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속의 버건디 , Killing Me Softly.
04.
탄소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곳은, 학교 앞 사거리를 건너면 있는 수제버거가게였다. 유명한 가게였는지 점심 치고는 조금 늦은 시각이었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역시 김탄소.. 큰 소리 치더니 먹으러 왔냐?"
"야 사람이 배고프면 어? 아무리 재밌는게 있어도 놀 수가 없다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모르지? 멍청이 자식. 메뉴나 골라. 탄소는 메뉴판을 내밀며 말했다. 메뉴판을 훑어보는데, 정국의 눈에는 다 거기서 거기였다.
"나 그냥 너 먹는거 먹을래"
"그래 그럼! 가서 여기 1번으로 2개 주문하고 와, 너가 사라 친구야"
"왜 내가 사 ㅡㅡ"
"내가 저번에 사준다고 나오랬더니 안 나왔잖아!! 너가 사!"
그래.. 탄소의 말에 이상하게 휘말려버린 정국은 어쩔 수 없이 버거를 주문하고,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맞은 편 탄소를 바라보니, 창가 너머 지나가는 길가의 사람들을 부러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 나도 대학교 다니고 싶다."
넋이 나간 듯 창 밖을 구경하던 탄소는 약간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부럽냐?"
"당연하지, 얼마나 재밌을까?"
"공부하러 다니는게 뭐가 재밌다고.. 나랑 노는게 더 재밌을걸."
"하긴, 넌 공부 못 하니깐. 이런 일 안 했어도 대학 못 갔겠다^o^"
"야!! 나 그래도 하면 잘 해ㅡㅡ"
탄소의 말에 순간 발끈한 정국이였지만, 갑자기 예전 기억이 떠올라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임무 특성 상 외국어를 할 줄 아는 능력은 거의 필수였다.
어렸을 때부터 탄소와 정국이는 영어, 일본어같은 외국어의 경우 주로 김남준의 도움을 받아 배우곤 했는데, 그 때마다 이상하게 정국이는 탄소보다 늘 조금씩 뒤쳐지고 있었다. 특히 단어 외울때는 더더욱.
복귀하면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하던 정국은 언젠간 탄소 널 꼭 이기고 말거다, 라는 눈빛으로 탄소를 노려보았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때마침 나온 버거에 고정된 탄소의 시선에 정국이의 무언은 묵살되어버렸지만, 곧 정국이도 버거에 눈을 고정시키고, 잘 먹겠습니다! 탄소의 한 마디를 시작으로. 둘은 말없이 먹었다.
순식간에 버거를 해치운 둘은 기분좋은 배부름과 함께 길을 나섰다.
"먹었으니까 놀아야지! 나 가보고 싶은 곳 있었어."
탄소가 향하고 있는 곳은 디스코팡팡이었다.
하지만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 사람이 많다 못해 문 밖으로 밀려난 모습을 마주하고 어쩔 수 없이 탄소는 등을 돌렸다, 안 되겠다.. 금세 시무룩해진 탄소였다.
"야, 딴데 가면 되지 여기서만 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저 쪽으로 가보자."
그렇게 아쉬워하는 탄소를 이끌고 무작정 거리를 걷다보니, 웬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사방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와 음악소리에 서로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한참을 걷던 중, 한 쪽 길가 구석에 마련된 인형뽑기 기계에 눈을 뺏긴 탄소였다. 안에는 요새 유행하는 포켓몬스터 인형들이 가득들어있었다.
탄소의 눈에 가장 띈건, 다름 아닌,
"야 전정국!!"
"왜??"
"저거 하자 저거, 이리와"
메타몽 인형이었다. 특별히 눈에 띈 이유는 다른 것들보다 더 귀여워서, 가 아닌,
"이거 윤기 오빠 닮지 않았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자마자 민윤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느닷없이 민윤기를 언급하는 탄소에, 인형뽑기 기계 쪽으로 다가오던 정국이의 눈썹이 약간 꿈틀거렸다. 누가 먼저 뽑는지 내기하자는 탄소의 말이 정국이의 승부욕을 건드려, 기계 내부를 둘러보던 정국이의 눈에 들어온건 꼬부기 인형이었다.
뭐.. 딱히 탄소가 생각 나서는 아니고.
승부욕하면 김탄소도 밀리지 않는 법, 나란히 서서 인형뽑기 기계를 뚫어버릴 기세로 인형을 뽑던 둘은 거의 동시에 인형을 뽑았다.
메타몽 인형을 들고 방방 뛰는 탄소를 보자니 왠지 기분이 이상했던 정국은, 손에 들려있던 메타몽 인형을 뺏어 탄소가 입고 있던 셔츠 안주머니로 우겨 넣고 자신이 뽑은 꼬부기를 대신 들려주었다. 너 가져, 한 마디와 함께.
"진짜? 왜?"
"너가 더 잘 어울려."
말을 끝내고 다시 골목을 빠져나오는 탄소와 정국이였다. 어느새 뉘엿거리는 해를 보며 복귀를 위해 오던 길을 되돌아 가고 있었다. 거리 구석 골목에, 북적이는 거리와 대조되게 작고 심플한 카페가 돋보였다.
"야, 우리 저기만 들렀다가 가자."
무작정 정국이의 손을 이끌고 간 카페는 사람도 얼마 없는, 조용한 카페였다. 특유의 편안함과 나른한 분위기가, 등 뒤 북적이고 시끄러운 거리에 묻힌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 특별함이 돋보인다고나 할까.
"근데 김탄소, 지금 너무 늦었는데. 다음에 오자 다음에."
시계를 보니 어느새 초저녁이었다. 들어가보고 싶다, 탄소는 속으로 생각했지만 더이상 늦으면 혼날게 뻔한 시각이여서 어쩔수 없이 서둘러 본부로 향했다. 그래도 평범한 남들처럼 식사하고, 거리를 걷고, 남들이 보기에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보낸 것 같아서, 그 익숙함이 탄소에겐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탄소가 나름 만족할 만한 하루를 보낸 것같아 정국이도 마음이 편했다. 비록 짧았지만 자신과 함께한 오늘의 시간들이 탄소에게 특별하게 남는다는게, 정국이에겐 말로 다 할 수 없는 특별함이고 행복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행복을 머금고, 탄소와 정국이는 지하 본부로 다시 복귀했다.
방으로 들어간 탄소는 정국이가 준 꼬부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입고 있던 셔츠를 벗었다. 셔츠를 정리하려고 손에 든 순간, 주머니 사이로 빼꼼 튀어나온 메타몽이 보여 웃음이 나왔다. 또 다시 민윤기가 떠올라, 오늘 썼던 학생증도 돌려줄 겸 인형을 들고 민윤기의 방으로 찾아갔다.
곧 임무가 있을거라는 보스의 말에 윤기는 한창 관련된 정보와 자료 수집에 한창이었다. 벌써 몇 시간째,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윤기는 어깨가 찌뿌둥함을 느끼고 기지개를 펴는데,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반쯤 연 윤기는,
"아, 탄소구나."
탄소임을 확인하고 문을 마저 열어 탄소를 맞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좋아보이는 탄소의 얼굴이었다.
"나 잠시만 들어갈게요!" 곧장 들어가 모니터 앞에 의자를 끌고 앉는 탄소였다. 하얀건 바탕이요, 검은건 글씨요..
"와, 난 봐도 봐도 모르겠다. 오빠는 이런게 재밌어요?"
"여기서 하는 일 중엔 제일 낫지. 근데 내 방은 왜?"
"아, 이거 주려구요." 하며, 탄소는 학생증을 책상위에 꺼냈다. 근데 사실 이건 핑계고,
"비밀인데, 오빠니까 말해주는거에요. 나 오늘 석진이 오빠 심부름하러 밖에 잠깐 나갔었거든요, ○○대학교. 일은 금방 끝났는데, 금방 복귀하기엔 너무 아깝잖아요, 그쵸? 그래서 전정국이랑 앞에 대학로에서 조금 놀았는데. 길에 인형뽑기 기계 있었거든요. 근데 이게 오빠랑 너무 닮은거에요ㅋㅋㅋㅋㅋ"
탄소는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리며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 내게 보여주었다. 저게 뭐야, 딱히 형체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눈코입만 아니. 코도 없었다. 눈이랑 입만 있는 분홍색 동물...이라기 보단 물체였다.
"이게 나랑 닮았다고?"
"네!! ㅋㅋㅋㅋ진짜 오빠랑 똑같아요, 포켓몬 작가가 오빠 보고 만들었나봐."
"아 포켓몬이야? 이름이 뭔데,"
"메타몽이요, 메타몽. 그것도 몰라!"
맨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지 말고 좀, 다른 것도 보면서 살으라구요. 그러다 문화 찐따된다. 짖궃은 탄소의 말에도, 어느새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인형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인형이 귀엽다기 보다는, 이걸 보고 날 떠올리며 재밌어 하는 탄소가 귀여워서.
"그거 오빠 가져요! 내가 뽑은건데, 그냥 줄게요."
하며 내 손에서 인형을 뺏어가 모니터 옆 종이들을 대충 치우고, 눈에 잘 띄는 곳에 인형을 세워 두는 탄소였다.
"고맙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구만? 화장도 하고."
아, 나 기분 좋아보여요? 탄소는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며, 나를 보며 웃어왔다.
"그게 다가 아니고, 사실 디팡도 타고 싶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건 못탔구요, 복귀하려고 되돌아 오고 있는데 되게 맘에 드는 카페가 있는거에요. "
말을 하던 탄소는 갑자기 흠칫 놀라더니,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니까 그 카페 오빠랑 되게 비슷하네. 구석에 있어서 되게 조용하고 막 차분하고, 나른해지고.. 아무튼 그랬거든요. 이름이라도 알아두려 했는데 간판에 아무것도 안 써있어서 카페 이름은 모르지만. 나중에 기회되면 꼭 가려구요.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보기만 했고. 아, 나도 대학생이었으면."
혼자 신나서 오늘 있었던 일을 내게 말해주는 탄소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익숙함이 보여 마음이 이상했다.
어제 갑자기 내 방에 찾아온 석진이 형의 말은, 내가 오랫동안 감춰 놓은 마음 속 한 구석, 숨겨둔 생각 속에 잠기게 만들었다.
"윤기야, 이것 좀 봐줘. 우리 회사 빅데이터 시스템 관련인데, 아무래도 우리 중에 컴퓨터 관련해서는 너가 제일 잘 아니까. 한 번 들고 와봤는데, 조금 어려우려나?"
하며 나에게 종이 파일을 잔뜩 내미는 석진이 형이였다.
"아. 이건 저 혼자는 좀 무리에요, 장비도 그렇고. 빅데이터면 내 컴퓨터 수준으로는 못 버티죠. 과부하 걸릴텐데."
"역시 그런가, 전문가 손길이 더 필요하겠지?"
나도 나름 전문간데, 나를 앞에 두고 이게 무슨 말이지, 은근히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석진이 형에 의문이 생기는 순간.
"김교수님께 여쭤볼까? 너랑도 모르는 사이는 아닐거아냐. 내 기억엔 그 교수님 너 꽤 좋게 보셨어."
느닷없이 튀어나온 김교수님, 이라는 말에. 미동 한 치 없던 윤기의 얼굴에 작은 파동이 일었다.
"김교수님이요?"
"어. 내 이름이랑 너 이름 달고 요청하면 무시는 안 하시겠지. 그 편이 낫겠지?"
애초에 내 의견은 별로 중요치 않았던 듯. 김석진은 혼자 결론을 내렸다.
"김탄소랑 전정국 앞으로 학생증 하나씩만 만들어줘, 내일 시키게. 내일 아침에 찾으러 다시 올게."
그럼 간다, 한 마디만을 남기고 석진이 형. 아니 이사님은, 내 방을 나갔다.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빠른 걸음으로 나서는 그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거리감과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런데 오늘 탄소 네가 나한테 해주는 말은, 참 달콤하면서도 아리구나.
네가 그 대학교에서 봤다는 교수님, 내가 잠시 알바로 일했던 디스코팡팡-그게 지금 장사가 잘 되는게 다 누구 덕인데, 지친 숨을 돌리러 줄곧 찾았던 구석진 그 카페도, 다 익숙하다 못해 내 한 쪽 구석에 콱, 뺄 수도 없이 박힌 추억들이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나를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는데, 그게 네 입에서 좋은 추억들로 나오는걸 듣고 있자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누구보다 내가 먼저. 내가 널 이 어둠 속에서, 하루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네 손을 잡고 뛰어야 할 이유가, 더 굳건해진 하루였다.
씻고 나온 정국은 오늘 있었던 하루를 되짚어보며, 자세하게는 오늘 있었던 탄소의 모습을 되짚어 생각해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아, 맞다 학생증."
민윤기에게 돌려줘야 할 학생증이 떠올라 반쯤 누워있었던 몸을 일으켰다. 다른 사람같으면 내일 아침에 가져다 주어도 괜찮겠지만, 민윤기는 민윤기 인지라. 자기가 자고 싶을 때 자고, 깨고 싶을 때 깨니. 대체로 밤과 새벽에 작업하는 형의 특성 상
늦잠 자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방을 나서 민윤기의 방 초인종을 눌렀다.
"전정국? 웬일이야."
민윤기는 들어오라는 듯 문을 열고 벽에 기댔다.
"아니, 별건 아니구요. 이거 다시 주려고."
정국은 윤기에게 학생증을 내밀며 말했다. 내 맞은편에 서있는 윤기 형 어깨 너머로, 익숙한 인형이 보여서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설마,
"형 저런거 좋아해요?"
모니터 옆 보란듯이 서있는, 분명 탄소에게 있어야 할 인형이 저기 저 자리에 떡하니. 정국은 인형에 눈을 떼지 못하고 윤기에게 물었다.
"뭐? 아, 저거 아까 김탄소가 주고 갔어."
저게 날 닮았대, 진짜 어이없지 않냐. 이어지는 윤기 형의 말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 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구나.
"그러게요, 진짜 어이없네요."
윤기는 급격히 굳어지는 정국의 얼굴을 보았다. 너도 참, 얼굴에 그렇게 다 티가 나서야.
피식, 하고 웃어오는 윤기의 모습에 정국은 기분이 더 나빠져 윤기를 바라보았다. 둘 사이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흐르고,
"얼른 가봐라, 남준이가 내일 현장 나가야 된댔는데. 가서 쉬어."
말을 마침과 동시에 문을 닫은 윤기는 그렇게 정국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붕 떠있던 마음이 한순간에 가라앉은 정국은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갔다.
자신에겐 탄소가 있어서 특별한 하루였는데, 탄소에겐 특별한 하루 중 그저 내가 있을 뿐이라는게. 차갑게 와닿아 더욱 서글퍼졌다.
| +사담 |
암호닉분들이에요! ♡ [땅위] [청포도] [moonlight] [왼쪽] [열꽃] [슈비] [토토로] ♡ 오늘까지만 가벼운 내용이고, 다음화부터는 현장 스토리 나가면서 약간은 진지해진 모습 보실 수 있을 거에요 ㅎㅎ 아마도.. 분량 조절에 성공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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