼을 눌렀다. 중앙 엘리베이터의 맨 위는 주로 옥상으로 연결되지만 매번 헬기로 현장에 나가기 위해 들락거리는 요원들 조차 보기 싫었던 건지, 보스가 있는 층은 대표이사실과 함께 다른 건물로 마련되었다. 탄소가 이곳에 정착하기 전부터 그래왔다. 워낙에 기다리는걸 싫어한다, 보스는.

그런 이유로 탄소는 옷도 채 갈아입지 못한채, 보스의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탄소의 후각이 무뎌진건지, 시간이 지나서인지 커피향은 은은하게 탄소 주위를 맴돌았지만, 자켓 사이로 보이는 갈색 얼룩은 숨길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단추를 잠구는 것으로 최대한, 아니. 최소한의 예의라도 갖추었다는 걸 보여주었다.



옷매무새를 정리하다보니 어느새 도착을 알리는 엘리베이터 종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렸다. 붉그스름한 카펫이 깔려 구두 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이 탄소를 반겼다. 분명 어렸을 때에도-그 때는 아마 더했지, 아무것도 몰랐으니.-여러 번 왔을텐데, 이 곳은 오면 올수록 친근하고 익숙해지기는 커녕, 숨이 막히고 어색했다. 

왼쪽으로 돌아 비서 언니와 눈인사를 하고, 격식과 위선을 알리는 양 입을 벌리며 포효하는 사자의 머리-그래봤자 장식이지만-를 지나 보스의 방문을 열었다. 











"저 왔습니다, 보스."

"어, 그래. 앉아라."


탄소가 왔음을 앎에도 불구하고, 보스는 창 밖을 보며 대꾸했다. 어차피 열 마디도 나누지 않을 걸 알기에, 탄소는 그 자리에 선채로 미소로 대신했다.


"불편하다면 괜찮고, 현장은 잘 다녀왔냐."

"네, 별 일 없이 끝냈습니다."


그제서야 몸을 돌리는 보스였다. 잠시였지만 보스의 미간에 미세한 주름이 잡혔다가 사라지는 것을, 탄소는 보았다.


"옷은 그게 뭐냐. 목격자 데려오는게 니네들 임무였을텐데. 너한테 커피 뒤집어 씌우라고는 시킨 적 없다. 애들이 너 막 대하디?"

"괜찮습니다, 임무 중 일부였습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보스."

"갈아입고 오지 그랬어. 얼른 가봐라. 쉬어."


조금이라도 늦으면 싫어하실거잖아요, 대꾸가 입 안까지 튀어 올랐지만, 애써 꾹 누르고 미소로 대신하며 탄소는 허리를 숙였다.

"가보겠습니다."





방을 나간 탄소의 발자국이 서서히 희미해지는 것을 들으며, 보스는 담배에 불을 붙혔다.
"갈수록 지 아비 행세야, 예쁘기만 하던게. 누구 딸인지 원."

















역시나, 오늘도 그저 겉치레식 안부 묻기와, 어울리지도 않는 위선이다. 보스의 진심이 날 위한건지, 진짜 날 걱정해서 그러는지 조차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보스가 날 특별히 신경쓰고 주의깊게 지켜 보고 있다는 점은, 나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 관심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 무서운 애정은 가족도 없이 이 곳에서만 보고, 듣고 자라온 내게 보스가 잠시 아버지라는 착각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특히 방금 전 같은 대화 속 보스의 눈빛에서, 나에 대한 관심 속 숨길 수 없이 박혀있는 혐오와 갈증-오롯이 나만을 향한-은 시간이 갈수록, 내 생각과 머리가 커 갈수록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갑자기 견딜 수가 없게 소름이 끼쳐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탄소! 땅 꺼지겠다."


익숙한 목소리가 다가왔다. 내 어깨에 둘러진 손을 따라가 보니,


"아 놀래라, 무겁잖아요 오빠."


김석진이었다. 우리 팀원들처럼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내겐 큰오빠같은 존재다.


"오빠라니, 이사님이라고 불러야지."

"어색하게 무슨 이사야! 이사님 소리는 다른 사람한테나 들으세요."


자켓에 달려있는 우리 회사 로고가, 그 위치를 보여주듯이 조명에 비쳐 반짝였다. 


"커피라도 한 잔 하고싶은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지금 당장은 시간이 없네. 다음에 시간 비워둬 탄소야." 
"하는 것도 없으면서, 시간은 오빠나 내요! 바쁜 척은."
 

내 응석에 오빠는 웃음을 터뜨렸다. 

"넌 진짜 여전하구나. 얼른 가봐, 이거 잘 끝내야 너랑 커피 마실텐데. 뭐, 일 커지면 이 일로 또 만나는 거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에, 가요, 한 마디를 남기고 탄소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난 항상 변함없지. 그러는 오빠한테 왠지 점점, 보스의 모습이 보이는게 영. 마음에 안든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곧장 내 방으로 향했다. 오늘은 한 것도 없는데 너무 피곤하네, 생각을 하던 중 갑자기 전정국이 떠올라 발을 멈췄다. 아 맞다, 문자 하기로 했지.


"오래도 걸렸네, 문자도 안 하냐?"

내 방 문 앞에 서있던 전정국은 나를 보곤 내 쪽으로 걸어왔다, 옷도 안 갈아입었네.


"깜빡했다. 석진이 오빠 만나서 얘기 좀 했어."

"이사님? 그러고 보니까 안 본지 되게 오래된 것 같다."

"그치, 혼자 바쁜척은 다해. 옷 안 갈아입냐? 땀 났다며."

"뻥인데, 땀 날 날씨냐? 3월 한창 봄이구만."


그러게.. 고작 너한테 속다니 나도 참.. 괜히 괘씸해서 전정국을 한 번 째려보고는, 도어락에 손가락을 대 지문인식을 한 후 방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김탄소 그냥 들어가게? 나 심심해."

"나 씻을거야. 진짜 아까부터 찝찝해 죽겠어."


커피로 얼룩진 와이셔츠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맞다. 얼른 씻고 쉬어."

"너도 좀 씻어라 냄새나게"

"야 땀도 안 났거든!!! 너보다 내가 더 열심히 씻어!!"




고래고래 고함치는 전정국을 뒤로 한채, 무시하고 그냥 내 방으로 들어왔다.

신발을 벗고, 일단은 조금만 쉬자는 생각에 그대로 침대로 가 누웠다. 아, 편해.







여기가 내 방이다. 방? 집이라고 하는게 더 어울릴까. 다른 사람들이 흔히 '집'이라고 부르는게 나에겐 여기, 이 공간이니. 거실도 있고, TV도 있고, 주방도, 화장실도 있고, 침대도 있는. 

딱 하나 없는게 있다. 창문. 그야 당연한게 여긴 땅 속이니까. 내 방, 그리고 우리 팀원들이 생활하는 이 층은 지하다. 










대한민국 사람 중 HM그룹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거의 우리나라 경제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HM그룹은 요식업, IT산업, 건축업, 의류산업, 항공업, 의료업..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수많은 계열사로 거의 모든 곳에 손을 뻗치고 있는 거대 기업이다. 

미국의 유명 드라마에서 HM전자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고,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이태원에서 한식퓨전산업을 크게 성장 시키며 유행을 선두하고, 약 30년 전부터는 복지 사업에도 뛰어들어 곳곳에 고아원을 설립해 갈 곳없는 아이들을 거두어 돌보는.
고도의 이미지 메이킹과 관리, 이에 따라 도출되는 경이로운 결과에 국민들은 효자기업이라며 HM그룹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지나가는 대학생을 붙잡고 취업 희망 기업을 물어보면 십중팔구 HM그룹이라 답했으니, 이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까.


이처럼 거대한 HM그룹의 성장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몇 십년전의 기업은, 그러니까 지금 보스의 아버지가 HM그룹을 이끌어 나갈 때로 거슬러가면, 지금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지금 와서야 HM그룹이라 일컫는 거지, 그 때는 정식적인 이름도 없었다. 흔히 ○○구 장미파, □□시 청룡파 이딴 말도 안되는 이름을 갖다 붙히고 영역 다툼을 하는 들짐승마냥, 치고 박고 서로를 짓밟음으로써 성장하는. 

맞다. 조직이었다. 현 보스의 아버지는 꽤나 유명한 조직 폭력배 두목이었다. 혼란스러운 사회와 정부 분위기를 틈타 뒷골목에서 서서히 세력을 넓혀가던 두목은 그 잔가지가 꽤나 넓어서, 비공식적인 기업 수준으로 조직을 성장시켰다. 보스가 태어나고, 자연스레 그 분위기에 휩쓸려 성장한 보스는 두목이 세상을 떠난 후에 조직을 이어받아 이끌게 되었고, 
보스는 돌연 조직의 이름을 HM으로 명명하고 대대적인 개조에 들어갔다. 사실 이제와서 조직을 통째로 바꿔버리겠다는 건 너무 위험한 도박이었다. 암암리에 떠돌던 소문과 세력을 수면위로 끌어와 공식적인-합법적이고 당당한-활동을 하겠다는 선언에 수많은 반발과 크고 작은 소동이 이어졌고, 진정으로 보스를 위하겠다는 맹세로 HM에 남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스는 꿋꿋이 자신의 뜻을 펼쳐나갔다.
많은 목숨과, 피, 보스의 땀, 짓밟히는 사람들의 눈물. 그 모든 시간을 겪고 이 자리까지 성장해 온 것이었다. 대한민국 경제를 쥐고 흔드는 HM그룹이 사실은 조직을 기반해 신장했다는 사실은, 거의 아무도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조직 생활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다. 그게 바로 우리다. 

모노크롬-Monochrome, 흑백의-은 HM그룹의 특수지원팀이다. 우리 8명은 아무도 모르게, 지난 5년간 HM그룹이 성장해 올 수 있도록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우리가 이렇게 모든 걸 바쳐가며 현장에 나가는 이유는, 혹여나 실패한다해도 잃게 될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지켜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우리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가족이라고 해봤자 어렸을 때부터 볼 꼴 못볼 꼴 다 보고 자라온 서로라는 것. 그게 전부다. 모두 버림받았거나, 아니면 도망쳐왔거나, 나처럼 그런 기억 조차도 없거나.




나는 어렸을 때 기억이 전혀 없다. 5살 때 보스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오게 된 이후부터 어렴풋이 남은 기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기억나는건 내 생일과 이름 정도. 아무 것도 없는 나에게 전정국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주었고, 김남준, 김석진, 민윤기, 정호석, 박지민, 김태형. 이 여섯 오빠들이 나에게 추억을 선물해주었다.
사실 나도 내 자신에 대해 별로 아는게 없다. 우리 팀에 대해서 더 소개해 보자면,




먼저 김석진. 모노크롬의 대표이자 HM기업의 경호 부서 대표이사다. 우리 중에 제일 나이가 많아서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8명 전부 같은 생활 패턴과 훈련을 받아오면서 자랐는데 어느 순간 부터 김석진만 분리되어 다른 훈련을 받았다. 아, 수업이라고 표현해야 맞을까.
자기 말로는 실무 위주의 훈련을 받기 위했다던데, 모노크롬이 결성되며 대표이사가 되었다. 사실 표면상 대표지, 진짜 대표는 따로있다. 말하자면 리더.


김남준이다. 김석진은 주로 본사에 있고, 나머지 7명이 현장에서 뛰거나 정보를 받아 처리하니 사실상 우리들의 리더는 김남준이다. 주로 직접적인 현장 활동을 하는 쪽은 아니고, 우리에게 정보를 주는 쪽이라고 해야 할까. 민윤기와 정보를 처리하거나 우리가 빼돌린 정보-USB나 파일 같은. 해킹은 민윤기 쪽이다-를 분석한다.
가끔 인력이 부족하거나 예비인원으로 함께 현장에 나가기도 하는데, 뛰는 폼이 영... 사실 우울할때면 남준이 오빠가 뛰는걸 구경하기도 한다. 나름 체력 관리 한답시고 런닝머신에 줄곧 올라가 있어서 뛰는걸 보는건 어렵진 않은데, 왜 늘질 않는걸까. 생각해보니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런 사실은 입 밖으로 내면 안된다. 의외의 감수성이 있어서 그 덩치에, 꽤나 상처를 잘 받는다.
아무튼. 근데 머리는 정말 좋다. 특히 언어 쪽에 재능이 참 많아서 나도 많이 배웠다. 8살 때 중국어로 혼잣말 하던게 내게 여전히 충격으로 남아있다. 역시 신은 공평하시다.


김남준이 리더라면, 현장에서 주로 활약하는 우리에게 정호석은 팀장이다. 현장부 팀장이라고 우리끼리 장난삼아 정팀장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불릴때마다 부끄러워하는게 굉장히 볼만하다. 혼자 보기 아까워.. 아무튼, 김남준이 현장에 대한 정보, 건물의 구조나 사건 배경 등을 미리 파악해오면 그걸 바탕으로 둘이 같이 계획을 세운다.
예전부터 신체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따르게 된 것 같다. 몸이 가볍고 유연성이 좋아서 특히 달리기에서는 정호석을 따라갈 수가 없다. 단거리로 따지면 전정국이 더 빠를 수도 있겠지만, 주로 장기적인 체력을 요하는 실제 현장 추격에서는 정호석의 활약이 크다. 


박지민과 김태형은 보고있자면... 없던 동생이 생기는 기분이다. 항상 둘이 붙어 있으면서 시덥잖은 장난을 치는데, 뭐가 그리 재밌는지 난 전혀 모르겠다. 평소에는 그렇게 바보같던 둘도, 현장에만 들어가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진지한 모습으로 누구보다 활약을 잘 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박지민은 참 무서운게, 감정이 자유자재인 것 같다고 해야할까. 본인 감정 절제에도 익숙하고 상대의 감정 파악에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심리전이나 상황 파악에는 김남준과 박지민이 활약하는 편이다. 
반면에 김태형은 솔직히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잘생겼다. 뭐 나머지 팀원들도 잘생긴 편이지만. 그래서 주로 사람을 속이거나, 꾀어올 때 김태형이 나선다. 이래서 사람을 얼굴로 파악하면 안 된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참 멀쩡한데 박지민과 둘이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 또라ㅇ... 좋게 표현해서 참 엉뚱하다. 




그리고 민윤기. 팀 초기에는 함께 현장도 나가고는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본부에서 정보만 담당한다. 신분증 위조, CCTV 해킹, 시스템 조작, 등등. 컴퓨터를 이용한 거의 모든 업무는 다 민윤기 담당이다. 자기 말로는 현장이 잘 안 맞는다나. 평소에는 본부 밖도 잘 나가지 않는다. 해봤자 본사 내 카페에 아메리카노 사러 가는 정도?
안 그래도 지하라 햇빛이 부족한데, 새햐얗고 마른 민윤기를 보고 있자면 자외선을 만들어 쐬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발달한 과학 기술로 인공 태양은 못 만드는지. 내가 다 답답하다. 그래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자면 의외로 어깨도 넓고, 팔에 잔근육도 꽤 있다. 
아니, 내가 변태라는게 아니고, 그냥 일하는 모습을 우연히 본 것 뿐이다. 예전에 같이 훈련 받을 때도 고루고루 재능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본인이 현장은 싫다니 뭐. 본인 말로는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 오빠를 보고 있자면 왠지, 좀 묘하다. 같이 자라 서로를 잘 알 수밖에 없는 우린데, 다른 사람들은 다 알아도 민윤기의 성격은 잘 표현 못하겠다. 매사 자기 외에는 관심 없는 것 같다가도, 내 생일은 한 번도 빼먹은 적 없고, 이상하게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면 어느 샌가 찾아와 도와주고, 아무튼. 이 오빠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참 묘하다. 
뭐 어쨌든, 여러모로 고마울 때도 많다.



반면에 전정국은 모르는게 없어서 탈이다.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나에겐 유일한 동갑내기 친구고,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나이차이라는게 무시 못하는 요소니, 사실 그리고 우린 꽤나 잘 맞는다. 어려서의 추억을 말하자면 거의 전정국과의 추억이 아닐까. 이 새끼는 가끔 나도 모르는 일들을 불쑥 불쑥 말해서 문제다.
내가 어렸을 때 소꿉놀이 하면서 자기 보고 남편이라고 했다니, 솔직히 말도 안되지만 기억이 안나니 뭐라 반박할 수도 없고. 이럴 때마다 고통스러워 하는 나를 보며 전정국은 매우 좋아한다. 나쁜 자식. 말은 이렇게 해도 여기서 적응하는데에는 전정국이 한 몫이었다. 사실 여기 왔을 때 몇 년간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외딴 섬에 버려진 것 같아 혼자 힘들어 했었다.
그런데 뒤늦게 투입된 정국이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어서, 그 이후로 훈련도 더 열심히 참여했던 것 같다. 사실 정국이 도움은 지금도 많이 받고있다. 지극히 현장 체질인 전정국은 어디서든 내 옆에 붙어서-사실 호석이 오빠한테 졸라서 내 주변으로 배치되는 거였지만-내가 위험하거나, 곤란할 때마다 도와준다. 참 고마운 존재다.







음, 나에 대해서 더 소개해 보자면, 5살 때 여기로 와서 모노크롬 투입을 위한 훈련을 받다가 17살 때 본격적으로 투입되어 현장에 나섰고, 지금은 5년 째다. 본격적인 현장 활동 전에도 자잘한 업무로 나간 적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평범한 남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꿈을 펼쳐나가고, 자신의 길을 닦아 나갈 때 나는 어두운 곳에서 뛰어다니고, HM그룹을 위해 수많은 현장에 투입되었다.
보스가 날 특별히 아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다. 내가 보스 딸이라는 소문도 돌 정도니. 60을 앞둔 보스의 다음 후계자가 누굴지는, 나도 궁금하긴 하니 이해한다. 하지만 그게 나라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날 보는 보스의 눈빛과 감정이 어떤 지는, 보스와 단둘이 같은 장소에 있던 적도 없는 당신들이 알기에는. 복잡하다.




이게 우리다. 그 놈의 HM그룹, 사실 뛰쳐나가서 자유를 얻고 싶다는 생각,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게 몇 씩 죽이는 일이 일상인 우리에게, 금방 잡힐거라는건. 사실 잡히는 걸로 끝날 것 같지도 않다. 두말 하면 입아픈 소리고 모르는 사람도 없으니. 지금까지 얌전히 우리가 비밀리에 활동한 이유다.

철저한 보안 유지를 위해 쉴 때도 햇빛 조차 보지 못한채, 지하에서 모든걸 해결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모노크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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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96.9
땅위입니다! 오늘은 멤버들에 관한 설명이네요! 이번 글도 재미있었습니다!!'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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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묘
감사합니다 ㅎㅎ!!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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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49.170
최고..ㅠㅠ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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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묘
감사해요 :)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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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51.147
헐헐 조직물과 제목에 혹하여서 들어왔습니다!!! 1화부터 보고 왔는데 분위기 진짜 댑악입니다... 오늘 여주와 애들의 포지션? 설명? 이 있어서 더 이해하기 쉬워졌네요 [왼쪽]으로 암호닉 조심스레 신청하고 갑니다!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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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묘
좋아해주셔서 감사해요 ㅠㅠ 암호닉 받아두겠습니다 ㅎㅎ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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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열꽃으로 암호닉 신청해도 될까요...?? 작가님 작품 너무 좋아요ㅠㅠㅠㅠㅠㅠ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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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묘
당연하죠 ㅠㅠㅠ 감사합니다!!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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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여주에게 이로운 사람이기를 바랐던 보스는.. 영 찝찝하네요. 여주 본인도 느끼는 바이고요ㅠ 에휴. 그래도 형제들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7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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